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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8-22 18:27
[북한] (이승만시리즈) "비내리는 호남선"과 이승만
 글쓴이 : 돌통
조회 : 704  

남대문(숭례문)에 나붙은 제3대 정부통령 자유당 후보 이승만과 이기붕의 선거 홍보물.ⓒ 국가기록원(사진)  사진들은 삭제 

  

'부산 정치파동' 



헌법 제정 당시 초대 대통령은 국회에서 간접선거로 뽑았다. 1948년 7월 20일, 이승만은 재적의원 198명 중 180표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이후 국회의원들은 이승만 대통령을 신뢰하지 않았다. 국회에서 제2대 대통령 선거를 치를 경우 이승만의 대통령 당선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그런 가운데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거기 실시됐다. 결과는 여당인 국민당이 24석, 제1야당인 민국당 24석으로, 기존 정당은 모두 참패했다. 그 대신 무소속이 126석으로 대약진했다. 당시 무소속은 대부분 반 이승만 세력이었다. 




이승만은 정치적으로 최대 위기에 처했다. 그때 한국전쟁(6?25전쟁)이 발발했다. 이승만은 전쟁 전에는 북한을 이길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정작 전쟁이 일어나자 달아나기 바빴다. 하지만 한국전쟁은 이승만에게 정치적 승부수를 던질 수 있는 찬스였다. 


  


전시 때는 어느 나라나 군대와 경찰의 힘이 막강하다. 이승만은 그들의 힘을 최대한으로 이용했다. 곧 자신의 집권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  피란지 부산, 국회에서 발췌개헌안을 기립투표로 통과시키고 있다(1952. 7. 4.).ⓒ 국가기록원(사진삭제) 


1951년 11월 말, 이승만은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런 뒤 이를 관철하고자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하지만 국회는 이 개헌안을 보기 좋게 부결시켰다. 그러면서 국회는 한 술 더 떠서 1952년 4월 17일, 내각제 개헌안을 제출했다. 국회 내에서 지지 세력이 빈약한 이승만으로서는 이 개헌안을 평화적으로는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그러자 그해 5월 25일, 이승만은 부산을 중심으로 경남, 전남과 전북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런 다음날 헌병대를 동원해 국회의원들이 출근하는 통근버스를 견인차로 끌고 간 뒤, 의원 10명을 국제공산당과 관련 혐의를 뒤집어 씌워 유치장에 가둬버렸다. 




이에 민국당의 김성수 부통령은 사퇴서를 던지며 항의했다. 국회도 구속된 의원 석방 결의안을 채택해 이승만을 압박했다. 하지만 이승만은 요지부동으로 대통령 직선제와 국회 양원제 두 가지만 발췌해 마련한 개헌안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국회를 해산하겠다고 협박했다. 




이러한 강압 속에 그해 7월 4일 야간 국회에서 의원들은 기립표결로 발췌개헌안을 통과시켰다. 출석의원 166명 가운데 찬성 163표, 기권 3표, 반대 0표였다. 이를 '부산 정치파동'이라고 한다. 이 부산 정치파동에는 군대, 경찰, 정치깡패들이 동원됐다. 깡패들은 백골단, 땃벌레 등 무시무시한 말들을 썼다. 이 개헌으로 이승만은 1952년 8월 5일에 실시된 제2대 대통령 선거에서 직선으로 무난히 당선했다.  

  
▲  이승만 대통령의 개정된 헌법 공포(1952. 7. 7.).ⓒ 국가기록원(사진삭제) 


  '사사오입 개헌' 


제2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승만은 또다시 집권 연장 욕심을 부렸다. 당시 헌법에 대통령은 1차에 한해 중임을 할 수 있었다. 이승만은 이 조항을 없앴다. 종신 대통령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1954년 5월 20일에 실시되는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 개헌선을 확보하고자 사활을 걸었다. 3선 개헌에 필요한 의원수를 확보하기 위해 경찰을 동원하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르면서 선거를 치렀다.  


  


그 결과 전국 203개 선거구에서 114석을 얻었다. 하지만 개헌 선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러자 무소속 의원 23명을 영입해 개헌에 필요한 136석을 확보했다. 




그해 11월 27일, 초대 대통령에 한해 3선 금지조항을 삭제한 개헌안이 국회본회의에 상정, 비밀투표로 표결됐다. 결과는 재적 인원 203명에 재석 의원 202명, 찬성 135명, 반대 60명, 기권 7명이었다. 의결 정족수 136명에 1명이 모자라는 결과로 사화자인 당시 최순주 국회 부의장은 개헌안 부결을 선포했다. 




하지만 이틀 뒤인 11월 29일에 최순주 부의장은 지난 27일 부결 선포는 계산 착오에 의한 것이란 괴변을 늘어놨다. 그런 뒤, 부결 선포한 개헌안을 취소하고, 다시 가결을 선포했다. 이는 재적의원 203명에서 의결 정족수인 3분지 2는 135. 3333…으로 이 경우 사사오입의 계산법에 따라 소수점 이하는 생략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  제3대 정부통령 민주당 신익희와 장면 후보 벽보(1956. 5.).ⓒ 국가기록원(사진삭제) 


  
민주당 창당과 신익희 후보의 사망 


사사오입의 개헌 파동은 범야권의 신당 창당을 촉진케 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보수파와 혁신파의 대립으로 상당기간 내홍을 겪었다. 결국은 보수파 단독으로 1955년 9월 18일 민주당이 창당됐다. 민주당 대표최고위원은 신익희, 최고위원 조병옥, 장면, 곽상훈, 백남훈 등이었다.


민주당은 1956년 5월 15일 제3대 정부통령 선거에 대통령 후보로 신익희, 부통령 후보로 장면을 지명했다. 이때 자유당도 대통령 후보에 이승만, 부통령 후보에 이기붕을 확정했다. 혁신계에서는 대통령 후보에 조봉암, 부통령 후보에 박기출을 내보냈다. 

  


그때 민주당은 선거구호로 "못 살겠다 갈아보자"를 내걸었다. 그러자 자유당은 이에 대해 "갈아봤자 소용없다" "구관이 명관이다" 등의 선거 구호로 맞받아쳤다. 




1956년 5월 3일, 한강 백사장의 민주당 후보 유세장에는 30만 명의 인파가 몰려 이승만 정권 교체를 바라는 이들의 꿈을 한껏 부풀게 했다. 하지만 신익희 후보는 선거를 열흘 앞두고 호남선 열차로 유세차 전북 이리로 가는 도중, 열차 안에서 뇌일혈로 운명했다. 




그 무렵 박춘석이 작곡한 '비 내리는 호남선'이라는 가요는 신익희 후보의 추모 곡으로 이 나라 백성들의 애창곡이 됐다. 

  

▲  민주당 신익희 후보 유세차ⓒ 국가기록원 
(사진삭제) 

  
목이 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 

돌아서서 피눈물을 흘려야 옳으냐? 

사랑이란 이런가요? 

비 내리는 호남선에 

헤어지던 그 인사가 

야속도 하더란다. 

  

▲  제3대 조봉암 대통령 후보 벽보와 이범석 부통령 후보의 벽보.ⓒ 국가기록원(삭제) 


 그해 5?15 대통령 선거 결과는 이승만 504만 표, 조봉암 216만 표, 무효인 신익희 추모 투표 185만 표. 이승만이 당선됐다. 부통령 선거에서는 장면 401만 표, 이기붕 380만 표로 장면이 당선됐다. 이 선거에서 조봉암의 200여만 표의 대약진과 그의 선거 공약 평화통일론은 이승만 눈엣가시였다. 



이승만은 정적 제거 리스트에 '조봉암'의 이름을 올렸다. 조봉암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스멀스멀 드리워지고 있었다  


  


이상..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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