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으로 히미코 여왕, 선덕여왕, 측천무후 순으로 집권함
선덕여왕
선덕은 천성이 맑고 지혜로웠다.
당 나라 태종이 붉은색∙자주색∙흰색의 세 가지 색깔로 된 모란 그림과 그 씨앗을 석 되 보내주었다.
선덕이 그림을 보더니, 꽃에 향기가 없을 것이라 했고, 뜰에 씨앗을 심어 꽃이 피고 열매 맺기까지 기다리자 과연 그 말과 같았다.
옥문지 사건. 영묘사(靈廟寺)의 옥문지에서 겨울인데 한 떼의 개구리들이 모여 사나흘 동안 우는 것이었다. 나라 사람들이 괴상스레 여겨 왕에게 여쭈었다.
왕은 급히 각간 알천(閼川)과 필탄(弼呑) 등에게, “잘 훈련받은 병사 2천 명을 뽑아, 빨리 서쪽 교외로 가라.
여근곡(女根谷)을 물어, 거기 반드시 적병이 있을 것이니, 잡아 죽여라.”라고 명령하였다.
과연 여근곡이 있고, 백제 병사 5백 명이 거기 와서 숨어 있었다. 모두 잡아 죽였다. 이 또한 [삼국사기]에서 선덕왕 5년(636년)의 일로 기록되었다.
측천무후
당나라 전성시대 중국 최초의 여황제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키는데 한몫함, 그러나 대조영의 발해 건국을 막지 못함
히미코 여왕
당시 소국들 간의 갈등을 수습하고 중국 및 한반도와 친선관계를 맺었다고 전해진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에는 히미코가 173년에
신라에 사자(使者)를 보내고 교제를 요구하는 등 외교활동에 노력을 기울였던 기록이 남아있다.
또한 히미코는 239년 중국 위나라 황제인 조예(曹叡, 명제)에게 사신을 파견하여 조공을 바쳤다.
이로써 야마타이국은 위나라의 신하 국가(臣國)가 되어 친위왜왕(親魏倭王)의 칭호를 받고 금도장, 구리거울, 검 등을 하사품으로 받았다.
당시 일본 본토에서 여러 소국들이 난립하는 가운데 히미코는 이러한 활동을 통하여 야마타이국의 국제적 지위를 높여 일본의 종주권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였다.
여러분들은 누가 최고의 여자 집권자라 생각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