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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7-15 08:44
[북한] 김일성의 여자들. 그리고 소련으로 월경
 글쓴이 : 돌통
조회 : 1,417  

김일성의 처는 몇명인가.?


현재 공식적으로 알려져 있는 김일성의 처는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貞淑)과, 그녀의 사후에 재혼한 김성애(聖愛, 초명 김성팔) 둘이다. 그러나 김정숙이 사망한 후 6.25 남침 직전인 1950년 1월에 부수상(副首相) 홍명희(洪命熹)의 딸 홍영숙 (洪永淑, 洪愛姸(홍애연)?)과 재혼했다는 사실도 확인된다. 홍영숙은 결혼후 얼마되지 않아 사망한 탓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김성애는 그 후에 결혼한 처이다. 그 외에도 김정숙과 결혼하기 이전에 다른 처가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주보중전,(저우바오중) (周保中傳. 흑룡강출판사, 1987년)에 의하면 김일성(日成)은 김정숙(正淑)과 1940년 가을 흑룡강성(黑龍江省, 黑龙江省) 동녕현(東寧縣, 东宁县) 산속에서 결혼하였다. 동녕현은 소련 접경지역이다. 결혼후 이들은 곧바로 소련으로 월경하였으며, 우수리스크의 남야영에 수용된다. 주보중전에는 김정일이 비야츠코예 아닌 우수리스크 출생이라고 했다. [> 김일성은 1940년 가을 동녕현 아닌 훨씬 더 남쪽 훈춘의 산속에서 결혼하고, 거기서 소련 쪽으로 넘어갔다. 주보중 전,이 잘못된 것임이 큼. 아래 서순옥 증언 참고]


 


周保中(주보중)저우바오중은,  중국 공산당의 혁명열사이며 日成(김일성)의 직속상사(제88특별여단 여단장)였다. 「周保中傳(주보중전)」에 보면 40년가을 만주 東寧縣(동녕현)(소·만국경지대)산속에서 결혼한日成(김일성)·正淑(김정숙)부부는 그해겨울 우수리江(강)을 건너 소련령으로 왔으며, 41년 1월중순부터 42년 7월중순까지 당시 소련극동군구에서 설치한 南野營(남야영)(A캠프·우수리스크시 교외)에 수용돼 있었다. 그무렵 와츠코예에는 野營(북야영)(B캠프)이 설치돼 있었다. 日成(김일성)·正淑(김정숙)부부가 수용됐던 남야영은 만주의三江平原(삼강평원) 동남쪽 국경 소도시 東寧(동녕)과 우수리강을사이로 마주 바라보고 있는 소련령 연해주의 국경요충지이다. 우수리스크를중국에서는 雙城子(쌍성자)라고도부르며 20년대초 佐鎭(김좌진)·洪範圖(홍범도)·安武(안무)·池靑天(지청천)등 群小(군소) 한국독립군부대들이 大韓獨立軍團(대한독립군단)을 형성 ,우수리스크를 넘나들었으며 당시 이곳에는 벌써 한국교포가 수천호나 정착,농사를 짓고 있었다(이들은 37년 스탈린에 의해 전부 중앙아시아지역으로 강제 이주당했다). 20년대초 이지역에서 한국독립군이 활동을 전개하곤 했다. 


 


*  빨치산 여성 대원 출신 서순옥의 증언


 


사실은 김일성 부대는 1940년 8월부터 소련으로 이동을 시작하여 10월 23일 경 월경하였다. 김일성과 소련 월경을 동행하였던 서순옥의 월경 전후의 정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1940년 8월에 김일성, 강위룡 등 우리 16명은 소련으로 향하여 떠났다. 소련 땅에 들어서기 전에 훈춘의 어느 산곡대기에서 김일성과 김정숙의 혼례를 하였는데 혁명가를 부르며 오락을 진행하였다. 김일성, 강위룡 등 우리 16명 유격대 전사들은 소련땅에 들어선 다음, 김일성 동지가 강위룡과 다른 한 동무를 파견하여 소련 변방 전사들에게 체포당하라고 지시하였다. 체포된 다음에 정황을 소련 당조직에 알리자는 계획인 것 같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체포되어 땅굴 감옥에 감금되었다.”


 


***  또 다른 전문가의 의견을 보면 :


김일성은 1940년 8월에 강위룡 등 16명과 함께 소련으로 들어갔다. 가는 도중에 훈춘의 어느 산꼭대기에서 김일성은 김정숙과 결혼하였다. 최근까지 생존해있는 사람 중에 여영준, 서순옥 등이 증언하였다.



주보중 일기[p.544] 1940년 12월 11일자에 따르면 김일성이 16명을 거느리고 10월(음력 9월23일) 훈춘을 경유하다“고 씌어있다. 결국 김일성은 1940년 10월 22일 또는 23일경에 월경했다.


출처:서재진, 김일성 항일무장투쟁의 신화화 연구 서순옥, 주보중 증언


 


 


또한 현대조선역사는 김일성부대가 만주에서 군정훈련을 실시한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소련 월경사실을 은폐하고, 소련에서 했던 군정훈련을 만주에서 한 것처럼 기술하였다. 그런데 김일성 사후, 발간한 김일성회고록 계승본 세기와 더불어 8권에서 이 사실을 수정하여 기술하였다. 국제당의 초청을 받고 소련으로 들어갔다고 기술하고 있다.


 


국제당에서 파견한 연락원 2명이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그 연락원들의 말이 자기네를 파견한 사람은 원동군사령부에 있는 류센코 장령인데 그가 국제당의 명의로 전달하려고 한 사항은 1940년 12월에 하바로브스크에서 국제당이 소집하는 회의에 참가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만주에서 활동하는 모든 항일무장부대들이 대부대 활동으로부터 소부대 활동으로 넘어가며 원동(연해주)에 기지를 정하고 력량을 수습재편할 수 있도록 조속히 들어오라는 국제당의 지령도 동시에 전달하였습니다. 이 글이 의외로 현재는 어느정도 사실로 증명되고 있다.


 


그리고 아까 글에 이어서 훈춘의 어느 산꼭대기에서 김정숙과 결혼후 오락을 즐기고 소련으로 넘어가서 부하보고 일부러 체포 당하라고 하고 체포되어 땅굴감옥에 감금된다.


 


그런데 김일성 부대의 소련 피난은 상급부대의 지시없이 무단으로 행해진 것이라는 증거가 있다. 당시 제1로군의 상황보고를 받은 주보중은 김일성, 서철, 김일 등이 위증민의 결정을 어기고 제1로군 사령관 위증민을 남겨두고 부대가 모두 탈출해왔음을 알았다. 주보중은 4월에 위증민을 구출하기 위하여 김일성 소부대를 만주로 출발시키면서 제3로군의 책임자 김책과의 연명으로 위증민에게 보내는 다음과 같은 편지(1941년 3월 12일자)를 김일성이 가지고 가게 하였다. 중공당의 지시 없이 김일성이 소련으로 피난하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료이다.


 


“설령 아무리 곤란해도, 설령 어떠한 이유가 있어도 김일성과 윤준산 동지 부대의 월경은 잘못이다. 이 잘못은 원래 혁명적 입장 전체의 동요는 아니고 전체의 방향을 잃은 것도 아니다. 이 잘못은 제1로군 총부를 아예 이탈하여 유격대 지지투쟁의 가능한 조건을 방기하고 전부의 환경을 인식하지 않고 곤란을 극복할 방법을 충분히 강구하지 않고 기회주의적인 월경 방법을 취한데 있다. 이는 용서할 수 없는 잘못이다. 김일성과 그 이하 간부 동지는 자각하여 잘못을 인정하고 있다. 규율상으로는 반드시 김일성, 마덕산(김일), 리복록 동지에게 상당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 우리는 당신에게 제의한다. 당신이 적당한 처분을 내릴 것을.”

(東北地區革命史文件匯集), 甲61券, 107쪽)342


참조


김일성, 『세기와 더불어』8권, p. 51.

박창욱 교수 및 권립 교수 인터뷰; 신주백, 『김일성의 만주항일유격운동에 대한 연구』p. 183.

와다 하루키, 『북조선: 유격대국가에서 정규군국가로』, p. 57.


 


윤준산은 제2방면군장 김일성 아래의 정치주임(政治主任)이었던 이준산 (伊俊山, 19081986)의 오기이다. 김일은 마덕산이 아니라 박덕산일 것이다.


 


여기서 周保中(주보중),저우바오중은 중국 공산당의 혁명열사이며 日成(김일성)의 직속상사(제88특별여단 여단장)였다. 「周保中傳(주보중전)」에 보면 40년가을 만주 東寧縣(동녕현)(소·만국경지대)산속에서 결혼한日成(김일성)·正淑(김정숙)부부는 그해겨울 우수리江(강)을 건너 소련령으로 왔으며, 41년 1월중순부터 42년 7월중순까지 당시 소련극동군구에서 설치한 南野營(남야영)(A캠프·우수리스크시 교외)에 수용돼 있었다. 그무렵 와츠코예에는 野營(북야영)(B캠프)이 설치돼 있었다. 日成(김일성)·正淑(김정숙)부부가 수용됐던 남야영은 만주의三江平原(삼강평원) 동남쪽 국경 소도시 東寧(동녕)과 우수리강을사이로 마주 바라보고 있는 소련령 연해주의 국경요충지이다. 우수리스크를중국에서는 雙城子(쌍성자)라고도부르며 20년대초 佐鎭(김좌진)·洪範圖(홍범도)·安武(안무)·池靑天(지청천)등 群小(군소) 한국독립군부대들이 大韓獨立軍團(대한독립군단)을 형성 ,우수리스크를 넘나들었으며 당시 이곳에는 벌써 한국교포가 수천호나 정착,농사를 짓고 있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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