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의 ‘여진’, ‘여진입’, ‘여진삽’ 등의 구절을 놓고 1935년 일본에서 최초로 ‘이순신 장군과 여진이라는 관기가 성관계를 했다’고 해석한 것이 논란의 발단이 됐다”
“당시 조선의 호남지방에 많이 이주해 살고 있던 여진족과 생활을 의미하거나 글자 그대로 ‘여진·여진입·여진삽’이라는 이름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정설”
‘저녁에 여산의 관노의 집에서 잤다(夕宿于礪山官奴家)’는 문구도 논란이 됐지만, 이는 장군이 백의종군하러 가던 중 여산 관아의 사내종 집에서 하룻밤 유숙한 것으로 여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관노(官奴)는 남자종을, ‘잘 숙(宿)’은 단순히 숙박을 뜻한다는 게 전문 연구가들의 견해”
"여자종은 비(婢)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