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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8-04 04:17
[북한] 6.25의 모든것 진실 역사적 사실 팩트..03편.
 글쓴이 : 돌통
조회 : 878  

***  1949년 한국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 6.25전쟁은 우리 민족의 역사상 가장 처참한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신생 대한민국을 공산화하기 위하여 북한은 남침을 하였다.

 

북한은 소련과 중국의 사전 승인과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

 

 

위의 인용구는 교학사의 [ 고등학교 한국사 ] 에서 발췌된 것입니다.

 

비록 교학사 역사 교과서가 뉴라이트 사관을 담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한국전쟁에 관한 서술만큼은

 

다른 교과서들도 이와 큰 차이가 없는 서술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과서들을 통해 많은 한국인들은 1950년 06월 25일 김일성을  대표로 하는 북한이 중국과

 

소련의 도움을 받아 평화로웠던 남한을 기습적으로 침략했다고 배워왔습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아는 한국전쟁이 1950년 06월 25일이 아닌 1949년부터 이미 시작되었다면, 여러분들은 믿으시겠습니까.?

 

사실 오늘날 역사학계 내에서는 많은 학자들이 한국전쟁의 시작을 우리에게 익숙한 1950년 06월 25일이 아닌, 1949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외국의 권위 있는 학자가 다음과 같이 한국전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 한국전쟁은 1950년 06월 25일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내전이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다가온다는 진리를 서서히 깨닫게 된다. }

 

 

{ 1950년의 06월의 전쟁 발발 상황에 대한 설명들 대부분은 완전히 방심하고 있는 적을 향해 북한이 새벽녘에 38도 선 전역에서 공격을 개시한 듯한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전쟁은 1949년에 많은 전투가 벌어진 바로 그 외진 옹진반도에서 시작되어 몇 시간 후에 38도 선을 따라 동쪽으로 확산되면서 개성, 춘천, 동해안에 이른 것이다. }

 

학자들의 이런한 설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전쟁 전 상황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1.  1949년,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1945년 08월 15일 한국은 드디어 오랜 기간의 일제강점기를 끝내고 독립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또 다른 전쟁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기나긴 식민지로부터의 해방과 동시에 한반도는 미군의 제안과 소련의 동의로 인해 남과 북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사실 이 시점부터 남과 북은 서로에 대한 적개심이 점차 고조되고 있었으며 한반도는 반드시 각자의 영향력 아래에 통일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커져갔습니다.

 

1948년에 남과 북에 단독 정부가 들어오면서 이러한 갈등은 더욱 가시화되었고. 남한의 지도자였던 이승만과 북한의 지도자였던 김일성은 둘 다 스스로의 힘을 통해서 한반도를 통일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1948년까지  남과 북 사이에는 38선을 넘어 서로의 영토를 침범하거나 총격전을 벌이는 식의 소규모 충돌이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전쟁의 시작 연도로 알고 있는 1950년의 바로 1년 전인 1949년 이후부터는 그 양상이 점차 변해갔습니다.

 

정식 군인들이 충돌에 동원되는 것은 물론이고, 때에 따라서는 연대급 병력까지 동원되기도 하였습니다.

 

 

기사문리 전투, 개성, 송악산 전투, 옹진반도 전투 등 이 시기에 일어난 무장충돌의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부상자들도 많이 발생하였습니다.

 

1949년 1월부터 10월까지 평균적으로 매일 1.5건 이상의 38선 충돌이 발생했고 매일같이 3.7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할 정도로 당시의 충돌은 심각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왜 1948년까지 소규모 총격전에 그쳤던 38선 부근의 충돌이 1949년 들어서 갑자기 군대까지 동원하게 되는 무장충돌의 형태를 띠게 된 것일까요?

 

이에 대한 답을 위해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1949년 1월부터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둘째는 1949년 중국 공산혁명이 완성되고 난, 후 중국 국공 내전에서 싸웠던 한국인 병사들 중 상당수가

 

북한으로 귀국했다는 것입니다.

 

2.   한반도를 떠나는 미군.

 

한반도에 주둔했던 소련군이 1949년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건국 이후 10월부터 철수하기 시작했고 12월쯤에는 거의 모든 소련군이 자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에 따라 미군도 1949년 1월부터 한반도에서 철수하기 시작했고 6월경에는 거의 철수를 완료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세력이 있었으니 이는 바로 이승만과 남한의 지도부였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미군이 한반도를 떠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주한미군 정보참모부의 문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문서를 보면 1949년 주한 국군이 갑작스럽게 공격적으로 변했다는 사실과 그 원인을 알 수 있습니다.

 

 

문서 내용 : 1949년 초 한국군의 공격적 태도 변화의 원인 (주한미군 정보참모부)

 

 

1. 경계선의 안정을 보증하는 미군의 철수

 

2. 다음을 희망하는 정치인들의 사건 창출 고무

 

a. 미군을 한국에 잡아둠으로써 자신들의 지위, 재산, 생명을 보증

 

b. 미군과 함께 남한을 물질적으로 부양하거나 재정 지원하는 경제협조처를 잡아둠

 

c. UN 한국위원회의 면전에서 북한의 명백한 도발 행위를 자극함으로써 세계의 동정을 확보하려는 것.

 

d. 이를 통해 남한에 대한 지속적이고 더 많은 군사, 재정 지원, 보급, 장비를 요구하려는 것

 

 

결국 38선 부근의 안정을 지켜주던 미군이 철수하기 시작하자 국내에서 지지기반이 약했던 이승만 정권 자기들의 지위와 재산을 보장받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38선 부근에서 충돌을 만들어냈던것입니다.

 

또한 그를 통해서 국제사회로부터 군사적, 재정적인 지원을 받고자 의도했습니다.   그러한 충돌들이 커져 결국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3. 베테랑 군인들의 귀환

 

 

남한의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미국의 철수를 어떻게

해서든 막으려고 했던 것에 반해, 북한은 오히려 이를 환영했습니다.

 

한반도의 무력통일을 꿈꿨던 북한에게 미군의 주둔은 그저 방해만 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1949년 초부터 시작된 남한의 공격에도 북한은 그저 소극적으로 대응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북한의 태도는 1949년 8월부터 급격히 공격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는 1948년부터 중국공산당 측의 한국인 사병들이 조금씩 북한으로 귀환하면서 북한 내의 병력이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중국에서는 이전부터 길게 이어져오던 공산당과 국민당 사이의 치열한 내전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 전쟁을 국공 내전이라고 보통 말하는데요.  이 전쟁에는 사실 많은 한국인 병사들이 공산당을 위해 싸웠습니다.

 

이 병사들은 수년간의 전쟁으로 인해 숙련되었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습니다.

 

이러한  병사들의 귀환은 북한에게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1948년부터 조금씩 귀환하기 시작한 한인 병사들은 1949년 7월부터 10월까지의 기간 동안

 

그 수가 약 4만 명에 달하였고 바로 이 무렵 8월에 북한이 남한을 향한 공세를 시작하게 됩니다.

 

1949년 9월 24일 소련으로부터의 남침 불허 명령이 있기 전까지 약 한 달 동안 북한은 이전에 남한에 점령당한 옹진반도를 다시 되찾기 위해 남한을 공격했고 결국 이를

 

되찾게 됩니다.

이처럼 1949년에는  이미  남한과  북한 각자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38선 부근에서 

무장충돌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생한 것이지요.

남과 북이 38선으로 인해 한반도가 둘로 갈라진 순간부터 두 지도자의 마음속에 조금씩 자라나던 무력통일의 꿈은 한창 38선

충돌이 진행되던 1949년  그들의 말에서 잘 드러납니다.

 

1949년 3윌 7일 김일성이 지휘하는 북한 정부 대표단과 스탈린 간의 대화록을 보면,

 

{ 스탈린 동무 현재의 정세에 비추어 볼 때  군사적 수단을 통하여

전국을 해방하는 것은 필연적이고 또 가능하다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는 최선의 기회를 맞고 있습니다. }

 

 

이와 같이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한 발언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당시의 그는 그 누구보다도 북한이 무력을 통해 한반도 전체를 통해 통일

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한 1949년 9월 30일에 이승만이 로버트 티 올리버 고문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져 있습니다.

 

 

{ 나는 현재가 우리들이 공격조치를 취하고 평양에 있는 잔당을 소탕하기 위한 절호의 시기라고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 우리 국민들은 북벌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궐기하여 그자들을 영원히 소탕하여 버리려 할진대는 지금이 가장 절호의 시기인

것입니다. (후략) }

 

두 기록을 통해 우리는 북한의 김일성, 남한의 이승만 두 지도자 모두 각자의 군사적 우세를 믿으며 무력통일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럼 국제적으로 저명한 석학의 한 북 전문 학자의 말을 한번 살펴봅시다.

 

{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내전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다가온다는 진리를 서서히 깨닫게 된다. }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동의하는지? 아니면 동의 못하는지?  전 개인적으로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역사를 길게 보면 100년쯤 후에 보면 우리 민족 국민들은  어떻게 평가할지 감이 안 오네요..

 

이 학자의 말처럼, 전쟁은 결코 하루아침에 갑자기 발발하지 않습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역시 결코 '갑자기'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분명 남측과 북측의 치밀한 이해관계에 따라 1949년부터

 

조금씩 이어지던 충돌들이 결국 1950년 6월 25일에 폭발한 것입니다.

 

아직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서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써,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전쟁에 대해 좀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냉전과 반공이라는 국제적 요인에만 치우친 역사 서술이 아닌, 국내외적 요인이 모두 고려된 균형된 역사서술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참고문헌  

 

1) 정병준, [한국전쟁 : 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 ] , 돌베개, 2006.

2) 김정인, [국정 (국사)  교과서와 검정 (한국사)  교과서의 현대사 체계와 내용 분석 ], (역사와 현실)

      제92호, 2014. 06,81121(41 pages).

3) 김태우, [역사 교과서 이념논쟁과 학문의 위기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8종의 현대사 서술 비교, (역사와 현실)

      92,2014.06,123161(39 pages) 

 

 

 

이상..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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