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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8-15 15:30
[북한] (일제)..독립운동이여..!! 05편
 글쓴이 : 돌통
조회 : 734  

중공당의 신노선-코민테른 제7차 대회와 ‘8.1선언’



1935년 7월 25~8월 20일에 모스크바에서 코민테른 제7차 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서는 식민지·반식민지에서 반파쇼인민전선과 함께 소수민족문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방침이 제시되었다. 대회에서 중화소비에트정부와 중공중앙당 명의로 「8.1선언」이 제출되었는데, 전중국의 국방통일정부 구성과 중국 내의 모든 피압박민족의 참가를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8.1선언에서는 중국공산당의 항일노력과 함께 동북의 항일활동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항일을 위해서 당파를 초월하여 협력할 것을 호소하면서 중국내의 모든 피압박민족(몽고, 위구르, 조선, 티벳, 묘, 요, 여, 번 등)의 형제들을 그 대상에 포함시켰다.중국공산당은 8.1선언을 통해 항일민족통일전선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각 당파와 민족, 모든 계급·계층을 망라한 ‘항일연합군’을 조직할 것을 제기하였다. 이러한 선언에 따라 중국공산당 만주조직은 1936년 1월부터 회의를 소집하고 각 항일부대를 ‘동북항일연군’으로 개편, 확대하기로 결정하였다.


 
▲ 모스크바의 조종을 받는 프랑스 좌익을 비판하는 포스트. ‘인민전선’은 프랑스 노동계급이 반파시즘, 반제국주의, 반전주의를 목표로 한 통일전선운동에서 발전한 것이지만, 1935년 7차 코민테른 대회에서 불가리아 공산당 지도자 게오르기 디미트로프가 제창한 후 일반화되었다. 식민지·반식민지에서는 인민전선보다는 반제반봉건통일전선이 더 중요한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 코민테른 중공당 대표로 활약하며 만주 항일유격대 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던 왕밍. 중공당의 마오쩌둥에 의해 숙청되지만 만주 조선인공산주의자에게는 양 측면이 있었다.

 
▲ 노년의 캉성. 캉성은 중국 비밀정보기관의 수장으로서 마오쩌둥의 옌안 정풍운동을 주도하고,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4인방의 배후로 활약했던 인물. 중공당 대표로 모스크바에 파견되어 활동하면서 만주의 민생단 사건을 종결짓는데 도움을 주었으나 김산과 같은 혁명가를 스파이로 몰아 처형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 대회에는 중공당 대표로 왕밍, 캉성(康生) 등이 참석하였고, 장정 도중이었던 중공당 중앙은 천윈(陣雲) 등을 파견했으나 대회가 폐막된 뒤에야 모스크바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동만특위 서기 웨이쩡민도 민생단 문제에 대한 중앙지도부의 지침을 받기 위해 이 대회에 파견되었으나 대회가 끝난 뒤에야 모스크바에 도착하였다. 길동특위 서기 우핑(양쑹)은 대회가 끝난 뒤인 1935년 9월 하순부터 10월 초순에 걸쳐 모스크바로 가서 코민테른 파견 대표 왕명과 강생, 중공대표로 뒤늦게 모스크바에 도착한 천윈 등과 함께 만주 상황을 논의하였고, 그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1935년 11월 2일자로 코민테른 기관지에 양쑹이 쓴 「동북인민반일통일전선을 논함」을 발표했다. 양쑹은 이 글에서 가능한 모든 반일세력을 집결시켜 반일반만통일전선을 구축하고, 만주에서 조선인의 독자적인 독립투쟁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조중 연대를 실현할 것을 제시하였다.



또한 모스크바 중앙의 지도로 좌익파벌주의의 극복에 진전이 있었다고 확인한 다음, “중공중앙당은 이제 ‘중·한·몽·만 피압박민족의 통일전선’이라는 슬로건을 진행시켜서 ‘중한민족은 굳게 연합하여 일본의 괴뢰만주국통치를 전복하고 간도 한인민족자치구를 건립하자’는 구호를 내걸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하였고, 그런 바탕 위에서 “인민혁명군 제2군과 기타 반일유격대를 ‘중한 반일연합군’으로 개편하여 한국민족의 독립을 위해 싸우게 할 것, 중국공산당 조직의 강화와 아울러 ‘한국민족혁명당’, ‘간도의 반일통일전선의 당’을 결성할 것” 등을 제안하였다.


양쑹의 글은 중공중앙의 신방침인 ‘8.1선언’을 한걸음 더 진전시켜 동북지역에서 반일통일전선과 함께 조중민족의 항일연합군을 조직하고, 조선민족의 통일전선적 당조직을 건설할 것을 제시하였다. 이는 동북지역 항일운동에 대한 중대한 문제제기가 아닐 수 없었는데,사실상 지금까지 극좌적으로 진행된 반민생단 투쟁을 끝내고 조선인의 독자적인 항일 활동과 독립투쟁을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우핑은 길동특위 서기로 활동하던 1935년 1월 북만주 영안 동남산 저바오중의 유격근거지에서 10여일 동안 머물면서 김일성으로부터 동만지역 민생단 사건의 실상을 상세히 듣고, 동만특위 책임자 쫑지윈(鐘子雲)의 2차에 걸친 보고서를 검토한 뒤 “쫑지윈의 조선인 7, 8할이 민생단이라는 주장은 지나치다”고 비판하면서 “재만 조선인의 절박한 요구인 간도 조선인의 자치를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는 등 위의 글과 유사한 내용을 담은 ‘동만특위에 보내는 편지’를 보낸 바 있었다. 이는 극좌적으로 진행되고 있던 동만의 민생단 광풍에 제동을 거는 것이었고, 이러한 문제의식을 중공당의 ‘8.1선언’에 맞게 정리하여 코민테른 기관지에 발표하게 되었던 것이다.



제2군 정치위원 겸 동만특위 서기로 이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1935년 5월 만주를 떠났던 웨이쩡민은 다른 일들로 인해 그해 12월에야 코민테른 주재 중공대표를 만나 동만의 상황을 보고하였다. 웨이쩡민의 보고 내용에는 1935년 5월까지의 동만 상황이 반영되어 있어서 반민생단 투쟁의 필요성이 제시되었지만, 신노선에 따라 그러한 주장은 비판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코민테른의 중공당 지도부는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 내에서 조선인 간부와 대원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다는 사실을 감안하여 조선인부대를 분리시켜 조선인민혁명군을 따로 조직하고 반일대중단체의 경우도 조선인의 독자적인 조직을 만드는 것이 좋다는 결론에 도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코민테른 제7차 대회를 계기로 동북항일투쟁의 새로운 방향 전환이 모색되었고,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 또한 적극적인 조중연합 활동을 전개하였다. 왕더타이와 리쉐쭝은 제1단과 제2단을 이끌고 남쪽인 안도 방면으로 진출하였고 제1단의 안봉학은 돈화 방면으로 진출하여 조선 회령에서 장춘에 이르는 철도선을 파괴하면서 일본군을 괴롭혔다. 김일성은 제2차 북만원정 때 왕청3단과 훈춘4단의 주력부대와 함께 북쪽인 대전자를 향해 나아갔는데, 노흑산에서 정안군과 싸운 뒤 7월에는 영안에서 저우바오중이 이끄는 제5군과 만났다.


저우바오중의 수녕반일동맹군은 1935년 1월 동북인민혁명군 제5군으로 재편되었고 저우바오중이 군장으로 취임하였다. 8월 2군과 5군의 영도간부연석회의가 열려 양군의 배합작전이 논의되었는데, 5군 부군장 시세영(柴世榮), 5군 1사장 이형박(李荊璞)과 함께 2군 3단 정치위원 김일성이 이를 지휘하였다. 이 연합부대의 병력은 약 200명이었는데, 김일성부대는 6개월 가까이 액목·돈화 일대에서 전투를 계속하였다.



      06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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