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우로는 왜국을 얕잡아보고 만만히 보고 희롱했습니다.
이 희롱에 왜국은 군사를 출병시켜 신라를 정벌하려고 합니다.
석우로는 왜군이 만만치않음을 깨달았고 첨해왕은 도망갔습니다.
석우로는 이 사태를 '재앙'으로 판단했고 결국 자기가 직접 가서 사죄하는 것만이왜군을 돌릴 수 있는 방책이라 판단합니다.
만약 이 때 신라가 강했다면 왜국과 싸워 왜군을 패퇴시키고 쫓아냈겠지만 군사력에서 전혀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왜국은 석우로와 대화할 가치 조차 못느끼고 불태워 죽이고 돌아갑니다..
그리고 당시 신라는 '사로국'이고 조정이란게 없습니다. 그냥 대족장 석우로와 대족장의 2인자 장훤과 6개 시골 마을의 촌장들이 있었을 뿐이죠.첨해왕은 신라의 왕이나 사로국의 왕이라기보다는 진한 12국 연맹의 총회장이었다 보는게 맞습니다.
첨해왕이 간 우유촌은 삼국지 동이전에서 진한 12국 중 하나의 나라로 나옵니다.첨해왕은 사로국에 머물다가 우유국으로 장소를 옮기는 진한 12국의 연맹장이었다 보면됩니다.
하여튼 진한 12국의 연맹장 조차 왜국과 정면승부는 피하고 도망갈 정도로 당시 왜국은 강력했을 수 있습니다.
이 충돌과 대립에서 금관가야나 가야는 전혀 언급도 안되는거보면 금관가야랑 가야 소국들은 왜국이라는 거대한 무역 군사 혈맹 안의 한 축이었을 수 있습니다.
"[첨해왕] 7년 계유(癸酉, 253)註 094에 왜국의 사신 갈나고(葛那古)가 객관(客館)에 있었는데, [석]우로가 그를 대접하였다. 손님과 희롱하여 말하기를,“언젠가는 너희 왕을 소금 만드는 노예(鹽奴)註 095로 만들고 왕비는 밥 짓는 여자로 삼겠다.”고 하였다.
왜왕이 이 말을 듣고 노하여 장군 우도주군(于道朱君)을 보내 우리를 쳤다.[첨해]대왕이 우유촌(于柚村)註 096에 나가 있게 되었다.
[석]우로가
“지금의 재앙은 내가 말을 조심하지 않은 데서 말미암은 것이니, 내가 그것을 감당해내겠다.”라고 말하였다. 마침내 왜군에게 이르러 말하기를
“전일의 말은 희롱이었을 뿐이다. 어찌 군사를 일으켜 여기에까지 이를 줄 생각했겠는가.”라고 하였다.
왜인이 대답하지 않고 그를 잡았다. 나무를 쌓아 그 위에 앉히고 그를 불태워 죽인 다음 돌아갔다. [그때] [석]우로의 아들註 097은 어려 걷지 못하므로 다른 사람이 안고 말을 타고 돌아왔다. 후에 흘해이사금(訖解尼師今)註 098이 되었다."-삼국사기 석우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