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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8-12 15:19
[북한] 김일성 괴담.신화
 글쓴이 : 돌통
조회 : 868  

‘소리의 내력’ 괴담의 진원지



사진은  사정상 삭제

 

 


요즘 1970년대 김지하의 담시 ‘오적 五賊’을 다시 꺼내 읽는다. 또 다른 담시 ‘비어 蜚語’에 나오는 ‘소리의 내력’ 대목에 자꾸만 신경이 간다. 서울 장안에 언제부턴가 “쿵-” “쿵-”하는 이상야릇한 소리가 들려오니 원한에 사무친 안도(安道)가 머리와 팔다리가 없는 몸뚱이를 굴려 벽에 부딪히는 소리였던 것. 그 소리에 겁먹은 지배층은 안도(安道)를 사형시키지만 "쿵-" "쿵-"하는 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밤낮으로 끝없이 들려와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는 이야기가 이 담시의 내용이다. 요즘 괴담이라는 것이 어쩌면 비어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한 번 모였다 하면 만 명이 기본인 미친 소 광풍이  과거 이명박 정부 주변 사람들을 안절부절하게 만든다. 들어 선지 불과 3개월 만에 서울 장안에 괴담이 돌기 시작하니 그 소리의 내력을 찾아 허둥대지 않을 수 없다. 경찰은 괴담의 진원지를 철저히 찾아 엄벌하겠다고 한다. 8일 아침 당시  한승수 국무총리 역시 괴담을 뿌리는 자는 찾아내 엄벌하겠다고 했다.

 

 


소리 내력(來歷)은 세 부분으로 묶인 담시 ‘비어(蜚語)’의 첫째 대목이다. 시골에서 올라온 작고 힘없는 민중 안도(安道)는 열심히 뛰어 서울에서의 삶을 꾸려가고자 하지만 돈없고 학벌없고 ‘빽’없는 그는 어느 한 모퉁이 발붙일 곳을 찾을 수가 없다. 부와 권력이 지배층에 독점되어있는 암담한 현실이 안도(安道)의 발길을 곳곳에서 막았던 것이다. 

 

 

지치고 지쳐 내뱉은 “에잇 개같은 세상” 한마디 때문에 유언비어 유포죄로 독재권력에 체포된 안도는 5백년간의 금고형(禁錮刑)에 처해져 목과 팔다리가 모두 잘린 채 독감방에 갇힌다. 오래 전에 이미 사형시킨 이 안도의 몸뚱이가 벽에 굴려 부딪히는 소리이기 때문에 소리의 내력을 종잡을 수 없다. 신기한 것은 보통 사람들 귀에는 들리지 않는데 장안에 사는 오적들 귀에만 밤, 그것도 한 밤중만 들려온다. 소리의 내력을 찾을 길 없으니 수사를 하는 경찰도 난감할 수 밖에 없다.

 

 


을사오적과 무자오적

 

 


오적(五賊)은 70년대초 한국사회의 지배계층들, 제벌.국회의원.고급공무원.장성.장차관이라 는 짐승스런 몰골의 다섯 도둑들이 서울장안 한복판 도둑소굴에서 벌이는 부정부패의 술수경연과 호화사치, 방탕한 생활은 시인의 통렬한 풍자를 통해 그 흉폭하고 타락한 실상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또한 부정부패를 척결한답시고 나선 포도대장(경찰 또는 사법부의 비유)은 무고한 민초(民草) ‘꾀수’만 닦달할 뿐 정작 오적의 주구(走狗)임이 적나라하게 폭로된다. 그러나 시인은 어느 맑게 개인 날 오적의 무리들이 벼락을 맞아 급살하고, 육공(六孔)으로 피를 토하며 꺼꾸러졌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부패권력의 비극적 종언을 무섭고도 통렬하게 경고하고 있다.

 

 


을사오적에 이어 금년 무자오적도 등장했다. 고.소.영, 강부자, S라인이 무자오적인 것 같다. 예전 5월 2일인가.?   첫 청계천 집회는 누가 봐도 놀랄 정도였다. 주최자 측도 예상하지 못 했던 일이다. 그 원인에 대하여 이 정부 주변 인물들이 내놓는 말들은 너무 구태의연하다. 다시 말해서 배후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있다. 그러나 당신들이 말하는 그런 것이 배후 세력은 아니다.

 

 


먼저 서울시 교육감은 ‘전교조’가 배후 세력이라 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빗나간 판단이었다. 다음으로 ‘연예인’이라고 언론은 대서특필했다. 지난 번 대선 때는 더 인기 있는 연예인들이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는데 그럼 그 때 중고등학생들이 난리가 났을 것 아닌가? 다음으로 ‘인터넷.휴대전화’다 라며 검찰이 지금 학교 교문 앞까지 찾아가 배후를 찾아내려 한다고 한다. 두고 볼 일이다.

 

 


회고록 속의 괴담들

 

 


김일성은 백발이 성성한 산신령 같은 노인으로 축지법을 사용해 하룻밤에 천리길도 가고, 둔갑술을 사용해 하루에도 얼굴을 수 십 가지로 바꾼다는 일화 정도는 이미 우리 귀에 익숙하다. 그런데 해방 후 평양 공설운동장에 나타난 김일성은 그런 신비로운 존재가 아니었다. 그래서 남한 학자들은 총동원 되어 ‘가짜 김일성론’ 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김일성 연구의 대가인 서대숙 교수는 당시 ‘김일성’이란 이름을 가진 인물이 13명 정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의 행적을 다 조사해 보니 항일 유격활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인물들로 판명되었다고 하면서 북의 김일성 이외에 딴 김일성은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김일성 연구로 필생을 바친 학자이고 만주 일대를 수 십 차례 방문하여 자료를 모아 연구하였다. 그는 강의실에서 입버릇처럼 ‘아무튼 김일성을 대단한 인물 이었다’고 만 반복한다. 아마도 정치학자로서 그의 업적과 행적을 다 그려 낼 수 없는 한계인 것 같았다.

 

 


그래서 역사를 그런대로 잘 쓰자면 문학 작가들이 동원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의 희로애락의 감정을 정치학자나 역사학자가 그려내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고록의 주인공 자신도 자신의 경험을 말로 표현하라고 하면 다 그것을 묘사해 낼 수가 없을 것이다. 김일성 유격대장 주변에 여러 가지 전설과 설화가 생겨난 것은 1936년 말부터였다.

 

 


소덕수 전투에서 유래한 ‘둔갑술’과 ‘신출귀몰’이란 말

 

 


김일성 사령은 괴담의 유래를 두고 “우리가 둔갑술을 써서 승천입지하고 신출귀몰 한다는 소문이 국경지대에 파다하게 퍼지기 시작한 것이 소덕수 전투가 있던 때부터였던 것 같다”고 회고하고 있다. 소덕수 전투에서 일본은 얼마나 희생을 많이 당했던지 집집마다 문짝을 다 뜯어다가 저들의 시체를 거두어 담아 가지고 황황히 도망을 쳤다고 한다.

 

 


두 번째로 신출귀몰이란 말이 퍼진 것은 도천리 전투 다음이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항일 유격대를 처음에는 ‘공비괴수’, ‘비적수괴’라고 하다가 도저히 당해낼 수 없자 자기들도 위로부터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 ‘신출귀몰’, ‘승천입지’란 말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 같지 않고 귀신같아서 도저히 잡지 못한다고 해야 전투에 참가한 책임자들이 책임을 어느 정도 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우가 높은 가지 위의 포도를 따 먹지 못하자 ‘신포도’라고 해야 마음이 위로가 되듯이.

 

 


그럼 소덕수 전투와 도천리 전투는 어떤 전투였고 거기서 무슨 일이 생겼던가? 아래 지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두 마을은 백두산 남동쪽 장백지구에 위치해 있다. 1936년 여름부터 항일 유격대는 백두산에 근거지를 창설하고 국내 진공을 준비할 때이다. 여름도 지나고 산에는 산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릴 9월, 장백현 대덕수와 소덕수에서는 바로 일본군인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것도 자기들 끼리 무려 3시간 동안 교전하는 일이 벌어졌다. 김 주석은 하도 오래 전투가 계속되어 “구경군들이 지루할 정도였다”

 

 

 ▲ 장백현과 주변 지도. [사진]

 

 

소덕수와 대덕수는 모두 지도상의 이도강 부근의 작은 마을들이다. 김일성은 ‘신출귀몰’이란 괴담이 퍼진 정황을 다음과 같이 소상하게 회고하고 있다

 

 


“소덕수 등판에서 숙영한 이튿날 우리는 부대를 마등창 수림 속에 이동시키고 대원들을 휴식시켰다. 나도 풀밭에 누워 책을 보다가 곧 잠이 들었는데 총소리가 났다. 15도구방향과 이도강 방향에서 밀려온 적들이 남북 량쪽에서 거의 동시에 달려들었다. 무성한 숲은 적아를 구분하기 어렵게 하였다. 만일 우리가 감쪽같이 빠져나가면 적들의 협공을 저들끼리의 골육상쟁으로 역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우리는 마등창수림에서 슬쩍 빠져나와 15도구골등판으로 올라갔다. 그 등판에서 적들끼리 싸우는 꼴을 구경하였다. 그것이 세칭 소덕수전투라고 하는 마등창망원전투이다. 그날 적들끼리의 맹렬한 싸움이 서너시간쯤 실히 걸렸던것 같다. 구경군들이 지루할 정도였다. 적들은 이렇게 장시간 싸우다가 이도강쪽패가 정 못견디겠던지 먼저 퇴각나팔을 불었다. 그 나팔소리를 듣고서야 15도구쪽패도 제편끼리 싸운줄 알았는지 사격을 중지하였다.”

 

 


“수백명의 유격대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가? 온데간데 없으니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닌가? 이 불가사의한 문제에 대한 해명을 적들은 우리의 ‘둔갑술’에서 찾은 것 같다. 우리가 ‘둔갑술’을 써서 ‘승천입지’하고 ‘신출귀몰’한다는 소문이 국경지대에 파다하게 퍼지기 시작한 것이 이 소덕수 전투가 있은 때부터 였던 것 같다.”

 

 


김일성은 적들이 이도강 방향과 15도구 방향에서 협공해 오는 것을 알고는 그 사이를 빠져나와 버리는 전술을 사용했다. 그러니 마주 보고 오던 적들은 서로 총질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3시간을 무려 교전하다 보니 유격대는 온데 간데 없고 자기들만 갈대밭 숲 속에 죽어 너부러져 있었다. 그런데 이런 교전에서 피해를 본 것은 그 사이에 있는 감자 밭이었다.

 

 


신창동의 한 농민은 “감자밭은 결딴났지만 악귀 같은 왜놈군대들이 저렇게 죽탕이 되여 나딩구는걸 보니 풍년든 감자밭을 보는 것 보다 더 기쁘오다”라고 했다. 덕수골 전투는 유격대의 국내 진출 발판을 마련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장백지구 일대의 인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확인할 수 있었고, 그 일대의 여러 청년들이 너도 나도 자원입대하는 기회가 되었다. 또한 다음해 보천보 전투의 승기를 여기서 잡은 것이다.

 

 


한 해를 넘겨 1937년 초에 있었던 일명 ‘동기대토벌’이라 불리기도 하는 도천리 전투의 결과부터 말하면 적의 시체를 실어 나르는 데 24필의 소가 하나씩 9구의 시체를 싣고 날라서 전투 후 주민들 사이에는 “소발구 하나에 아홉 개씩 스물네 발구면 모두 얼마요?”하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인민들의 답답하던 속이 얼마나 후련했으면 뻔히 아는 답을 질문 형식으로 유포시켰을까? 직답을 하면 위험천만 하니깐.

 

 


이와 같이 김일성 부대는 전투가 하나하나 끝날 때마다 신화가 생겨났다. 일본 신문들은 도천리 전투 이후에도 ‘신출귀몰’ 그리고 ‘승천입지’라며 김일성 전법은 ‘라와 전법’이니 이 전법에 걸리기만 누구도 빠져 나올 수 없다고 했다. ‘라와’란 ‘라망’의 중국식 발음인데 망이란 뜻으로 ‘하늘과 땅 그 어디에도 빠져나갈 수 없다’란 뜻이다. 라와 전법은 대표적인 유격전법이라고 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없다”

 

 


라와 전법이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없다’란 전법인 것 같다. 바로 귀신이 아니고야 어떻게 인간이 이런 전법을 구사할 수 있단 말인가? 옛부터 백두산에는 온갖 신화와 전설이 가득찬 고장인데 장백지구에서 벌어진 두 개의 전투는 김일성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도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현상에 그만 정신적 대 공황(panic) 상태에 빠져들기 시작했으며 자기들 입으로 ‘신출귀몰’, ‘둔갑술’ 운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천리 전투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김일성을 마치 단군 할아버지 같은 도인 아니면 산신령 같은 존재로 상상하게 되었으며, 해방이 될 무렵은 이런 상상이 진짜 김일성과 포개지면서 친일 세력들은 상상의 김일성을 진짜라고 믿게 하여 이를 세간에 유포 시켰다. 그러나 서대숙 교수의 주장대로 김일성은 한 사람 뿐이다. 20대 말의 젊은 청년 김일성 하나뿐 이었다.

 

 


당시 정신적 공황에 대하여 김일성은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항일 유격대의 장백진출과 군사적 위세 앞에서 적들은 대경실색하였다. 장백지방 경찰기관들에서는 경찰들이 집단적으로 사직서를 내고 공직을 회피하는 리직 은퇴바람이 불었다. 적들의 통치체계에서는 심한 혼란이 일어났다. 이도강에서는 집단부락 출입도 앞문으로가 아니라 뒷문으로 한다고 하였다.

 

 


1936년말-1937년초의 백두산지구 겨울에 퍼진 ‘김일성 괴담’

 

 


김일성 전설이 누군가에 의하여 만들어져 퍼진 시기는 소덕수 전투가 끝난 1936년 말 경부터이다. 전투가 끝나자마자 장백지구 일대에는 김일성 전설이 들불 같이 퍼져 나갔다. 자료에는 ‘김일성 괴담’이 퍼져 나간 유래가 자세하게 대담 형식으로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김평 유격대원과 안덕훈 주민 사이에 나눈 대화는 한 폭의 그림 같고 나중에 안덕훈도 유격대에 참가했다 희생당하고 만다는 이야기는 애처롭기 마저 하다.

 

 


“1936년말-1937년초의 백두산지구 겨울은 우리의 기억 속에 지금도 인상깊이 아로새겨져있다. 그 기억에 한쪽모퉁이에는 장백현 19도구의 안덕훈 농민도 있다. 안덕훈을 만나던 당시는 장백현 일대에서 우리에 대한 신화같은 전설들이 파다하게 퍼져 김일성이 솔방울을 만지면 정말로 총알이 된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안덕훈은 그런 기담들에 류다른 호기심을 가지고 우리가 자기집 문턱을 넘어서기 바쁘게 대답하기가 매우 난처한 질문을 연거퍼 들이대였다. 다행히도 주인이 아래에 있는 김평을 대장으로 알고 그하고만 상대하였기 때문에 나는 거기에 끼어들지 않아도 되였다. 그들의 대화가 아주 해학적이였다.

 

 


“장군은 3일천기만이 아니라 훨씬 더 먼 앞날까지 환히 내다본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안덕훈이 김평에게 던진 첫 질문이였다. “사실이구말구요.” 김평은 시치미를 떼고 태연하게 대답하였다.

 

 


안덕훈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 거리였다. 그리고는 또다시 새로운 질문을 들이댔다. “웃마을 령감들이 그러는데 장군은 일이 있을 때는 눈을 뜨고 일이 없을 때는 눈을 감는다고 하더구만요. 그것도 사실이라고 믿어야 할까요?” “네, 사실로 믿어도 됩니다. 장군은 일이 없을 때는 눈을 감지만 일단 눈을 뜨면 아예 큰 변이 나지요.” “장군이 축지법을 쓴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사실이지요. 장군은 산을 주름잡아가지고 사방으로 훨훨 날아다니면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지요.” “들리는 소문에는 김장군이 옛날의 홍길동이도 무색케하는 신출귀몰의 장수라더니 과시 그렇구만.”

 

 


하나같이 어처구니없는 물음이고 또 그 물음에 못지않게 어처구니없는 대답이였으나 주인이 하도 정색해서 질문하고 손님이 또한 그에 못지않게 정색해서 대답하는 바람에 나는 그 일문일답을 제지시킬 엄두도 내지 못하고 듣기만 하였다. 더우기 나를 놀라게 한 것은 평소에 그렇게도 솔직하고 고지식한 김평이 그런 엉터리없는 대답을 연방 둘러대면서도 전혀 어색해하거나 면구스러워하지 않는 것이였다.

 

 


안덕훈은 김평에게 당신은 장군을 몇번이나 만나보았는가, 지금 김장군이 우리 마을에 와있는가고 물었다. 김평은 이번에도 자주 만나본다, 지금 김장군이 당신네 마을에 와있다고 주저없이 대답하였다. 주인이 잠시 밖으로 나간 사이 나는 김평에게 그런 싱거운 소리를 무엇때문에 하는가고 가볍게 나무랐다. 

 

 

김평은 웃으면서 인민들이 전설을 믿으면 그 전설을 100프로 긍정해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인민들이 우리 조선에 하늘이 낸 신비로운 장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런 장수가 나와서 나라를 찾아주었으면 하는 념원으로부터 출발한 것이고 그런 천출장수가 정말로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면 빼앗긴 나라를 꼭 되찾을수 있다는 신심을 안고 우리를 따라 반일성전에 더 기운차게 떨쳐나설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였다.

 

 


“우리 동포들은 지금 일본놈들이 아무리 너덜거려도 우리 민족 가운데는 신술이 도통한 장군이 있다, 그러니 왜적을 무서워할 것도 없고 두려워할 것도 없다, 김장군을 따라 싸우면 능히 조선을 독립시킬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사령관동지 일개인에 대한 숭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이고 기대이지요. 인민이 그러기를 바라는데 굳이 아니라고 해서 맥을 떨구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나는 김평의 말을 듣고 앞으로 군사작전을 더욱 대담하고 령활하게 벌려 인민의 기대와 신임에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김평의 말과 같이 우리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들에서 인민들은 큰 힘을 얻었다. 조선에 왜놈들을 쩔쩔매게 하는 장군이 있다는 말을 듣고 신심을 가다듬은 수많은 열혈청년들이 앞을 다투어 인민혁명군에 참군하였다. 털어놓고 말해서 우리는 이 민간설화들의 덕을 많이 본셈이였다.

 

 


“그후 안덕훈도 인민혁명군에 입대하였다. 그는 다른 대원들 못지않게 잘 싸우다가 몽강의 어느 전장에서 희생되였다. 리치호는 가랑잎과 눈으로 그를 안장해주지 않으면 안되였던 그때의 일을 두고두고 가슴아프게 추억하였다. 덕수골 일대에서는 그후 여러명의 청년들이 입대를 탄원하였다. 그들의 입대는 장백지방에서 혁명군대오를 급격히 확대시킨 대대적인 참군운동의 서막으로 되였다. 

 

 

백두산주변의 곳곳에 생겨나기 시작한 그 조직들은 새로 창설되는 근거지의 믿음직한 정치적지반으로 되였다. 우리는 소덕수전투가 있은 다음에도 압록강연안의 여러 마을들을 돌면서 장백현 15도구 동강, 13도구 룡천리, 20도구 이종점 등 곳곳에서 련속 전투를 벌렸다. 압록강연안일대는 벌둥지를 쑤셔놓은 것처럼 소란스러웠다.”

 

 


그러나 신화는 없다. 이민위천

 

 


예수가 죽자 온갖 괴담들이 민중 속에 퍼져나간다.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다는 괴담은 로마 정부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부활한 예수가 엠마오라고 하는 작은 마을로 가는 도상에 두 행인에게 나타났다. 예수는 자기 얘기를 하는 두 행인과 동행을 한다. 장백산 기슭의 한 작은 동네에서 한 유격대원과 주민이 나눈 대화의 한 토막과 너무나 대조가 되는 것 같다.

 

 


힘없고 희망을 잃은 민중과 인민들은 그들의 가슴 속에서 희망의 언어를 만들어 낸다. 그것을 힘 있는 자들은 괴담이라고 한다. 그러나 ‘괴담’을 통해서 의사소통을 하고 그래서 하나가 되고 빛을 찾는다. 이렇게 괴담이든 전설이든 그 속에는 우리 민중들의 참 소망과 진담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분명히 논리가 있다. 

 

 

그것은 한 지도자가 인민을 위하고 인민이 그 지도자를 위하는 논리 말이다. 그래서 그것은 과학이 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신화가 탄생한다. 지도자와 인민대중이 유리돼서 서로를 객관화 시킨 것이 역사이다. 그래서 역사는 가짜이다. 신화가 역사 보다 더 오랜 지구력과 생명력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모든 신들은 기원전 2000년 전후의 실제 역사적 인물들이었으며 이들이 후대의 전설이 되고 괴담이 되고 괴담이 신화가 된 것으로 연구 보고되고 있다. 그래서 신화는 끝없이 역사가 되고 역사는 신화가 된다. 단군, 환웅, 환인도 예외는 아니다. 구약 성서의 그 수많은 신의 이름들 ‘엘로힘’, ‘엘 샤다이’, ‘엘 베델’, ‘야훼’ 등 이들은 모두 역사적 부족의 족장 이름들이었다. 이를 상세하게 알려면 'Tribes of Yahweh' 를 참고하기 바란다.

 

 


김일성은 두 장백 지구에서 벌인 전투에 대하여 “나는 우리가 장백에서 벌린 싸움들이 세계를 들었다 놓은 규모가 큰 것들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세계전쟁사에는 수천, 수만, 지어는 수십만의 사상자를 낸 요란한 전역들과 대결전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한 전투에 투하한 병력은 불과 수 백병, 적살상도 백이나 천 단위를 헤아릴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싸움들에 대하여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돌이켜본다. 우리가 중시하는 것은 간고한 싸움에서 발현된 혁명군의 넋이다. 인민혁명군의 의지는 적들을 압도하였다. 적을 정신적으로 압도하면 승리는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법이다. 우리가 장백 땅에서 벌린 혈전의 자취들을 소중히 여기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신화는 양의 규모가 결정하지 않고 사건 자체의 정신이 좌우한다. 김일성은 소덕수 전투의 승리의 비결을 처음부터 끝까지 인민들의 힘에 덕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전투가 끝난 다음에 감자밭이 완전히 쑥대밭이 되었는데 만약에 인민들이 유격대에게 피해 보상을 요구했더라면 이런 생각을 해본다. 오늘날 친일 매국노들이 뻔뻔하게 소송을 걸고 달려드는 것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만약에 항일 유격대가 인민들로부터 유리돼 있었고 그들에게 기생충 같은 존재였다면 도저히 신출귀몰 하는 신화는 생길 수조차 없었다. 유격대원들이 둔갑술을 쓴 것이 아니고 인민대중들이 그들의 치마 폭 속에 그리고 그들의 다락 속에 장 속에 이들을 숨겨 주었기 때문이다. 유격대원들도 인간이고 그들도 제한된 육체의 힘을 가지고 있고 하늘을 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민위천’, 이 말 한 마디는 김일성 유격대의 기본 정신이다. 그들은 인민을 하늘 같이 여겼기 때문에 하늘 위로 날 수 있었다. “혁명군의 의지는 적들을 압도하였다. 적을 정신적으로 압도하면 승리는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법이다.” 그러면 그 정신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인민 대중으로부터 나온다는 바로 이것이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고 전체는 하나를 위하는 정신 말이다.

 

 

 ▲ 적들을 붙잡아둔 정동철 도천리 구장. 

 

 

도천리 전투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적들은 자기들 소굴에서 내려와 도천리 마을에 머물고 있었다. 이들이 황급하게 자기들의 굴로 돌아가려고 하는 눈치를 채고 주민들은 이를 김일성 대장에게 통지한다. 그런데 김일성 부대가 마을에 도착하자면 2시간이 걸린다. 그러면 이 적들을 마을에 붙잡아 두어야 한다. 

 

 

이때에 김일성은 주민들에게 이들의 식사 시간을 질질 끌게 하라는 통지를 한다. 적들은 식사를 빨리 내 놓으라 독촉하지만 지하조직 구장인 정동철은 적들에게 오랜 만에 마을에 왔는데 식사 대접을 잘 하려고 시간이 걸린다고 하면서 닭도 잡고 소도 잡고 떡도 치는 시늉을 하면서 지연작전을 쓴다. 밤중이나 되어서야 식사가 준비되었는데 그 때는 이미 김일성 부대가 마을 입구에 당도해 있었다.

 

 


적들은 밤중에 봇나무, 자작나무, 가시나무와 키가 넘는 갈대들, 새초풀들이 얼기 설기 뒤엉킨 소로 길로 유도되어 완전히 소탕되고 말았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신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인민이 신이라고 생각하며 인민과 함께하는 거기에는 언제나 기적이 일어난다고 산 경험으로 믿게 되었다. 

 

 

이것은 신종교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며 복덩이 방망이 같이 초월적 신비적 힘으로 기적이 일어난다는 종교를 청산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똑똑히 알라. 당신들을 넘어설 종교가 이미 탄생하였다는 사실을. 백두산 자락 작은 동네에서 하나님은 그 곳 나무 숲속에 나타나시어 기적을 행하신 사실을. 여기서 인민 대중이 함께 하지 않고는 기적이 불가능하다.

 

 


유격대 잠행 조례 속에 신출귀몰 논리 있다

 

 


“인민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존대하며 인민의 이익을 진정으로 옹호보위하고, 인민의 생명 재산을 진정으로 지켜주는 군대만이 인민들로부터 지지와 성원을 받을 수 있다”  인민이 군대를 위하고 군대는 인민을 사랑하는 것을 ‘옹군애민’이라고 한다. 

 

 

이를 또한 ‘인민적 성격’이라고도 한다. 이런 인민적 성격이 드디어 조선 인민군 잠행 조례 속에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 나타난다. 잠행 조례에서 특별히 주의를 돌린 것은 군민관계와 관병관계에 관한 문제였다.

 

 


“그것은 잠행조례의 모든 조항에서 우리 혁명군의 인민적 성격을 강조하고있는 점을 보아도 알수 있다.”

 

제 1 조: 본군은 일본제국주의와 그 주구들을 반대하여,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투쟁하는 조선인민혁명군이다.

 

 

제 2 조: 본군은 조선인민의 우수한 아들딸로서 조직된 진정한 조선인민의 혁명군대라고 밝히였다.

 

 

제 3조: 본군은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수 없다”는 것을 깊이 명심하고 인민의 생명재산을 옹호보위하며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면서 군민이 일치단결하여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해방을 위하여 투쟁한다.

 

 

제 4조: 본군의 지휘성원들과 대원들은 옹군애민, 관병일치의 정신에서 군기와 풍기를 자각적으로 준수한다.

 

 


이태의 ‘남부군’에도 그대로 나타나 있다. 지리산 빨지산들은 “맞아 죽고, 굶어 죽고, 얼어 죽는” 엄혹한 산 속에서도 인민의 아들, 목숨보다 더 귀중한 동지의 사랑, 깡간은 총살, 변절은 최대의 치욕 등 규율을 고수하였다고 한다. 이런 남부군의 행동 강령은 이미 1930년대 잠행 조례 속에 있었던 것이고 인민적 성격 그 점에서 같았다.

 

 


전쟁당시 어느 나라 군인들이 들어가는 마을마다에서 하룻밤 성욕을 채우려 부녀자를 내놓으라고 하면 동네 이장 동장들이 허둥대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세계 전사에 찾아 볼 수 없는 종군 '위안부'를 끌고 다니던 부대가 바로 일본제국주의 군대이다. 

 

 

도덕성이 없는 군대이기 때문에 대량 살상 무기를 만들어 그것을 대신하려 한다. 그러나 무기가 정신을 이겼다는 전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월남전에서 그 월등한 무기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호지명 군대에게 패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국민과 함께 하지 않는 어느 정부는 지금 자기 나라 10대의 청소년들을 괴담에 홀려 끌려 다닌다고 단정하고 괴담의 진원지를 찾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는 모습이 가관이다. 지도자의 지지도가 20%대로 떨어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1930년대 말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패망의 순간이 다가오는 것과 신출귀몰 김일성 괴담이 퍼진 것과 무관치 않다. 

 

 

민중은 새로운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으며, 이들은 괴담을 통해 자기들 끼리 의사소통을 해 나갔던 것이다. 장백지구 어느 작은 마을에서 한 유격대원과 주민 사이에 나눈 한 토막의 대화가 이렇게 민간 전설이 되어 들불 같이 퍼져 나갔던 것이다.

 

 

 

 

    이상..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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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틱 20-08-13 12:42
   
김일성은 스노볼인가 나폴레옹인가
뭘꼬나봐 20-08-17 02:15
   
별하나주면 안잡아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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