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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5-19 13:01
[북한] 북한은 소련의 '꼬봉'이 아니었다.
 글쓴이 : 돌통
조회 : 892  

소련 몰락 뒤 러시아 내부 자료 활용
해방 이후부터 북한 정부 수립 시기
소련과 북한 관계 치밀하게 되살려
양국을 ‘공동주체’로 보는 관점 제시

 

 

북한 국가의 형성과 소련과의 관련..
 

 

1991년 소련의 붕괴는 역설적이게도 역사학자들에겐 축복과 같은 사건이었다. 러시아 정부는 탈소비에트 정책의 하나로 각 문서보관소에서 소장한 소비에트 시대 문서들을 공개했다. 오랫동안 비밀 속에 묻혀 있던 한반도 관련 문서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남북 현대사 연구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서 **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당시 대학 시절 참여했던 학생운동의 영향으로 북한을 제대로 알고 싶다는 뜻을 품고 있었다. 마침 한소 수교(1990년)가 이뤄졌다.

 

북한을 연구하기 위해선 자료를 접하기조차 어려운 한국보다는 북한과 동맹이었던 러시아에서 공부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1991년부터 러시아연방과학원 동방학연구소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연구의 주된 부분은 여러 문서보관소를 다니며 자료들을 수집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사실을 확인해주는 자료들을 발견할 때마다 “고고학자가 새로운 유물함을 열어보고 느꼈을” 가슴 뛰는 설렘을 체험했다.

 

그렇게 시작된 * 교수의 북한과 소련 관계사 연구는 이제 30년에 가까울 정도로 쌓여왔다. 그가 최근에 출간한 <북한 *** **과 소련>에는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 등 그동안 연구의 정수가 담겨 있다.

 

그는 이 책에서 해방 이후부터 북한 정부 수립과 소련군 철수까지 약 3년의 기간 동안 소련과 북한이 어떤 관계를 맺으며 국가를 형성해갔는지 그 본모습을 세심하게 복원해낸다.

 

 

 

 

김일성 북한 주석은 1945년 10월14일 평양 공설운동장에서 열린 평양시 민중대회에서 처음으로 공식 등장했다. 이 대회에서 소련 쪽은 김일성의 대중적 인기가 예상보다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이후 그의 지지 기반 확대에 나설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출처 위키미디어
김일성 북한 주석은 1945년 10월14일 평양 공설운동장에서 열린 평양시 민중대회에서 처음으로 공식 등장했다. 이 대회에서 소련 쪽은 김일성의 대중적 인기가 예상보다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이후 그의 지지 기반 확대에 나설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출처 위키미디어
 
 

그동안 학계에서 해방부터 국가 수립까지 북한과 소련의 관계를 정의하는 관점은 크게 ‘종속’과 ‘독립’ 두 가지로 나뉘었다. 분단 상황에서 주류를 이룬 보수적 관점에선 소련이 주도적 역할을 하고 북한 공산주의자는 여기에 종속되어 있었을 뿐이라는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진보적 관점에선 소련의 역할은 별로 주목하지 않고 조선 공산주의자들을 체제 형성의 주도자로서 부각했다.

 

그러나 * 교수가 보기엔 두 관점 모두 한계가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북한의 토지개혁이다. 1946년 북한의 토지개혁안은 소련 국방성안과 외무성안으로 나뉘어 있다가 최종적으로 국방성안이 채택됐다.

 

외무성안은 동유럽의 경험을 참고로 했지만, 국방성안은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입장을 토대로 만들어졌고, 모스크바 지도부는 최종적으로 국방성안의 손을 들어줬다. 이런 구도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근본적으로 소련과 북한이 “이해관계가 일치했으며”, “물리적 협력 관계 이상으로 내적인 결합을 달성”했기 때문이었다.

 

즉, 소련과 북한을 ‘공동주체’로 보는 관점이다. “북한 체제 형성과 발전 과정에서 소련의 지도적 역할은 부인할 수 없는 요인이지만 그 역할을 규정지은 것은 소련과 남북 공산당의 상호작용이었다.”

 

이와 함께 이 글이 기존의 관점들과 대결하는 지점은 바로 가장 논란이 많은 분단 책임 문제다. 전통적 관점의 기존 연구들은 소련이 처음부터 분단국가를 만들려고 했다는 논리를 폈다. 특히 스탈린이 일본 항복 직후인 1945년 9월 훈령에서 “북조선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권력 수립에 협력할 것”이라고 지시한 대목을 그런 논리의 근거로 삼았다.

 

물론 거기엔 분단의 책임을 소련에 미루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하지만 * 교수는 스탈린이 말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권력’은 북한만의 단독정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먼저, 1945년 당시 미소 관계는 분단 정권을 생각해야 할 만큼 분열된 상황이 아니었다.

 

또한 소련은 해방 직후 좌파들이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한 상황이 유지된다면 한반도에 좌파적인 단일정부가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실상은 해방 직후에 미국과 소련, 한반도의 좌·우 세력들은 모두 자신들이 주도하는 한반도 단일 국가 수립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어느 정치세력도 처음부터 분단국가의 수립을 기도하지 않았다.

 

한반도의 분단은 단일정부 수립을 위한 두 차례의 미소 공동위원회가 실패한 이후에야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물론 선후의 차이는 있다. 미국이 우파 우위가 확보되지 않은 한반도 세력관계에서 불리함을 느끼고 분단국가 수립에 대한 유혹을 더 많이 느낀 것은 분명하다.

 

반면 소련은 한반도에 좌파가 우위인 상황에서 소련에 우호적인 통일국가를 만드는 것까지는 가능하다는 목표가 있었다. 열흘밖에 대일전쟁을 수행하지 않은 소련이 태평양전쟁을 주도해온 미국 등 여러 강대국을 제치고 한반도에 소비에트식 국가를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또한 처음부터 줄곧 인식하고 있었다.

 

“한반도 분단은 미·소 간 이해관계의 작용에 의한 것이면서 동시에 한민족 내부 분열이 탄생시킨 결과물이었다. 말하자면, 북한 국가의 형성은 소련과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고립적’ 행위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시시각각 변모하는 한반도 내외의 정세변화와 상호 세력관계가 투영되었다.”

 

* 교수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분단 문제에서 소련과 북한의 책임도 있지만, 미국이 약속을 어긴 것도 큰 것이었다. 소련과 북한도 정세가 분단 구도로 진행된다고 해서 거기에 따라간 것은 안타깝다.

 

미국을 알았더라면 좀 더 유연하게 대처했을 것이다. 서로 믿지 못하고 사소한 것 때문에 협상이 결렬되는 해방정국 당시의 상황은 이후 북미 관계에서도 반복돼왔다. 앞으로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서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상..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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