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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5-12 14:43
[북한] 이한영의 김정일의 로열패밀리..연구,분석 01편
 글쓴이 : 돌통
조회 : 422  

01편..


 

통일연구회 역사연구회라는데서..


 

**  이한영의 저서 “김정일의 로열패밀리” 로 예전에 연구회에서 전문가들이 세미나가 있었는데 그 세미나에 내친구 동료가 참가했는데 그때 나에게 알려준 세미나 내용이다..

 

문득 생각나서 글을 올려 보겠다.   내용이 길어 시리즈식으로 해야겠다. 관심있는분은 읽어보시길..

 

내 용은


 

***   새로운 삶


 

□ 대한민국 서울



 

1982 년 10월 1일 오후였다. 이미 1시간 전부터 비행기는 남한 상공을 날아왔지만, 막상 스튜어디스의 안내방송을 들으니 가슴이 쿵쾅 뛰었다.

 

유리창 밑으로 보이는 남한 땅은 북한의 자연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산세가 조금 부드럽다고나 할까, 남인지 북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경치가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서울이 가까워질수록 긴장됐다. 내가 새롭게 삶을 시작해 야 하는 곳, 이곳은 과연 나에 게 무엇을 보여줄 것이며, 나 또한 그 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서울에 오는 것이 잘 하는 일인 지, 사흘 전 스위스 제네바의 대한민국 대표부에 들어갈 때부터 시시때때로 가슴을 짓눌렀던 생 각이 다시 떠올랐다.

지금이라도 되돌아갈 수는 없을까 하는 쓸데없는 염려도 불쑥불쑥 머리를 헤 집었다.

 

나의 서울 정착은 제네바를 출발 프랑스와 독일을 거쳐 필리핀 을 우회하는 장거리 여행이었다. 안내하는 남한 사람들과 같이 탈출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유럽이라는 장소 때문에 불안감은 덜 했다.

 

그러나 마닐라에서 서울로 오는 태극마크가 선명한 대한항공에 오를 때는 마음이 이상했다.그러다가 어머니(성혜랑)와 이모(성혜림) 일행의 망명 보도가 세상을 뒤집어 놓으면서 내 존재가 14 년 만에 드러났다.

 

나의 어머니는 성혜랑이고  바로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은 나의 어머니의 여동생 성혜림의 아들..

즉 김정일의 부인,애첩인 성혜림은 나의 이모이다.

 

북한에서 어떤 삶을 살았으며 남한에 와서는 어떤 궤적을 그렸는가. 이는 내 개인의 작은 역사임과 동시에 분단이라는 상황 속에서 상호증오와 대결구도 속에 편입돼 살아온 한 청년이 두 체제 속에서 어떻게 살아왔나를 말해주는 기록이 된다.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의 보통시민으로서 애환도 경험했다. 자본주의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사업을 통해 돈 버는 재미를 만끽해보기도 했고, 그 사업의 실패로 감옥에 갇히는 밑바닥 인생도 겪어봤다.


 

***  평양의 궁전


 

□ 월북한 혜림이모


 

평양 생활 22 년을 얘기하려면 먼저 내 이력을 간단히 소개할 필요가 있다. 로열패밀리에 편입된 것이 스스로의 노력에 의한 게 아 니라 영화배우 출신의 이모가 당시 김일성의 후계자인 김정일과 만 나는 것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1961년 4월 2 일 평양 중구역 대통문동의 외가에서 태어났다. 그때 우리 집은 같은 중구역인 경림동에 있었다. (구역은 서울의 구와 같은 행정 단위다.)

당시 아버지 이태순과 어머니 성혜랑은 평성(평양 근교)에 있는 과학원 물리수학연구소에서 함께 근무하고 계셨다. 


외할머니 김원주는 「로동신문」 국제부장 외할아버지 성유경은 선교피복 공장 지배인이었다고 들었다. 외조부모는 아들 일기(日홉)와 두 딸 혜랑 혜림(樞惠)을 두었다.

 

일기 외삼촌은 33년생, 어머니는 35 년 생, 혜림 이모는 37년생으로 세 분 모두 서울에서 출생했다. 나는 6.25때 월북했던 우리 외가 쪽에서 낳은 첫 아들이었다.

 

이름을 ‘일남’ 이라고 지었는데 그게 바로 나 다.


집안의 첫 번째 남자라는 의미와 함께 첫째 가는 남자가 되라는 희망이 담긴 이름이었다. 66년 1월에는 여동생 남옥이가 태어났다.

 

남옥이는 나와 마찬가지로 대동문 인민학교를 나와 평양외국어학교를 다니다가 김정일의 장남 정남이와 함께 스위스 제네바로 유학을 간다. 아버지 고향은 사과로 유명한 함경남도 북청이다.

 

서울에 온 후 ‘북청물장수’ 얘기를 들었는데 평양에서는 못 들어본 얘기였다. 아버지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다는데 1928년 생으로 어머니보다 일곱 살 위였다.

 

아버지는 북청에서 고생하며 어린 시절을 보내고, 김일성종합대학 재학중 6.25가 전쟁이 일어나고 군에 입대했다고 한다.

6.25 후 북한 당국은 청년 장교 중 총명한 사람들을 뽑아 모스크바로 유학 보냈는데 아버지가 거기에 선발됐고 1954년 모스크바종합대학 역학부에 입학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때 아버지와 같이 간 유학동기 중에는 허담 전 외교부장, 김영남 외교부장, 김석기 교육위원회 위원장, 연형묵 정무원 총리, 김환 기계공업상 등이 있었다.


공군 출신으로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을 지내고,현재 조선 로동당 중앙위원회 작전부장으로 있는 오극렬은 아버지 1년 후배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1959년 평양으로 돌아와 과학원 물리수학연구소 연구원으로 배치 받았다. 연구소에서 어머니를 만나 1959년 결혼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서울에서 서울사대부속 초등학교를 나왔는데 이화여고 1학년 때 외할아버지를 따라 월북했다.

 

어머니는 1954년 김일성종합대학 물리수학부에 혜림 이모는 1년 후 평양연극영화대학에 입학했다. 어머니는 대학 졸업 후 과학원 물리수학연구소에 들어가셨다.


혜림 이모는 서울에서 서울사대부속 초등학교를 거쳐 풍문여중을 다니다 월북했다. 이모는 60년에 대학을 졸업하는데, 59년 〈분계선 마을에서〉라는 영화의 주인공으로 데뷔한다.

 

지난번 어머니일행의 탈출 후 한국 신문에 나왔던 머리에 수건 두른 이모 사진이 바로 그 영화의 한 장면이다. 북한에서 이모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영화는 크게 히트했다. 그리고 〈백일홍〉이란 영화의 주인공도 했다. 

 

이모가 주연했던 수많은 영화 중 제일 예쁘고 멋있었다고 생각되는 영화는 〈온정령 〉이다. 금강산에 온정령이라는 고개가 있는데 이모는 그 영화에서 옹정령에 그림 그리러 평양에서 온 화가를 사랑하는 여 주인공으로 나왔다.

 

그 영화도 큰 히트를 했다. 당시 북한에서 가장 유명했던 남자 배우 엄길선과 공연한 영화다. 엄길선은 그 후 백두산창작단 단장도 했는데, 남자 배우로는 독보적 존재였다. 엄길선과 주연했던 〈내가 찾은 길〉도 유명하다.

 

이 영화는 해방 전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해서 싸우는 애국지사 얘기인데, 애국지사를 사랑하는 여자 주인공으로 이모가 나왔다. 월북한 영화배우 박민과 공동 주연한 〈인민교원〉이란 영화도 있었다.

 

박민은 지난번 고향방문단 때 자식을 만나러 서울에 왔던 걸로알고있다.이모는 1968년 〈한 자위단원의 운명 〉이란 영화를 끝으로 영화계를 떠났다.


 

이상..        02편에서 계속~~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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