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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8-03 04:54
[북한] 6.25의 모든것.학자,전문가들의 역사적 팩트. 01편
 글쓴이 : 돌통
조회 : 250  

이번에 6.25,  즉 한국전쟁의 전 모를 확실하게 진실로,  팩트로.. 극우, 극좌,  좌익, 우익, 진보, 보수 그런 거 전혀 상관없이 글을 올리려 합니다.
 
 
일단 저 아무개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고 굳이 소개한다면 우연히 동국대 북한학과를 가서 졸업하고 대학

원에서 근현대사를 공부하다가 중간에 때려치우고 지금은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개인사업을 하고 있습니

 

.

 

 

그러다가 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여유가 생기니 젊었을 때 관심 더럽게 없던 정치,특히 북

 

한과 관련된 역사나 정치 거리에 관심이 생기더군요..

 

 

전 그동안 저의 대학동기,동창,,후배들과 계속 관계를 맺고 살아왔었고,  그럴 수밖에 없는게, 각종 모

 

임이나 동창회 기타 어떤 모임,만남.등등 에서 자주 만나게 되고, 제 학과 동창,동기,,후배들중

 

전공과목을 살려 북한 연구소나 관련직공직이나 ,교수,작가등, 그들에 의해서..세월이 지나 북한과 관련

 

된 새로운 정보나,사료,자료등도 접할 수 있었고, 바뀌고 변한 자료나 정보 등도 많이 접했고 그것들이 내

 

호기심을 채우기 충분했죠..다 먹고 살만하니깐 그렇게 되더군요..

 

내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북한 관련 정보가 형편없었고 제한이 많았었는데 세상이 많이 변하고 금지되

 

고 기밀에서 풀린 각종 비밀문서 등도 공개가 많이 됐죠..

 

 

 

 

 

 

결론적으로 제일 중요한 결과 정답은 간단히 말해.. 여러분들이 다 아시는 거와같이

 

19500625일 새벽3,4~5시 쯤에 북한 인민군이 남한을 향해 내려온 것 남

침한게 정확히 사실입니다

.

 

 

 

그러나 북한에선 한국전쟁의 원인에 대해 북한의 공식적인 입장은 '남조선이 먼저 침공했다'로

 

되어있죠.

하지만 신경 쓸 건 없습니다. 저 위에 파란색의 글이 팩트이니까요..

 

 

자 그럼 6.25를 중심으로 그날에 가까웠던 날들에 환경이나 각 나라의 이해관계 국제적 환경,6,25

난 배경 등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죠.

 

구 소련이 붕괴됨으로써 한국전쟁에 관한 많은 기밀문서가 공개되었고, 이 문서에 따르면 1949년에 김일성은 박헌영과 함께 소련을 비밀리에 방문하여 스탈린과의 면담을 통해 남조선과의 평화적 통일이 불가능함을 역설하고 무력에 의한 조국해방전쟁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스탈린은 김일성의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북한군의 군사적  우위가 미흡하고 미국의 개입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김일성은 스탈린의 거부에 실망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그 이후에도 소련을 서너 차례 방문하여 스탈린에게 무력통일에 대한 허락을 요구하게 된다.
 
 
결국 김일성은 1950년 4월에 스탈린으로부터 최종적으로 '재가'를 얻었고, 5월에는 스탈린 재가의 부속 조건이었던 모택동의 '동의'를 얻는 데 성공했다.
   
 
김일성이 '6월 25일'을 공격 일자로 선택한 것은, 남침에 대한 정보가 사전에 누출되어 남한의 방어선이 강화되고 있었고,
 
옹진반도에 병력의 추가 배치가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6월 24일 저녁에 미군사고문단 주최로 육군회관 준공 파티가 열려 남한의 군 수뇌부들이 대거 참석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군 지휘부의 부재를 호기로 이용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처음에 옹진반도에서의 국지전(국지전이란 : 부위별,부분적,작은,소규모 전투를 뜻한다.) 을 시
 
작으로 전쟁을 확대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정보의 누설로 인해 공격 계획을 수정하여 전 전선에서의
 
전면적 공격 개시로 바꾸었고, 이에 따라 6월 25일 새벽 04시 40분경 38선 이남에 대한 대대적인 포격과 함께 '한국전쟁'은 시작되었다.   
 
위와 같은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전쟁은 명백히 북한의 전면적 공격과 함께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왜 남한이 먼저 '북침'을 했기 때문에 전쟁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사실 1950년 6월 25일 전면적 전쟁이 일어나기 1년 전쯤부터 38선상에서는 남, 북한 간에 수많은 충돌이
 
발생하고 있었다. 이 충돌에는 북한군의 선공도 있었지만 상당수의 전투가 한국군의 선공으로
 
시작되었다.
 

미국 쪽의 자료를 봐도 남한의 국군 쪽에서 선제공격을 한 게 훨씬 더 많았는데 수치적으로 비교하자면 열

 

건중에서 일곱,여덟건은 남쪽에서 먼저 공격을 한 게 맞는다고 되어있다.

   
한국군이 선제공격을 자주 했던 배경에는 '여순 반란 사건'을 성공적으로 진압함으로써 한국군 내부에
 
강한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고, 이승만의 '북벌'의지가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1949년 2월 7일 국회 연설에서 유엔이나 미국이 평화적으로 남북통일을 이룩하지 못하면 '우리가 이북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했다. 군 지휘관들 역시 1949년 상반기 동안 수많은 호전적 대북 공격
 
발언을 쏟아냈다.   
 
 
한국 정부와 군의 이러한 발언들에 대해 실제로 북한은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고 남한이 북한을 선제공격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기도 했다. 소련은 1949년 초부터 한국군의 '북침'에 대해 경계하고
 
있었는데, 북한 주재 소련 대사 슈트 코프는 1월 말 스탈린에게 보낸 전문에서 "한국군의 북침 소문이
 
강하게 퍼지고 있으며 선제공격을 당하기 전에, 경비를 강화하고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고
 
보고한 바 있다.
 
  
또 소련 극동군 사령관 바실리 예프스키는 한국이 38선상에서 선제공격을 하고 있으며, 병력을 3~4월   
간 계속적으로 집중시키고 있어, 새로운 도발행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했다.(소련 외교문서 3권, 4권)
   
 
결국 소련과 북한은, 한국군이 북한을 전격적으로 '북침'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고 판단하고 있었고
 
그 시기를 1949년 7월로 예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승만의 생각과 한국군은, 자체 준비 부족과
 
미국의 단호한 거부로 '북침'을 포기하였다.
   
 
그런데 1950년 6월 25일에 북한에 의한 전면적 공격에 의해 한국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전쟁 개전과 동시에 북한은 '남한이 먼저 침공을 했기 때문에 자위적 수단으로 공격을 한 것이다'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북한이 그렇게 주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전쟁의 개전과 관련하여 핵심적 쟁점이 된 사건이 있는데 소위 '해주점령설' 또는 '해주 북침설'로
 
일컬어지는 사건이다.
   
 
이 사건은 옹진반도에 주둔하고 있던 한국군 제17연대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해주를 공격 혹은 점
 
령 했다는 사건이고, 이는 한국군의 '북침'을 주장하는 대표적 증거로 활용되어 왔다.
 
북한 내무성 성명은, 6월 25일이른 새벽에 '해주 방향 서쪽'에서 한국군이 공격해왔다고 보도했는데,
 
이는 옹진 주둔 한국군 제17연대가 공격을 하였음을 의미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유력 신문인 『뉴욕타임스』『위싱턴포스트』등이 6월 26일 한국군 제17연대의
 
2개 중대가 해주를 점령했다고 보도했다고 한다. 그런데 해주침공설은 북한이 먼저 주장한 것이 아니고
 
한국군과 한국 언론이 대서특필한 사건이었다. 동아일보는 6월 27일 자 전쟁 관련 기사에서
 
'국방군 보도과'의 발표를 인용하여 한국군이 해주를 완전 '점령'했다고 보도하고 각종 전쟁 전과를
 
나열했다. KBS 라디오 또한 해주점령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이러한 한국군 당국의 홍보와 언론의 보도는 전쟁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느냐 하는 문제를 헷갈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이 '해주점령설'이 오보이자 해프닝이라는 것이다.
   
 
해주점령설을 처음으로 보도한 연합신문 기자 최기덕이 당시 17연대장을 맡고 있던 백인엽 대령의
 
말을 오해하여 국방부 보도 과장 김현수 대령에게 전하였고, 그것이 곧바로 해주침공설로 와전되었다는
 
것이다. 즉 백인엽이 희망사항으로 한 " 부대를 지휘하여 해주로 진격하겠다"라는 말을 실제로 해주를
 
침공한 것으로 받아들여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는 해명이다.
   
 
나중에 백인엽은 "해주진 공은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부인하였다.
 
상황을 종합하면 국방부 보도 과장 김현수 대령이 최기덕 기자가 전한 옹진 17연대장 백인엽의
 
결의를 듣고 한국군 사기앙양 차원에서 자의적으로 해주침공설을 보도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옹진 17연대의 작전 계획에는 만약 전쟁이 발발 시 해주에 대한 진공작전이 수립되어
 
있었던 것 같다.
   
 
다만 육군본부 작전에 따르면 옹진 17연대의 해주진공계획은 북한군의 공격을 분산시키기 위한 방어용
 
역습 시도 일 뿐이지, 선제공격을 위해 준비된 계획은 아니었다고 한다.
   
 
실제로 전쟁이 발발하자 백인엽은 준비된 방어계획에 따라 해 주공격의 가능성 여부를 생각하였지만
 
실행할 상황은 아니었던 것이다.
   
 
한국전쟁의 원인에 대해 브루스 커밍스의 '남침유도설'등 과 같은 여러 가지 가설들이 존재하였지만,
 
구소련의 기밀문서들이 해제됨으로써 그 실체적 진실을 보다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문서들에서
 
드러난 것처럼 김일성은 오래전에 남한에 대한 평화적 통일의 가능성을 의심하였다.
 
특히 '여순 반란 사건'을 계기로 박헌영이 주장한, 남한 내 남로당 세력의 허약성이 드러난   
 
이후에는 평화적 통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하였고, 이에 따라 무력에 의한 통일을 추진하였다.
 
기밀문서에는 김일성이 수차례 소련을 방문하여 스탈린에게 남침을 허락해달라고 요구했던 내용이
 
나오는 데, 이 이상 완벽한 증거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 보아야 하는 것은, 1949년부터 한국군의 군사적 대결자세가
 
유독 강화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1949년부터는 공격형 자세로 전환하였고  38선상에서 더욱더 자주 선공을 하기 시작하였다.
 
스탈린이 김일성에게 보낸 초기 교시에서 "남한이 선공하면 반격을 통해 전쟁을 확대하라"라고
 
하였던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1949년 이후에 한국군의 공세적 태도가 북한으로 하여금
 
'북침'에 대한 두려움을 형성하였던 측면이 분명히 있었다.
   
 
북한이 한국전쟁을 '도발 받은 정의의 반공격전'으로 선전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  제가 예전에 이런 내용의 글을 당시 동대 북한학과 학생들에게 보여준 적이 있는데 이 내용을 읽고 몇몇 학생들이 댓글식으로 올렸는데 몇 개의 글이  저장되어 있어서 아래에 글을 올렸다.
 
 
A 학생:  저도 예전에 역사 집을 보면서 위와 같은 내용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내용이 정말 사실입니까?
 
이승만 전 대통령의 북벌 의지 때문에 한국군이 먼저 선공하였고 그러면서 우리 역사 책엔 한국전쟁은
 
북한군의 선제공격 때문이다. 이렇게 나오는 것입니까?   
 
 
하지만 북침 설은 옳지 않습니다. 공격한 것은 사실이나, 어디까지나 국지전이죠. 북한이 시시때때로 우리나라에 무력도발을 해오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을 전쟁의 시빨점으로 한다면 우리나라와 북한은 지금쯤 초토화가 되어있겠죠.
 
어불성설입니다. 하지만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한 짓은 국지전과 같은 무력도발이 아니라, 38선을 뚫고 '전면전'을 걸어왔죠. 이게 바로 전쟁의 시작이죠. 군대에 다녀오셨다면 국지전 땐 진돗개와 같은 상황이 발령되지만, 전쟁이 시작되면 데프콘이 걸리는 건 잘 아시죠? 그 차이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B 학생:  6.25는 백인엽의 해주 및 개성 침략이 원인이다.
한국전쟁의 직접적 원인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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