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얼마전 길공구라는 분의 블로그에 댓글을 단적이 있었습니다. 전부터 만주어와 청사에 관심을 가져온 터라 한번 둘러보던 중에 이목을 끄는 글이 있더군요.
조선과 만주 주션의 동질성을 주장하는 의견에 대한 반박글이었는데요.
나름 자세히 써놓은 터라 흥미있게 읽어보았고 만약 저 주장이 전부 사실이라면 제가 무슨 국수주의자가 아닌 이상에라야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읽다보니 결함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저 글의 한 내용은 '조선, 즉 다름 아닌 이성계가 세운 조선과 상고시대 조선의 당대 발음이 주션이 음하고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성계가 세운 조선인 이조의 당대 발음이 ㅈ이 아닌 ㄷ음이 적용된 '됴션'이고 상고시대 조선의 발음은 '됵샨'에 가까워 주션과는 다르다는 것이었죠.
이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닙니다. 다만 저걸 조선=주션 설을 부정하는데 활용한다는 점이 틀렸다고 봤습니다.. 왜냐하면 과연 '주션
됴션, 됵샨 -> 고로 조선하고 주션하고 아무 관계 없음 끝'하고 넘길 수 있느냐는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잠시 고조선에 대해 살펴보면
고조선은 지금의 만주 전역이 영향권에 있었던 강대국이었고 그 일부인 서부의 기자조선이 나중에 연나라를 침공해 큰 피해를 입혔으며(염철론 비호편 '옛적 조선이 요새를 넘어와 잔혹하게 약탈하곤 했었다'), 그 후신인 위만조선은 5만7000명을 필두로 한 한나라의 대대적인 침공을 받고도 1년간이나 버티다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부 분열로 인해 망했으니 그 조선열국의 힘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 강국이 수천년간 일대를 지배했으니 그 후예 국가들은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았으며 아예 그 이름이 계승된 경우가 있는데 그 사례인 숙신은 바로 조선의 변질된 음, 혹은 당대(상고시대)의 하나의 또다른 표기였습니다.
예를 들면 죽서기년 제순 유우씨 조에 '식신씨가 내조해 화살을 바쳤다'라고 했으며 나중에 사기집해에 '정현이 말하기를 식신은 곧 숙신이며 곧 동북이이다'라고 되어있으니 발음의 유사성으로나 사서 기록으로나 숙신=식신임을 알 수 있는데(제순 유우씨는 곧 순임금. 하나라 건국 직전의 왕),
과연 이 숙신(식신)이 후일에 안국군 달가가 응징하고 광개토태왕이 정벌했던 그 숙신일까요?
숙신(상고시대) = 숙신(고구려 시대) = 물길 = 말갈 = 여진 = 만주로 이어지는 계보가 정확할까요?
당서에 보면은 말갈인들은 모두 옷을 벗고 다니며 돼지기름을 바른다 하였으며 또한 그들은 아직 혈거 생활을 한다고 할 정도로 미개한 족속으로 묘사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옷을 벗고 돼지기름을 바르고 다닌다는 기록은 오해에서 비롯되었거나 악의적으로 남긴 왜곡된 기록이라 막연하게 추측(아무리 미개했어도 설마 그랬겠냐는 상식?에 기반한 추측일 뿐 구체적 근거는 없음)하며 이런 기록이 남은 것의 의의가 있다면 그것은 말갈이 실제로 저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상당히 문명과 동떨어진 생활을 하였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렴 오해가 있고 악의를 가져서 그리 썼어도 자기네처럼 벽돌집 짓고 비단옷 입는 족속에게 그런 왜곡을 가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붓을 저리 발랄하게 놀려댈 거리, 빌미가 없었다고 상상하긴 어렵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 기록이 사실이라면 제가 할 주장에 오히려 도움이 되는데, 하고자 하는 주장은 저토록 미개한 말갈이 저 당시로부터 무려 3000여년 전에 중원의 한복판에 있는 순임금의 나라와 교역(화살을 바쳤다라고 되어있지만 춘추필법일 뿐이고 동아시아의 패자 명나라조차 조공이라는 이름 하에 주위 국가들과 손해나는 교역을 울며 겨자먹기로 한 판에 하물며 조그만 나라가 실제로 진짜배기 조공을 받아먹을 만큼 강했을리가 만무. 고로 동등한 교역이거나 조공이라는 명목하게 행해지는 교류였음이 확실)하였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겁니다.
마땅히 나라를 이루거나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 나중의, 왕이 아닌 대인을 추대해 다스렸다던 오환같은 족속만큼의 정치적 공동체를 이루고 그 일대에서 버틸 힘을 있어야지 저리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럴진대 무려 3000년이 지나서 도리어 퇴보해가지고 혈거 생활을 하고 나체로 생활한다?
여기서 저절로 나오는 추론은 고대 숙신(식신)과 후일의 말갈은 동일한 족속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 이 숙신은 바로 고조선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시기상으로 하나라 건국 직전이니까 고조선의 서기전 2333년 건국설을 인정한다면 바로 고조선 초기에 행해진 일이죠.
위 링크의 길공구라는 사람이 쓴 내용에 실제로 숙신의 고대부터 지금까지의 발음을 모아가지고 비교를 하고서 그 숙신이 여진의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이 나옵니다만 숙신 ->~~~->여진이라는 계보는 그 근거가 명확치 않고 비판이 많아 옳다 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다만 나름대로 숙신과 조선의 상고음을 찾아 비교한 점은 있으나 기실 조선이라는 명칭이 중원 사서에 등장하는 것은 서기전 7세기에 관중이 지었다고 하는 관자에서의 일이며 그로부터 거의 1600여년 전을 다룬 죽서기년에는 식신(곧 숙신)으로 등장하니 그 둘의 발음은 시대상으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조선은 그 범위가 매우 넓었는데다가 기마술이 발달했기 때문에 인구의 유동이 잦아 각 지역마다 각이한 방언이 있었을 것이며 디긋과 시읏 발음은 쉬이 통하는 발음인걸 감안하면 시대적 차이가 아니라 당대에도 지역마다 '조선'에 대한 발음이 달랐을 것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당장에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이 좁은 땅 안에서 방언의 차이가 크며 이북 쪽의 서북 방언에서는 구개음화가 진행되지 않아 우리의 ㅈ이 ㄷ으로 발음되는 현상이 보입니다.
예) 하지 말라우 -> 하디 말라우: ㅈ->ㄷ , 가르치다 -> 가르티다: ㅊ->ㅌ
그럴진대 고조선 시대에도 지역에 따라서 조선은 됴션이라 부르는 곳이 있고 조선이라 부르는 곳이 있었을 것이니 후일에 중고음(남북조 시대부터 불린 음)으로 숙젠이라 불린 그 숙신은 조선의 동북지역에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지역의 후손일 것이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차 언어가 달려져감에 따라 부여, 고구려, 백제가 말이 통한다는 기록과 달리 같은 동이족 문화권에 있었던 숙신이 '언어독이' 즉 언어가 홀로 다르다 라고하는 기록이 사서에 남은 것입니다.
지금도 비슷한 사례로 우리나라의 제주어가 사실상 독립된 언어로 여겨지는 정황이 있는데 이것이 섬이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이라면 숙신의 경우에는 삼림과 강으로 인해 여기저기 끊겨있고 고립화가 될 여지가 있는 흑룡강 부근 혹은 북부지역이니 충분히 가능합니다.
요약
1. 숙신은 조선과 동떨어진 민족이 아닌 조선의 후예이자 고조선의 또다른 당대 표기
2. ㅈ과ㄷ 발음은 시대적, 공간적으로 쉽게 뒤바뀐다
3. '고로 숙신=주션
조선 & 됵샨=됴션
주션'을 근거로 '주션
조선'이라고 하는 주장은 옳지 않다
헌데 이런 점들은 생각치 않고 부정하여 결국 단순한 우연으로 치게 될거란 점이 나름 불합리하다 여겨 이의를 제기했는데 댓글을 쓰고 얼마 후 와보니 저리 되어있더군요.
기승전 차단
뭐 이번에도 아무 반박 없이 차단으로 될지 말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차단 당한 김에 만들어둔 다른 계정으로 가서 비슷한 내용의 댓글을 달긴 했습니다만 기대는 안되는군요.
제 반박 댓글에도 허점이 있고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허나 논박을 당했으면 당했지 무시를 당하고 싶지는 않군요.
제가 쓴 글의 주장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해 쓴 것은 아니며 당대의 상황을 헤아려 보며 탐구했으면 해서 쓴 글이며 또한 반면교사로 삼고 여기서 저 포함해 열심히 활동하시는 분들이 저리 졸렬한 사람은 되지 말았으면 해서 썼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0년 7월 21일 오후 10시 5분 경 수정
다시 저 링크 들어가보니 귀신같이 댓글 삭제 + 댓글 차단되어있군요
이로써 확실해진 것: 길공구 저 양반은 지 듣고싶은 것만 듣는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