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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5-11 21:37
[한국사] 여말선초 요동정벌에 대한 개인적 생각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2,599  

1) 명나라를 상대한 정도전 주도의 요동정벌은 게임도 안 될 헛짓거리였나(명은 조선을 얕봤나)

ㅡ 고려말 최영과 이성계가 하북과 만주를 휩쓸고 다닌 것을 보라
ㅡ 만주의 내로라 하는 여진부족이 이성계 휘하였다
ㅡ 게다가 세력이 약화됐다 하더라도 북원이 있었다 발해 대무예가 당나라를 정벌할 적에 돌궐과 거란이 함께 했다 양쪽(실제로는 몽골, 여진, 조선 3곳)에서 치면 당연히 명의 힘은 분산된다
ㅡ 나라가 전란에 돌입하면 특히 중국 같은 거대국가는 반란세력이 일어난다

2) 정도전 요동정벌의 배경은 무엇인가

ㅡ첫째, 명나라는 산해관을 지나 적봉 동남, 조양시를 지나 현 요하 서쪽까지 진출했다가 나아가 심양과 혼하 일대까지 진출한다
ㅡ 둘째, 철령 이북 요구(결정적)

3) 당시 명나라의 국경인식

ㅡ 혼하 중류 남쪽 인근 봉집보(봉집현) 기준 동서 500리가 명과 고려의 접경(명일통지)
ㅡ 이 봉집보가 최초 철령위 위치
ㅡ 정도전이 군사 시위하자 현 철령시로 철령위 후퇴

4) 공민왕의 요동정벌은 단지 일시 점거에 불과했다?

ㅡ 사료가 적을 때에 우리 자랑스런 대한민국 주류사학계는 항상 우리에 극단적으로 불리한 학설, 쭝궈나 왜국에 이로운 학설을 통용설로 채택한다
ㅡ 아니 명나라가 봉집현 중심 동서 500리를 접경으로 적고 있다니까?
ㅡ 일간지에 보도된 철령시, 또는 무순시 남쪽 500리 어쩌고 하는 복기대 팀의 주장은 잘못이라는 것을 이미 오래전 이곳에 논박한 바 있다(본인은 복기대팀 논문을 보지 못 했고 뉴스 기사만 접함)
ㅡ 요동이 고려 땅이 아니었으면 어째서 봉집현 > 연산관 > 봉황성 > 현 압록강 순으로 명과 조선의 접경이 후퇴하나?

5) 명과 왜 안 붙었나?

ㅡ 왜구가 수십 년, 거의 정규군 수준으로 온사방을 다 휩쓸고 다녔고 권문세족들의 부정부패로 민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ㅡ 고려의 적폐와 민생파탄은 오늘 대한민국 쌈 싸 먹는 수준, 조선말은 재롱수준
ㅡ 득보다 실이 크다
ㅡ 이미 당시 한국은 지배층의 야욕, 혹은 야망이 우선이 아니고 민생을 당위로 삼는 새로운 지식인들의 세상

6) 조선이 만주를 먹을 수 있었던 시기
ㅡ 태조ㆍ정종ㆍ태종 이 시기 : 태종 이방원의 극단적 사병철폐 등의 개혁으로 내치는 굳건해졌으나 이성계가 장악한 여진족 세력이 떨어져 나감
ㅡ 이징옥의 란 : 이징옥의 란에서 조선의 여진족에 대한 지배력을 가늠할 수 있다 그런데 세조의 동북면 무인들 대거 숙청으로 떨어져 나감(세조 시절 만주의 수많은 세력들이 머리를 조아리긴 했으나 실질 결속력은 극히 약화됨)

7) 명 요동도사 관할의 요동(현 요동)은 명나라의 텃밭이었나?
ㅡ 아니 전혀
ㅡ 텃밭으로서의 요동은 전국시대부터 전통적 요동인 승덕&진황도시
ㅡ 그렇다고 이 지역을 텃밭이라고 할 수도 없음 역대 한족 정권에서 여기를 차지한 정권은 서력기원 후 몇 나라가 안 됨

# 중세사, 고대사가 전문이라면서 왜 조선사에 관해서 설치냐?

ㅡ 본인은 강역사 연구가
ㅡ 한사군 문제를 풀기 위해 철령위와 공험진 쟁점부터 파고들면서 역순으로 고찰해 올라가는 연구를 해왔다
ㅡ 또한 간도문제에 대해서 맥락을 파악하는 수준에서 탐구한 바 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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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20-05-11 22:15
   
최초 철령위 위치는 어디인가 ㅡ 인하대 복기대 연구팀의 "최초 철령위는 현 철령시 동남쪽 500 리" 기사 논박

모바일 사용자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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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집보(봉집현) 위치
Fengjibao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 쑤자툰구
https://maps.app.goo.gl/8NsLyT9v1NA8rB6j6
구름위하늘 20-05-12 12:46
   
저의 생각은 여말조초의 여진정벌은 선택할 수 있는 방안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고,
선택하지 않는 것도 방안에 하나로 생각합니다.

저도 개인적으로는 무리한 확률이지만 시도했으면 좋았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것을 기회비용을 고려한 선택의 결과로 포기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1%의 가능성이 아니라 최소 10%에서 30% 이상의 가능성이 있었는데도 애초에 불가능했다라고 단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확률계산은 가능성의 영역이긴 하지만 10% 확률로 7번 시도하거나 30% 확률로 2번 시도하면 둘 다 성공확률은 50%를 넘습니다.

요동정벌을 지지하는 이유는 제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주국의 위상을 더 갖추기 위한 군사력 확보 차원(특히 군마 수급)에서 필요했다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선택은 고려와 같이 무역에 일정부분 투자를 해서 해상 장악을 하는 것인데,
조선은 그것도 포기하죠. 이미 고려가 했왔었고, 신라시대에 일개인인 장보고도 해냈던 것인데 말입니다. 다양한 가능성과 선례가 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쉬움이 많습니다.
     
감방친구 20-05-12 14:32
   
저는 요동정벌이 승산이 있는 선택이었다고 보는 쪽입니다
님 말씀대로 두 가지 선택지가 있는데
요동정벌은 정도전과 조선건국준비세력이 획득하고자 하는 가치와 달랐던 것일뿐

요심 지역은 서쪽에서 들어오는 세력을 방어하기 좋으나
동쪽에서 오는 세력은 막기 어려운 곳입니다

조선군은 세 곳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1)금주(대련)ㅡ복주ㅡ개주ㅡ해주ㅡ요양
2)봉황성ㅡ연산관ㅡ요양
3)동가강(혼강, 옛 파저강)ㅡ신빈(흥경)ㅡ무순ㅡ심양

여진군은 두 곳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1)함주ㅡ은주(철령)ㅡ심양
2)매하구(휘발)ㅡ무순ㅡ심양

금 건국시 여진족이 함주를 통해 심양으로 들어가자 거란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함주(개원)와 귀덕주(무순)는 요나라 당시 여진족이 동경도를 드나들던 길

조선과 여진이 협공하면 제대로 된 지원군이 오기 전에 끝낼 수 있습니다

또 북원이 북경 서북쪽을 공격해준다면

현 요하 정도에서 타협을 봤을 것입니다
          
구름위하늘 20-05-12 15:59
   
요동 확보 후에 명나라의 반격을 얼마나 잘 막아내는냐가 문제이긴 한데,
주원장의 옛 동료와 아들들이 얼마나 분열된 상태이냐와
곧 주원장 사망으로 건문제가 즉위하는데 여기에 얼마나 영향을 받는냐가 관건이겠지요.
뭐꼬이떡밥 20-05-12 16:10
   
요동 정벌은 2개로 구분해 봐야 한다고 봅니다
고려말 위화도 회군때와
조선 이성계때 로요

일단 위화도 회군때는 이성계가 여러가지 이유로 회군을 하였죠
그중하나가 소국이 대국을 칠수 없다 인데
조선때는 무슨 배짱이였을까요? 소국 주제에...
전 당연히 이점에서 모순이 발생한다 보고.
 제가 극렬하게 이성계와 조선을 비난할수 밖에 없게되죠

그럼 역사적으로 중국(중원)보다 큰 대국이 중국을 향해 공격했던적이 있냐? 입니다
동북아에서 중국을 살려두고는 더 큰나라가 될수도 없고 모두 작은 부족에서 뭉치면 가자! 인데
역사적으로 작은나라들이 중국에 들어가 차지를 하거나 위협을 하였죠
즉 중국은 항상 주변에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만리장성을 쌓은게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가능성 면에서라면 고려때가 기회였다고 봅니다.
     
감방친구 20-05-12 21:05
   
이성계와 정도전 세력이 획득하고자 한 가치는
고려 개혁이었어요

그 개혁을 하기에는 고려가 너무 썩어 있었기 때문에
역성혁명과 왕조개창밖에는 없었던 것이죠

이성계와 혁명세력은 요동정벌에 할당된 군사와 재정을 정권을 잡는 데에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비난 받을 짓인가 하면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요동정벌이 실패하든 성공하든
실패하면 ㅡ 이성계는 숙청될 것이고
성공하면 ㅡ 요동을 수비하고자, 뒤이을 명나라의 공격을 막아내고자 하는 방식으로 이성계는 숙청될 것이고 다시 쿠테타 기회를 잡고자 기약 없이 대기를 타야 했을 것입니다
비좀와라 20-05-14 01:46
   
먼저 부국강병에 대해서 말하자면 부국강병은 패도에 기초한 관념이라 왕도에 기초한 유학자들이 받아 들이기 어려운 개념이죠.

춘추 전국시대 시기에 너무도 혼란한 시기라 이테리의 르네상스 시기 처럼 살아남기 위해서 군주론과 같은 학문이 발달한 반면에 이것을 반대한 것이 유학 이고요. 당연히 춘추 전국시대에는 유학이 받아 들이기 보다는 배척 당했고 후일에 안정화된 한나라에서 부활 시키는 거죠.

그러다 보니 유학은 부국강병 보단 부민강병책을 주장 했고 이 부민강병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세가지 조건이 필요하죠. 민족주의 / 민주주의와 계급의식 있는 우파 즉 노블리스 오블리제(=솔선수범)을 실처하는 지도자 이 세가지 조건이 있어야 부민강병이 됩니다.

그래서 유학/유교를 민족주의와 민주주의 적인 성격의 학문이면서 종교라 하는 것이고요. 동시에 좌파가 아니라 우파적인 성격의 것이라 하는 것 이고요. 이게 서양은 프랑스 대혁명 이 후에 프랑스에서 잠시 보였다가 독일이 이 프랑스의 군대를 보고 민족주의 교육을 초등학교 부터 했는데 이게 국민교육의 시작이죠. 이 민족주의 교육의 성공으로 독일은 보불전쟁에서 프랑스를 격파하죠.

현대의 발전된 국가들은 대부분 부민강병책을 쓰는데 요새 사회주의의 영향으로 부국강병으로 많이 정책을 바꾸는 경향이 있는데 원래 민주주의와 민족주의 국가들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국가의 군대보단 훨씬 강하는 것은 이미 통설이 된 상태죠.

따라서 이성계가 요동정벌을 하지 않고 회군을 한것은 유학자들의 입장에선 당연한 거죠. 이들은 국가가 아니라 민중 즉 백성이 우선이었고 당시에는 왜구의 침공으로 본토가 흔들리는 상황이라 더더욱 그렇죠. 그렇다고 저들의 군대가 악하다는 것이 아니라 싸울 상황이 안되었다는 거죠.

그리고 공민왕과 기황후 사이는 심양왕 사건으로 서로 돌이킬수 없는 사이 인지라 만일 공민왕이 살아 있었다면 고려와 명이 싸울일이 없죠. 고려에 시집온 몽골의 공주들은 대체로 제국 노국 계국등의 어떤 특정 지역의 공주들이 많죠. 그리고 근세조선 후기 까지 옹주나 공주들은 시집가면 그냥 간것이 아니라 왕실에서 부마 집안에 땅을 하사 합니다.

서울에 부마가 되어서 아직 까지도 잘 먹고 잘 사는 집안들 많답니다. 서울 역사를 보면 그런 집안들 많아요. 말죽거리가 부마가 되어서 땅을 받은 상씨 집안의 땅으로 그 땅을 팔아서 상씨 집안들 부자가 되었죠.

몽골도요 몽골의 공주들이 몸만 온 것이 아니라 땅도 가지고 왔을 거에요.그러니깐 몽골 강점기의 고려왕실은 본래의 고려영토에선 황제 대접 받는 왕 이면서 몽골의 번으로 왕의 역활을 했을 거라는 거죠. 마치 영국이 노르망디 영주이면서 영국왕과 같이요. 과거 봉건영주제 에선 그런 경운 많습니다.

따라서 고려왕은 고려의 영토의 지배자 이면서 또한 몽골의 외번으로 제국 / 노국과 계국지방을 통치 했을 겁니다. 이런 상태 이었다가 심양왕 문제가 터지거죠. 이걸 기황후가 부추키고 납합출이 왜병 2만을 데리고 쳐들어 왔다가 이성계에게 전멸에 가까운 상태로 16명이 살아 돌아가 이야긴 유명하죠.

이런 상태에서 공민왕이 암살 당하고 우왕과 최영이 집권하면서 친원 정책을 하고 반명 정책을 하면서 이성계가 불안감을 가져서 쿠데타를 하게 되는 거죠. 만일 우왕이 공민왕의 정책을 이어 받으려 하였다면 친원 정책을 할 수 없는 것 입니다.

고려왕실의 영토가 산동과 그 북쪽의 발해지역 그리고 만주지역을 외번의 형태로 소유하였던 것을 기황후가 빼앗은 것 이거든요. 그래서 주원장이 대도를 공격 할 때 공민왕은 지원군을 보내지 않고 기황후는 이를 두고 욕을 한 바가지 하죠. 만일 공민왕이 지원군을 보냈으면 주원장이 대도를 함락하지 못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육반산 전투에서 홍건적과 고려 /몽골 연합군이 붙었을 때 고려군 2000 정예군이 홍건적 10만을 꺽고 승기를 잡으려 하자 몽골군이 제제를 하는 바람에 승리를 하지 못한 경우가 있죠. 반면에 몇 만의 몽골군은 홍건적을 막지 못했죠. 다시 말해서 숫자가 많다고 이기는 상황이 아니었단 거죠.
     
감방친구 20-05-14 03:11
   
흥미로운 말씀 잘 들었습니다
     
구름위하늘 20-05-14 13:38
   
부민강병이라는 용어는 유학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부민부국의 오타(?)로 추정.

그리고, 언급하신 부민강병(?) 또는 부민부국의  세가지 조건으로 언급하신 것은 유학과도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동양사상을 서양의 용어로 해석할 수 밖에 없는 현재의 학문적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유학의 개념 설명에 민족주의/민주주의, 계급인식 있는 우파, 노블리스 오블리제등을 사용한다는 것은 너무 유학과는 차이가 나는 개념입니다.
고구려거련 20-05-14 05:27
   
조선사에 설친다고까지는 한 적이 없는데 ㅡㅡ;
오해의 소지가 있었으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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