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이 마한에 들어가 땅을 빌려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듯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아래의 사료에 근거했을것이다.
辰韓在馬韓之東,其耆老傳世,自言古之亡人避秦役來適韓國,馬韓割其東界地與之.(삼국지)
이 사료를 글자 그대로 이해하면 진한은 秦에서 달아난 사람들이 馬韓이 땅을 나눠줘서 겨우 살아남은 거지들의 후예로 보여진다.특히 이것은 진한이 원래 한반도 밖에 있다가 한반도 안으로 들어왔다는 해석까지 하게 만드는 내용이다.
하지만 삼국지가 말하는 秦에서 달아는 사람들은 결코 辰韓이라고 볼수 없을것이다.
前此,中國之人,苦秦亂,東來者衆.多處馬韓東,與辰韓雜居.(삼국사기)
삼국사기의 해당 내용과 통하는 기록을 보면 이들 피난민들은 辰韓이 아니라 辰韓과 뒤섞여사는 사람들이다.삼국지를 편찬한 사관은 辰韓과 辰韓과 뒤섞여사는 피난민들의 후예를 구분하지 않았기때문에 辰韓이 한반도 밖에서 한반도 안으로 이동해왔다는 착각이 들도록 기록 하였다.
즉 진한 = 진한 + 秦난민의 후예 들인데,삼국지는 秦난민의 후예들이 마치 진한을 대표하는듯이 기록하였다.그리하여 진한이 한반도 밖에서 한반도 안으로 이동했다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할것이다.
진한은 애초부터 한반도 동부에서 태어났다.
始祖姓朴氏, 諱赫居世. 前漢孝宣帝五鳳元年甲子, 四月丙辰 一曰正月十五日.即位, 號居西干. 時年十三, 囯號徐那伐. 先是, 朝鮮遺民分居山谷之間, 爲六村. 一曰閼川楊山村, 二曰突山髙墟村, 三曰觜山珍支村 或云干珍村., 四曰茂山大樹村, 五曰金山加利村, 六曰明活山髙耶村, 是爲辰韓六部.(삼국사기 신라본기)
이 사료에 의하면 -57년 혹은 이와 비슷한 시기에 진한이 탄생하였다.
이들이 비록 조선유민으로써 위만조선에서 건너온 사람들일지라도 이들이 진한을 탄생시킨후에는 진한이 계속 한반도 동부에서 존재하였다.
다만 이들이 진한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오래전부터 秦의 난민들이 마한동쪽으로 몰려왔는데 진한이 탄생한후 진한과 뒤섞여 살게 되었고 삼국지가 이들이 마치 진한을 대표하는것마냥 기록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착각이 들게 만들었다.
진한은 한반도 동부에서 태어났고 나중에 한반도 동부에서 신라로 변화되었다.
名樂浪人爲阿殘,東方人名我爲阿,謂樂浪人本其殘餘人(삼국지)
이 기록은 진한을 탄생시킨 세력이 위만조선 사람임을 말해준다.
진한 사람들이 낙랑군 사람들을 阿殘(其殘餘人,남은 사람들)이라고 한것으로 보아 이는 두가지 측면에서 해석할수있다.
첫째,위만조선이 멸망하고 서쪽지역 일부는 낙랑군이 되고 나머지 대부분은 떨어져나갔다.진한 사람들은 낙랑군 지역이 서한에 먹히운것을 일컬어 阿殘이라고 표현했을수있다.
둘째,진한을 탄생시킨 위만조선 사람들은 낙랑지역 출신이여서 나머지 낙랑사람들을 阿殘이라고 표현했을가능성이 있다.(하지만 낙랑군은 위만조선 서쪽변경이고,진국은 위만조선 동쪽 변경밖이므로 이 가능성은 낮다.)
어떤해석이던간에 위만조선사람들이 한반도 동부로 이동하여 진한을 탄생시켰고 진한은 한반도 동부에서 탄생한후 이동하지않고 그 자리에서 신라로 되었다.
《魏略》曰 : 初, 右渠未破時, 朝鮮相歷谿卿以諫右渠不用, 東之辰國, 時民隨出居者二 千餘戶, 亦與朝鮮貢蕃不相往來.
이 사료는 마치 그것을 설명하려는듯한데,위만조선말기에 위만조선사람 2000여호가 동쪽의 진국으로 갔다고 하였는데 이들이 위만조선사람이기에 "조선유민"이고 2000여호이기에 6촌의 규모랑 비교적 맞아떨어진다.그렇다면 위만조선에서 건너온 조선유민들의 정체가 아마 이 사료에 기록된 2000여호일 가능성이 있다.
이때의 지리적 상황을 말해본다면 진한은 한반도 동부이고,또 위만조선에서 진국으로 갔다는 내용은 위만조선 동쪽에 진국이 있었다는 뜻이므로 만약 진한이 진국의 영역에서 탄생했다고 가정하면 한반도는 곧 진국이 된다.그러면 현 요서일대와 요동일대는 위만조선이 되는데 위만조선이 멸망하고 낙랑군은 서쪽 변경에 설치되었음으로 낙랑군 위치는 현 요서일대가 되고 나머지 위만조선지역은 서한에 먹히우지않고 따로 떨어져나갔으므로 濊及沃沮·句驪,本皆朝鮮之地也.이와 같은 사료에 기록된바와 같이 따로 떨어져나간 위만조선 옛땅에서는 예,옥저,고구려 등 나라들을 중심으로 n개 국가들이 솔밭처럼 일어났을것이다.
한반도 밖에도 진한이라는 명칭이 전해지는데 일례로 "진한이 부여다"라는 말이 있고 "진주는 진한에서 따왔다"라는 말이 있다.하지만 "진한이 부여다"라는 말은 개소리에 속한다.역사적으로 진한은 항상 신라와 연결되었기때문이다.그러므로 요사지리지가 "진한이 부여다"라고 한것은 개소리라고 생각된다.진한은 한반도 동부에서 태어나고 죽어서는 신라가 되었기때문에 부여와는 공간적으로 상당한 거리가 있다.그리고 "진주는 진한에서 따왔다"는 기록은 후대인들이 "진국"을 "진한지국(진한의 나라)"라고 해석하는 바람에 생긴 오류라고 생각된다.마땅히 "진한에서 따온것"이 아니라 "진국에서 따온것"이라고 이해해야한다.그것은 그 지역이 진국의 옛 땅이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