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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8-31 21:11
[북한] (일제).독립운동이여.!! 14편 마지막편.
 글쓴이 : 돌통
조회 : 784  

14편. 마지막편 


(사진은 삭제처리) 


조선공작단 결성과 항일빨치산 세력의 귀국 


1945년 5월, 소련군이 베를린을 점령하면서 독일이 마침내 항복했고, 일본의 패색도 짙어지고 있었다. 소련은 미국의 요청에 따라 얄타협정을 기초로 유럽전선에서 극동으로 병력을 이동시켜 본격적으로 대일전을 준비하였다. 1945년 2월에 열린 얄타회담에서 미국과 소련은 독일이 패망한 때로부터 2~3개월 후에 소련이 태평양전쟁에 참가하기로 합의한 바 있었다. 바실레프스키 원수를 사령관으로 하는 소련극동군 총사령부가 치타 북서쪽 25킬로미터 지점에 설치되었다. 항일연군 대원들은 대일전에 소련과 함께 참전하기를 학수고대하면서 소련군의 병력과 장비이동을 흥분된 마음으로 전해 들었다. 4월 5일 몰로토프 외상은 소·일중립조약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일본에 통고했다.  


1945년 6월 2일 극동군 사령관 푸르카예프는 항일연군 최고지도자 저우바오중(주보중)에게 소련의 대일작전 의도를 전달하면서 협력을 요청하였다. 비밀엄수를 전제로 소부대 파견 및 작전시 길을 안내할 요원을 요청하였다. 저우바오중(주보중) 등 지도부는 비밀리에 요원을 선발하기 시작했다. 7월 하순 극동군사령부의 고위지휘관이 야영지를 방문하여 협력을 요청했을 때는 이미 전체 대원들에게 전황이 알려져 있었다. 340명의 대원들이 소련군에 파견되었다. 제1극동방면군에 160명, 제2극동방면군에 80명, 자바이칼 방면군에 100명 등이었는데, 주로 소련국적의 대원이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참조).*** 와다 하루끼, 위의 책, 283~284쪽 


김일성은 주로 제1극동방면군과 소련군의 대일작전에 대한 항일연군의 협력을 논의했고, 종전 막바지에 모스크바를 방문해 소련군부 및 당의 주요 인사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1945년 7월 말, 중공당항일연군교도려위원회는 중공동북당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조선인 대원들만으로 조선공작단을 조직하였다. 저우바오중의 회고에서는 조선공작단, 조선공작위원회, 조선공작단위원회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290여 사람을 조선으로 돌아가도록 파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공작단은 서기에 최석천(최용건), 위원에 김일성, 김책, 안길, 서철, 박덕산, 최현 등을 선출하였다. 
(참조). 신주백, 위의 책, 490~491쪽  


조선공작단 결성은 일제의 패망과 함께 조선혁명에 대한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의 임무가 구체적으로 부활한 것을 의미했고, 조선인 지도자로 김일성이 부상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교도려 시절과 공작단에서의 지위로 본다면 최용건이 김일성보다 상위에 있었지만 이미 김일성은 지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최용건은 중공당 중앙에서 파견한 동북국 서기 펑전(彭眞)에게 보고하기 위해 만주에 남았다가 뒤에 귀국한 반면, 김일성은 공작단을 이끌고 귀국하여 바로 건국과 건당, 건군 작업을 총지휘하기 때문이다. 공작단이 북한에 입국하는 순간부터 중공당의 영향력은 약화되었고, 소련의 영향력이 절대적이 되었다. (참조).기광서, 앞의 글, 275〜289쪽 


**~~※《여기서 전에 짚고 넘어갈것들을 보자. 
마에다 중대 지휘관 마에다 다케이치(前田武市)는 조선경찰로 있다가 지도관으로 만주에 파견되어 화룡현경찰서장과 삼도구 경찰서장을 지냈고, 1939년 4월부터 ‘김일성토비대’에 참가했으며 10월 우나미 경방대대가 조직되자 그 중대장이 되었다. 늘 “김일성의 머리는 내가 베어들겠다”고 떠들며 밀림 속으로 들어갔다가 홍기하 전투에서 유격대에 사살되었다.(와다 하루끼, 229쪽) 

백정윤, ‘주보중 일기’를 통해 본 동북항일연군제2로군 조선인 대원들의 활동(1936〜1941)한국근현대사연구 68, 2014. 3. 234〜237쪽 
중요. 

왕신림(王新林)은 만주 빨치산들과 접촉하던 소련 극동군 책임자의 암호명인데, 이 암호명은후임자에게도 그대로 승계되었다. 중국측 기록에는 초대 왕신림은 극동군 내무부장 와실리(瓦西里, Vasily) 소장, 2대 왕신림은 극동군 정보부장 소르킨(索尔金, Sorkin)소장으로 나온다.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는 초대왕신림은 극동군 정보부장 류쉔꼬 장령, 2대는극동군 정보부장 소르낀 장령으로 나온다. 왕신림(王新林)은 소련 이름 와실리(瓦西里, Vasily)를 음사(音寫)한 것이라 한다. 북한측 주장에 의하면, ‘2차 하바로프스크 회의’(1940.12〜1941.3.)가 끝날 무렵에 류쉔꼬가 소르낀으로 교체되었다고 한다. 

북만에서 전투를 계속하고 있던 허형식은 교도려 결성 이틀 후인 1942년 8월 3일 경안현 청봉령에서 전사하였다.   

또,  김책은 허형식이 사망한 뒤에도 계속해서 전투를 벌이다 1943년 10월에야 비로소 철수를 개시하여 1944년 1월에야 교도려에 합류한다. 이 사이 허형식, 김책과 활동하던 박길송도 1943년 1월 4일 일본군에 체포되어 처형된다. 그 사이 허형식을 대신해 왕밍구이(왕명귀)가 영장을 맡고 있었다.(와다 하루끼, 위의 책, 270쪽) 

서시잉은, 1943년 하바로프스크로 불려간 뒤 행방불명되었고, 지청은 체포되어 일본 간첩 혐의로 10년형을 받았다. 서시잉의 후임으로 강신태(강건)가 영장으로 임명되었다. 

저우바오중은 조선공작단에 속한 조선인이 290여명이라고 했지만, 그들이 모두 함께 귀국한 것은 아니었다. 김일성과 함께 원산을 통해 귀국한 유격대원들은 최소한 60명은 되었을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여기에 소련에서 합류한 소련계 한인 대원, 유격대원들의 가족까지 합치면 이 보다 좀더 많았을 것이다.(신주백, 위의 책, 490쪽) 일부 대원들은 동북지역의 해방을 위해 파견되었고, 여성대원들은 이들보다 늦게 귀국하였다.》※ ** 



김일성과 항일유격대 일행은 9월 5일 야영을 출발하여 9월 19일 원산에 상륙하였는데 김책, 안길, 최현, 김일 등이 동행하였다. 이때 원산위원회에서 활동하던 태성수, 정률 등이 부두에 나가 이들을 맞았다. 김일성 일행은 9월 21일 평양으로 향했으며 도중에 이들을 환영하기 위해 마중오던 치스차코프의 열차와 충돌하는 사고가 있었다. 김일성은 9월 22일 평양에 도착했으나 그 사실을 비밀에 붙인 채 활동했다. 김일성은 소련군의 지원을 받아 평양시 중구역 연화동 동양척식회사 평양지사 자리에 사무실을 내고 국내 사업에 착수하였다. 김일성은 ‘김영환’이란 가명을 사용하며 표면에 드러나지 않고 활동했다. 김일성과 함께 귀국한 항일유격대 대원들은 곧바로 지방에 파견되어 당과 국가, 군의 조직사업에 투입된다. 조선공작단의 항일유격대원들은 각각 지방에 파견되어 아래서부터 조직사업을 전개하기 시작했는데, 김책은 함흥, 안길은 청진, 김일은 신의주, 최현은 강계, 서철은 원산 등지로 파견되었다. (참조).박병엽 증언/ 유영구․ 정창현 엮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탄생』, 선인, 2010, 52〜55쪽 

김일성과 항일유격대 세력은 이러한 조직적인활동을 통해 그 어떤 집단이나 세력보다도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당시 북한 지역의 상황은 공산주의 세력의 힘이 대단히 미약했다. 1945년 11월 현재 진짜 당원이 300여명 내지 제대로 된 당원이 500여명밖에 안된다고 말할 정도로 조직화된 집단이 전무했다. 이런 상황에서 1, 2백여 명에 이르는 항일유격대 세력의 조직적인 활동은 대단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해방 후 짧은 기간에 젊은 나이의 김일성이 북한에서 대중적 지도자로 부각하고 공산당의 최고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진) 삭제 

  ▲ 동북항일연군 시절의 동지였던 저우바오중과 김일성 가족의 기념촬영. 주보중, 왕일지, 김정숙, 김일성. 앞줄 왼쪽이 주보중의 딸 주위(周偉), 그 옆이 김정일. 


김일성이 대중지도자로 부각된 것은 기본적으로 항일투쟁 시기의 경력과 대중적 명망, 그리고 소련군의 지원이 가장 중요했지만 항일유격대가 귀국 전 결성한 조선공작단의 국내에서의 조직적인 활동도 큰 힘이 되었다. 김일성을 지도자로 한 이들 항일유격대 세력은 다른 어떤 세력에 비해 결속력이 강했고, 조직적으로 움직였던 것이다. 김일성과 항일유격대 세력이 단결할 수 있었던 것은 최용건과 김책의 역할이 중요했다. 그들은 경력 면에서 김일성에 뒤지지 않았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김일성을 지도자로 밀었다. 그 결과 항일유격대 세력은 나이, 학벌, 당 활동 경력, 국내 조직 연계 등 여러 가지 약점에도 불구하고 국내파, 소련파, 연안파 등 쟁쟁한 인물과 파벌, 세력들을 물리치고 권력 장악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항일연군 대원들 중 만주에서 싸우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소련 영내의 야영지에서 교육과 훈련, 정찰 및 소부대 조직 활동을 전개하면서 해방 전까지 지냈다. 일제의 패망과 함께 북한으로 귀환한 대원들은 김일성을 중심으로 일치되어 행동하였고, 결국 북한 정권의 실세가 되었다. 동북항일연군 출신으로 끝까지 살아서 북한으로 들어온 사람 숫자는 기록이 없어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와다 하루끼의 계산에 따르면 133명이 확인되고 있다.(참조)와다 하루끼, 앞의 책, 294~319쪽  
  

항일유격대세력의 중심집단이라고 볼 수 있는이들은 초기 주로 군대를 중심으로 배치되어 무력을 장악했으며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남로당 계열이 숙청된 뒤에는 당에도 대거 진출했다. 1956년 8월 종파사건을 거치면서 연안파, 소련파 대부분이 숙청된 뒤에는 항일유격대 세력이 권력을 독점하였고 이를 통해 ‘김일성 유일체제’가 성립되었다.  
(사진) 

  ▲ 해방 후 북한 군부를 장악한 항일 빨치산 출신들이 평양에서 최초로 생산된 따발총을 들고 기념 촬영했다. 왼쪽부터 최용건, 김책, 김일(박덕산), 강건태(강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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