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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8-10 14:30
[북한] (이승만시리즈)신채호 어록 펴승만.이완용보다 더 역적. 04편
 글쓴이 : 돌통
조회 : 1,013  

04편.



**  이승만. 1~3대 대한민국 대통령..

 

 

 중앙청 로비에서 열린 서울수복기념식에서 이승만 대통령(두 번째)이 눈물 젖은 눈으로 맥아더 장군(왼편)의 손을 잡고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다(이승만 대통령 옆 프란체스카, 신성모 국방장관.1950. 9. 29.).

▲  중앙청 로비에서 열린 서울수복기념식에서 이승만 대통령(두 번째)이 눈물 젖은 눈으로 맥아더 장군(왼편)의 손을 잡고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다(이승만 대통령 옆 프란체스카, 신성모 국방장관.1950. 9. 29.).

 

* 맥아더 기념관.

 

 

선진국일수록 역사를 보존하고 사랑한다


 

버드 비숍 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는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 중에서

 

 

 

 우리는 오욕의 지난 역사라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 역사를 사실대로 받아

들이면서 지난 과거와 오늘을 이해하고, 이 바탕으로 내일을 슬기롭게 살아야 한

다. 그래야만 역사 발전이 있고, 장차 정치 및 문화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선진국을 여행해 보면 그들은 오욕의 지난 역사를 그대로 보존 기록하고,

후세들에게 교육의 장으로 쓰고 있었다.

 

영국인들은 역사를 매우 사랑하며 존중한

다. 그들은 개인의 역사까지도 매우 사랑한다. "체험은 최상의 스승이

다"(Experience is the best teacher)고 하여, 기성세대의 체험담을 대단히 귀중

한 자산으로 여기며, 거기에서 교훈을 배운다.

 



이웃 중국도 오욕의 역사 현장 곳곳에 과거의 치욕을 잊지 말자는 '물망국치(勿忘

國恥)'의 글을 돌에 새겨 두고 있었다.

 

 

사람은 불완전하다. 진선진미한 완벽한 사람은 없다. 내가 역사탐방 길에

 

서 만난 한 독립운동가는 한 인물에 대한 평가를 크게 보아 공과 과를 5:5

 

냐, 7:3이냐, 3:7이냐로 분류했다.

 

 

그 말씀에 공감한 바 있다. 이 글을 올릴때

동안 그 말씀을 머릿속에 새겨둘 것이다. 하지만 지식인의 사회

비판은 자동차의 제동장치(브레이크)와 같다.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는

곧 추락하고 만다. 나의 이 글이 우리 사회의 역사 이해와 발전에 조금이

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옷깃 여미면서 이 글을 쓴다.

 

 도쿄 하네다 공항 출발에 앞서 양국 국기에 경례하는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950. 2. 18.).

▲  도쿄 하네다 공항 출발에 앞서 양국 국기에 경례하는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950. 2. 18.).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만난 이승만

 

 



2004년 2월, 마크라는 사람은 미국 메릴랜드 주 칼리지파크의 국립문서기

록관리청

(NARA) 5층 사진 자료실에서 1945년 이후부터 1950년대에 이르는 한

국 관련 사진을 검색하여 수집할 때다.

 



그곳에 소장된 한국 관련 사진들은 이전에 내가 보지 못한 것들로 엄청 많

았다. 그 가운데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 사진이 숱하게 쏟아졌다. 그때 나

를 도와주시던 재미 동포 박** 선생은 그 사진들을 일일이 찾아 나에게

계속 넘겼다.

 

 

나는 이승만 대통령 사진을 두어 장 스캔한 뒤 계속 넘겨주

는 사진에 개인적인 비호감으로 더 이상의 사진은 넘기지 말라고 그분에

게 말씀드렸다.


 

그 며칠 후 박** 선생은 맨 위의 사진

을 굳이 넘겨주면서 말했다.



"이 대통령이 맥아더 원수에게 대한민국

과 자기를 살려준 은인이라고 얼마나 고

마웠는지 눈물 어린 눈으로 두 손을 잡고

있네요."

 



내가 그 사진을 넘겨받아 살펴보니까

1950년 9월 29일, 중앙청 로비에서 서울수복기념대회 직전에 촬영한 것이었

 

다.

 

 

박 선생님 말씀대로 이승만 대통령 눈가에는 눈물이 어린 듯했다.



그 순간 나도 공감한 바 많았다. 이 대통령 처지에서는 맥아더가 물에 빠

진 사람을 건져준 은인이요, 게다가 보따리까지 챙겨주는 백골난망의 고

마운 분이었을 게다.

 

 

아무튼 이 사진은 귀중한 역사의 한 단면이라고, 그

이후부터는 그곳에 소장된 이승만 대통령 사진은 나의 호불호를 떠나 가

능한 보이는 대로 수집해 왔다.



그때 내 곁에서 도와주신 박** 선생은 공교롭게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절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탄핵당하자 바로 후임으로 임시 대통령을 맡

았던 사학자 *** 선생의 막내 손자였다.

 



다음의 글은 기자가 펴낸 <미군정 3년사>의 내용을 참조했다.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에서 열린 이승만 대통령(목에 꽃다발을 건 이) 환영식(앞열 왼쪽부터 손정도, 이동녕, 이시영, 이동휘, 이승만, 안창호, 박은식, 신규식, 미상. 1920. 12. 28.)

▲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에서 열린 이승만 대통령(목에 꽃다발을 건 이) 환

영식(앞열 왼쪽부터 손정도, 이동녕, 이시영, 이동휘, 이승만, 안창호, 박은식, 신규

식, 미상. 1920. 12. 28.)

 

이승만의 도미

 


  
이승만은 1875년 황해도 평산군 마산면 대경리 능내동에서 출생했다.

 

관은 전주, 초명은 이승룡(李承龍), 호는 우남(雩南)이다. 조선조 양녕

군 16대손으로, 아버지 경선(敬善)과 어머니 김해김씨 사이의 셋째

들로 태어났다.

 


   
1877년 서울로 이사해 온 뒤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다가 1895년 배재

학당에 입학하였다. 1891년 박승선과 결혼했다. 1898년 만민공동회에

참여하면서 독립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1899년 1월 고종 황제 폐위 음모사건에 연루되어 5년 남짓 한성감옥에

투옥되었다가 1904년 8월 9일에 특별사면령을 받고 석방되었다.



그해 11월 민영환과 한규설의 주선으로 한국의 독립을 청원하고자 미국

으로 건너갔다.

 

 

1905년 2월 워싱턴 D. C.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 입학한

뒤 그해 8월 루스벨트 대통령과 만났다.

 

 

이승만은 이 자리에서 한국의 독립 보존을 청원했다. 1910년 8월 귀국

후, 황성기독교청년회(YMCA) 청

 

년부 간사이자 감리교 선교사로 활동하던 중 1912년 '105인 사건'에 연루

되어 일제의 압박을 받자, 그해 4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1900년대 초 옥중에서 만났던 박용만의 도움으로 1913년 2월 하와이 호

놀룰루로 활동 근거지를 옮겼다.

 

 

그 뒤 한인감리교회의 한인기독학원을운영하였으며, '태평양 잡지'를 발

간했다.

 

 

하와이에서 박용만이 무력투쟁

 

을 위해 국민군단을 창설하자 이승만은 교육을 통한 실력 양성을 주장하

면서 두 사람은 의견 차이로 그때부터 서로 대립했다.



1919년 4월,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될 당시 초대 국무총리

에 이승만, 내무총장에는 안창호가 선출되었다. 하지만 이승만은 상하이

에 오지 않고 미국에서  임시정부 직제에도 없었던 대통령 행세를 했다

 

 

그런 가운데 1919년 9월 임시정부 헌법을 개정하여 대통령중심제를 채

택하자 이승만은 그 이듬해인 1920년 12월에 상하이로 부임해 왔다.

 

 뉴욕에서 결혼식을 마친 후 하와이로 돌아온 이승만 프란체스카 부부(1934.).

▲  뉴욕에서 결혼식을 마친 후 하와이로 돌아온 이승만 프란체

스카 부부(1934.).

 

이승만의 탄핵

 

 



이승만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이전부터 우리나라를

 

국제연맹에서 위임 통치해 달라는 청원서를 미국의 윌

 

슨 대통령에게 보낸 바 있었다. 이러한 이승만의 외교

 

노선에 무장투쟁론자였던 이동휘, 신채호 등의 불만은

 

매우 컸다.

 

 

사학자 신채호는 이승만의 위임 통치에 대해 맹렬히 비

난했다.

 

 


[주; 위임통치 우리나라를 국제연맹 위임국, 곧 미국

과 같은 강대국에 위탁 통치케 함]



"이승만은 이완용보다 더 큰 역적이오. 이완용은 존재

하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나라를 찾기 전에

팔아먹었으니 더 큰 역적이란 말이오."

이승만은 없는 나라도 팔아버렸으니

 


   
게다가 이승만은 미주 동포로부터 거둔 후원금을 당신

마음대로 썼다는 의혹으로 임시정부 요인들로부터 심

한 불신을 받는 등, 양자 간 갈등의 골이 깊었다.

 

 

당시

임시정부 각료들은 이승만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이승

만이 독립자금 조달과 외교 능력이 뛰어나다고 믿었던

것이다.

 

곧 이승만이 조지 워싱턴 대학교 시절 그의 스승이었던

윌슨을 통해 미국 정부를 움직일 능력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렇기 때문에 상하이 임시정부를 비롯한 다른 임시정

부에서도 이승만을 요직에 봉대했다.



하지만 이승만은 명성에 견주어 실질적인 능력은 별로

없었다.

 

 

게다가 이승만은 미국에 거주하면서 상하이 임

시정부 자리를 비운 데다가 미주 독립자금 유용설 등이

분명히 밝혀졌다.

 

 

그러자 1925년 3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

원(오늘날 '국회'에 해당)은 위임통치론 문제와 미주 동

포들의 후원금 문제로 물의를 일으킨 이승만 대통령을

마침내 탄핵하고 내각책임제로 개헌하면서 직제를 국

무령제로 고쳤다.

 



1933년 1월, 이승만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연

맹 회의에서 한국의 독립을 청원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

하다가 오스트리아인 프란체스카 도너를 만나 이듬해

10월 뉴욕에서 결혼했다.

 

 

그해 11월 이승만은 국제연맹에서의 활동을 인정받으

면서 다시 임시정부 국무위원에 선출되었고, 1934년에

는 외무위원회 외교위원, 1940년 주미외교위원부 위원

장으로 임명되었다.

 



1942년 8월 29일부터 이승만은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 방송에서 일본의 패망과 독립운동의 필

요성을 강조하는 방송을 시작했다.

 

 

 

그해 9월에는 미국 육군전략사무처(Office of

 

Strategic Services)와 연락해 임시정부의 광복군이

미군과 함께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활동을

했다.

 



다음은 1942년 일제강점기 당시 이승만의 <미국의 소

리> 방송 일부다.

 

나는 리승만입니다. 미국 워싱턴에서 국내

? 해외에 산재한 우리 2천3백만 동포에게

 말합니다.

 

어디서든지 내 말을 듣는 이는 자세히 들으

시오. 들으면 아시려니와 내가 말하려는 것

은 기쁜 소식입니다.

 

자세히 듣고 다른 동포에게 일일이 전하시

오. 또 다른 동포에게 시켜서 모든 동포에

게 다 알게 하시오. …



우리 임시정부는 중국 중경에 있어 애국열

사 김구, 이시영, 조완구, 조소앙, 제가 합

심하여 가는 중이며,

 

 

우리 광복군은 이청

천, 김약산, 유동렬, 조성환 등 여러 장군의

휘 하에 총사령부를 세우고, 각방으로 왜적

에 항거하는 중이니 …

 



최종고 편저 청아출판사 발간 <우남 이

승만> 262263쪽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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