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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0-15 14:18
[북한] 김정일의 출생지와 관련 여러 증언들.01편
 글쓴이 : 돌통
조회 : 889  

01편.




김일성은 1940년 8월에 강위룡 등 16명과 함께 소련으로 들어갔다. 가는 도중에 훈춘의 어느 산꼭대기에서 김일성은 김정숙과 결혼하였다. 최근까지 생존해있는 사람 중에 여영준, 서순옥 등이 증언하였다.(여기서 최근에라는건 1980년대 후반이었다.당시 써진 글이라..)


주보중 일기[p.544] 보면 1940년 12월 11일자에 따르면 김일성이 16명을 거느리고 10월(음력 9월23일) 훈춘을 경유하다“고 씌어있다. 결국 김일성은 1940년 10월 22일 또는 23일경에 월경했다고 볼수있다.

남임오 연변대 교수 인터뷰, (2004년 4월).
신주백, 『김일성의 만주항일유격운동에 관한 연구』, p. 184. 

음력으로 1940년 9월 23일은 양력 10월 23일이다. 


또한 ?현대조선역사?는 김일성부대가 만주에서 군정훈련을 실시한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소련 월경사실을 은폐하고, 소련에서 했던 군정훈련을 만주에서 한 것처럼 기술하였다. 그런데 김일성 사후, 발간한 김일성회고록 계승본 ?세기와 더불어? 8권에서 이 사실을 수정하여 기술하였다. 국제당의 초청을 받고 소련으로 들어갔다고 기술하고 있다. 

국제당에서 파견한 연락원 2명이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그 연락원들의 말이 자기네를 파견한 사람은 원동군사령부에 있는 류센코 장령인데 그가 국제당의 명의로 전달하려고 한 사항은 1940년 12월에 하바로브스크에서 국제당이 소집하는 회의에 참가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만주에서 활동하는 모든 항일무장부대들이 대부대 활동으로부터 소부대 활동으로 넘어가며 원동(연해주)에 기지를 정하고 력량을 수습재편할 수 있도록 조속히 들어오라는 국제당의 지령도 동시에 전달하였습니다.


p.9에 입소 직후 김일성 관련 여러 중국측 기록들의 인용과 출처가 나옴.
김일성 입소일자 1940년 10월 23일 : ⑥ 《 ?北地? 革命?史文件 ?集》 甲 65 , pp. 115 ~ 137。
주보중이 위증민에 보낸 편지 (1941.03.12) : ⑧ 《 ?北地? 革命?史文件 ?集》 甲 61, pp. 103~110。
1941년 1월 1일 김일성 등이 왕신림에 올린 보고서⑩ 《 ?北地? 革命?史文件 ?集》 甲 60 , pp.95~105。


다시 말하지만,  김일성은 1940년 10월 23일 훈춘 쪽에서 월경하여 소련으로 들어갔다가 국경 경비대에 체포되어 포시에트 감옥에 수감되어 취조를 받게된다. 이후 주보중의 신원보증으로 풀려나 블라디보스톡 바로 위쪽 붉은 Razdolnoye 마을의 남야영에 수용되었다. 여기서 1942년 7월 88여단 창설되면서 하바로프스크 인근 뱌츠코예 마을로 이주할 때까지 머물렀다.


소련에서 태어난 김정일의 원래 소련식 이름은 흔히 Yuri Irsenovich Kim (Юрий Ирсенович Ким, 김일성의 아들 유리라는 뜻)이라 한다. 그러나 소련군 시절 김일성의 이름은 김일성(Ким Ир Сен, Kim Ir-sen) 아닌 진지첸(Цзин Жи Чен 또는 Цзин Жичэн, Jing Zhichen)이었다. 소련군 문서에서는 해방 후 평양에 온 후인 1945년 10월 2일부터 김일성(Ким Ир Сен, Kim Ir-sen)으로 적기 시작했다. 따라서 김정일의 이름 Yuri Irsenovich Kim (Юрий Ирсенович Ким)도 평양에 온 후에나 가능한 이름이다. 출생지 소련에서의 이름은 김일성의 소련군 당시 이름에서 추정해보면 Yuri Zhichenovich Jing (Юрий Жичэнович Цзин )이라야 맞다.


※  김정일의 출생지와 관련 여러가지 설들


김일성은 러시아 연해주의 88국제여단에서 1940∼45년 5년간 장교로 복무할 때 첫 부인 김정숙과의 사이에서 김정일을 낳았다.

소련은 일본과의 전쟁에 대비해 중국 지리에 밝고 빨치산 경험이 있는 중국인과 조선인으로 88국제여단을 조직했다. 88여단의 부대원들은 만주를 점령한 일본에 밀려난 동북항일연군 소속이었다. 이 부대의 지휘관이었던 중국인 저우바오중(周保中)(주보중)은 여느 중국인들처럼 8자를 좋아했고, 부대 안에서 유일한 신생아인 김정일이 라즈돌리네 마을길 88번지에서 태어난 것을 축복하는 뜻에서 

88여단으로 이름 지었다고 한다.

소련군 병영에서 자랄 때 김정일의 이름은 유라였다. 한국의 정보당국은 1993년 아나톨리 李(러시아명)의 도움을 받아 김정숙(김정일의 어머니)의 출산을 도운 조산원 엘냐를 찾아냈다. 아나톨리 이는 국내 대학을 나온 뒤 러시아 하바롭스크대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그는 언론과의 통화에서 “정보요원 두 명과 함께 당시 68세였던 엘냐를 만나 증언을 녹취했다”고 말했다. 엘냐는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났다.

1942년 열일곱 살이었던 엘냐가 조산원 면허를 취득하고 세 번째 받은 아기가 김정일이었다. 엘냐는 그해 2월 16일 새벽 4km 눈길을 걸어 아기를 받으러 갔다. 김애순이라는 통신병이 옆에서 거들었다. 김일성이 엘냐에게 아기 엄마가 짠 털목도리를 선물로 주었다. 엘냐는 김일성에 대해 “내가 반할 정도로 잘생긴 미남이었다”고 52년 전 일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유라가 태어난 지 넉 달 만인 1942년 6월 88여단의 김일성 부대는 하바롭스크 동북쪽 아무르 강의 강변도시 뱌츠코예로 주둔지를 옮겼다. 엘냐가 수석조산원 연수차 하바롭스크에 머물 때 73km 떨어진 뱌츠코예로 가서 김정숙 모자를 3년 만에 상봉했다. 엘냐는 유라를 받을 때 조산원 경험이 부족해 탯줄을 길게 잘랐는데 3년 후에 만난 유라의 배꼽이 고추처럼 튀어나와 김정숙과 같이 웃었다고 한다.

유라는 마당에서 통신병 김애순이 낳은 한 살 아래 남자아이와 놀고 있었다. 엘냐는 김애순 아들의 얼굴에서 김일성을 닮았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고 회상했다. 이 아이는 훗날 최용건(88여단 대위·1948년 조선인민군 총사령관)에게 입양된 것으로 알려졌다. 뱌츠코예의 88여단 주둔지는 현재 도로 공사로 당시 건물과 숲들이 모두 사라지고 표지판만 남아 있다.


김일성은 자신의 뒤를 이어 ‘주체의 나라’ 북한을 통치할 아들이 소련군의 병영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한민족의 신화가 서려 있는 백두산의 밀영을 끌어다 댔다. 황장엽 회고록에 따르면 김일성은 백두산 일대를 돌아다니다가 그럴듯한 곳을 찾아내 김정일이 태어난 밀영이라고 지적하고 뒷산을 ‘정일봉’이라고 명명했다. 김정일이 러시아에서 태어나 ‘유라’라는 이름으로 유년기를 보낸 것은 88여단의 항일 빨치산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거짓 설화를 창작한 것이다.


김정일은 2001년 8월 17일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러 갈 때 하바롭스크에서 내려 아무르 강이 보이는 전망대를 방문했다. 북한은 작년 그곳에 김정일 위원장 방문 기념 표지판을 세웠다. 김정일로선 아버지의 뻔한 거짓말을 뒤집을 순 없어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 서려 있는 하바롭스크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을 것이다.


라즈돌리네 마을의 빨간 벽돌집에서 가까운 곳에 스탈린이 1937년 극동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던 열차가 출발했던 기차역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해외 한인과 한국의 현대사가 서려 있는 장소를 보존하는 데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  김선(金善)이나, 김명준(金明俊), 서순옥(徐順玉), 그리고 려영준(呂英俊) 같은 항일연군 제2군 출신의 연고자들은 생전에 모두 회고담을 남겼다.



[ 출생지는 옛소련 ]

지난 45년 광복 때부터 5년 동안 김정일과 함께 어린 시절을 같이 지냈던 옛소련의 한 교포가 서울을 방문해서 김정일의 출생지 가면을 벗게 됐다는데 

●  기자와, 이 세르게이 교수와의 대화담이 있어서 아래에 글을 올리겠다.

김정일은 백두산이 아니라 연해주의 소련군 부대 안에서 태어났다고 말했습니다.

● 기자: 북한은 김정일의 우상화를 위해 출생지를 백두산 정일봉 아래 귀틀집이라고 선전합니다.

"1942년 2월 16일에 바로 이 귀틀집에서 우리의 영명한 지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탄생하셨습니다."

김정일과 함께 어린 시절을 지냈던 카자흐스탄 철도대학의 이 세르게이 교수는 김정일의 출생지가 옛소련 극동군 정보부대가 주둔했던 병영이라고 밝혔습니다.

● 이 세르게이 교수: 김정일이 하바로프스크 근처 비야츠크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고 아버지께 들었다.

● 기자: 이 교수는 김정일 가족과의 친분을 입증하기 위해 지난47년, 자신과 김정일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과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의 백일 때 찍은 사진을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이 교수는 군의관이던 부친과 김일성이 소련 극동군 정찰부대에 같이 근무했기 때문에 나이가 비슷한 김정일과 친하게 지냈고, 지난 46년 평양으로 옮겨간 뒤에도 어린 시절을 같이 보냈다고 말했습니다.

이 교수는 북한이 한국전쟁이 끝난 뒤 김정일의 출생 신화를 만들기 위해 자신을 비롯한 교포들이 갖고 있던 김정일 관련사진과 증거물들을 박물관 자료로 쓴다는 이유로 가져간 뒤 돌려주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이 세르게이는 88여단 군의관이었던 소련의 고려인 이동화 (당시 계급 소좌로 대위였던 김일성보다 상급자)의 아들이다. 이동화는 해방후 북한으로와서 김일성 주치의를 지내다 소련파들이 권력에서 밀려나면서 소련으로 돌아갔다.


이 세르게이는 이러한 사유로 어릴 때 김정일과 아무르 강변에서 같이 놀았고, 해방후 평양에서도 조선말을 못하는 김정일의 단짝 친구로 같이 지냈다.

이 세르게이는 김정일이 뱌츠코예에서 태어났다고 부친에게 들었다고 말한다.


☆☆  이민은 내가 전에 (비화) 04편으로 글을 올렸었다.


이민(李敏, 1924~)  : 빨치산 시절 이름은 이명순(李明順) - 주보중의 동북항일유격일기에도 나옴.
陳雷(진뢰) (前(전) 흑룡강성 省長(성장) ) - 李敏이민(조선족 여성) 부부


1942년 가을에 88여단에서 김일성-김정숙을 처음 만남.
 
[비화발굴] 조선족 항일투사 이민(李敏)여사의 ‘60년만의 증언’ 이라는 글을 여기서 올린적이 있다.


이민 여사는 10년간 흑룡강성 성장을 지낸 진뢰(陳雷·천레이)의 부인으로 조선족이며....


그러나 이민 여사는 다르게 말한다. 김정숙이 41년 초여름 여대원들과 함께 백두산 밀영에 가서 조선국내와 장백지구 혁명조직들을 지도하는 공작사업을 했는데, 다음해인 42년 2월 그곳 귀틀집에서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훈련기지에서 통신원을 통해 전해 듣고 다같이 환호성을 올렸다는 것이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런 이야기를 당시에 들었다는 것이다.

[피터 玄(현)의 하얼빈 특종 인터뷰] 李敏(이민) 여사 피터玄(현)


―항일 투쟁 시절 소련에 몇 번 갔습니까? 金日成(김일성)을 만난 것은 언제입니까.

『두 번 蘇聯領(소련령)으로 건너갔었습니다. 첫번은 1939년 음력 5월인데 일본군과 전투에서 불리하게 되어 소련령으로 철수했던 것이죠. 40여 일간 있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두 번째는 장수천, 다른 이름으로 李兆麟(이조린) 동지가 나를 파견시켜 주어 무선 전보 기술을 배우러 갔습니다. 抗日聯軍(항일연군)은 통신 연락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나를 포함한 여성 戰士(전사) 3명을 소련에 파견하여 무선 전보 기술을 배우게 한 것입니다. 교육은 1941년 여름, 하바로프스크 70여 km 지점 野營(야영)에서 받았습니다. 내가 金日成(김일성)을 처음 만난 것은 1942년 7월 야영에서였어요. 그때 金日成(김일성)은 소련 극동군 특별 88여단 대위였습니다』

―그때 金日成(김일성)에 대한 인상은 어땠습니까.

『당시 金日成(김일성)은 무척 젊어 보였지요. 30세 미만으로 보였는데 몸이 여위었어요. 특히 허리가 아주 가늘어 보였습니다. 멋쟁이 타입이었고 소탈하고 친절했습니다. 부하나 병사들에게 낯을 붉히는 일 없이 언제나 스스럼없이 부드러운 웃음으로 대했어요. 훌륭한 將領(장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김정숙은 미인형에 多才多能(다재다능)


―金日成(김일성)의 처 김정숙은 언제 처음 만났습니까? 金正日(김정일)은 정말 소련에서 태어나지 않았습니까.

『김정숙과 처음 만난 것은 1942년 가을입니다. 그때 남북 야영이 합하여 우리는 한 장막 안에서 자게 되었지요. 金正日(김정일)이 태어날 때는 내가 아직 김정숙을 만나기 전입니다. 金正日(김정일)의 출생지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李敏(이민) 여사는 이 질문만은 내게 자세히 얘기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金正日(김정일)이 백두산 密營(밀영)에서 태어났다는 북한의 공식 선전 내용에 異意(이의)를 달고 싶지 않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혹시 정말 모를지도 모른다. 1995년 내가 외국 기자들과 함께 북한측 안내로 백두산에 올랐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한 영국기자가 金正日(김정일)의 탄생지를 설명하는 북한 안내원에게 질문했다.

『1994년에 하바로프스크에 갔더니 거기 金正日(김정일)의 출생지가 있었어요. 어떻게 두 장소에서 동시에 태어날 수 있습니까?』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나도 1985년 하바로프스크 갔을 때 金正日(김정일)의 출생지를 본 일이 있어요』

북한 안내원은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다.

『러시아 인들은 거짓말쟁이예요!』

하얼빈에서 만난 십여 명 인사들에게 물어봐도 金正日(김정일)의 백두산 탄생을 아무도 믿는 사람이 없었다.

―김정숙에 대한 인상과 에피소드를 좀 얘기해 주세요.

『김정숙은 상당히 예뻤습니다. 얼굴은 미인형인데 오랫동안 들에서 살아서 그런지 피부는 희지 않았어요. 눈동자가 특히 까맣고 속눈썹이 길어서 더욱 예뻤어요. 인품은 인물보다 더 훌륭했지요. 우리는 1942년부터 1945년 귀국할 때까지 죽 함께 지냈습니다. 아이가 달린 김정숙은 겨울이면 집에 들어가 지냈고 여름이면 장막에 나와서 생활했습니다. 키는 작은 편인데도 端雅(단아)한 몸매가 정력적이었으며 마음은 한없이 넓었습니다. 


눈치가 빠르고 多才多能(다재다능)하여, 요리, 바느질, 춤, 연극, 노래 못하는 것이 없었어요. 나도 노래는 자신이 있었는데 노래도 나보다 훨씬 잘했습니다. 전사들과도 사이좋게 지내면서 잘 돌보아 주었어요. 金日成(김일성)과 김정숙 부부의 금슬도 아주 좋았지요. 金日成(김일성)이 舞劇(무극)을 쓰고 김정숙이 무용을 지도하고 직접 출연하기도 했어요』


金正日(김정일) 어릴 때 木銃(목총)놀이 즐겨


―金正日(김정일)의 어릴 때 인상을 듣고 싶습니다.

『金正日(김정일)은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고 영리했어요. 어머니를 닮아 눈이 까맣고 피부는 검은 편인데 포동포동하여 아주 귀여웠지요. 유치원에서 일찍 돌아오면 봐줄 사람이 없어서 김정숙은 우리가 군사훈련 받는 곳으로 金正日(김정일)을 데려오곤 했어요. 


金正日(김정일)은 木銃(목총)을 들고 자기도 병사들처럼 훈련하는 흉내를 내는 거예요.

1945년 광복을 맞아 우리는 9월에 동북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김정숙은 좀 뒤처져서 11월에 돌아온 것으로 기억해요. 그때 둘째 자제 분도 이미 그곳에서 태어났지요. 둘째와 金正日(김정일)은 두세 살 차이로 기억합니다. 


나는 남편 陳雷(진뢰)와 함께 작별 인사차 金日成(김일성) 부부를 찾아갔습니다. 그들은 문 밖으로 나와 우리를 배웅했어요. 그때 金正日(김정일)이 우리를 따라 가겠다고 어머니에게 떼를 쓰던 일이 기억납니다.

金正日은(김정일) 늘 목총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崔賢(최현)의 딸 곱단이 등과 군사 놀음을 할 때면 늘 대장을 맡았습니다. 곱단이는 金正日(김정일)보다 한 살 위였어요. 내가 나무 총으로 일본 놈을 죽일 수 있는가 물으면 金正日(김정일)은 죽일 수 있다고 대답합니다

내가 진짜 총이어야 한다고 말하면 아버지 총을 내놓으라고 떼를 썼어요. 그때 김정숙은 이렇게 가르쳤지요. 아버지 총은 안 된다, 재간이 있으면 나무 총을 가지고 敵(적)의 진짜 총을 빼앗아야 진짜 장군이다. 김정숙의 金正日(김정일)에 대한 훈육은 무섭게 엄했습니다. 그러나 매를 때리는 것은 본 적이 없어요』


―金正日(김정일)을 다시 만난 것은 언제입니까?

『1992년 金日成(김일성) 탄생 80주년 기념행사 때였지요. 金正日(김정일)은 사람을 보내 특별히 우리 부부에게 예물을 보내왔어요. 그리고 金日成(김일성) 주석 장례식 때도 만났습니다. 우리가 조선에 갈 때마다 각별하게 대접해 주었지요. 1983년 9월에는 金日成(김일성)의 전용 열차를 보내어 청진에서부터 우리를 평양으로 모셔갔으며 개성 등 여러 지방을 돌아볼 때에도 金日成(김일성)이 쓰던 방을 우리에게 내주었습니다』


  02편에서 계속~~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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