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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8-14 09:01
[북한] (일제)..독립운동이여..!! 03편
 글쓴이 : 돌통
조회 : 693  

***  중국공산당의 지도와 민생단 사건의 비극

 

아무리 조선인들이 많이 살고 있어도 만주는 엄연히 중국 땅이었다. 오랫동안 역사적 관계를 맺어 왔고 국경을 맞대고 있다고 해도 만주는 중국이 통치하고 있었던 동만주를 제외하고는 중국 한족이 압도적 다수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남의 땅에서 독립운동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라를 빼앗은 일제가 조선인 독립운동가의 뒤를 따라 들어와 중국의 주권에 간섭하고 결국에는 침략, 영토를 장악했기 때문에 중국인들의 입장에서는 조선인들이 일본의 앞잡이로 여겨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중국인들은 조선인들이 일찍부터 일본과 맞서 독립투쟁을 벌여왔고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상황에서 공동의 적인 일본에 대항하여 힘을 합쳐 싸워야 할 필요성을 알고 있었다. 지주·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중국국민당이나 군벌정권, 그리고 그와 연계된 구국군의 입장에서는 다를 수도 있었지만, 피지배계급의 해방과 반제통일전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중국공산당의 입장은 확실히 조선인민, 조선인공산주의자와의 연대가 중요하였다.

 

 

어쨌든 일국일당원칙에 따라 조선인들이 중국공산당에 대거 입당함으로써 조선인과 중국인의 공동투쟁이 조직적인 차원에서 가능해졌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는 공동투쟁이 아니라 조선인혁명가들이 중국공산당의 조직원이 되어 중국공산당의 지도를 받는 것이었다.

 

 

중국공산당의 가장 일차적인 목표는 중국혁명, 즉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을 몰아내고 반동군벌과 반동지주·자본가를 타도하는 반제반봉건혁명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인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중국 땅에서 중국공산당원이 되어 활동한다 하더라도 조선의 해방, 조국의 독립이라는 과제를 포기할 수 없었다. 따라서 조선인들과 중국인의 공동투쟁, 연대와 합작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비록 국제주의가 관철되는 공산당이라고 해도 민족적인 문제가 없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흔히 북간도로 불리는 동만주의 경우, 주민구성도 그렇고 공산당원과 간부, 유격대와 근거지(소비에트)의 주요 간부들이 대부분 조선인이었고, 또한 이들의 머릿속에는 조선의 독립과 해방이 주된 과제로 자리잡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간도지방 공산당원 중에는 과거 독립군 등 민족주의운동을 하다가 사상적 진화를 거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조선공산당의 여러 파벌들 가운데서도 서울상해파나 ML파의 경우는 민족해방이라는 민족적 과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니 중국혁명을 목표로 한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원회의 한족 간부들의 입장에서 보면 조선인공산주의자들의 과거행적이나 사상적 토대가 의심스러운 점이 없지 않았다.

 

 

물론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조선인들이 드러내놓고 중국혁명을 부정하거나 조선혁명을 일차적인 과제로 내세우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들이 중국혁명과 동시에 조선혁명이라는 이중의 목표를 갖고 있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활동 과정에서 은연중에 이러한 사고의 편린들이 드러날 수도 있고, 조선인과 한족간부들 사이의 민족적 갈등도 생겨날 수 있었다.

 


 
그와 같은 문제들이 평소에는 다소 갈등 요소이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당과 유격대의 위기 상황과 맞물려 그 위기를 불러온 ‘반혁명’ 요인, ‘반동’적 요소로 낙인찍히면 심각한 사태가 생겨날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민생단 사건’이라는 비극이었던 것이다.

 

 

민생단 사건이란 1932년 10월경부터 1936년 3월경까지 중국공산당이 지도하는 동만주 지역의 항일유격대와 공산당·대중조직, 유격근거지(소비에트·인민권력) 내에 침투한 일제의 앞잡이인 민생단원들을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조선인들을 처형한 사건을 말한다. 그런데 이때 처형된 사람들은 동만지역 당과 유격대의 최고위급 지도간부에서부터 중간간부와 일반당원, 유격대원, 대중단체 간부와 조직원, 유격근거지의 일반 인민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였다.

 

 

동만 유격근거지에서 전개된 이러한 비이성적인 ‘반민생단 투쟁’의 광풍으로 최소한 500명에서 많게 2000여명에 이르는 조선인들이 사망했는데, 당시 근거지 주민의 수가 2만여 명에 지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며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민생단 사건으로 동만지역의 항일유격대는 거의 거덜이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명균, 김성도, 김일환, 마준, 박길, 박동근, 박두남, 송일(이송일), 양성룡, 이상묵, 이용국, 주진 등 조선인으로 유격대의 최고위급 군사 지휘관과 정치위원급 인물들이 민생단 투쟁 과정에서 거의 대부분 희생되었다.

 

 

이들은 민생단으로 몰려 처형되거나 감옥에 갇혔다가 탈출해 일본군으로 넘어가 변절했거나 또는 유격근거지를 탈출한 뒤 다른 곳에서 독립투쟁을 벌이다 처형되었다. 동만 지역에서 초창기 당과 유격대 건설에 지도적 역할을 담당했던 이들이 대부분 희생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과 대중조직이 와해되고 인민들이 유격 근거지를 이탈하는 등 동만 지역은 복구하기 힘들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다.

 

 
▲ 민생단 관련 북한 사진 자료(사진=인터넷)

이 과정에서 당시 동만지역 4개 유격대(왕청·훈춘·연길·화룡)의 중 하나였던 왕청유격대 정치위원으로 있었던 김일성도 한때 민생단으로 몰려 정치위원에서 해임되고 감금되어 처형될 뻔하였다. 김일성이 민생단으로 몰릴 수 있는 요인은 충분히 있었다. 민족주의단체인 국민부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던 김일성은 민족주의 성향이 매우 강하였고 그와 함께 국민부 좌파로 활동했던 최창걸, 차광수, 이종걸 등은 1930년 조선인공산주의자들이 대거 중국공산당에 입당할 때 입당하지 않고 독자세력을 유지하였다.

 

김일성은 1931년 말에서 1932년 초 사이에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지만 처음 중국 구국군 우이청(吳義成)부대 소속의 우사령(주9)의 별동대로 활동하면서 양세봉의 조선혁명군과의 연합을 모색하는 등 민족주의적 지향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 김일성의 경우 구국군과의 관계가 좋았고 중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였으며, 길림의 명문 육문중학교를 다녀 중국인 간부 중에 동창생이나 일찍부터 관계를 맺어 아는 이들이 많았던 점 등 유리한 면도 있었다. 또한 김일성은 화요파나 ML파, 서울상해파 등의 조선공산당 파벌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고, 유격대 활동 과정에서 관계를 맺은 중국인 간부 왕룬청(王潤成)과 길동지역 당·군 책임자 저우바오중(周保中) 등의 도움을 크게 받을 수 있었고, 그가 그 광풍에서 살아남게 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민생단 사건의 최고 책임자였던 중공당 동만특위 책임자였던 동쟝롱(童長榮), 쭝지윤(鐘子雲), 웨이쩡민(魏拯民) 아래서 민생단 사건을 주도했던 조선인 간부들인 김성도, 이상묵, 김권일, 이송일 등은 김일성을 제거하려 했지만 김일성은 살아남았고 반대로 이들은 모두 민생단으로 몰려 처형되고 말았다.

 

 
▲ 민생단 사건을 다룬 소설 『밤은 노래한다』(사진=알라딘)
 

 

        04편에서 계속~~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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