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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7-02 20:37
[한국사] 조선이 발전하지 못한 이유는 이것 때문
 글쓴이 : 환9191
조회 : 2,134  

태조 이성계  고려측 불만세력
이방원          형제들 불만세력
세조              사육신                등등

정권에 정통성이 약하다 보니
국방력을 키울수가 없었음
세종때 화포기술에 선조때까지 발전이 없었음
유교를 국시로 한것도 그런 영향이 큼
국방력은 겨우 방어할정도만 허용
무관들은  푸대접
항상 반란 암살 걱정
유교는 공자 맹자 사상 천년 넘은 묶은 사상이었음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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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miky 20-07-02 21:09
   
정권의 정통성이 없다는데?
어차피 무력 가진 사람이 최곱니다 ㅋㅋ

이성계가 왜 왕이 되었음?  정도전이 함흥까지 친히 가서  그를 선택한건
그의  군사력보고 감탄했고ㅡ 고려말 알아주는 맹장이였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고려안에선 말이죠ㅡ 최영도 용장이였지만 본인혼자 잘 나거고
이성계는 함경도의 본진에서 동북왕일 정도로 가별초 사병이 든든했습니다

나중에 왕이되고 사병혁파 하면서ㅡ 가별초도 국군에 편입되어
경복궁을 지키는 수비병들 중엔 동북면 가별초 출신들이 많았구요

아들 태종과 한바탕 한것도 이같은 배경이 있어서 가능했던 겁니다

태종이 무사히 계승한뒤엔 , 조선은 선조 까지 별 탈  없이 지냈고ㅡ

안정적이였기에 싸울일이 없으니 그래된거지

오히려 조선처럼 정권이 안정적이였던 나라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Marauder 20-07-02 21:11
   
딱히... 정통성 없으면 국방력 강화시키는 경우가 더많은데요... 무관푸대접은 뭐 고려떄부터 있던 일이고...
mymiky 20-07-02 21:22
   
님 말씀처럼 정권이 불안정 하다면ㅡ
오히려 싸울일이 많으니까 군사를 늘려야지요?

그러나 조선은 정권이 탄탄한 편이였고ㅡ
또, 나라에 큰 전란이 없으니까 그렇게 되었던거예요

문치주의 하고 싶어도
이놈들 저놈들 오면 하고 싶어도 못 하죠ㅡㅡ;;

고려는 문치주의 안 했음?  고려도 엄연히 유교 있고 문벌귀족들 나라였어요
고려 현종 이후 중간에 전쟁없이 안정적으로 백여년 넘게 갔을때요

무반들 대우가 낮은건 고려가 더 했습니다ㅡ 무신란 일어나죠

고려는 과거에 오직 문과만 있었는데ㅡ 조선은 문무과 다 있습니다
고려는 무식한 시정잡배들도 힘쎄면 군인으로 받아주다가
나라가 뒤집어진 적이 있어서

조선은 처음부터 무반직을 신설해 시험과 교양수준도 보고 심사해서 뽑았습니다
고려때 군인들보다 조선쪽 무반이 수준이 올라갔죠ㅡ엄연히 무반 역시 양반입니다

문과 준비하다 안되면  무과로 돌리던가  하는 예도 많았고ㅡ 이순신도 이 케이스
양반 서자들도 문과는 못 해도, 무과 잡과쪽으로 진출한 예는 많습니다

영조때는 영남탕평비 세우고 영남쪽 선비들이 출세길이 막히자 문과 포기하고
대거 무과로 진로를 돌린 예도 있구요

문과는 몇년마다 한번 뽑을때  전국에서 33명만 뽑지만
무과는 몇년마다 뽑는데 인원수는 필요할때마다 달랐습니다
숙종대는 한번 뽑을때 백명씩 뽑기도 했구요

수만명 중에 최종 33명 안에 들어야 합격하는 문과를 못할바에야
뽑는 티오가 문과보다 많고, 합격하면 양반이니까 무과도 많이 쳤습니다
윈도우폰 20-07-02 22:07
   
발전이란 지극히 근대적. 서구적 개념입니다. 조선시대 때는 발전이라고 하는 현재와 같은 개념이 없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조선이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은 지극히 현대적 관점으로 조선시대를 재단하는 것이지요.

님이 생각하는 발전이라는게 어떤건가요? 군사적? 경제적? 기술적? 문치사회에서는 그런게 중요하지 않지요. 종교적인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고...마찬가지로 왜의 무인사회에서도 발전개념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습니다.

공맹사상이 낡았다는 것도 현대적 관점...제 멋에 사는 세상에서 사는게 우리인데...공맹사상이 낡았다면 기독교도 낡은 거고 불교나 회교도 낡은거지요.

100년 남짓되는 자본주의 사상이나 공산주의 사상도 낡은 사상 아닌가요? 아니면 최근 베스트셀러까지 올랐던 존라울의 정의론같은 것이 최신 사상인가요?

발전이나 낡다는 것은 전통적인 우리 개념이 아니지요^^
     
신서로77 20-07-07 01:13
   
생각해보니 그런거 같네요...인류는 게속 발전해 왔지만 고려초나 조선때 생활이 거의 비슷했을거라 생각됩니다 발전은 했지만 느끼지못할 정도로 느렸을것입니다..
쉿뜨 20-07-02 22:19
   
세종 이후 근 100년간 평화시대 였음;

정통성 없으면 칼의 시대임;
이거는 역사시대 이후 동서고금을 막라한 진리이자 역사적인 사실.

유럽쪽은 정통성 없으면 더 심한데 로마시대 이후 정통성 없다고 전쟁한게 한두번이 아님;

로마황제 공인이 안되니까 왕권신수설도 나오는거고...
그렇게 해도 교권이 교황에 있으니 교황이 중간에서 정치질을 한건 교과서에도 다 나오는 이야기.

그럼 유럽은 죄다 망했어야 하고, 미국 신대륙에 정통성이 있나? ㅋㅋㅋ

당연히 평화시대니 무반의 힘이 줄고 문반의 힘이 커짐.
     
신서로77 20-07-07 01:15
   
태종이 피의살육 덕분이죠..자기편 남의편할것없이 다죽이죠.
ItZiMoTal 20-07-02 22:59
   
중국의 개 이씨왕조가 유교로 한민족을 중국의 개로 길들였기 때문...
     
윈도우폰 20-07-02 23:08
   
왜인인가? 이씨왕조라고 하고...'잊지 못할'을 왜어식으로 '이찌모탈'이라 쓰는 이유...어쨌든 똥개가 길들여진 개에게 뭐라고 하는 것 같네
          
ItZiMoTal 20-07-03 00:31
   
님이 토착왜구겠죠.
그렇게 밖에 보지 못하는 것을 보면...
누구는 저걸 '불멸'이라고 보던데...ㅋ
               
윈도우폰 20-07-03 02:47
   
이씨왕조라고 부르는 놈치고 제대로 된 놈이 없는데...이씨왕조라는 용어 자체를 왜놈들이 만들어 붙인 거임...그런 용어로 조선을 비하하는 걸 봐서 상당히 왜에 동조적인 듯 보임...그리고-... 어떻게 ItZiMoTal을 불멸로 보나? 별 시덥지도 않은 소리하고 있네....영어든 한글이든 일어든...그리고 역사든...뭐 하나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르는 듯
                    
ItZiMoTal 20-07-04 00:39
   
중국의 개노릇한 왕조에 '이씨왕조'라고 하는게 무슨 문제?

니가 아는 일본어 '이찌모탈' 무슨 의미가 있는데?
저 닉네임에 처음 반응한 외국인이 한 말이 프랑스인이냐고 묻더라.
너는 저 닉의 의미를 뭐로 이해했길래 일본어라고 단정하는지, 정말 궁금하네.ㅋ
                         
쉿뜨 20-07-04 17:29
   
심한말로 조선을 진짜 중국의 개라고 하고.

그렇게라도 살아 남아 한국말을 쓰고 한국어를 쓸수 있게 되었습니다.

질서에 순응하면 살아 남고, 반항하면 멸할 뿐인데 그 상황에서 반항하고...

지금 우리는 한문을 쓰고 중국어를 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겁니까?
                         
ItZiMoTal 20-07-04 21:47
   
임진왜란때 명과 이씨왕조가 보인 태도는 주인과 개죠.
한반도에서 전쟁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니까
참전하면서 마치 엄청난 선심쓰듯이 모든 전쟁비용을 조선이 부담하게 했죠.

그러면서 명이 왜에 어설프게 수습하면서
두번에 걸쳐서 짓밟히고...

역사를 되돌려보면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는데,
여전히 중국이라면 배까고 누워 꼬리치는 인간들이 있죠.
                         
쉿뜨 20-07-04 22:13
   
??????

그래서 그때부터 일본의 식민지가 되자는 소린가?
                         
ItZiMoTal 20-07-04 22:17
   
중국의 개가 되지 말자는 말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자는 소리로 들리나? 대단하네.ㅋ
                         
쉿뜨 20-07-05 03:00
   
임진왜란사 하나도 모르는게 떠들고 있으니 이야기가 되나 ㅋㅋㅋ
     
mymiky 20-07-02 23:13
   
유교가 중국과 조선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ㅡ 베트남과 일본은?

더욱이 청나라 이후엔ㅡ  조선이 유일한 정통이라고 생각했는데요?

님말씀대로 중국의 개라면 ?  그런 생각 자체가 나올수가 없죠ㅡ
          
ItZiMoTal 20-07-03 00:34
   
유교 자체가 사람을 길들이기 위한 이념입니다.
국가와 국가간에도 서열(주인과 개 차원의...ㅋ)을 따지고...
이것만큼 사람을 개로 만드는 것을 정당화, 합리화하는 이념이 어디 있습니까?

유교로 인해 철저하게 중국의 개가 된 조선과 이씨왕조가 망하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노비와 역겨운 신분제가 폐지될 수 있었죠.
               
mymiky 20-07-03 01:29
   
서열 없는 나라도 있나요?
심지어 아직도 유럽엔 왕 귀족이 있는데요?
지들끼리 왕 공작 후작 백작 따지고 hsh냐 그냥 hh냐?  그거까지 다 따집니다만?
유럽군주  서열중에서 제일 낮은게 모나코입니다ㅡ 프린스밖에 안됨

게다가 조선이 왜 개임?
만주족들에게 머리 빡빡 깍이고 살던것들이 정작 한족들 아님?
저는 이제와서 한푸 입는다고 쌩쇼하는것도 웃기던데요 ㅋ

신분제가 폐지되기 시작한건 19세기 무렵이고
공민권이란 개념 자체가 오래된게 아닙니다

또한,  많은 나라들이 여전히 본토와 식민지 사이엔
엄연히 인종구분과 신분이 있었다는걸 명심해야 합니다

더구나 실질적으론 일본도 일왕과 다이묘들이 화족 시스템 그대로 있었고
정작 조선에선 없어진 신분제가 일제때 다시 생깁니다
왕공족과 조선화족이란 이름만 변해서 말이죠

일본의 신분제 완전폐지는 신적강하 이후로 봐야겠고
한국의 경우 법적으론  제헌국회 때이고, 완전히는 625덕분에 싹 날라갔죠
                    
ItZiMoTal 20-07-04 00:46
   
유교에 쩔은 동아시아처럼 철저한 복종을 강요하는 경우는 없죠.
특히 우리나라는 그 정도가 심해서 몇 살 또는 몇 년 차이나지도 않는데
그 나이와 경험차이로 복종이 강요되죠.
심한 경우는 몇개월 차이에...

그 복종을 강요하는 정도가 선악구도와 같은 구분을 할 정도니...
서양과 동양이 복종을 강요하는 정도가 엄청난 차이가 있는게 아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작은 차이가 긴 역사 속에 엄청난 차이를 낳았다고 봅니다.
                         
mymiky 20-07-04 02:44
   
몇년 차이 어쩌고 저쩌고는 유교랑 상관없어요

오히려 조선시대 사람들은 오늘날처럼
나이차 따지는 문화가 아니였거든요ㅡ

이건 군대의 기수문화에 가깝죠

또한ㅡ 부모님 세대만 해도 학교엔 나이차 나는 사람들과
같이 공부했습니다

근데 주민등록 전산화되고

출생연도 순으로 입학통지서 받고 학교가는게 일상화되자

연도순으로 선후배 구분하게 된거죠

조선시대엔  오히려 친구사이에 나이차 있는게 흔해 빠진 일이였습니다
                         
쉿뜨 20-07-04 17:23
   
아일랜드 폴란드 네덜란드 사람한테 그렇게 이야기 해 보세요.

무슨소리 하는지 ㅋㅋㅋㅋ

소도 웃을 소리를 ㅋㅋㅋㅋ


국제질서는 유교 이상의 질서지  무슨 ㅋㅋㅋ
                         
ItZiMoTal 20-07-04 21:57
   
처음 만난 사이에 나이를 묻는 것이 마치 관습화된 것은 미개함이라고 밖엔...ㅋ
왜 나이가 그렇게 중요한가?
무엇이 옳고 그른지 구분할 판단력에 자신이 없기 때문인가?
아니면 나이로 찍어 누르고 등 쳐 먹으려는 뼈속까지 벤 근성때문인가?
정말 그것이 궁금합니다.ㅋ

중국의 개노릇한 조선 500년으로 유교가 고약하게 발효된 듯...^^;
중국의 개 조선 500년간 유교에 의해
구축된 복종의 피라미드는 한민족을 짓누르는 저주라고 봐야...
kahneman 20-07-02 23:41
   
역사는 우연과 필연의 조합이라는 말이 있지요. 연애와 결혼은 타이밍이란 말이 있고.
조선 왕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지배적인 것 같은데, 사실 왕조 말기에 근대화가 겹쳐서 그런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것 같네요. 거기에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고통받은 트라우마도 작용하는 것 같고, 제국주의가 악의적으로 퍼뜨린 식민사관 탓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대중들의 부정적인 인식과 다르게 조선 왕조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상당히 합리적이고 긍정적인 통치 시스템을 갖춘 왕조였고, 문화적으로도 풍성했던 왕조입니다. 서구 근대 문명 수준에 이르는 합리성은 아니더라도 상당히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통치 체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조선왕조실록같은 문헌이나 경국대전같은 성문법 체계가 확실하게 자리잡은 나라가 별로 없어요. 그리고 신분제라고 해도 과거를 통해 등용된 양인의 비율이 1/4~1/3에 달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후기에 매관매직이 성행했고, 수탈이 심했지만 그것은 왕조 말기의 현상이거든요. 그냥 타이밍의 문제. 그리고 이어진 식민 지배로 인해 부정적인 인식이 강할 뿐이지 사실상 조선 왕조가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볼 왕조는 아니에요.

그리고 문종의 경우 좀 오해가 많은 것 같아서 문종 폐하 홍보 좀 할께요. 사실 문종이 먼치킨에 가까운 분이에요. 정조만큼 외모가 뛰어나고 무예도 출중하면서 다방면에 재주가 많았던 분입니다. 과학기술에 관심도 많고, 실제로 뛰어난 재능까지 갖추신 분입니다. 훌륭한 정책 입안가였고,  백성 구휼에 관심을 많이 쓰신 훌륭한 통치자였고, 집현전을 통해 합리적 공론화 과정을 거쳐서 정책을 만드시는 뛰어난 리더로서의 자질도 갖춘 분이었습니다. 
재위기간이 짧아요. 그런데 우리의 세종대왕님께서 괘기와 여성들을 너무 좋아하셔서 ㅋㅋ 말년에 당뇨로 고생하셨거든요. 그래서 병상에 약 10년간 누워 계셨어요. 그 기간동안 실질적으로 조선을 통치했던 것이 문종입니다. 그리고 재위 2년. 실질적으로 12년을 통치하셨구요. 즉 세종 말기 10년(대리청정 7년 반)은 문종의 통치 기간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에요.

문종의 업적을 대강 나열하면 세종 때 시범 사업이었던 구휼제도 정착. 4군 6진 완비(종서씨가 괜히 단종빠가 아니에요), 화차 직접 설계(이게 과거 로켓포입니다), 화차와 관련된 부대 운용 고안 및 부대 인원 수 결정, 환도 길이 표준화. 전쟁사 편찬 지시, 병법서 편찬 지시(심지어 진법도 만듬), 정말 놀라운 것은 여러분 측우기 아시죠? 측우기 아이디어 제공. ㅋㅋ 우리의 세종대왕님은 직접 하시기보다 시키고 감독 관리에 능하신 갑질 마스터시지만, 문종은 갑질의 희생자(?)였던 비운의 능력자였던 것 뿐입니다. 이른 나이에 요절(사실 39살에 죽어서 이른 나이도 아니었구요)하셨던 것도 과로사 때문이었다는 .. 풍문도 있지만 사실은 종기로 인해 고생하다가 사망했다는 설이 지배적입니다.

그리고 세종 말에 명나라가 오이라트에 대차게 발려서(토목의 변) 조선 전기에는 군사력 증강에 대단히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이 모든 것이 망테크를 타기 시작한 것은 사실 세조 때부터입니다. (단종이야 뭐 ㅋ)

본래 양반이란 말도 사실 관료를 지칭하는 말이에요. 일제 시대 거치면서 사농공상 신분 체제에 대한 고정관념이 자리잡혀서 마치 카스트 제도에 준하는 제도인 것 같은 인식이 있는데 사실이 아닙니다. 체면 문화가 일부 있긴 했지만 양인들의 경우 신분 상승이 충분히 가능했구요. 오히려 함정은 노비들의 숫자가 전체 인구의 30~40%(15c~17c기준)에 달했다는 점입니다. OTL.하지만 어떤 사회든지 피라미드 식 형태의 지배 구조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ㅎㅎ
양반에 대한 인식도 변화해서 현직 관료가 아니라 집안의 문제로 변질되었고, 사실 3대째 관료를 못하면 양반이 아니다 라는 새로운 인식이나 기준도 생겨난 겁니다. 사실 여러분의 상당수는 조상님이 노비였을 겁니다. 라고 해도 놀라지 마세요. 이미 조선 중후기부터 족보의 위조와 족보 팔이가 성행했고, (영정조 때가 피크였다는 농담까지 ㅋ) 오늘날에 와서는 전국민 조상이 모두 양반이 되어 버렸지만, 오늘날 남아있는 족보의 대부분은 위조된 것이니, 유전자 검사 결과 여러분의 조상님과 여러분의 DNA가 다르더라도 당황해 하지 마십시오. 민주 사회에서는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돈은 좀 중요합니다만 ㅋ ^^
     
mymiky 20-07-03 00:43
   
애초에 정확한 조선의 인구수를 알수가 없습니다

근대 통계학이 들어온지 얼마 안됩니다ㅡ
그조차 전산화가 안된 시대로 ㅡ 오늘날같이 근사치를 내긴 어렵습니다

조선의 인구조사는 세금징수와 군역을 위한 것으로

주로 성인남성ㅡ 15세이상~60세 이하 ㅡ 그 세대들을 조사하기 위한겁니다

따라서 해당이 안되는 노인 여자 아이 역시나 노비까지 다 빠져있기에

그 이외의 인구는 항상 추측해서ㅡ 이정도였을 것이다 하는겁니다

정확한 인구통계도 없는데ㅡ 전체인구에 30~40% 노비다??

뭘 근거로요??  노비가 이리 많으면 그 나라는 안 굴러갑니다

역사상 노비가 많았던 때는 조선중기ㅡ 양란으로  가산과 토지를 다 잃고 떠도는
유랑민이 많았던 시대에  ㅡ 여유가 되는 사람 집안에 의탁해서  자기몸으로 때우는
그런 사회분위기가 팽배했던 17세기때 일이지

그게 조선 500년동안 일상적인 일인양 쓰면 곤란합니다

조선후기  기록에 노비는 갈수록 줄어들었고ㅡ  그 이유가 자신의 속량값을 내고
벗어나는 노비들이 생겨났기 때문임

여기서 알수 있는게 조선의 노비는 재산축적이 가능했다는걸 보여주며ㅡ
심지어 땅주인이 노비인 경우도 있습니다

주인과  한집에 같이 사는 사노비보다ㅡ 같이 살지 않는 외노비가  배로 많았습니다

정조때 조정에선
사실상 양인과 다를바 없는데ㅡ 양인으로 다 면천해주고 세금이나 더 걷자고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정조가 죽어서 순조대에 공노비들 먼저 다 풀어주고
양반들  사노비들은  양반들 반발로 못 하다가 그것도 세습제는 사실상 금지시켰고
이후엔 일을 시키되 품삯을 지급하는 일꾼인 머슴이 이때 생깁니다

그리고 갑신정변 1차개혁으로 모든 신분이 공식적으로 없어집니다

일본덕이라 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ㅡ 일본이 조정일에 간섭한건
갑신정변 2차개혁부터임
          
kahneman 20-07-05 00:42
   
1. 조선 500년동안 일상적인 일인양 쓰면 곤란합니다    -> 조선 500년동안 노비가 30~40%에 달했다고 한 적 없는데요.

2. 근대 통계학이 들어온지 얼마 안됩니다 -> 수치의 정확성은 글의 맥락 상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구요. 외국 학자의 논문을 인용한 것 뿐입니다. 맥락을 좀 보시죠. 지배구조 특성 상 하층민이 더 많았다는 것 뿐이고. 심지어 한 번 노비면 평생 노비라고 한 적도 없습니다. 그리고 통계학 자체가 근대에 나온 학문이에요. 통계학을 만든 이가 골턴(우생학은 병맛이지만) 입니다. ㅋ

3. 그리고 농업 기반의 사회에서는 반드시 노예가 아니라고 해도, 노예에 준하는 노동력이 필수적입니다. 조선시대, 특히 천인에게는 소유권과 거주이전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현대에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예를 들면 중국엔 아직도 완전한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습니다. 특히 농민공들 경우 ㅋ

4. 영조가 등극한 해를 떠올려 보시죠. 노비의 비율이 30~40%에 달했다는 말은 외국 학자의 논문을 인용했을 뿐입니다. 물론 이 학자는 조선 시대가 노예 사회라는 취지로 논문을 썼고, 개인적으로 조선시대가 노예 사회였다는 학자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습니다. 주장이 다른 사람의 의견이라도 해당 사람이 조사한 결과를 차용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주장하는 바가 일치해서 다른 사람의 조사를 인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혀 다른 맥락으로 사용되는데 굳이 수치를 문제삼는 이유가 무엇인지. ㅋ

또, 이 30~40%라는 수치는 글의 맥락상 중요한 수치가 아닙니다. 심지어 괄호 안에 15~17세기라는 시기까지 병기를 했습니다. 답변을 달 때는 댓글을 쓴 사람의 의도를 어느 정도 파악한 이후 답변을 달아주시죠.

 중앙집권이 강력하고, 농업 중심 경제인 조선에서 중앙 정치가 어느 순간을 시점으로 개판이 된 탓에 이후 민생이 점차 나빠졌던 상황을 기술한 것 뿐입니다. 자영농이 소작농이 되고 소작농이 노비가 되거나 유랑민이 되는 상황 속에 노비의 비중이 올라갔던 것이고,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시기를 병기했습니다. 글 좀 제대로 보세요.
 
그리고 글의 전체 맥락에 반대를 하지 않고 순수하게 보충을 하실 요량이라면 , 이 부분은 오해를 살 여지가 있으니 보충을 하겠다고 하고 정말 내용을 보충을 해주시던가. 이건 뭐. 보충도 아니고.. 과거 문헌은 불완전한 자료다. 그럼 뭐 .. 30%아니고 80%라고 해도 되는 겁니까? 통계학은 근대에 나왔다. 그게 뭐 어쨌다구요. 그냥 불완전하다 라는 것이지 틀렸다 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보충을 할 것이라면 보충을 해주던가. 뭥미

어느 한 문장이 본인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방의 의도를 곡해하면 .. 난감하죠. 그리고 문제점을 수정하거나 지적할 때는, 왜 그것이 문제인가를 먼저 말을 하고, 이렇게 수정해야 한다고 해야지. 의도도 제대로 밝히지 않고..심지어 불분명함.  이건 뭐 수학에서 결론을 내는 과정에서 완벽한 오류를 발견했다는 듯. .. 제발 좀.

5. 대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죠?  글의 맥락에 동조를 한다는 것인지, 반대를 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풍부한 지식으로 보충 설명을 해주겠다는 것인지..  개별적인 댓글을 쓰시던가.  댓글에 종속되는 답변을 달면서, 댓글에 대한 자신의 입장도 분명히 밝히지 않고 횡설수설하면 어쩌란 말입니까. 대체 하고자 하는 애기가 무엇이요?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가 영화제목인 줄만 알았더니 ㅋ
비좀와라 20-07-03 00:26
   
조선이 유학에 몰빵하기 시작한 시기가 세종 때 입니다.

예를 들면 영락제가 제위를 찬탈하면서 금화학파를 숙청하는데 나중에 정권을 잡고나서 정권을 안정적으로 이어야 하는데 이런 역활을 하는 금화학파 등의 유학자들을 숙청하다 보니 영락제 시기에는 늘 불안정 했죠.

근세조선도 마찮가지라고 보면 됩니다. 세종은 정권의 정통성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용비어천가를 짓고 유학를 장려 하죠.  예를 들면 당시 왕실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한자로 쓰지 못할 정도로 무식쟁이가 많았고 늘상 치고 박고 싸웠다고 하죠. 이걸 세종이 뜯어 고치죠. 이건 맞다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에요.

이런 세종의 문민정책에 의한 왕권의 정통성 확립 정책이 세조로 무너지죠. 그런 세조의 정책이 어떠 했는지 알 수 있는 것죠. 우리가 알고 있는 오랑캐의 어원이 되는 울량합이 세조때 무너 집니다. 세조 때 군사력은 상당히 강한 편 이었습니다.

성종 때 왕권의 정통성을 강화 하다가 연산군 때 무너지고 중종 때 어느 정도 확립 되지만 선조시기는 왕권의 정통성이 많이 약한 상태 였습니다. 선조는 늘 상 왕권의 정통성 때문에 고통을 받아서 정통성 있는 중전의 아들을 왕으로 세울려고 했으나 실패했고 광해군이 집권하지만 광해군 역시 정통성에 문제가 있게 되지요.

결국은 숙종 시기에 이르러 절대왕권이 완성 되는 것 입니다. 숙종은 아무 하자 없는 조선시기에 예가 없는 임금으로 송시열 등을 숙청 할 수 있을 정도의 절대권력의 임금 이었죠. 영조 시기는 또 정통성 시비가 일고 영조의 뻘짓으로 사도세자를 죽임으로써 정조가 곤란을 겪고 결국은 왕실의 쇠약으로 망하는 것 입니다.
     
mymiky 20-07-03 00:59
   
애초에 조선이란 나라 자체가 신진사대부들의 사상적 기반으로 세워진 나라입니다
뭔ㅡ 세종때부터인지??

태종 본인부터가 과거  합격생 출신인데??
더욱이 용비어천가가 무슨 정통성문제 때문에 지었습니까?? ㅡㅡ;;  황당

그 시절에 정통성 문제 운운하는 놈 있음 모가지가 썰였어요ㅡㅡ 감히 누가
정통성에 문제있다 하던가요?? 

세종은 태종의 적자에다 양녕이 패륜아로 골치앍다가 아주 갈아버리고
태종이 정당히 세운 후계자가 세종인데?? 

왕실사람들이 자기이름도 못 쓸 정도로 무식했다니ㅡ 이건 대체 무슨 소스로 나온건지 모르겠네요;;;; 

세조가 단종을 내쫒고 지가 같은건 맞는데ㅡ 서슬이 퍼래서 감히
세조 앞에서 정통성 운운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육신이 특이했을뿐ㅡ 대세가 세조였고ㅡ 심지어 종실어른들 다수는
세조편이였습니다 심지어 종실 최고어른인 양녕부터가 세조 편이였어요ㅡ

김종서 칠때는 단종누이인 경혜공주마저 세조를 지지했다는걸
잘 모르더라구요;; 

김종서나 사육신이 추숭된건 수백년 뒤에 숙종때쯤 가야하는거고ㅡ 당시엔 그랬음

연산군은 지 발로 걷어찬거라고 봐야하고ㅡ

선조때는 방계다보니 좀 그랬던건 맞지만ㅡ 지 능력으로 채운 왕이고
          
mymiky 20-07-03 01:13
   
영조의 정통성 시비는 순전히 남인들이 꼬장을 피운거죠ㅡ

숙종아들 3명중 어른까지 생존한 왕자가 경종과 영조밖에 없는데
경종도 후계가 없고ㅡ 영조가 유일하죠

영조는 경종때부터 차기대권자로써 왕세제였습니다!  그걸 잊지마세요ㅡ

근데 경종이 독살당했다는 이상한 소문이 나서 그랬지

이미 영조가 후계자로써 다들 인정받고 있었는데 말입니다ㅡ

그리고 사도세자는 정신병이 있어서 왕이 됐다면 큰일날 사람이였어요;;
그러니 손자 한테 계승해야 된다고 생각해서 냉정하게 제거해 버렸죠

정조는  그걸로 곤란하진 않았습니다ㅡ 오히려 정통성으론 효장세자 밑에 입적이 되었으니까 정통성은 더 탄탄해졌습니다!

드라마에서야 재미를 위해 픽션이 있는거지ㅡ 드라마는 드라마일뿐이구요

순조는 정조의 유일한 외동아들이라 정통성 문제는 없었는데

왕으로써 의욕이 없어서 아들이나 신료들에게 맡기느라 나라가 기울어갔죠

본인은 왕되길 싫어한 사람 같습니다ㅡㅡ;;  그담은 헌종은 너무 어린나이에 왕되고 또 요절해버렸고ㅡ 철종은 농사짓다와서 뭘 잘 몰랐구요

이미 이때는 순조때부터 외척들에게 의지하다가 차츰 국정농단이 와서
나라가 개판오분전 상황이였구요

흥선대원군이 개혁을 했으나ㅡ 대내외적으로 시대가 급격하게 변해가던 중이였고
고종은 혼란스러운 시대에 처세와 행보를 왔다갔다 하느라 정치불안정이
가중되었습니다
뭐꼬이떡밥 20-07-03 09:41
   
정통성이 약한게 아니라
자기들 출신이 역성혁명이니까 (말이 좋아 역성혁명이지)
또 다른 역성혁명을 두려워 한 것이죠(유교에 있는 말인데 왜 이건 또 그렇게 싫어해?)
내로남불이라고
그러니까 국방력이 약할수 밖에 없습니다

세종때 뭐시기 하는데 그때는 태평성대였으니까 왕권이 흔들릴 이유가 없고
태평성대와 겹치니 그 뒤로는 이래저래 국방력에 소홀이 할수 밖에요.

그리고 선조때 호되게 당했으니 이때 역성혁명이 일어나도 지극히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래서 속좁은 열등감에 열심히 왜란의 공신들을 죽이셨죠.

그래서 오랑케에게 한번 더 치욕스럽게 당하시지만.
당사자 입장에서야 혹시모를 역성혁명으로 죽는것 보다 전란이 백배 천배 낫지 않겠습니까. 

두번의 큰 난으로 국가의 기운이 쇄하고 여타 왕조의 말처럼 슬슬 단명하다 끝난것이죠.
     
mymiky 20-07-03 14:17
   
왜 선조때 역성혁명론이 지극히 당연하단  것인지 모르겠네요?

그보다 더했던 고려도 거란족 침입때도 안 망했고
몽골족 침입때도 안 망했고
무신란 백년의 무신정권 속에서도 존속했고
전국에 왜구들이 들끓었는데도 가늘게 길게 쭉ㅡ 갔는데 말입니다

고려도 망할듯 안 망하는데ㅡ 고려보다 더
중앙집권이 확립된 조선이 왜란크리로 한번에 망해야 한다니??

이말은 즉, 왜란을 맞고도 조선이 건재할 정도로
그리 호락호락 하진 않았다는 뜻도 됩니다

일단, 선조는 폭군과는 거리가 멀고요
전쟁 와중에도 조정을 꽉 잡고 있었습니다
조선의 행정 시스템도 계속 돌아가고 있었구요
전란의 와중에도 행정의 마비없이
장계도 꼬박꼬박 올라왔고ㅡ 어명도 하달되었습니다

근데 대중들이 잘못 아는게 선조는 왜란 공신들을 안 죽였습니다ㅡㅡ;;

아마 이건 이몽학의 난에 엮였다가 옥사한
김덕령 때문에 이같은 이미지가 생긴듯한데요ㅡ

김덕령은 왜란때 부모상을 당해 나가 싸우지 못해서 전공이랄게 딱히 없어요ㅡ
휴전중에 의병들을 모으긴 했지만 별다른 활동은 없었음

이몽학과 내통했단 말이 있어서ㅡ데려와 국문중에 옥사했는데
그게 선조가 의병장을 탄압했다고 전해진 겁니다
          
mymiky 20-07-03 14:48
   
김덕령이 딱히 전공은 없었지만ㅡ 이몽학의 난에 별다른 혐의도 못 찾았고
(이몽학이 당시 친한사람들 이름을 다 불었던 것으로 추측됨)

전란의 소강 상태라지만 일단 의병들을 모은 공 자체는 인정되어서,
선조가 비석에 충신이라 써도 된다 허락하고, 가족들에게 시체를 인계한게
ㅡ 김덕령 사건이고

이게 대중들에게 뭔가 잘못 알려져서
선조가 막 의병장들 죽였던걸로 오해하는 사람들 많음ㅡㅡ;;

정인홍, 권응수 ,이정암 ,정문부 등 다 의병장 출신들이고
왜란뒤 전공을 인정받아
고위관직 받고 잘 나갔던 사람들도 여럿 있습니다

특히, 정인홍은 훗날 광해군시절 북인파 수장이 된 사람으로
남명 조식의 수제자로 유명하죠ㅡ

또한 양란이후 나라가 어려웠던건 맞죠ㅡ 

그러나  인조가 광해군보단 전후복후  면에선 나름 공적이 있는 왕이고
효종무렵엔 차차 전후복후 작업 마무리 되구요

그후, 단명하다 끝나긴 커녕 , 그 뒤로 200여년 더 존속했는데요?
조선후기에 부흥기인 숙영조 시대를 애써 무시하시는 이유는 뭔지? 모르겠네요ㅡ
호갱 20-07-03 13:20
   
유교사상이 기본이되니깐
다같이 잘먹고 잘살자라는 기본 토대가 있는거임
모든게 장단점이 있는것
서양처럼 계몽주의나 과학기술발전과 산업혁명을 말한거라면 외부충격이 없어서그럼
일본이랑 비교하는거라면 기존 기득권이 부양세력보다 능력이나 입지가 더 좋았던것
     
신서로77 20-07-07 01:39
   
네 외부충격이 없었죠...한마디로 갈라파고스화 된거죠...
점퍼 20-07-03 14:48
   
거시적으로 보면 환경의 압력은 문명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제가 조선의 발전이 유교때문에 저하된 것이 아니라고 한 이유는 이런 거시적인 환경에서 인간의 삶이 자유롭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강조 한 것이었습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만일 임진왜란으로 일본이 도공을 납치해 도자기 생산을 하는 일이 없었고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설 혼란기에 도자기를 구하던 서구의 상인들이 조선의 백자를 대체품으로 선택 했다면 어땠을까요?
당시에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베트남도 있었긴 하지만... 많은 역사가 바뀌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인물, 어떤 사건이 역사를 바꾸기도 하지만 모든일이 계획대로 발생하고 진행하지는 않습니다. 운과 운명이랄 수 있는 수많은 변수가 발생하고 환경은 거시적인 역사를 조종합니다.
인류가 가장 먼저 발생한 아프리카는 이집트라는 위대한 문명을 일구었음에도 쇠퇴를 하고 그리스와 로마 중국에 문명의 패권을 넘겨줍니다.
인류 최초의 문명이라는 수메르는 어디선가 검은머리 외국인이 문자와 법율을 가지고 도래했다고 합니다.
동유럽에는 신석기 시대의 거대 유적이 발굴되기도 하고
어떤 중국학자는 서해바다가 8천년전까지 육지였다는 지구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황해문명론을 설파 하기도 합니다.
글로 남겨지지 않은 역사도 많고 아마도 우리가 모든 것을 알게 되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겁니다.
한반도의 조상들은 우리에게 많은 물질적 부를 안겨주지 못했지만 수 많은 무형의 자산을 남겨주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또한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요.
     
뭐꼬이떡밥 20-07-03 17:01
   
그당시 조선으로 오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교역을 합니까?
서구사회에서 지구상 가장 늦게 알려진 나라가 호주도 아니고 아메리카도 아니고 조선입니다

조선이 가장 마지막에 서구사회에 알려졌습니다
그러니 그런 상정은 맞지 않습니다
          
쉿뜨 20-07-03 17:11
   
만약에 도공이 일본으로 안끌려 갔고, 일본에서 도자기기 만들 기술이 없었다면, 서양 상인들이 도자기를 구하기 위해 조선으로 왔을거라는 이야깁니다.

그리고 조선은 이미 예전에 알려졌습니다.

직접 온게 아주 늦게 찾아왔을 뿐이지 ㅡ.,ㅡ
          
신서로77 20-07-07 01:50
   
그건 아니죠 고려때 아라비아상인과 교역했고 교황청에서 정식사신도 왔던기록이 있습니다..그때 금속활자가 서양으로 전파된것 이고요..이를 연구한 유럽학자들도 인정하는 부분입니다...다큐 직지를 보시면 자세히 나옵니다 이런 문화충격이 지금이 서양을 만든것입니다..다시 우리는 현대의 서양의 문화를 받아 지금의 이른것입니다..돌고도는것이지요...
     
kahneman 20-07-05 01:57
   
제가 님의 이전 글에 대해 위화감이 너무 강하게 들어서 비판을 좀 했는데 개인적으로 악감정은 없습니다만. 한번 더 말씀을 드리죠. 님은 역사를 논하신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패권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것도 현재의 패권이 아니라 과거의 패권. 패권을 논하시려면 차라리 현대, 그리고 지금을 이야기해야죠. 굳이 과거를 왜 꺼내죠? 그리고 역사에 정말 관심이 있긴 하십니까? 정말 큰 착각을 하고 계신 것 같은데. 님은 패권다툼에 흥미를 느끼는 것 뿐이에요. 심지어 문명. 패권 이야기하면서 80년대 비판받았던 서구의 '오리엔탈리즘' 인식까지. 그럴 필요 없다니까요. 국력이 과거에 약했으면 어때요? 이미 지나간 과거, 심지어 과거의 패권에 왜 그렇게 집착을 하시는지.
 
과거 위대했던 선조들의 영광. 어느 나라나 은연중에 그런 것을 강조하지만. 특히 유독 강조하는 나라가 터키, 몽골. 중국, 일본같은 나라입니다. 한마디로 현재 문제가 많을 때. 과거 이야기 끄집어 내고, 과거의 영광을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는 겁니다. 국내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리거나, 아니면 지역 패권을 노리거나. 한마디로 그냥 정치적 프로퍼겐더인데 참.
 한마디로 과거에 그랬으니 우리는 자격있다. 이거 우생학과 뭐가 다릅니까? 이스라엘 병맛 선민 사상이나 나찌 위대한 게르만 민족. 파시스트들이 제일 좋아하는 떡밥인데 참. 이걸 물고 그리고 계속 집착하고 있으니. 현대에 이런 짓하면 웃기는 짬뽕이란 소리만 들음.
아니 현대 이미 국력 측정하는 틀이 다 있고, 현대에 이미 국력 측정함. 과거를 돌아보면서 현대를 배운다. 그것도 앵커링임. 현대도 아니고 과거의 국력, 지나간 영광, 찬란한 문명..심지어 오리엔탈리즘은 왜 또.. 
 
그리고 도자기는 왜.. 그거 미시사입니다. 거시 미시 구분 좀. 커피와 설탕의 역사같은 것임. 미시사나 문화사 소재를 가지고 뭔..거시적 관점 전혀 없음. 거시는 그런 하나하나 개별적 요소를 모두 통합해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리고 역사를 논하면서.. 선사 타령은 참.  역사와 고고사는 달라요. 문자의 발명 이전과 이후. 심지어 그때 그 동네 살던 애들과 지금 사는 애들 아무런 관련 없음. 그 지역 선사 시대는 그 지역에 살던 공룡이 만든 문명이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임. 지금 그 동네 사는 애들이랑 아무 관련 없음. 관광 사업 벌이기에나 좋지. 고고사와 구분 좀.

그리고 정말 국력 좋아해서 하나 힌트를 주자면 한반도는 기본적으로 농업에 적합한 나라가 아님. 화강암이 주라 토질 구린 것으로 세계에서도 손 꼽히는 나라임. 우리 농산물. 우리 것이 좋아 . 그냥 국내 농업 보호를 위한 마케팅임. ㅋ
ItZiMoTal 20-07-04 00:58
   
유교는 동아시아인들의 의식의 진화에 족쇄를 채운 이념이라고 봅니다.
집권세력과 기득권세력, 기성세대에 무조건 복종을 강요하는 것을 정당화, 합리화시켰죠.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을 설득하려는 노력하고 비전을 제시해 이끌려 노력할 필요성을 느낄 필요가 없는 체제...
그런 영향은 유교권이 아닌 다른 아시아권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듯...
구르미그린 20-07-04 01:18
   
조선은 이전 시대보다 발전했습니다.
유럽, 중국, 일본이 더 많이 발전해 조선이 못 한 것처럼 보이는데, 17 18세기 조선 인구는 8, 9위 정도였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by_population_in_1700
산업혁명 이전에 국력이 인구에 비례했음을 감안하면
만약 당시에 국력 순위를 매기는 기관이 있었다면, 조선 순위는 지금 한국보다 그리 낮지 않았을 겁니다.

조선은 지금으로 치면 브라질처럼 인구는 많고 질적으로는 뒤쳐지는 나라였습니다.
지금 한국은 세계 인구에서 비중이 많이 줄어든 대신, 질적으로는 올라갔습니다.
구르미그린 20-07-04 01:19
   
지금 한국이 조선시대, 90년대 한국보다 훨씬 발전했으니
"이제 미국 영향력에서 벗어나 중국 일본에 맞설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네티즌이 많은데
문제는 한국이 발전하고 강해진 것 못지않게, 중국 일본도 발전하고 강해졌다는 겁니다.
구르미그린 20-07-04 01:21
   
더 정확한 질문은 "조선이 발전하는 동안 유럽, 일본이 더 많이 발전한 이유는 뭘까?"이고

지금 현실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는 "왜 조선이 발전하지 못했을까?"보다도 "왜 세계 GDP에서 한국 비중이 1996년 이후 제자리걸음했을까?" 입니다.

이 질문의 답이 한국 청년세대가 세계서 가장 애를 안 낳는 이유와도 직결됩니다.
지난 10여년간 저출산 고령화, 선진국 담론, 한국 VS 일본 비교 떡밥으로 수많은 글이 올라왔지만,
이 질문을 신경쓰는 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15~64세 인구가 정점에 도달하기 직전 20년간 세계 GDP에서 비중은 중국 일본이 5배, 2배 이상 증가한 반면 한국만 제자리걸음했습니다.
     
쉿뜨 20-07-04 13:05
   
먼헛소리지 일본이 제자리 걸음한지 20년인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중국이야 꾸준히 성장세니 세계 GDP 비중이 올라간다 치고, 일본이 2배 이상 증가했다고요?

오히려 마이너스가 아니라?

한국이 세계GDP 비중에서 제자리 걸음 하는지는 찾아봐야겠지만, 종합적인 덩치에서 비중이 줄어드는간 당연한 일이지요.

유럽 강소국은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될것 같음? 스웨덴, 룩셈부르크, 벨기에 이런 나라들이 브라질, 중국 보다 5배 잘살지만 브라질, 중국 보다 세계 GDP 비중이 높을수가 있나 ㅋㅋㅋㅋ
구르미그린 20-07-04 01:22
   
대다수 네티즌 기대 수준에 맞게 한국 국력이 크려면 빨리 IMF 벗어나 다시 상승궤도에 올랐어야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정부가 정말 중요한 시기였는데, 그때 정책 방향을 잘못 잡고 이후 정부가 계속 그쪽으로 쭉 가는 탓에 저성장 + 양극화 + 저출산이 날로 심해지는 중입니다.

10여년간 주식으로 손실이 누적 중이라면, 그동안 뭘 잘못 했는지 반성하고 그것을 토대로 주식공부를 새로 하든, 주식 외의 길을 택하든 하는 게 순리이듯
한국인이라면 최근 20년, 30년간 정책을 제로베이스에서부터 되돌아보고, 정책 방향 바꿀 생각해야 합니다.

조선은 영토 확장하고 20세기 초까지 독립 유지해 민족정체성과 고유문화를 지켰는데
한국이 지금 정책 방향대로 쭉 가면 영구분단돼 영토가 조선의 절반 미만으로 고정되고, 한국인은 이주민에 밀려 아메리칸 원주민과 같은 포지션이 됩니다.
     
쉿뜨 20-07-04 13:30
   
IMF이후에

아니 IMF체제에서 급속하게 탈출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문제점은 있었죠.

하지만 당시 세계는 신자유주의 시대 광풍이 불어닥치던 시대. 죽이되던 밥이되던 그 막차에 탈수밖에 없었고...

지금도 레드컴플렉스가 사회에 만연한데, 레디컬리즘 그러니까 급진화하면 국민들이 받아들이겠습니까?

정치는 모험을 하는게 아니에요. 그렇게 급진화하면 부작용 또한 반듯이 발생하고 국민들이 그 부작용을 정통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노무현의 경제정책이 상당히 보수화되었던건 사실이지만, 그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수출 중심 정책 아니었으면 그야말로 고립되어 침체 왔을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내수가 이후 정권보다 훨씬 좋았고, 한국산이 세계에서 경쟁력을 뿜뿜하게 해준 시기도 그 시대 입니다.

양극화 해결하려면 비정규직 없애야 없애야 하고, 산단별 노조, 복지의 유럽수준 대대적인 확대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도 어려운 일을 그 당시에?

글로 끄적이고, 떠들어 대는건 겁나 쉽죠.


마지막 문단은 황당하기 그지 없지만, 해석하자면 유럽인들은 아메리칸 원주민과 같은 포지션이군요.
신서로77 20-07-07 01:59
   
역사가 증명하는 가장 중요한법칙은 성벽을쌓고 장벽을쌓고 걸어잠그면 어디든 망한다 입니다...
     
구름위하늘 20-07-07 11:35
   
발전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씀인 것 같은데,
성벽/장벽 쌓고 걸어잠그는 것은 대부분의 나라가 하는 것입니다.

비유는 사람이 밥을 먹으면 누구든 죽는다와 같이 들립니다.
변화는 밖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안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강대국이라도 한계 이상 확장되면 멈출 수 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한계 이상으로 확장하는 그 자체가 망하는 원인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신서로77 20-07-07 23:32
   
그래서 망한겁니다...흥망성쇠를보면 그끝은 잠궈서 망하는게 대부분이죠..
               
구름위하늘 20-07-08 13:40
   
결과가 원인이라는 논리입니다.
간단하게 역질문 해보죠.

일본제국이 망한게 잠궈서 망한 것인가요?
독일제국이 1차/2차 세계대전에서 망한 것도 잠궈서 망한 것이고요?

어떠한 체제이든 그 것이 운용되기 위한 최소한의 영역과 최대한의 영역이 동적으로 변합니다.
그 한계를 벗어나서 님이 좋아하는 말로 잠궈지면... 망하는 것이고
그 한계를 벗어나서 님이 좋아하는 말로 성장하면... 역시 망하는 것입니다.

복잡계의 생존은 수렴과 발산의 두가지 극한 사이에 있습니다.
님은 수렴만이 멸망의 근원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고,
발산이 멸망의 근원이 되는 경우는 무시하고 있는거죠.
                    
신서로77 20-07-14 00:19
   
망하는 원인이 전부 하나라고 한적이 없는데요...내가  한말은 고립이고 걸어잠근다는건 스스로 고립시키는걸 말한겁니다..뭘 어렵게 쓰시나요 결과가 원인이되는건 아주 상식입니다 귀납법이요..가장 흔이 쓰이는 논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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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5 [한국사] 영남과 호남을 삼킨 임나일본부설 (2) 스리랑 07-28 885
19124 [한국사] 윤내현, 사료로 보는 우리 고대사, 2017 (10) 엄근진 07-28 803
19123 [한국사] 고조선:적狄(오랑캐)은 적翟(새 깃털)이니 조우관鳥… 수구리 07-27 725
19122 [한국사] 진개전쟁이후 국경선의 변화(윤내현 설) 지누짱 07-27 747
19121 [한국사] 稍役屬真番 이하 해석에 대해서 (6) 감방친구 07-27 759
19120 [한국사] 소위 진개전쟁(윤내현 설) (8) 지누짱 07-27 780
19119 [한국사] 수구리님 참조부탁드려요 (19) 지누짱 07-27 724
19118 [한국사] 요수(遼水)는 지금의 요하(遼河)가 아니며 요동군은 … (2) 수구리 07-27 784
19117 [한국사] 고조선 영토와 춘추시대 지도로 알아보는 주나라 영… (16) 수구리 07-26 983
19116 [한국사] 부여족은 원래 어디에서 온 것인가(3) (6) 독산 07-26 855
19115 [한국사] 부여족은 원래 어디에서 온 것인가(2) (2) 독산 07-26 677
19114 [한국사] 부여족은 원래 어디에서 온 것인가(1) (3) 독산 07-26 978
19113 [한국사] 우리 고대사의 주 활동영역을 연산 이남에서 찾는 사… (8) 감방친구 07-26 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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