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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9-11 09:29
[한국사] 전, 서울대 노명호교수 한국 사학계는 아직 고려사의 역사 왜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글쓴이 : 스리랑
조회 : 603  




세종이 집현전 학사들을 동원 심혈을 기우린 30년, 생전 마감도 못한 체 세상을 등지고 단종 2년에 나온 고려사, 당시 단종실록 기록을 보자.<단종12권 2년(1454 갑술 /명 경태5년 (10월13일)



검상(檢詳) 이극감(李克堪)이 당상(堂上)의 의논을 아뢰기를


“고려전사(高麗全史)는 사람들의 시비·득실이 역력히 다 갖춰 기재되었으므로, 황보인과 김종서가 고려전사가 출간(出刊)되면 사람들이 모두 시비를 알까 두려워하여 다만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만을 인간(印刊,인쇄하여 발행)하여 반사(頒賜)하고, 고려전사는 조금 인간하여 다만 내부에만 간직하였습니다.”


고려사는 개수 개찬을 거듭, 조선 개국 62년 만인 1454년 단종 2년에 간행되었다.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60여 년을 반복적 개찬, 개수 작업을 한 것으로 보아 끊임없는 갈등과 문제 제기가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실록이 전하는 것처럼 ‘시비를 알까 두려워’라고 했다. 내부 비치용으로 일부만 간행하여 간직했다고 했다. 숱한 의미가 담긴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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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국사학과 노명호교수(1990~2017)는 최근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사료적 특성’(지식산업사)을 출간해 고려사의 왜곡된 부분을 바로잡고자 했다. 조선 초기 고려사는 주자학 이념에 치우친 나머지 상당 부분 왜곡되었다.


지금의 후손들은 그 ‘왜곡된 역사’를 사실로 알고 있다. "한국 사학계는 아직 고려사의 역사 왜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선 건국 후 처음 편찬된 ‘고려사’(1395)는 주자학 이념의 사대명분론에 따라 고려의 황제제도를 모두 제후(왕)로 고쳐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특히 제후제도로 고칠 경우 쓸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 다수 발생하면서, 내용은 빈약해졌다. 이를 깨달은 왕은 세종이었다.


최승로나 김부식 등은 유교적 사대이념에 기반한  당,송 같은 나라가 온 천하의 유일한 황제국인 중화이며, 고려 등 다른 나라들은 이(夷)로서 제후국이라는 세계관, ‘화이론’을 주도적 사상으로 부각했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소장은 여진족이 세운 금(金·1115~1234)나라의 정사인 ‘금사’(金史) ‘지리지’는 “봉집현은 본래 발해의 옛 현이다. 혼하(渾河)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혼하는 심양과 본계 사이를 흐르는 강이다.


중국 사료들은 주원장이 1388년 설치했던 ①철령위는 심양 남쪽 진상둔진이고, 1393년 이전한 ②철령위는 심양 북쪽 철령시 은주구라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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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케우치 히로시는 1918년 ‘조선 우왕 때의 철령 문제’에서 함경남도 안변을 철령이라고 우겼다. 안변 남쪽에 철령(鐵嶺)이라는 고개가 있는 것에 착안한 대사기극인데, 이를 조선총독부의 이나바 이와기치, 조선사편수회 간사이자 경성제대 교수인 쓰에마쓰 야스카즈가 뒤를 따랐다.


그리고 “일본인 스승님들 말씀은 영원히 오류가 없다”라는 한국 역사학자들이 100년째 추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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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이 사기극을 국정·검인정 교과서에 실어서 미래 세대들의 정신세계까지 갉아먹고 있는 중이다. 선조들의 피 서린 강토와 역사를 팔아먹고, 나라의 미래까지 팔아먹고 있건만 이를 바로잡아야 할 책임 있는 당국자들은 모두 꿀 먹은 벙어리인 것이 이 나라의 현실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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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 20-09-11 09:33
   
요동정벌은 조선초에 정도전이 추진한 정책으로 알고 있지만 그보다 이전에 고려 공민왕때의 정책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고려말, 원나라가 약해진 틈을 타서 고려는 옛 고구려 영토인 요동을 되찾으려 합니다. 마침내 공민왕 5년(1356년) 철령위를 탈환하고 화주목(和州牧)을 설치해 통치하게 됩니다. ​그러나, 고려 우왕 14년(1388년) 명明이 철령 이북의 땅에 철령위(鐵嶺衛)를 설치하겠다며 영토의 반환을 요구하자,


최영은 5만의 병사를 동원해서 요동정벌에 나서게 됩니다. 1388년, 조민수와 이성계가 이끄는 원정군이 출정하지만 위화도 회군으로 인해 개경은 함락되고 고려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여기까지 우리가 배운 국사교과서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눈치 채셨겠지만, 뭔가 잘못된 것이 있습니다. 


최영이 요동정벌에 나선 이유는 '명의 철령위 설치와 반환요구' 때문입니다. 당연히 고려는 철령위를 지키기 위해서 군대를 출정시켰겠죠. 그런데...? 철령은 함경도에 있는데 압록강을 건너서 요동으로 진격한 것입니다.


왜 이런 모순이 벌어진 걸까요?

식민사학자 이케우치 히로시가 철령위는 함경남도까지 이어졌다고 주장했고 그의 주장을 따라서 국사교과서에 철령을 함경도로 표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철령위는 함경도가 아니라 요동에 있었습니다.


鐵嶺衛 在遼陽城北二百四十里 古有鐵嶺城 在今衛治 東南五百里接高麗界. 洪武二十一年 置衛于彼 二十六年徙今治.

철령위. 요양성 북 240리에 있다. 옛날에는 철령성이 지금의 철령위 치소 동남 500리에 있었다. 고려와 경계를 접했다. 홍무 21년에 철령위를 그곳에 설치하여 26년에 지금의 치소로 옮겼다. 遼東志(요동지)
     
스리랑 20-09-11 09:39
   
또 다른 의문은 "요동에 철령위를 설치하겠다는데 왜 고려가 발끈해서 정벌에 나선거지?"입니다.


이에 대한 답은 '요동은 원래 고려땅인데 그곳에 명이 군사기지(철령위)를 설치하려고 하니까 출정했다'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입니다. 지금부터 그 증거를 찾아보겠습니다. 위화도 회군이 일어날 때까지의 과정입니다.



1387년, 명 태조 주원장은 고려의 우왕에게 국서를 보냅니다.


“철령 북쪽과 동서의 땅은 예부터 (원나라) 개원로(開元路)에 속해 있었으니 (명나라) 요동에서 다스리게 하고, 철령 남쪽은 예부터 고려에 속해 있었으니 본국(고려)에서 다스리라. 서로 국경을 확정해서 침범하지 말라.”(‘명사’ ‘조선열전’)


철령 북쪽은 원나라 땅이었으니 명이 다스릴 것이고, 철령 남쪽은 고려 땅이었니 그것으로 국경을 정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우왕은 이렇게 국서를 보냅니다.


조종으로부터 전해내려온 데에 구역이 정해져 있으니, 철령(鐵嶺) 이북을 살펴보면, 역대로 문주(文州)·고주(高州)·화주(和州)·정주(定州)·함주(咸州) 등 여러 주를 거쳐 공험진(公嶮鎭)에 이르니, 원래부터 본국의 땅이었습니다.


요(遼)의 건통(乾統) 7년(1107)에 동여진(東女眞)이 난을 일으켜서 함주(咸州) 이북의 땅을 빼앗아 점거하니, 예왕(睿王, 예종)이 요(遼)에 고하고 토벌할 것을 청하여 병사를 보내어 쳐서 회복하고서, 함주에서 공험진 등까지 성을 쌓았습니다. 



철령 이북은 원래 고려땅이었으니 불가하다고 반박한 것입니다.


주원장은 다시 고려의 경계를 철령 이남보다 더 내려간 압록강 이남으로 못 박으려 합니다.


고려에서 국서를 보내, 요동의 문 · 고 · 화 · 정 등의 주는 모두 고려의 옛 영토이므로 (고려에서) 철령에 군영을 설치해서 지키겠다고 주청했다.


이원명은 “그 몇 주는 모두 원의 옛 판도에 들어 있어서 요동에 속해 있고, 고려의 영토는 압록강을 한계로 하고 있으며 지금 이미 철령위를 설치했는데 다시 청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하였다. 다시 청함이 있자, 황제는 그 나라를 달래어 정해진 땅을 지켜 헷갈리지 말라고 하였다. -《명사》 권136, 열전제24, 이원명


이원명이 '고려의 영토는 압록강을 한계로 하고 있다'고 하자 주원장은 이것을 받아들입니다. 그러고는 "고려는 거짓말쟁이다”하며 한층 강경하게 바뀝니다. (철령 이남마저 빼앗길 위기)



“고려가 예로부터 압록강을 경계로 삼았다고 하여, 이제 철령에 관해 그럴 듯하게 말을 꾸몄지만, 거짓되고 속이는 게 분명하다. 이런 뜻을 짐의 말로 효유하여, ‘본분을 지키게 하여 흔단을 만들지 말라고 유시한다.” - 《명사》列傳 第208 外國1, 태조 21년 4월)


고려의 우왕과 주원장이 주고받은 국서를 보면 고려 영토는 철령을 경계로 했고, 나중에는 압록강까지 밀려 내려오면서 결국 요동정벌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려가 예로부터 압록강을 경계로 삼았다"는 주원장의 주장을 근거로한다해도 국사교과서의 고려 천리장성 위치는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백두산에서 발원해서 서쪽 신의주로 흐르는 압록강을 경계로 하면 왼쪽 교과서의 지도는 거짓입니다.
     
감방친구 20-09-11 09:41
   
옛 철령성이 지금의 철령위 동남 500 리에 있다는 것은 잘못입니다

저는 사서 교차분석을 통해 동남 500리가 아니라 동서 500리라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철령에서 최초 철령위가 있었던 봉집현(봉집보)까지는 500 리 거리가 아닙니다

500리라는 수치는
봉집현을 기준으로 동서 500 리를 접경했다는 기록을 후대의 사서들이 봉집보ㅡ>연산관ㅡ>봉황성으로 접경지가 남진함에 따라서 왜곡한 것입니다
     
감방친구 20-09-11 09:46
   
陽中衞在都司城北一百二十里本挹婁國地唐時渤海置瀋州遼置興遼軍後改曰昭徳金改為顯徳軍元改為瀋陽路治遼陽故城本朝洪武二十年置衞後又以城東北八十里撫順千户所城北四十里蒲河千户所來屬鐵嶺衞在都司城北二百四十里古有鐵嶺城在金衞治東西五百里接髙麗界洪武二十一年置衞於彼二十六年徙今治即遼金時嚚州故地也二十九年調所領左右千户所於城南六十里懿路城永樂八年復調中千户所扵懿路正統四年又調中左千户所扵城南三十里汎河俱仍屬衞 <명일통지>

찾으셨나요?

古有鐵嶺城在金衞治東西五百里接髙麗界

ㅡㅡㅡㅡㅡㅡ

동아게에서 수년째 연구한 것을 공유해왔지만
제 연구를 아무도 읽지 않고
아무리 면밀하게 아무리 고생고생해서 연구를 해서 게시해도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 한다는 현실에 참담함을 늘 느낍니다

그래서 동아게에만 오면 어느 때부턴가 가슴이 답답합니다
          
Marauder 20-09-11 12:26
   
논문 한페이지 쓰는데도 몇년씩 걸리는데 이사람들은 박사학위라도 따려는것이라 동기부여가 됩니다. 그런데 아무보상 없이 그것보다 더한 목표를 잡고계시니 그런 마음이 드실법도 합니다.
연구하시는데 방해가될까봐 일부러 자세히 댓글달진않았는데 제가 몇년전에는 감방친구님 글을 정독했던걸 기억하실겁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한페이지 글 하나읽는데도 몇시간을 투자해야해서는 사실 수지타산이 안맞습니다.
 그렇게~ 노력해서 설득되는사람은 저 하나밖에 없죠. 근데 제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거기에 저는 상당히 호의적인 편이라 감방친구님의 글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지만 가생이 밖에 나가기 전에 이 게시판에서도 곡해에서 읽는사람이 상당히 많습니다. 사실 요즘 사람들 특성상 남에게 감방친구님은 커녕 저만큼의 노력을 요구하는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 때문에 유튜브로 작업하시는걸로 아시는데 이걸로도 사실 한계가 있습니다. 유튜브는 지식의 전달장소로는 적당하지만 감방친구님의 주장은 검증을 거쳐야하는 가설인데 그러한 무대로는 좋지 않습니다. 검증해야할 사학자들이 편향되어있기에 이방법을 택하셨겠지만 대중에게 먹히려면 최소한의 자격이 있는사람의 검증이 필요하죠.
가장 중요한 일반 대중을 설득시키거나, 사학자들을 설득시켜야 뭔가 할수있는데 이미 기존지식이 완고하게 자리잡은 사람들을 설득시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대중들에게 전달하는것 역시 기존 사학계에 비해서 전달력이 떨어지는것이죠.
 이덕일의 역사티비도 아주가끔씩 보고있는데 결국 그들만의 리그가 될뿐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교수타이틀에 나름 책을 잘판다는 사람도 이정도가 한계입니다.
          
Marauder 20-09-11 12:30
   
개인적인 망상으로는 김정민박사와의 협업을 고려하셨으면 좋겠는게... 김정민이사람은 상당한 브랜드파워가있고 넓은 지식을 가지고있지만 지식의 깊이가 얕습니다.
반대로 감방친구님은 깊은 지식을 가지고있지만 브랜드파워가 낮으시죠. 또한 연구 범위도 크게 겹치지가 않아서 (이사람은 고려사에 관해서는 별로 언급도 않는 사람입니다) 만약 서로 도울수있다면 윈윈전략이 될수있다고봅니다. 하다못해 방송에서 한번이라도 소개되거나 그에 대해서 깊게 토론이라도 나눌수있다면 도움이 되리라봅니다.
1. 물론 정치색이 너무 다르고 2. 최근 가짜박사 논란이 있다는점 때문에 어려울수도 있겠지만요.
               
Marauder 20-09-11 12:36
   
이사람이 진정성있다는 가정 하에 이야기해보자면 최근 방송보면 신입 유튜버들 키우는 일을 했었더군요. 그런데 젊은사람들이 실력은 없고 돈만 밝혀서 그만뒀다는데 원하던 인재상이 감방친구님같은 케이스가 딱 아닐까 싶습니다. 뜻이 안맞아 중간에 헤어지더라도 그 중간까지 길을 같이하신다면 좋지않을까 생각됩니다. 언로는 한군데라도 많은게 좋다는게 제 생각이고 또한 초기단계 유튜브 수입에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Marauder 20-09-11 12:46
   
그리고 제가 옛날부터 주구장창 협업 이야기했던건 이런 협업과는 좀 다른건데 저는 위에 제가 재기했던 문제점들을 전부 해결하는 시스템자체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감방친구님이 일을 훨씬 하기에 쉬운 '지식공장' 시스템을 만들어서 '훨씬 쉽게 퍼뜨릴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을 만들려고했는데 문제는 이게 저의 능력부족 시간부족과 더불어 사업성이 있는지가 문제가되더군요.
제가 도와달라고 요청을 부탁드렸던 이유중의 하나는 물론 감방친구님의 가설들을 검증하고 퍼뜨리고자 하는 이유 도 있지만  컨텐츠가 필요해서도 있습니다.(마치 유튜브를 처음 만들었을때 유튜버가 필요한것처럼)
근데 몇년째 구상중이라서 부탁도 못드리는게 문제죠 ㅜ
감방친구 20-09-11 09:35
   
인하대 고조선 연구소만 철령위 위치를 밝혀낸 것이 아니라
이곳 동아게에서 몇 년 전에 저 또한 독자연구를 통해 철령위 위치를 밝혀냈습니다
     
스리랑 20-09-11 09:40
   
네, 그렇군요.
스리랑 20-09-11 09:43
   
고려의 영토인 요동을 빼앗겠다는 명에게 분노한 고려는 결국 요동정벌을 결정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위화도 회군으로 수포로 돌아가게 되고, 정도전의 요동정벌 또한 그 연장선이었습니다만 태종 이방원에 의해서 좌절됩니다.


결국 주원장은 조선과 명의 국경분쟁의 시비꺼리를 막기 위해서 압록강으로 국경을 확정지은 것이 바로 표전문 사건입니다.


아무튼, 고려와 조선의 경계가 압록강이 되면서 우리의 고토古土인 요동은 명나라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교과서와 많이 다릅니다. 명 태조 주원장 이래로 조선과 일제식민시대를 거치면서 우리 영토는 압록강 이남으로 축소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근본적인 의문은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고려는 요동을 고려땅이라고 했는가?'입니다. 주원장의 말처럼 고려가 거짓말을 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요동이 고려땅이 아니었다면, 대군을 동원하면서까지 무리하게 전쟁을 치르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철령위가 명나라 땅이라는 방을 가지고 양계에 들어온 명나라 요동 군사들을 모두 죽여야 합니다." 왕명을 받은 고려 군사들은 명나라의 요동기군 21명의 목을 베었다. 또한 이사경 등 다섯 명을 체포해 옥에 가두었다. - <조선왕조실록1>중에서



고려는 왜 요동이 고려땅이라고 했을까?

요동이 고려땅이었다는 것은 나라간의 친서인 국서에 이미 나타나 있습니다. 다시 고려의 우왕이 보낸 국서의 내용을 보겠습니다.


철령(鐵嶺) 이북을 살펴보면, 역대로 문주(文州)·고주(高州)·화주(和州)·정주(定州)·함주(咸州) 등 여러 주를 거쳐 공험진(公嶮鎭)에 이르니​, 원래부터 본국의 땅이었습니다.


고려에서 국서를 보내, 요동의 문 · 고 · 화 · 정 등의 주는 ... 이원명은 “그 몇 주는 모두 원의 옛 판도에 들어 있어서 요동에 속해 있고..

요동의 문주, 고주, 화주, 정주, 함주를 거쳐 공험진에 이르기까지 고려의 영토였는데, 여진족이 난을 일으켜서 점거하자 다시 회복하고 성을 쌓았다는 것입니다.


요(遼)의 건통(乾統) 7년(1107)에 동여진(東女眞)이 난을 일으켜서 함주(咸州) 이북의 땅을 빼앗아 점거하니, 예왕(睿王, 예종)이 요(遼)에 고하고 토벌할 것을 청하여 병사를 보내어 쳐서 회복하고서, 함주에서 공험진 등까지 성을 쌓았습니다. 


우리는 명나라가 함경도 철령에 철령위를 설치하여 그 이북 지역을 직접 통치하려고 했기에 요동정벌을 한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제 교과서와는 전혀 다른 역사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고려 국경선 '천리장성' 한반도 아닌 만주에 있었다" 무엇이 진실일까요?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위대했던 넓은 영토'를 찬양하고 찾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국경이 압록강이든 철령이든 그게 중요한건 아니잖아'도 아닙니다.

어찌보면 역사적 사건의 하나에 불과해보이는 일이 그뒤로 수 없이 많은 역사왜곡을 낳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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