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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9-13 10:27
[한국사] 요서백제 새증거
 글쓴이 : 지누짱
조회 : 1,658  

요서백제의 새로운 증거
작가 기백김
2019. 12. 27. 00:13댓글수1공감수8


요서백제(遼西百濟), 즉 백제가 4세기 중국의 요서지역으로 진출해 그 지역을 다스렸는가 하는 문제는 한국 고대사의 오랜 수수께끼이다. 그에 관한 기록이 우리나라 역사 책에 나온다면 그저 국뽕조의 오류로 치부해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백제의 요서 경략에 대한 내용이 모두 중국측 사서에 실려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골치가 아픈 것인데, 학계에서는 이를 받아들이는 학자와 받아들이지 않는 학자가 나눠진다. 따라서 교과서에도 이에 대해 기술이 있고 없고 한데, 대개는 두루뭉술 넘어간다.



일례로 금성출판사 국사교과서에서는 백제가 요서, 동진, 왜 지역으로 영역을 확대한 것으로 기술되지만, 동아출판 국사교과서에는 요서지역으로의 진출은 아예 언급도 않은 채 그저 동진과의 교류 관계만 설명된다. 흥미로운 것은 ZUM 학습백과 국사교과서의 기술로서, 거기서는 산동반도와 동진은 교류로 설명되지만 특이하게도 요서지방은 진출하여 점령한 한 것으로 되어 있다.(이 지도는 요서, 산동반도, 규슈 지방 모두를 백제의 영역으로 설명한 화끈한 지도보다 훨씬 흥미롭다)



~ 백제의 요서 진출에 대한 관점이 얼마나 다양한지는 '백제의 요서 진출설과 역대 교과서 서술 검토'라는 논문으로도 알 수 있다.(임기환, 한국사학보 63집) 내용보다도 그 자체가 놀랍다. 참고적으로 말하면, 국사교과서에서 나오는 '진출'이라는 용어는 '점령해 다스렸다'는 개념이다.







백제의 요서 진출을 그린 ZUM 학습백과 교과서





이에 대해 먼저 학계의 중론을 얘기하자면 믿지 말자는 쪽이다. 백제가 거기까지 갔을 리 없다는 것이니, 따라서 사서의 백제 기록들은 전부 무시된다. 그런데 문제는 백제의 요서 점령을 서술한 중국 측 1차 사료(상황을 직접 전하는 역사자료)의 내용이 매우 명확하고 공통적이라는 것이다. 우선 그 자료들을 살펴보자.





<송서(宋書)> 권97 이만열전(夷蠻列傳) - 487년 편찬



백제국은 본래 고려(고구려)와 함께 요동의 동쪽 1000여 리 밖에 있었다. 그후 고려가 요동을 공략해 차지하자 백제는 요서를 공략해 차지했다. 백제가 점령하고 다스린 곳을 진평군, 진평현이라 한다.(百濟國 本與高驪俱在遼東之東千餘里 其後高驪略有遼東 百濟略有遼西 百濟所治 謂之晉平郡晉平縣)



<양서(梁書)> 권54 제이열전(諸夷列傳) - 629년 편찬



백제는 본래 (고)구려와 함께 요동에 있었다. 진(晉)나라 때 (고)구려가 이미 요동을 공략해 차지하자 백제도 요서·진평 2군 땅을 점거해 차지하고 스스로 백제군(百濟郡)을 설치했다.(晉世句驪 旣略有遼東 百濟亦據有遼西 晉平二郡地矣 自置百濟郡)



<양직공도 백제국사(梁職貢圖 百濟國使)>- 6세기 전반


백제는 본래 동이 마한에 속하던 나라다. 진(晉)나라 말기 (고)구려가 요동을 공략해 차지하자 낙랑(백제) 역시 요서 진평현을 차지했다.(百濟舊來夷馬韓之屬 晉末 駒麗畧有遼東 樂浪亦有遼西晉平縣)




양직공도에 그려진 백제국 사신과 글




아래의 2차 자료는 해석이 다양할 수 있으나, 어쨌든 백제의 요서 경략이 언급된다.





<남제서 백제전> - 537년 편찬

이해 경오년(490) 북위는 10만 기병으로 백제를 침략했으나 동성왕이 장수인 사법명, 찬수류, 해례곤, 목간나를 파견해 북위의 기병들을 대파했다.(是年庚午年 魏虜又發騎兵數十萬 攻百濟入其界 牟大遣將 沙法名 贊首流 解禮昆 木干那 率衆襲擊虜軍 大破之)

<삼국사기 최치원전> 



고(구)려와 백제는 전성기 때 강병이 100만에 달해 남쪽의 오, 월(정강, 강소성)을 공격했고 북으로는 유주(북경), 연, 제, 노(산동성)를 뒤흔들어 중국에는 큰 좀이 되었다.(高麗百濟 全盛之時 强兵百萬 南侵吳.越 北撓幽燕.齊.魯 爲中國巨蠹)

 
<삼국사기 백제본기>

동성왕 10년(488) 북위가 군대를 파견해 공격해 왔으나 백제가 이를 패퇴시켰다.(東城王十年 魏遣兵來伐 爲我所敗)

<자치통감>

아래 본문의 내용


위 2차 사료에서 백제가 요서를 공략했다고 보는 것은 북위와의 전투 기록 때문이다. 선비족의 나라 북위가 배를 건조해(그것도 기병 10만을 태울 수 있는) 바다를 건너올 수는 없었을 터이므로 백제가 그곳에 있었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당시 고구려의 남침에 한성을 빼앗기고 웅진으로 쫓겨온 백제가 요서 지방에 군현(郡縣)을 두고 통치했을 가능성은 적어 보이며, 설령 있었다 하더라도 북위의 10만대군을 격파시킬 힘은 없었으리라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이에 요서백제를 부정하는 학자들은 488년과 490년에 벌어진 두 차례의 전투는 백제가 고구려의 공격을 물리친 것이라 여기고 있으며, <삼국사기> 백제본기는 <남제서>의 내용을 차용한 것으로, <남제서>의 내용은 백제가 보낸 편지 등을 여과없이 싣는 과정에서 나타난 오류로 보고 있다. 아울러 <삼국사기> 최치원전에 실린 대단한 기록 역시 최치원이 당나라 태사시중에게 보낸 편지글을 그대로 실은 것인데,(여기까지는 확실함) 최치원의 의중인즉 '고구려와 백제는 너희 중국을 넘보던 나라이나 신라는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런 시절이 없었다는 것



기타 <남제서>에 실려 있는 중국 지역의 백제 태수의 이름과 직함, 예를 들면 남제 영명(永明) 8년(동성왕 12년, 490) 남제에 사자로 파견된 건위장군 광양태수 고달(建威將軍 廣陽太守 高達)이나 그해 제수된 건위장군 광릉태수 양무(建威將軍 廣陵太守 楊茂)와 광무장군 청하태수 회매(廣武將軍 淸河太守 會邁), 건무(建武) 2년(동성왕 17년, 495)에 파견하여 제수된 건무장군 성양태수 양무(建武將軍 城陽太守 楊茂) 등은 모두 허직(虛職)으로 무시되며, <자치통감>에 써 있는 요서백제의 기록들도 깡그리 무시된다.

그러나 그렇듯 무턱대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당나라 허숭(許崇)이 찬(撰)한 <건강실록(建康實錄)>에는 '영명 2년 북위 오랑캐가 이를 정벌하여 백제왕 변도를 대파했다'(魏虜征之 大破百濟王弁都)는 기록이 보이며,(비록 반대 내용이지만) 무엇보다 사마광의 <자치통감>에 '무제(武帝) 영명 6년(488)에 북위가 군대를 파견해 공격해 왔으나 백제가 이를 패퇴시켰다'(永明六年 魏遣兵擊百濟 爲百濟所敗)는 내용을 비롯한 백제의 중국 진출에 관한 기록이 선연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백제가 346년 녹산(鹿山, 길림성)의 부여를 공격해 (부여가) 쇠약해졌다'는 기사도 보인다.

위 <삼국사기>에 백제본기에 나온 한 줄 기록도 사실은 <자치통감>의 내용을 빌려온 것에 불과하지만, 백제의 평점에 인색했던 김부식이 그 한 줄이나마 빌려온 점은 시사하는 바가 없지 않다. <자치통감>은 고증에 사용한 자료를 따로 <통감고이(通鑑考異)>라는 책에 수록했을 정도로 고증에 충실했던 책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래서 괄목하게 되는 것이 아래의 <자치통감> 당기(唐記) 의봉(儀鳳) 원년(676) 2월조 기사이다.

웅진도독부를 건안고성(建安故城)으로 옮겼다. 앞서 서주(徐州) 연주(兗州) 등에 사민(徙民)했던 백제의 호구는 모두 건안에 안치하였다.

다 알다시피 웅진도독부는 660년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가 웅진(공주)에 설치한 식민지 통치기구이다. 당나라는 처음에는 웅진도독에 당나라 장수인 왕문탁과 유인궤를 임명했으나 백제인의 부흥운동이 거세지자 이를 무마시키려 의자왕의 아들인 부여융을 앉히게 된다. 하지만 당에 대한 신라의 공격이 거세지자 결국 웅진도독부를 중국 본토로 옮기게 되는데, 그 이듬해 부여융을 본토의 웅진도독으로 재임명한다. 그에 대한 <자치통감>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의봉 2년 부여융을 광록대부(光祿大夫) 태상원외경(太常員外卿) 겸 웅진도독 대방군왕의 관직을 수여하고, 영을 내려 본번(本蕃)으로 돌아가 나머지 직무를 편안히 돌보도록 하였다.

여기서 다시 살펴봐야 할 점은 당연히 건안고성이 어디인가 하는 것과, 하고많은 땅 중에서 왜 그곳으로 옮겼는가가 될 것이다. 건안고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갖가지 설이 난무했는데, 여기서 그 많은 설들을 일일이 다 소개할 필요는 없겠고, 다만 <자치통감>에 후연(後燕) 시절 '건안'이라는 지명이 요서 지역에 있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기사가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도록 하겠다.(晉記 32 安帝 隆安 2년 4월조)

~ 더불어 중국 산동대학 역사계열 왕중락(王仲犖) 교수의 지적도 주목할 만하다. 그가 <북주지리지(北周地理志)> 요서지역에서 화북지방으로 진출하는 고대 교통로에서 언급했던 '용성(龍城)에서 석성(石城) · 광도(廣都 ) · 을연(乙連) · 건안(建安)을 거쳐 노룡새(盧龍塞)로 가는 길'에 있다고 했던 바로 그 건안을 말함이다.

~ 양직공도에서 백제가 낙랑으로도 불린 일, 백제가 대방군왕의 작위를 받은 일 등은 요서지방에서 기미국(羈縻
國)으로서 오랜 세월을 유지했던 낙랑국과 대방국에의 잔영의 반영이리라.


그리고 그 건안고성에 웅진도독부를 두고 서주나 연주 등지에 사민됐던 백제인들을 건안고성으로 안치시킨 이유는 그곳이 본시 고래(古來)로부터 백제인들이 살던 백제인의 연고지였던 까닭이니,(양서의 백제군·百濟郡, 남제서의 조선태수, 광양태수와 연관지을 수 있는 곳도 요서지방이다) 그 연고를 좇아 백제번(百濟蕃)을 세운 것은 실로 당연한 노릇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건안의 위치




지난 2004년 이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묘지석 하나가 산서성 서안(西安)에서 발견됐다. 묘지석의 주인공은 부여태비(夫餘太妃)로 다름아닌 백제 의자왕의 증손녀였다. 의자왕 증손녀의 무덤과 묘비가 발견된 것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운 일은 그 무덤이 당 고조 이연의 무덤인 헌릉 곁에서 발견된 점이었다.(태비의 무덤은 길이 45m의 장대한 규모였으나 도굴되었고, 벽화만 온전했다) 이는 부여태비가 살아생전 황족의 일원으로 매우 높은 신분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인데,(태비는 왕의 어머니를 말함) 같이 발견된 남편 사괵왕 이옹의 묘지석이 이를 뒷받침했다.







발견된 묘지석





'당 고괵 왕비 부여지명'이라고 써 있는 묘지석의 전면





묘비에 써 있는 831자 중 3자만 판독이 어렵고 나머지는 온전하였던 바, 당나라 괵왕 이옹의 부인 '부여태비'라는 사실이 여실했다. 또 묘비에는 부여태비가 '남국사람의 얼굴처럼 아름다우니 봄날의 숲과 가을단풍 같았다'고 적혀 있었으며, 의자왕의 증손녀이고 부여융의 손녀이며 부여덕장의 딸로서 괵왕 이옹과 혼인해 아들 5명을 두었고 장남 이거가 왕위를 이었다고 되어 있었다.(이옹은 당 고종의  증손자였다)



즉 부여의자 - 부여융 - 부여덕장 - 부여태비로 이어지는 직계 4대의 가계도가 최초로 밝혀진 것인데, 부여태비의 할아버지인 부여융과 아버지인 부여덕장은 모두 백제번의 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언뜻 생각하면 의자왕의 후손들은 망국의 유민으로서 비참했을 듯하지만 황실과도 혼인이 가능한 명문거족으로 당당한 삶을 영위했던 것이었다.(이 사실이 조금은 경이롭다)

 





황제 증손자라고 써 있는 이옹의 묘지석





의자왕의 증손녀라고 써 있는 부여태비의 묘지석





이상 KBS '역사 스페셜' 캡처





다시 말해 그녀는 백제의 공주였던 것인데, 사괵왕 이옹은 한번 몰락했다가 명문거족인 백제 공주와의 재취에 성공함으로써 사괵왕으로 다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고 한다. 백제번국은 그만큼 당나라에서 인정받는 기미국으로 본국 백제의 멸망 뒤에도 요서 지역에서 무려 150년 간이나 번창했던 것이었다. 요서백제의 멸망은 공교롭게도 동족 국가인 발해에 의해서였으니, 발해 10대 황제 대인수(재위 818-830)가 요서지역으로 진출하며 경왕(景王, 부여경)의 건안고성을 함락시킴으로써 중국에서 이어져오던 백제사의 마지막 불꽃이 꺼지게 되었다.(구당서 권199)

 



출처: https://blog.chojus.com/4748 [초유스의 동유럽]
1963년 6월 28일 주은래 총리는 중화인민공화국ㆍ조선 관계 담화에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조선 민족은 조선반도와 동북대륙에 진출한 뒤 오랫동안 거기서 살아왔다. 요하와 송화강 유역에는 모두 조선민족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이것은 요하와 송화강 유역, 도문강 유역에서 발굴된 유적, 비문 같은 것들이 증명하고 있으며, 수많은 조선 글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 도문강, 요하, 송화강 유역에서 거주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역사기록과 출토된 유물이 모두 증명하고 있다. …
두 나라, 두 민족의 관계는 제국주의 침략으로 중지될 때까지 3,4천년 또는 더 긴 시간동안 이어졌다. 이러한 역사 연대에 대한 두 나라 역사학의 일부 기록은 진실에 그다지 부합되지 않는다. 이것은 중국 역사학자나 많은 사람들이 대국주의, 대국 국수주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그리하여 많은 문제들이 불공정하게 쓰여 졌다. 먼저 양국 민족의 발전에 대한 과거 일부 중화인민공화국 학자들의 관점은 그다지 정확한 것도 아니었고 사실에 맞지도 않았다.“

이어서 주은래는 “반드시 이런 현상은 인정해야만 한다. 조상을 대신해서 여러분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석은 180도 다른 역사인식을 그것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미중정상회담에서 드러냈다.


출처: https://blog.chojus.com/4748 [초유스의 동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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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누짱 20-09-13 10:28
   
지도가 복사가 안되었지만 글이해에 불편하진 않습니다
영종햇살 20-09-13 15:18
   
북주지리서란 책이 있군요.
"<북주지리지(北周地理志)> 요서지역에서 화북지방으로 진출하는 고대 교통로에서 언급했던 '용성(龍城)에서 석성(石城) · 광도(廣都 ) · 을연(乙連) · 건안(建安)을 거쳐 노룡새(盧龍塞)로 가는 길'에 있다고 했던 바로 그 건안을 말함이다."
이 글에서 용성, 석성은 산서성에 있는 지역 이름이다.

수경주 요하가 흐르는 곳을 보면 석성, 노룡등을 지나간다.
"위서국지(魏書國志)에서 말하기를 ‘요서(遼西) 선우(單于) 답돈(蹋頓)이 특히 강성하여
원씨(袁氏)에게 두터움을 입었는데 그래서 원상(袁尚)은 그에게 돌아갔고 여러 번 들어가 해를 끼쳤다.
공(公)이 로룡(盧龍)을 나와서, 산을 파고 계곡을 막아 500여리를 가서, 류성(柳城)까지 향하여 200리를 가다가.."
영종햇살 20-09-13 15:19
   
(백랑수는) 또한 서북쪽으로 흐르다가 석성천수(石城川水)가 백랑수(之)로 들어간다.
석성천수(水)는 서남쪽 석성산(石城山)에서 나오는데 동쪽으로 흘러
우북평군 석성현(石城縣) 옛 성의 남쪽을 지난다.
지리지에서 말하기를 우북평군에는 석성현이 있다고 했다.
KilLoB 20-09-13 16:13
   
요서백제가 등장하는 시기가 "모"씨가 백제왕권 잡을때죠.

이게 힌트라고 봅니다.

부여씨를 여씨라고 줄이듯. 모용씨를 모씨라고 줄이는게 삼국사기기록

모용선비(물론 왕은 다릅니다만. 대부분핵심세력은 모용선비) 북연이 북위에 멸망당하는데 당시 왕이하 최소 수십만이 고구려군의 인솔하 망명합니다.

이후 이들을 어캐처리했을까?
물론 망명한 왕은 처우에 불만을 표출하며(황제대우 해달라) 남조로 재망명하려다 발각당해 핑계잡아 죽입니다만..
이들자체가 사회불만세력 숫자도 엄청많고... 이들을 마침 분쟁있는 한반도로 내려보내지 않았을까?
신라남부 출연하는 고구려군..의 정체

이후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백제에 흑룡,누런안개 용.. 이리떼 등등 등장합니다(북연의 수도가 용성입니다. 북연을 다른말로 황룡국이라고도 했습니다). 쿠데타란 뜻으로보고, 성공을 의미한다고.. 즉시 나제동맹결성됨.. 또 "좌현왕-유목민족계만 등장하는 명칭으로 부여씨족계통은 없던것, 해뜨는 방향의 좌측의 뜻으로 가장 중요한자리 실권자,군부정권 참모총장정도 될듯" 곤지가 도왜해서.. 이후 규슈왜를 멸하고 모인들을 쫓아보내고... 남조에 국서를 보냅니다.
단. 신라에 법흥왕계열(책부원기? 법흥왕 진짜성은 모(용)씨란게 나오죠.) 이 백제로 부터 도망쳐 또 쿠데타하기전까지... 이 이후 신라백제는 즉시 적대가 됨.

이시기 백제 -모(용)씨백제때 요서경락설이 집중등장합니다.
제가보는 이유는 간단한데.
북위는 원수이기때문.. 곤지가 도왜한 이유도... 고구려막기에도 신라백제론 버겁기때문에... 왜까지 점령해서 쪽수를 늘릴려고

그게 백제가 반드시 요서를 먹어야되는 이유고, 북조엔 절대 아는척도 안하고 남조와 통신한 이유고..

이후 백제는 다시 (부)여씨로 무녕왕때 돌아가죠...
그이후 차기왕때 나오는 소리가 뜬금없는 남부여 선언이죠...
누구나 다 알껀데 구지 그 선언을 할이유가 있을까요?
그 이유는 그전에 아니었던시대가 있었고 그들은 위협임으로, 못을 박아야된다가 아닐지.

강단사학은 애시당초 식민사학의 범위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들의 실증이란것도 식민사학유형의 취사선택 실증이니..  뭐 그려려니.

제생각엔 이 설이 앞뒤 가장 말이 된다봅니다.
ssak 20-09-13 16:49
   
중국 측 사서, 기록, 유물 등에서
한국에 유리하게 되어 있는걸 받아 먹지도, 이용도 못하는거에 책임을 묻고 다 물갈이 해야 함.

식민사관, 친일파들을 박살 내고 조져야 함.  대대적인 개혁을 해야지.
각 단체나 수장들, 교육부 장관 등의 인물 교체 해야 하고.  제대로 된 단체를 전폭 지원하고.

정부와 정치권은 도대체 뭐하는건지.
     
신서로77 20-09-13 22:46
   
이제까지 정부와 정치인들이 대부분  그들과 한패거리들 아닙니까 물어 뭐하나요...앞으로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신서로77 20-09-13 22:47
   
지누짱님 잘봤습니다..재밌네요..
     
지누짱 20-09-14 12:56
   
감사합니다. 저도 잼나게 읽어서 소개했습니다
Marauder 20-09-16 23:34
   
잘읽었습니다. 증거가 밝혀진지 좀 됐는데 이제서야 드러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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