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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7-11 04:24
[북한] 북한이 자랑하는 (동북항일연군)의 분석 01편
 글쓴이 : 돌통
조회 : 727  

북한이 자랑하는 (동북항일연군)의 평가 및 분석.. 01편.


일제시대 기록

 

在滿東北抗日聯軍第一路軍の現況に關する文獻

 

일본어로 번역 : 재만 동북항일연군 제 일로군 의 현황에 관한 문헌

중국어 번체로 번역 : 만주 동북항일연군 제1로 군노현황 る關す文献문헌

 

 

國史館論叢 第11輯 > 滿洲 抗日聯軍 硏究(金昌順) > Ⅷ. 東北抗日聯軍의 終末

 

일본어로 번역 : 국사관 논총 제11집 만주항일연군 연구(김창순) Ⅷ. 동북항일연군의 종말

 

중국어 번체로 번역 : 국사관논총 제11집 > 만주 항일 연합군 연구(김창순) > Ⅷ. 동북항일 연합군의 종말

 

Ⅷ. 東北抗日聯軍의 終末

번역 : Ⅷ. 동북항일연군의 종말

 

원문.

 

1935년 中共黨中央의 八·一 선언에 의해 종래의 東北人民革命軍은 東北抗日聯軍으로 개편되어 3路 11軍에 달하는 항일무력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日帝關東軍과 괴뢰 만주국군의 소위 토벌작전에 의해 끝내는 1940년을 끝으로 그 존재를 더 유지하지 못하고 潰滅되고 말았다. 생존자의 일부는 소련으로 遁入하여 소련극동군 산하에서 특수부대 조직에 편입되기도 하였다. 동북항일연군의 종말에 대해서는 中共黨滿洲黨部의 최후의 간부였던 南滿省委書記겸 동북항일연군 第1路軍副司令(총사령대리) 魏拯民이 코민테른駐在 中共代表團에 보낸 ‘狀況報吿’에 의해 그 전모가 드러났다. 이 문서는 당시의 상황과 金日成隊의 최후를 다룬 어느 자료보다도 유력하게 입증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일부를 옮겨 놓기로 한다.註 103

 

번역 : 1935년 중공당중앙(中共黨中央)의 팔(八)·일(一) 선언에 의해 종래의 동북인민혁명군(東北人民革命軍)은 동북항일련군(東北抗日聯軍)으로 개편되어 3로(路) 11군(軍)에 달하는 항일무력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일제관동군(日帝關東軍)과 괴뢰 만주국군의 소위 토벌작전에 의해 끝내는 1940년을 끝으로 그 존재를 더 유지하지 못하고 궤멸(潰滅)되고 말았다. 생존자의 일부는 소련으로 둔입(遁入)하여 소련극동군 산하에서 특수부대 조직에 편입되기도 하였다. 동북항일연군의 종말에 대해서는 중공당만주당부(中共黨滿洲黨部)의 최후의 간부였던 남만성위서기(南滿省委書記)겸 동북항일연군 제(第)1로군부사령(路軍副司令)(총사령대리) 위증민(魏拯民)이 코민테른주재(駐在) 중공대표단(中共代表團)에 보낸 ‘상황보(狀況報)吿’에 의해 그 전모가 드러났다. 이 문서는 당시의 상황과 김일성대(金日成隊)의 최후를 다룬 어느 자료보다도 유력하게 입증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일부를 옮겨 놓기로 한다.주(註) 103

 

원문.

 

경애하는 中央同志, 정식으로 우리 南滿黨 및 一路軍의 각종 문제를 보고하기 전에 그 동안에 우리들이 느낀 것을 말하고자 한다.
1935년 7차 대표대회 후 1935년 가을 哈爾濱에서 王明동지의 著作 《自由幸福의 新中國을 위하여 분투하라》고 題한 小册子의 문헌을 송부 받은 이후 中央 및 北滿과의 관계가 一切 단절되어 중앙의 指示는 물론 중앙의 文件 및 통신을 받은 일도 全無하다. 일반군중에 대한 서적, 신문 등은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고 교활한 日賊은 四面과 內外로부터 공격하고 있는 현상이다.
모든 공작투쟁은 어리고도 어리석어 마치 우리 측은 실로 大海의 小舟가 주인을 잃은 모양으로 또는 어린애가 두 눈을 잃고 이리로 저리로 허둥대는 것과도 같다. 위대한 혁명의 물결은 높아져도 우리는 남의 집에 들어가 박힌 신세이고 또는 공기라고는 하나도 통하지 않는 마치 북(鼓) 속에 갇혀 있는 꼴과도 같아서 각처에 혁명전이 승리한다는 소리는 듣지만 실제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 상급기관과의 연락을 상실한 후부터 우리의 사업에는 예상치도 못한 중대한 손실을 입었다. 즉 일반간부의 사상과 행동은 大小間에 변화와 동요, 비관과 실망을 자아내게 했다.
우리들의 평소의 희망은 다시는 이와 같은 장기간의 연락상실이 없기를 바라는 바이며 만일 다시 이와 같은 장기적 연락단절이 있게 되는 경우 어떠한 결과가 초래될런지 심히 우려되는 바이다.
우리의 보고는 다음 4 項으로 분류함. 불충분한 점과 빠진 점은 우리가 파견하는 동지에게 직접 물어주기 바란다.

 

번역 : 경애하는 중앙동지(中央同志), 정식으로 우리 남만당(南滿黨) 및 일로군(一路軍)의 각종 문제를 보고하기 전에 그 동안에 우리들이 느낀 것을 말하고자 한다.
1935년 7차 대표대회 후 1935년 가을 합이빈(哈爾濱)에서 왕명(王明)동지의 저작(著作) 《자유행복(自由幸福)의 신중국(新中國)을 위하여 분투하라》고 제(題)한 소(小)册자(子)의 문헌을 송부 받은 이후 중앙(中央) 및 북만(北滿)과의 관계가 일절(一切) 단절되어 중앙의 지시(指示)는 물론 중앙의 문건(文件) 및 통신을 받은 일도 전무(全無)하다. 일반군중에 대한 서적, 신문 등은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고 교활한 일적(日賊)은 사면(四面)과 내외(內外)로부터 공격하고 있는 현상이다.
모든 공작투쟁은 어리고도 어리석어 마치 우리 측은 실로 대해(大海)의 소주(小舟)가 주인을 잃은 모양으로 또는 어린애가 두 눈을 잃고 이리로 저리로 허둥대는 것과도 같다. 위대한 혁명의 물결은 높아져도 우리는 남의 집에 들어가 박힌 신세이고 또는 공기라고는 하나도 통하지 않는 마치 북(고(鼓)) 속에 갇혀 있는 꼴과도 같아서 각처에 혁명전이 승리한다는 소리는 듣지만 실제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 상급기관과의 연락을 상실한 후부터 우리의 사업에는 예상치도 못한 중대한 손실을 입었다. 즉 일반간부의 사상과 행동은 대소간(大小間)에 변화와 동요, 비관과 실망을 자아내게 했다.
우리들의 평소의 희망은 다시는 이와 같은 장기간의 연락상실이 없기를 바라는 바이며 만일 다시 이와 같은 장기적 연락단절이 있게 되는 경우 어떠한 결과가 초래될런지 심히 우려되는 바이다.
우리의 보고는 다음 4 항(項)으로 분류함. 불충분한 점과 빠진 점은 우리가 파견하는 동지에게 직접 물어주기 바란다.

 

원문.

 

第一, 第1路軍 발전의 경과
1. 2단계로 간략히 분류함
가) 1936년 5월부터 1938년까지 敵은 3년간의 최종토벌을 끝냈다. 1936년 여름에 정식으로 제1군을 성립하고 과거 제1, 2군의 부대로서 1, 2, 3, 4, 5, 6師와 2개 부대의 警衛團 및 각지에 분산활동하는 다수의 小부대를 편성했다. 활동구역은 광범위하게 奉天, 吉林, 間島 등 각 都市 부근까지 이르게 되어 연장 수백 리에 달한다. 通化에서의 西쪽으로의 대부분은 第1軍의 일부가 활동함. 구역에 따라서는 各地 山林隊가 상당히 발전 확대되었다.
同年(1936) 가을 우리들의 항일부대가 확대됨에 따라 이것의 진압과 중국진공을 위하여 日滿 匪軍은 分區的 대토벌을 실시했다. 輯安에서 西部에는 日賊第1師團 약 5천 여명이 토벌을 맡고 있고, 또 輯安에서 東部로 出征한 괴뢰만주국군 약 10 個旅團 약 1 만여 명은 同地의 각 경찰대(약 1천명)를 配合하여 토벌을 맡고 있다. 이에 의하여 우리를 3년간 내에 소멸하고자 계획했던 것이지만 결과는 東西 각부의 我軍의 승리로 돌아갔다. 敵의 토벌작전을 격파하고 다수의 新式武裝(輕機, 重機, 輕擲投筒, 重擲投筒, 迫擊砲, 38步兵銃, 拳銃)을 노획했다. 山林隊에서는 다소의 손해를 입고 潰散되었다. 同年(1936)에는 敵의 집단집약 부락제도가 완성되지 않았고 식량은 각처에서 같이 제한을 받았다. 同年中의 전쟁은 비교적 치열했고 우리측 간부의 손실도 있었다.
第1路軍副司令 겸 第2軍 王軍長, 2軍 李主任(李學中) 1軍 1師 李紅光 師長, 韓豪 등이 사망했다. 1937년 中日전쟁이 발발한 후 西區(通化省)의 日匪全部가 중국으로 떠나갔고, 東區(間島省)의 괴뢰 만주국군도 일부 감소되었지만 同年에 있어서의 敵軍은 我軍에 대해 계속적으로 진공했고 적극적으로 집단집약부락 및 경제봉쇄의 수단을 사용했다. 그 투쟁형식은 그 이전에 비해 첨예화되었으나 同年에 있어서의 我軍의 발전은 의연히 순조로워 각종 신식무장의 획득은 1936년에 비해 다대했다.

 

번역 : 제일(第一), 제(第)1로군(路軍) 발전의 경과


1. 2단계로 간략히 분류함


가) 1936년 5월부터 1938년까지 적(敵)은 3년간의 최종토벌을 끝냈다. 1936년 여름에 정식으로 제1군을 성립하고 과거 제1, 2군의 부대로서 1, 2, 3, 4, 5, 6사(師)와 2개 부대의 경위단(警衛團) 및 각지에 분산활동하는 다수의 소(小)부대를 편성했다. 활동구역은 광범위하게 봉천(奉天), 길림(吉林), 간도(間島) 등 각 도시(都市) 부근까지 이르게 되어 연장 수백 리에 달한다. 통화(通化)에서의 서(西)쪽으로의 대부분은 제(第)1군(軍)의 일부가 활동함. 구역에 따라서는 각지(各地) 산림대(山林隊)가 상당히 발전 확대되었다.


동년(同年)(1936) 가을 우리들의 항일부대가 확대됨에 따라 이것의 진압과 중국진공을 위하여 일만(日滿) 비군(匪軍)은 분구적(分區的) 대토벌을 실시했다. 집안(輯安)에서 서부(西部)에는 일적제(日賊第)1사단(師團) 약 5천 여명이 토벌을 맡고 있고, 또 집안(輯安)에서 동부(東部)로 출정(出征)한 괴뢰만주국군 약 10 개려단(個旅團) 약 1 만여 명은 동지(同地)의 각 경찰대(약 1천명)를 배합(配合)하여 토벌을 맡고 있다. 이에 의하여 우리를 3년간 내에 소멸하고자 계획했던 것이지만 결과는 동서(東西) 각부의 아군(我軍)의 승리로 돌아갔다. 적(敵)의 토벌작전을 격파하고 다수의 신식무장(新式武裝)(경기(輕機), 중기(重機), 경척투통(輕擲投筒), 중척투통(重擲投筒), 박격포(迫擊砲), 38보병총(步兵銃), 권총(拳銃))을 노획했다. 산림대(山林隊)에서는 다소의 손해를 입고 궤산(潰散)되었다. 동년(同年)(1936)에는 적(敵)의 집단집약 부락제도가 완성되지 않았고 식량은 각처에서 같이 제한을 받았다. 동년중(同年中)의 전쟁은 비교적 치열했고 우리측 간부의 손실도 있었다.


제(第)1로군부사령(路軍副司令) 겸 제(第)2군(軍) 왕군장(王軍長), 2군(軍) 리주임(李主任)(리학중(李學中)) 1군(軍) 1사(師) 리홍광(李紅光) 사장(師長), 한호(韓豪) 등이 사망했다. 1937년 중일(中日)전쟁이 발발한 후 서구(西區)(통화성(通化省))의 일비전부(日匪全部)가 중국으로 떠나갔고, 동구(東區)(간도성(間島省))의 괴뢰 만주국군도 일부 감소되었지만 동년(同年)에 있어서의 적군(敵軍)은 아군(我軍)에 대해 계속적으로 진공했고 적극적으로 집단집약부락 및 경제봉쇄의 수단을 사용했다. 그 투쟁형식은 그 이전에 비해 첨예화되었으나 동년(同年)에 있어서의 아군(我軍)의 발전은 의연히 순조로워 각종 신식무장의 획득은 1936년에 비해 다대했다.

 

원문.

 

同年 敵은 집단부락제도를 완성하고 교통망은 以前보다도 잘 정비되었다. 우리의 활동구역은 축소되고 同年 우리의 1 師 李참모장, 2師 曹國安 師長, 4師 周樹東 師長, 南滿省委 조직부장 李東光 동지가 사망했다.
1938년 봄에 東, 北, 西部 책임동지가 輯安에서 南滿省委下의 1路軍의 모든 工作을 검토했던바 당시 1路 1軍 程斌(1師長)이 표변하여 敵에게 이용되는 등의 문제 때문에 과거 1路軍 소위 간부와 부대를 이동케 하여 西區 각 부대의 행동구역을 대대적으로 변경했다.
同年 冬季는 敵의 소위 3년간의 최종 토벌과 이에 대항하는 我軍의 전투로 인하여 전투회수는 상당히 많았다. 敵의 토벌작전을 분쇄했고 전리품은 비교적 증가했다. 敵의 집단부락제도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我軍의 식량 및 물자는 상당히 곤란해져 부대의 물질생활은 날로 악화되었고 이에 더하여 투쟁환경은 일층 첨예화되었기 때문에 간부 및 대원은 격감되었다. 隊內에서 총기를 들고 밖으로 나가는 背叛者가 속출하고 각종 비밀이 敵에게 발각되는 등의 사건이 속출했다. 同年 우리 측의 1軍 宋主任, 1軍 3師 王師長, 同師 周정치위원, 同軍 2師 楊師長 등이 희생되었다. 幹部결핍과 敵의 교통망 발달 및 집단부락완성 등의 관계로 全我軍의 활동구역을 주로 輯安東部森林 지대로 축소하고 이곳으로 이동했다.
나) 1938년 秘冬에 1路軍主力은 森林지대로 진출하여 現在에 至함. 1路軍主力이 산림지대로 진출한 후에는 모든 부대는 마치 산림지구에 봉쇄된 모양이 되고 말았다. 同 地域內 주민의 極貧과 敵의 집단부락제도의 영향에 의해 부대 생활은 더욱 惡化되었다. 部隊內의 사상은 위험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때문에 부대 내에는 반란사건이 속출하게 되었다. 1939년 봄 我軍主力은 산림지대에 과거의 2軍 유격지구를 확대할 계획을 실시하여 다대한 승리를 거두었고 秋夏의 二季에 외몽고「노모한」전쟁에 일부 主力을 집중한 敵軍을 공격하여 다대한 성과를 거두었다.
間島일대에서는 당시 我軍의 威力이 朝滿국경에 걸쳐 日賊에 대해 安眠을 주지 않고 맹공을 감행했기 때문에 日賊은 마침내「노모한」전쟁을 임시 停戰으로 가져가게 되었다. 그리고는 집단부락제도, 교통망의 정비, 식량증산 및 募兵을 계획하고 「노모한」에 돌렸던 主力軍의 일부 약 1만여 명을 신속히 我軍의 활동구역에 이동하여 적극적으로 我軍을 공격케 하였다. 비행기 폭격기 수 대를 배치하고 종일토록 진격, 사격, 돌격에 호응하여 폭격으로 我軍을 전면적으로 공격하여 왔기 때문에 우리는 피해를 입었다.

 

번역 : 동년(同年) 적(敵)은 집단부락제도를 완성하고 교통망은 이전(以前)보다도 잘 정비되었다. 우리의 활동구역은 축소되고 동년(同年) 우리의 1 사(師) 리(李)참모장, 2사(師) 조국안(曹國安) 사장(師長), 4사(師) 주수동(周樹東) 사장(師長), 남만성위(南滿省委) 조직부장 리동광(李東光) 동지가 사망했다.


1938년 봄에 동(東), 북(北), 서부(西部) 책임동지가 집안(輯安)에서 남만성위하(南滿省委下)의 1로군(路軍)의 모든 공작(工作)을 검토했던바 당시 1로(路) 1군(軍) 정빈(程斌)(1사장(師長))이 표변하여 적(敵)에게 이용되는 등의 문제 때문에 과거 1로군(路軍) 소위 간부와 부대를 이동케 하여 서구(西區) 각 부대의 행동구역을 대대적으로 변경했다.


동년(同年) 동계(冬季)는 적(敵)의 소위 3년간의 최종 토벌과 이에 대항하는 아군(我軍)의 전투로 인하여 전투회수는 상당히 많았다. 적(敵)의 토벌작전을 분쇄했고 전리품은 비교적 증가했다. 적(敵)의 집단부락제도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아군(我軍)의 식량 및 물자는 상당히 곤란해져 부대의 물질생활은 날로 악화되었고 이에 더하여 투쟁환경은 일층 첨예화되었기 때문에 간부 및 대원은 격감되었다.

대내(隊內)에서 총기를 들고 밖으로 나가는 배반자(背叛者)가 속출하고 각종 비밀이 적(敵)에게 발각되는 등의 사건이 속출했다. 동년(同年) 우리 측의 1군(軍) 송주임(宋主任), 1군(軍) 3사(師) 왕사장(王師長), 동사(同師) 주(周)정치위원, 동군(同軍) 2사(師) 양사장(楊師長) 등이 희생되었다. 간부(幹部)결핍과 적(敵)의 교통망 발달 및 집단부락완성 등의 관계로 전아군(全我軍)의 활동구역을 주로 집안동부삼림(輯安東部森林) 지대로 축소하고 이곳으로 이동했다.


나) 1938년 비동(秘冬)에 1로군주력(路軍主力)은 삼림(森林)지대로 진출하여 현재(現在)에 지(至)함. 1로군주력(路軍主力)이 산림지대로 진출한 후에는 모든 부대는 마치 산림지구에 봉쇄된 모양이 되고 말았다. 동(同) 지역내(地域內) 주민의 극빈(極貧)과 적(敵)의 집단부락제도의 영향에 의해 부대 생활은 더욱 악화(惡化)되었다. 부대내(部隊內)의 사상은 위험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때문에 부대 내에는 반란사건이 속출하게 되었다. 1939년 봄 아군주력(我軍主力)은 산림지대에 과거의 2군(軍) 유격지구를 확대할 계획을 실시하여 다대한 승리를 거두었고 추하(秋夏)의 이계(二季)에 외몽고「노모한」전쟁에 일부 주력(主力)을 집중한 적군(敵軍)을 공격하여 다대한 성과를 거두었다.


간도(間島)일대에서는 당시 아군(我軍)의 위력(威力)이 조만(朝滿)국경에 걸쳐 일적(日賊)에 대해 안면(安眠)을 주지 않고 맹공을 감행했기 때문에 일적(日賊)은 마침내「노모한」전쟁을 임시 정전(停戰)으로 가져가게 되었다. 그리고는 집단부락제도, 교통망의 정비, 식량증산 및 모병(募兵)을 계획하고 「노모한」에 돌렸던 주력군(主力軍)의 일부 약 1만여 명을 신속히 아군(我軍)의 활동구역에 이동하여 적극적으로 아군(我軍)을 공격케 하였다. 비행기 폭격기 수 대를 배치하고 종일토록 진격, 사격, 돌격에 호응하여 폭격으로 아군(我軍)을 전면적으로 공격하여 왔기 때문에 우리는 피해를 입었다.

 
이상..      총.  02편제.              0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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