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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5-17 15:46
[북한] 정치적이지 않고 오직 (진실,사실적인 김일성 인생,역사) 29편..
 글쓴이 : 돌통
조회 : 626  

28편에 이어서 ~~

 

 

한편 6월에 일본군 한 개 중대가 마촌에서 얼마 멀지않은 대두천(大?川)에 와서 주둔하였는데 그들이 조만간에 마촌으로 토벌하러 내려올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관보전은 사람을 보내어 왕청유격대와 연락하였다.


“보나마나 일본군이 마촌을 토벌하러 나올 것이 분명한데 우리가 함께 먼저 치는 것이 어떻겠소?”
김명균은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부리나케 응낙하였다. 왕청유격대에서는 정치위원 김은식이 직접 홍해일, 원홍권, 장용산, 김하일 등을 데리고 일본군 토벌대를 덕골로 유인하여 ‘관영’의 매복권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이 전투에서 ‘관영’은 일본군 40여 명을 격퇴하고 크게 고무되어 당장 김은식을 ‘관영’의 참모장으로 파견해달라고 요청하였고 이 요청은 금방 비준되었다. 이때부터 왕청유격대와 ‘관영’은 서로 부딪치는 일이 없이 한집 식구처럼 아주 친해졌으며 이용국과 김명균은 만약 이 상태 대로 조금만 더 지나면 ‘관영’을 완전히 유격대로 장악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불행하게도 나자구에서 활동 중이었던 왕청유격대의 한 중국인 대원이 적구로 정찰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배가 고파 한 음식집에 들어갔는데 짜장면 한 그릇을 달라고 해서 먼저 먹고는 값을 치르지 않았다. 가지고 간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돈이 생기면 와서 갚겠소.”


그 대원은 음식집 주인에게 이렇게 약속하고는 유격대로 돌아와 이 사실을 자기의 소대장 김명산(金明山)에게 보고하였다. 결국 김명산을 통하여 새로 대대장에 임명된 지 얼마 안 되었던 양성룡(梁成龍)과 군사부장 김명균에게 이 이야기가 들어가게 된다.
“나중에 기회가 있을 때 밥값을 가져다주오.”


김명균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으나 김명균과 한 사무실에 같이 앉아 이 보고를 받았던 현위원회 서기 이용국이 이 일을 문제 삼았던 것이다.


“영업을 하는 백성의 음식집에 가서 밥을 먹고 값을 치르지 않다니 그게 강도나 무슨 다름이 있겠소? 나중에라도 소문이 퍼지는 날이면 우리 공산당 유격대의 명예가 큰 손상을 입게 될 것이오. 반드시 처리하여 군율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용국의 명령에 의해 음식 값을 치르지 않고 돌아왔던 중국인 대원은 체포되고 말았다. 며칠 뒤에 군사부의 주재로 공개 재판이 열려 총살형에 처하게 된다는 소문이 돌자 그 중국인 대원과 함께 유격대에 입대하였던 다른 10여 명의 중국인 대원들이 밤에 감방을 습격했다가 대대장 양성룡에게 제압당하고 모조리 함께 체포되었다.


이 중국인 대원들은 모두 동북군 출신이었다. 길림성방군 돈화주둔 보안연대 대원들이었는데 ‘9·18 만주사변’ 직후 보안연대가 통째로 일본군에게 투항할 때 그들은 부대에서 탈출하여 왕청유격대로 찾아왔던 것이다.

 

그들을 데리고 왕청유격대로 찾아왔던 사람이 바로 보안연대에서 상사반장으로 있었던 김명산이었다. 그러나 이때 발생하였던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왕청유격대의 중국인 대원 10여 명이 모조리 함께 체포되어 결국은 처형당하고 말았다.

 

소대장이었던 김명산만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가까스로 처형을 면하였으나 소대장직에서도 나가떨어지고 또 총까지 빼앗긴 상태로 계속 며칠 동안 감금되는 신세가 된다.


‘같은 조선인이라고 믿었던 내가 잘못이다. 저자들이 언젠가는 나도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던 끝에 김명산은 밤에 감방 문을 부수고 나와 ‘관영’으로 뛰어갔다. 그동안 줄곧 중국인 부대에서 중국인들과 함께 지냈던 김명산은 중국인이나 다를 바 없이 중국말을 유창하게 했으며 관보전도 김명산을 중국인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관 대대장님, 큰일 났습니다. 왕청유격대가 중국인 대원들만 골라내서 모조리 총살했습니다.”
김명산은 자기가 데리고 왔던 중국인 대원 10여 명을 모조리 잃어버리고 진심으로 원통하여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이에 관보전은 대경실색했다.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이냐? 유격대가 웬 일로 우리 중국인들만 골라내서 모조리 총살한단 말이냐?”
관보전은 부관을 파견하여 이 사실을 알아보게 하였는데 그는 유격대로 가던 중 일본군에게 붙잡혔다가 다시 관보전에게 돌아와 이렇게 이야기했다.


“공산당이 자기 유격대 안에서 중국인 대원들만을 골라내서 모조리 처형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부대를 공격하려고 온 동네 백성들까지 모두 나서서 창과 몽둥이를 준비해 들고 유격대와 함께 동원대회를 열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니 이대로 계속 여기에 있으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됩니다. 그러니 빨리 마촌을 떠나 다른 데로 피해야 합니다.”


관보전은 어찌나 놀랐는지 얼굴색까지 새파랗게 질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래도 의심쩍어 직접 부하 몇을 데리고 몰래 유격대 주둔구역으로 접근하여 마촌 백성들의 동태를 알아보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온 동네 백성들이 넓은 공터에 몰려나와 웅성거리고 떠들면서 무슨 행사를 벌이고 있는 것 같았다. 함께 따라 왔던 부관은 계속하여 관보전의 귀에 대고 의심을 부추겼다.


“공산당은 무슨 전투를 벌일 때면 언제나 저렇게 백성들을 모아놓고 한바탕 동원 대회부터 조직합니다.”
“저자들이 지금 우리를 치려고 저러는 것이란 말이지?”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안 그러면 왜 백성들까지도 저렇게 창과 몽둥이를 꼬나들고 소리치면서 소란을 부리고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선발제인(先發制人)하는 것 말고 더 좋은 수가 또 있겠습니까.”
이미 일본군의 밀정으로 투항해버린 부관의 꼬임에 넘어간 관보전은 그길로 돌아오기 바쁘게 유격대의 파견을 받고 ‘관영’에 와있었던 김은식부터 포박하였다.


“이 빨갱이 놈들아, 사실대로 대라. 너희들 몇은 안에서 내응하고 유격대는 밖에서 우리를 공격하기로 짜고 들었던 것이 아니냐?”
‘관영’ 내에서 유격대의 그간 사정을 알 길이 없었던 김은식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던 일이라 그는 미처 사태도 파악할 새 없이 처형장으로 끌려 나갔다.


“죽을 때 죽더라도 일단 원인이나 알고 죽읍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들을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까?”
김은식은 관보전에게 요청했다.
“뻔뻔스럽구나. 그래 이 지경까지 왔는데도 끝까지 아닌 척 하려는 거냐?”
김은식과 함께 처형장에 끌려나온 홍해일, 원홍권, 김하일 등은 서로 마주 바라보면서 어리둥절해했다. 유격대 통신요원이었던 김하일이 이때 김명균의 파견을 받고 김은식에게로 소식을 전하러 달려왔다가 그만 함께 붙잡히고 말았다.


“하일 동무, 마촌에서는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게요?”
김하일은 기가 막혀 한참이나 말을 못 하다가 가까스로 대답했다.
“김 정치위원 동지, 이건 큰 오해입니다. 지금 마촌에서는 ‘10월 혁명절’ 기념행사를 하느라고 온동네 사람들이 거리바닥으로 몰려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고 관 대대장이 유격대가 자기들을 공격하러 온다고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관 대대장의 말을 들어보니 그것뿐이 아니잖소. 우리 유격대에서 중국인 유격대원들만 모조리 골라내서 총살했다고 하는 것은 또 무슨 소리요? 도대체 그런 일이 있었소? 없었소?”
김은식은 김하일에게 따지고 들었다. 김하일은 잠시 생각하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네, 그것은 사실입니다.”


김은식은 아연실색하여 한참 동안 아무 말도 못 하였다. 김은식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관보전은 김은식 외 4명의 유격대 파견대원들을 묶어 깊은 산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이것은 1932년 11월 9일에 발생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김하일만은 사형집행인의 총탄이 급소를 비껴가 어깨를 묶은 포승줄을 끊어놓는 바람에 요행스럽게도 산벼랑으로 뛰어내려 도주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후 관보전은 진작 일본군에게 투항하여 밀정노릇을 하고 있었던 부관과 함께 결국 부대를 모조리 버리고 일본군 헌병대로 찾아가 투항하고 말았다.

 

 

이상..      30편에서 계속~~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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