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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5-29 15:48
[북한] 여순사건과제주4,3사건등.이승만은왜학살을명령했 06편
 글쓴이 : 돌통
조회 : 700  

05편에 이어서~~      마지막편..

 

 

***  이승만, " 아이까지도 철저히 발본색원하라. " 

 

 

진압군은 곧 부역자들을 색출했다.   이때 여수시민들은 대부분 좌익 혐의로 거리로 내몰렸다.

 

당시 이승만은 이렇게 말했다.

 

늙은 삐돌이 이승만 : " 남녀 아동까지 철저히 조사해서 불순분자를 제거하세요.   일벌백계하여 모든 국민이 절대 복종해서 다시는 이런 비행이 없도록 하세요. "

 

때문에 부역자 색출 작업이 시작됐고  대부분 시민들이 빨갱이로 몰아부쳐진 것이다.

나이 어린 여학생들이 부역을 했다는 죄로 끌려가 사살되었고

한 소녀는 검정고무신과 흰치마를 입었다고 해서 무차별 총격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진압군에게는 대통령 각하의 명령에 따른다는 사명감만 있었을뿐,  죄책감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 미군사고문단의 보고서는 이렇다.

 

( 진압군은 목표도 없이 총을 쏴댔다   무방비 상태의 여수를 유린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인것 같다   (미군사고문단 보고서) )

 

" 진압군의 목표는 여수를 철저히 짓밟는 것이었다.

아무 이유없이 총을 쏘고 아무 이유없이 집을 태웠다. "

 

그렇게 진압군은 여수시민 4만명을 붙잡아 인근 초등학교에 분산 수용했고  머리가 짧은 사람  인민위원회에서 나눠준 고무신을 신은 사람

경찰이나 우익 인사들이 좌익 용의자라고 지목한 사람들을 부역자로 지목해  교사 뒷편에서 즉결 총살했다.

 

정식 재판이 아닌 외모나 고발 , 고문에 의한 자백을 근거삼아 처형된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김종원 대위의 행각은 꽤나 엽기적이었다.

그는 칼빈 총으로 쏘다가, 어떨 때는 권총으로 쏘다가  그것도 맘에 안들자 일본도를 휘두르며 즉결 참수했다.

 

당시 미군보고서에는 ' 짐승같은 인간 '  으로 특별 보고되기도 했다.

 

그렇게 여순사건의 희생자는 총 사망 , 행방불명 , 7천여 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하지만 반란군 세력들의 대부분은 지리산으로 모여들어 빨치산 아지트를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에  11월에는 이들을 겨냥한 계엄령이 전라도 전역으로 확대되고    이로써 지리산을 피로 물들이게 되는 빨치산의 오랜 투쟁이 시작된다.

 

결국 여순 반란군 진압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  숙군운동과 박정희   

 

여순 사건이 진압되자

군부 내 빨갱이들을 소탕해야한다는 ' 숙군 '  이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때 숙군 과정은 아주 간단했다.

좌익 가담의 혐의만 있으면 무조건 사형이었다.

아침에 60~70명씩 재판하고 오후에 총살하는 식이었다.

탄환이 모자라면 죽창으로 찔러죽였다.

 

늙은 삐돌이 이승만 : " 한 달 안으로 빨갱이들을 다 재판해서 포살하라.   그게 다 끝나면 계엄령을 해제하겠다. "

 

그런 바람에 하루에도 몇 백명씩 재판이 이루어졌다.

 

그렇게 숙군작업으로 죽은 군인들 숫자만 총 4,700 여 명이었다.

숙군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좌익 혐의보다는 , 군 내부에 뿌리박힌 남로당 조직체계를 발본색원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때 등장한 사람이 바로 박정희 소령이다.

당시 박정희는 여순진압으로 파견된 정부군에서 작전 참모본부의 정보장교로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남로당에서 군사 총책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그의 이중신분은 들통나고 만다.

 

당시 박정희에 대한 재판기록은 이렇다.

1. 1945년에 남로당에 가입해 군부 내 비밀조직을 심었고

2. " 군대에 비밀 세포를 조직하여 무력으로 반란을 기도했다. "

 

그러나 박정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보존했다.

왜 그랬을까 ?

 

훗날의 증언은 이렇다.

 

백선엽 :   " 당시 군부 내 남로당의 전모를 몰랐다.

그런데 박정희를 조사함으로써 전모의 일부가 드러났다. "

 

김점곤 : " 박정희가 군대 조직체계를 제공했다.  사람 이름을

전부 적는 것보다 더 중요한게 조직체계인데..   박정희의 진술로

처음으로 조직체계를 알게됐다. "

 

즉 ,   박정희는 군부 내에서 활동하고 있던 남로당 프락치와 그 조직체계를 밀고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남로당 프락치들은 박정희의 동료였다.

목숨을 위해 동료들을 밀고한 것이었다.

 

프락치가 뭐잉 ?

 

' 신분을 속이고 어떤 조직에 몰래 들어가 활동하는 사람.

쉽게 말해서 , 첩자. " 

 

이런 공로로 백선엽은 이승만에게 간청했다.

 

백선엽 : " 박정희가 알려준 정보가 꽤나 유용했습니다.

이 사람의 사형은 막아줬으면.. "

 

그리하여 48년 11월에 검거되지만 , 49년 5월에 불명예 파면되고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다시 군장교로서 복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  여순사건의 결과 :  여순사건의 주요한 원인은 분단에 있었다.

당시 분단에 대한 국민들의 감정은 어땠을까 ?

 

' 우리의 소원은 통일 '    이 노래가 만들어진 시기가 1947년이었다는

것만 생각해봐도 실감이 나지 않은가 !

 

하지만 반란은 , 오히려 분단의 벽을 더 높이 쌓는 구실만 하고 말았으니 ,

이승만 정권에게는 오히려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일련의 사건들을 구실로 , 반공체제를 강화하고 정적 제거와 집권 명분으로 삼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빨갱이들은 다 무조건 죽여라..)

 

사건 수습 이후 , 이런 조치들이 있었다.

 

늙은 삐돌이 이승만 : " 빨갱이들은 공포정치로 다스려야 하니 국가보안법을 제정하라. " ( 1948년 12월 )

 

하지만 국보법은 반공을 구실로 독재권력을 강화시키는 수단으로 주로 사용된다.

 

늙은 삐돌이 이승만 : " 여순사건에 학생들이 가담했다는 사실에 놀랬삼.   앞으로 학생들은 학도호국단에 가입하여 투철한 반공정신을 배우도록 ! "    ( 1949년 2월 )

 

하지만 학도호국단은 정부가 학원을 통제하고 관변조직으로 동원하는데

주로 이용된다.

또 숙군을 완료하여 군 내 권력을 다잡게 되었다.  (1949년 7월 )

 

이렇듯 이승만은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을 오히려 권력의 강화수단으로 철저히 이용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학자들의 견해는 이렇다.

 

서 씨 학자. : " 여순사건과 같은 국가적인 사건이 발발했을 때

그야말로 공명정대하게 처리했어야했는데..   이승만 정권은 정치적으로

악용하려고 한 측면이 강했다. "

 

또 다른 대학자 : " 이승만 정권은 독재체제를 강화하고 , 군대 내 저항세력을 색출하기 위한 합법적인 방안으로 여순사건을 이용했다. " 

 

 

이상..      끝.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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