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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5-09 21:08
[한국사] 조선과 요동이 어쩌고 맨 반복되는 이야기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2,501  

실제 뭐가 어떻고 저떠한지 따져보는 사람 하나 없이
맨 똑같은 이야기 반복

근거를 가져다 보이며 이렇다 이야기 해도
본체 만체
그리고 또 똑같은 이야기

이게 벌써 가생이 동아게만 해도 10년

어쩌자는 것인지

정도전의 요동정벌 준비가 내부단속용으로 명에 대해서는 허세였다?

이 일로 하여서
명나라는 현 본계 서북, 혼하 남쪽 인근의 봉집현(봉집보)에 철령위를 설치했다가 철령시로 후퇴함

공민왕의 요동정벌이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명일통지에 따르면
명나라의 고려와의 국경 인식은
봉집현을 기준으로 동서 500리를 고려와 접경했다고
적고 있음

이걸 본인이 직접 사서에서 찾아서 수년 동안 기회될 때마다 이야기함

이 접경지가 연산과ㅡ봉황성 라인을 따라 후퇴
이게 명과 조선의 접경라인

즉 현 단동시 일대는
ㅡ 명나라 땅도 아니요 조선땅도 아닌
ㅡ 혹은 조선땅이라 해도 되는 땅이었음

그러나
조선 스스로 현 압록강을 국경으로 인식
이러한 스스로의 인식은 결국 임진왜란을 현실적으로 거치며 굳어짐

요동을 내어주고
조선건국의 정통성을 보장, 공인 받은 것

그런데 달리 선택지가 있느냐?
국가재정과 백성을 갈아넣어 요동정벌을 하였다면
적어도 현 요하를 기준으로 국경이 형성되며
그 정도에서 명나라와 타협 보고
말았을 가능성 있음

대신 만주의 여진족들의 준동으로 인한 피로와 손실을
조선이 떠맡아야 했을 것이고

이러한 북쪽의 광대한 지역에서의 항시적 긴장은
지속적으로 국고를 소진시켰을 것이며
백성들의 불안과 불만을 축적시켰을 것임
일본의 대규모 침입 시, 즉 임진왜란 때에
우리 역사의 불행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음

그렇지 않아도 파탄난 고려말의 민생이 어찌 됐겠음?
이성계와 조선건국이 백성의 지지를 받았을까?

명나라는 현 적봉 동남에 대령위를 설치했다가 몽골에 밀려 폐지하고
현 보정 북쪽 북경 일원으로 옮겼고
요동 영토도
현 산해관에서 동쪽으로 소릉하 남부,  의무려산 일대,
요하, 개원 이남, 현 요동반도

이 정도에서 현 압록강 쪽으로 더 나아간 게 다

명과 붙는데 북원만 있나? 여진족은?
왜 이성계 휘하의 내로라 하는 여진족은 뺌?

어느 왕조든 명과 암이 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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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miky 20-05-09 22:04
   
일부의 한국인이 봤을때

땅이 무조건 크고 많으면 좋아보이니까 그런게 아닐까 합니다

대륙조선 환국 이런것도 비슷한 심리라고 봐야죠ㅡ

사실 한반도 땅도 작은땅이 아닌데
결정적으로 분단되어 있는데다가

워낙 주변국들이 중국 러시아
이러니까 상대적으로  소국이라는데 ㅡ 심적으로 싫은 분들이 있는거죠
     
Marauder 20-05-11 02:02
   
땅이 크면 무조건 좋아보이는게 아니라 땅이 크면 거의 무조건 좋은거죠. 물론 기준이나 입장에 따라 다를 순 있으니 그냥 조선입장에선 그럴 수 있겠구나 이해하는것이죠.
비슷한 예로 명의 해금령도 그렇지만 아 명나라가 이래서 해금령을 했구나! 이해는 하지만 결론적으로 봤을때 동아시아 및 중국 쇠퇴의 크나큰 원인이 되었죠.
뭐꼬이떡밥 20-05-09 23:35
   
저도 요동을 내주고 조선을 명에게 인정 받았다고 봅니다.

다만 다른점은

조선이건 고려건 저 땅을 얻게 되었다면  여진을 박대하지는 못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여진의 괴롭힘같은것은 상당히 줄거나 많은 여진인들이 동화 되었을 거라고 봅니다

명과의 관계 또한 좋았을 것이라 보는게 여진을 관리한다는 명분으로 충분히 외교적 지랫대 역활을 할수 있었을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mymiky 20-05-10 00:01
   
당시 명나라의 국가정책을 님이 잘 모르시는듯 한데ㅡ

명은 요동을 절대 뺏기지 않습니다
북경의 앞마당이며 ㅡ 그곳을 지켜야

북원ㅡ여진 ㅡ 조선을 명이 컨트럴 할수 있는 요충지이기 때문이죠

그런곳은 명이라면 반드시 사수해야 마땅한 지역이고ㅡ

그리고ㅡ 명이 여진족들을 직접 관리하면 되는데?

왜 조선에게 맡깁니까? 
님은 소중한 금덩이를 남에게 순순히 맡기겠습니까?

주원장이 바 보가 아니고ㅡ 영락제도 바 보는 아니였습니다

지척에 요동을 남의 입(조선)에 공짜로 넣어준다?

명나라 입장에선 완전히
개풀 뜯어먹는 소리죠
          
구름위하늘 20-05-10 09:15
   
설마 mymiky 님이 모르고 댓글 단 것은 아니겠지만,
조금 뉘앙스가 이상해서 질문합니다.

"북경의 앞마당이며 ..."라고 하신 부분이 북경을 명나라 수도로서 중요성을 말하는 것 같이 보입니다.  요동이 군사적 요충지라는 것을 강조하시려다가 북경의 정치적 중요성도 같이 포함시킨 것 같네요.
초기 명나라 수도는 북경이 아니고 남경이었습니다.
               
mymiky 20-05-10 11:36
   
고려 수도가 개경이라고 서경(평양)을 안 중요시 했었나요?
남경(오늘날 서울)이 안 중요했던가요?

명의 정식수도가 남경에 있어도
북경은 여전히 명나라에서 알아주는 대도시였고
그 인프라하며  그 위치하며 여전히 중요한 지역이였습니다

그렇기에 주원장은 가장 능력이 뛰어난 아들에게 영지로 줘서
잘 지키게 했고ㅡ 그 아들이 나중에 영락제가 되는 연왕 주체입니다

당시 명이 제일  신경쓴  것은  북방으로 쫒겨간 몽골의 잔당들이고
그들과 싸우기 위해서도 전략적인 요충지는 절대 뺏기면 안되는 겁니다
                    
구름위하늘 20-05-10 11:52
   
알고 쓰셨다는 것이군요.

문장 표현이 북경이 단순 요충지가 아니라 수도라는 뉘앙스로 보였기 때문에 문의드린 것 입니다.
문장을 그대로 읽어보면 지켜야 하는 요충지로 요동을 명시하시고, 거기에 더하여 북경 앞마당이라는 조건을 추가하신 형태라서요.
Stormrage 20-05-09 23:43
   
딱 그때는 명 극초기 승천할 때고 하필 군사력도 북쪽에 몰려있어서..

철령위 위기도 상당히 위험한 것이 여말선초를 거치며 유야무야 된 것인데 위화도 회군이 없다거나 정도전이 정말 실행했다거나 하면 어떤 결과로 끝날지는 함부로 장및빛 전망을 못 하는 것이죠.
이성계는 분명 명장이었고.. 1차 요동정벌 처럼 한 번 찍고 돌아오고 별 일 없다거나 긍정적인 결과가 있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호란 이상의 끔찍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 거였으니.. 이런 걸 가지고 큰 나라에 무조건 사대네 어쩌네 성리학 조선은 맘에 안 드네 하면 좀 모자라 보임.
비좀와라 20-05-10 01:04
   
공민왕의 이름이 백안 첩목아 즉 바얀 티무르

이성계의 이름이 아무르 티무르

이지란의 이름이 쿠란투란 티무르

이성계와 싸운 동녕부 무장인 이원경은 이우로 티무루

투쿠 티무르 또는 토곤 티무르..

즉 티무르는 이씨를 말하는 것인데 왜 몽골왕가에 티무르란 성이 있냐? 

티무르라는 말이 터어키어로 철鐵을 의미 해서죠. 징기스칸의 아명이 철목진인데 이를 태무진이라 하고 태무는 티무르의 방언이죠. 이 티무르가 철鐵 이라고요. 따라서 태무진은 철인이란 뜻이고요. 이걸 한자음차로 쓴것이 철목진 이에요.  그러니깐 티무르라는 말이 철鐵과 이李란 뜻을 다 가지고 있다고요.

고려왕실은 당나라 황실의 후손이라 주장하고 당나라 황실은 이씨 입니다. 다시 말해서 티무르 씨라고요. 이 철鐵씨를 다른 말로 김씨 또는 금씨라고 하는 거고요. 다시 말해서 당나라 황실은 신라 김씨(=경주 김씨)와 금관가야 김씨(=김해 김씨)와 같은 계열로 바얀 티무르 즉 모용 선비 계열이란 거에요. 당연히 고려 왕실도 바얀 티무르 계열인데 마침 공민왕의 이름이 바얀 티무르죠. 그리고 몽골황실도 모용선비 계열이고요.

야율씨는 이씨를 거란 말로 뤼엘이라고 하는데 이게 야율이라고 한거라 야율씨 역시 티무르 계열인데 아마도 다른 계열과는 좀 다른 계열정도? 하지만 몽골과 고려왕실은 같은 계열이죠. 즉 아무르 티무르 계열 이에요.

이 아무르가 우수리 또는 아모리 /  아모리 이렇게 불리우는 이게 수장 또는 우두머리란 뜻이라고 하죠. 다시 말해서 오스만이라는 라고 같은 말이고 러시아 말로는 북해 또는 북쪽이란 뜻이 있다고 하죠.

그러니깐 흑수말갈은 누구를 말하는 것 일까요? 추측이 가능하죠 투르크나 거란 또는 몽골 이거나 신라의 잔재세력 이거나 모용선비 정도 일꺼란 거죠. 이들은 또한 당나라 황실과 동족이고요. 그래서 발해와 툭하면 대적하는 거죠.

당나라 역사도 엄밀한 말하면 우리 역사 입니다. 왕실은 우리민족이고 이들의 후손이 중세고려와 근세조선을 세웠는데 왜 당나라 역사가 우리 역사 아닌거죠? 단순히 고려와 백제를 멸망 시켜서 그럼 신라의 역사는 우리의 역사가 아닌거에요?

고려왕실과 근세조선 왕실은 자신들이 신라의 후순 즉 티무르의 후손이며 당나라의 휴손이라며 줄곧 이야기 하고 자랑 스러워 했는데요? 이들은 우리의 조상이 아닌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없네요. 몽골도 확장적인 의미의 우리 역사로 볼 수 있고요.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축소적이고 소 중화(=소 조선)적이 역사관으로 보면 북방의 있었던 우리의 수많은 조상들은 우리의 역사가 아니랍니다.

그런데 우리의 왕조가 전부가 북방민족 즉 티무르씨 들이 세웠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 하나요? 소중화 적인 역사관으로 보면 우리는 나라를 세운 적이 없는 족속이 되고 나라가 없으면 민족이 형성이 안되죠. 이런 소중화 적인 역사관은 좌파 빨갱이 새x들이나 떠드는 프로파간다이지 역사적 사실이에요?

이런 역사관을 가지고 본다면 우리는 왜족 이어야 합니다. 이건 사실도 아니도 우리도 받아 들이긴 쉽진 않죠.

지금의 지리관을 만든 것이 소중화 역사관에 기초한 사림들이 날조한 지리에요.

한 가지 그냥 예를 들께요. 이지란은 청해를 본관으로 하고 북청을 고향으로 하죠.이성계의 고향은 북청이고요.
이 북청이라는 말이 티무르 귁이란 말고 중국을 의미하며 지금의 북경이며 본래의 고조선 지역을 말해요.

청해가 완도이면 어떻게 함경도 북청하고 연결이 되냔 말입니다. 전혀 아무런 상관이 없거든요? 다시 말해서 이지란이나 이성계는 함경도 북청사란인데 이들이 지금의 함경도가 아니라 말그대로 북청 즉 북경사람이고 북경이 이들의 고향이라고요. 북경지역이 본래 발해지역(=삼국지의 원소가 발해태수로 있던 지역으로 남피지역 이요)이에요.

여진족도 청나라 때 행동을 보면 자신들의 본거지가 북경지역임을 확실히 하고 있고요. 고려도 한반도 지역보단 발해지역이거나 산동지역이 중심지 였을 거에요.

최소한 이성계가 즉위 할 당시에는 이 지역을 고려가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리고 납 뭐시기 하는 몽골군벌이 고려에 귀하 할려고 했지만 거부 당했고 이들이 명나라 투항 하거든요. 만일 조선이 명과 싸운다면 명도 쉽지 않을 전쟁이 되었을 거고요.

그런데 문제는 공민왕과 기황후와 기황후의 부하인 납살출이 서로 원수 관계로 주원장이 북경을 공격 했을 때 공민왕은 꼼작 하지  않았고 기황후는 공민왕을 욕 했다고 하죠. 원래는 명과 공민왕의 고려는 공동전선을 형성해서 기황후에 싸웠는데 공민왕이 암살당하고 고려가 친원 정책으로 가자 공민왕의 심복이었던 이성계가 쿠테타를 일으켰다는 것이 맞습니다.

당연히 이성계는 그 후에도 공민왕의 유지를 이울려고 했고 북원과는 불편한 관계로 명과는 친선관계로 간거라 말이죠. 그런데 이게 또 우수운 것이 이성계가 왕으로 즉위 후에 모든 몽골의 부족들이 이 즉위식에 참석 합니다. 이게 명나라에게는 진짜로 무서 웠을 거란거죠. 만일 이 때 이성계가 몽골부족의 대표로 또는 공민왕의 계승자로 명과 싸운다면 주원장이 잠을 못 이룰웠겠지요.

하여간 그렇다고요. 너무 길어져서...
국산아몬드 20-05-10 03:24
   
로마가 라인강 동쪽을 포기한 이유와 같은거죠

로마가 전성기였을 때도 라인강 동쪽은 점령하지 않았습니다
라인강 동쪽은 로마가 점령지를 유지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죠
시저가 로마의 경계선을 라인강으로 정한 뒤 후계자 아우구스투스가 일시적으로 시저의 유훈을 어기고 점령을 시도했지만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에서 1개 군단이 전멸당했죠
그 이후로 티베리우스도 진출을 시도했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결국 라인강을 경계선으로 인정하고 말았죠

조선의 입장에서도 요동은 마찬가지 입니다
요동은 사방이 탁트인 지형이라 사방에서 공격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요동을 방어할려면 고구려처럼 만주전체를 지배해야 합니다
특히 철이 많이 나는 요충지라 명과 대원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지역이고요

조선이 요동을 포기한건 어쩔수 없는 선택이라고 봐야 합니다
     
구름위하늘 20-05-10 09:49
   
로마와 라인강 동쪽의 비유는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로마가 라인강을 북쪽 국경선으로 하는 것은 전성기 시절입니다.
그때의 로마에게 있어서 라인강 동쪽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야만인의 땅이었습니다.

정도전의 요동정벌은 조선이 성장하기 전인 초기 조선이며
요동을 얻냐 마냐는 성장을 할 수 있냐 그냥 이대로 멈추냐의 갈림길입니다.

로마가 제국이 된 것은 성장을 멈추는 것을 국가생성 초기에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mymiky 20-05-10 12:10
   
아랫 어느 분도

우리가 한반도에 갇히고 성장하지 않을걸
안타까워 하시면서 열변을 토하시던데ㅡㅡ;;

그건 환경이 다른점을 고려를 안 하시는 것 같더군요

주로 팽창한 애들ㅡ 몽골 거란 여진

애네들이 팽창했던건ㅡ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은 거친 곳이라
약탈경제로 먹고 살던 애들 입니다

자연스럽게 배고프면 말타고 나가 약탈해서 먹고 사는게 익숙한거예요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왔다갔다 밖으로 나갈수밖에 없는것이죠

고구려 역시 초기엔 약탈경제로 먹고살았던 역사가 있고
평양으로 도읍지를 옮기고 농사를 짓고 그후엔 약탈에 의지 안하게 되었거든요ㅡ

조선은 여진이나 거란족들과 다릅니다
이미 오래전에 한반도로 남하해 농사짓고 살았어요ㅡ

이건 생활의 안정을 의미합니다

주로 팽창하는 애들은
자기가 가진 환경이 불만족스러우니 자기안에서 만족을 못 하고
계속 외부에서 자기들이 필요한 것을 얻기위해 나가는 겁니다

걔들이라고 팽창이 좋아서 나가는게 아니라
오히려 자기가 가진 환경이 나빠서  그걸 원동력삼아 나가는 거예요ㅡ

다른데 가면ㅡ 물을 얻을수 있다 쌀을 얻을수 있다
그걸 알기에 나가는거고

원래 중국은 만리장성 쌓고 안에서 삽니다ㅡ 자기 내부에 필요한게 다 있거든요
어디 나갈 필요가 없어요 ㅡ

조선도 마찬가지 입니다  뭐ㅡ 요동이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그렇다고 그걸로 먹고 생활하는데 불편하진 않아요

우린 몽골 여진 이런 애들보단
일찍히 농사 잘 되는 한반도로 내려와 정착을 빨리 했어요ㅡ

우리 조상님이 땅보는 눈이 있으셨던 겁니다

혹자들은ㅡ 땅이 무조건 크고 넓고 그래야 뽀대난다고(?) 생각할진 모르겠지만
그건  각자의 자유인거고
               
구름위하늘 20-05-11 11:07
   
상대방 글의 내용을 보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시는 것 같습니다.
- 제 댓글은 로마와 라인강을 조선과 요동과 같다고 비유한 국산아몬드님의  글에 대한 반론임
- 님의 글에 어디 로마/라인강에 대한 의견이 있습니까?
- 로마의 발생지는 풍요로운 곡창지대이며, 로마 자체로는 님의 주장에 따르면 팽창할 이유가 없는 곳이였습니다.
- 목축 vs. 경작의 다른 경제 체제를 풍요와 빈곤으로 단정하시는 것 같네요.
- 약탈 민족이 팽창하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소수이고, 그 반대의 사례인 정주민족이 제국으로 팽창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에 반대하시는 주장인가요? 국가의 팽창과 약탈경제 유무가 얼마나 영향을 준다고 주장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mymiky 20-05-11 15:15
   
제가 로마사는 세세하게 잘 모릅니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기독교 공인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부분만 아는 정도임

서양사는 고대 로마쪽보다 더 내려와서
유럽왕실ㅡ 부르봉 합스부르크 튜더-스튜어트 왕족들 생활사 이런거에 관심 있구요
          
국산아몬드 20-05-10 12:58
   
요동도 조선입장에서는 큰 요충지는 아니었어요.
요동없어도 명이나 유목민족과 교류하는데는 큰 문제 없었거든요
다만 제국으로 성장하려는 야망이 있는 경우 꼭 필요한 지역이긴 한데 유교이념이 제국주의와는 맞지 읺죠

그런 면에서 요동은 점령했다고 해도 조선입장에서는 계륵같은존재였을 겁니다
               
mymiky 20-05-10 13:03
   
유교이념과 제국주의는 별로 상관은 없습니다

중국도 자기들이 처음부터 제국이 되고 싶어서 되었다긴 보다
딱 트인 땅에 온갖 잡.놈들이 다 모이는 환경이라
안 섞일래야 섞일수밖에 없어서 그런것일뿐
                    
국산아몬드 20-05-10 17:25
   
유학는 도덕적 가치가 중시했습니다
공자가 주목을 받은것도 춘추전국시대 부국강병만 중시하고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했을 때 공자만이 예를 갖추어야 한다며 인의예지를 부르짖었죠

특히 조선에서 예학이 너무 발달하여 인간본성과 괴리가 생겼고
정치가들이 인간 본성에 관련된 사단 칠정이론에 대한 이견을 시작으로 당파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학계에 있어야 할 철학자들이 죄다 정치가들이 되다보니 점점 정치가 교조화되었던 거죠

따라서 유학은 태생부터 패권주의와는 거리가 먼 학문입니다
특히나 조선의 유학은 더욱더 패권주의와는 거리가 멉니다
부국강병보다는 국태민안을 중시한 사상이죠
                         
mymiky 20-05-10 19:27
   
철학가들이 죄다 정치가들이 된건 (과거제) 덕분이죠
중국과 조선은 일찍부터 철학가들이 정치도 하고 행정 관료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의 당파로 망한게 아니라 세도정치 한다고 막장테크 탄거지
교조화로 인해 망했다는 주장은 거의 사장화 된걸로 압니다

동시대 서양은
금수저 물고 태어난 귀족들이 지아빠가 귀족이면 아들도 귀족이고
자라면 아빠 작위 물려받아 정치했죠

일본 메이지 유신때 제일 활약한 번이 야마구치 쪽인데ㅡ 얘네들이 일본 번들 중에
제일 유교적인 학풍이였다는게 참 재밌더군요

(메이지유신과 사대부적 정치문화)ㅡ 3월에 출간된 신작인데 아직 다 못 읽었음
님도 관심 있으면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해서 읽어보세요ㅡ 근데 좀 비쌈;;
구름위하늘 20-05-10 09:30
   
저는 정도전의 요동정벌이 무리하기는 하지만 해볼만한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이나 명이나 나라가 만들어진지 얼마 안되는 상황이라서
전쟁 자체의 역량은 분명 명나라가 앞서지만 중간결과에 따라서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리지만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이미 2번의 사례(금, 청)이 있기 때문이죠.
요동정벌의 내용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없지만,
이성계 일족의 여진족 내에서의 평판과 조선이라는 국가적 역량이 잘 결집되어
여진족을 포용하면서 명에 맞서는 것이라면 가능성은 충분했다고 봅니다.
     
mymiky 20-05-10 12:22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께요ㅡ

한국 연예계에서 활동하던 중국멤버들이 지금은 다 빤스런 했죠?
왜 일까요? 한국에서 버는 것보다 중국에서 버는게 더 벌거든요

한국에서 일년 일하고 50억번다
그런데 중국가면 일년에 500억번다
 
그러니까 눈이 확ㅡ 뒤집혀서 욕을 듣든 말든

한국회사들이 지네한테 트레이닝 시켜주고 돈이며 시간이며
들어간 공로도 싹ㅡ 무시하고 중국으로 달려가는 겁니다

당시 여진족들의 행태가 이와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성계와 여진족 족장들 친했죠ㅡ 근데 그건 사적인 감정인거고
부족의 명운이 걸린 일  앞에서는 사감으로 하는게 아니예요ㅡ

조선이 여진족들을 포섭하려고 노력했습니다만
결국에 여진족 부족장들은 조선보단 명에 붙어요ㅡ

조선보다 명이 주는 이득이 많다싶으니 그쪽으로 빤스런 한겁니다

이지란 같이 오랫동안 이성계와 함께한 여진족이 참 특별한거지ㅡ
그래서 태조사당에 배향된거고

첨에 이성계한테 붙었다가 명쪽으로 기운 여진족 중에
누르하치의 8대조부인 몽케티무르도 있어요

우리가 여진족 포섭을 잘해서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요동을 사바사바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알겠지만

조선이 명보다 더 큰 이득을 보장하진 않는한 힘들죠
그렇다고 여진족들에게만 막대하게 퍼주면, 조선백성들이 가만 있었겠습니까?
          
구름위하늘 20-05-11 11:17
   
필요없는 내용 길게 쓰지 마시고,
금나라와 청나라가 성공했던 건을 우리는 왜 못한다고 단정하는지와
마케도니아와 로마는 어떻게 작은 소국에서 제국까지 성장했는데 조선은 못하는지를
반론으로 의견 주십시오.
- 답변이 길어질 것 같으면 마케도니아와 로마 2건은 빼주세오. 동양/서양이 다를 수 있으니.
               
mymiky 20-05-11 14:58
   
금청이 성공했으니 우리도 할수있다?

여진족들은 말타고 사냥하고 먹고 자고 그게 우리보다 생활화 되어 있던 민족입니다
사냥 몰이법이 곧 전투훈련이고 말안장 밑에 육포  뜯어먹으면서 사는게 자연스럽게 몸에 베인 사람들이죠

부족 생활하느라 그 힘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다가
건출한 능력자가 나와 부족 통일하고

때마침 중원왕조가 약해진 시기에 딱 타이밍을 잘 맞쳐서
대박이 난거지

걔들도 중원왕조나 한반도 왕조들이 한창 잘 나가고 있을땐 나대질 못 했습니다

한국인들은 여진족들보다 더 일찍 남하해서
이미 오래전에 농경 정주민족으로써 정착한지 오래구요

여진족들은 성인 남성 하나하나가 그냥 어릴때부터 타고난 군인들이지만
조선은 농부들을 능숙한 군인으로 훈련시키는데 드는 비용과 시간이 들죠

그 차이가 크죠

왜 명과 조선이 주기적으로 여진족들이 더 크기 전에 싹을 잘라버리는 일을
했을까요?  위에서 쓴 그런 민족이니까 ㅡ 걔들이 하나로 뭉치면 참 골아파지니까 그런겁니다

금청은 그런 민족들이라 한거고, 때마침 주변정세도 따라줘서 가능했던 겁니다

우린 쟤들과 다릅니다
고구려나 발해도  딱히 중원쪽 진출엔 별 관심이 없었던걸 보면
조선만 탓할건  아니죠

더욱이 조선은 중원에 건출한 통일왕조가 딱 들어서 있었고
또 하필이면 황제가 암군도 아니고 명나라 역사상 탑3에 들어가는 인물이
통솔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힘이 부족해 여진족들도 포섭해야 될 마당에

여진족장들은 조선보다 명에 쪼르륵  붙어버리는데?
조선보고 뭘 어쩌란건지ㅡㅡ?  전쟁을 주둥이로 할껀가?

조선은 능력도 안됐고,  주변정세도 따라주지 않아  실패한 겁니다
요동에 갔었어도 발한번 찍고
공민왕때처럼 다시 토하고 왔을 가능성이 더 높고
괜히 명한테 괘씸죄로 찍혀서  앞날이 어둑어둑 했을 확률이

이리봐도 저리봐도 이게 더 현실적임ㅡ결론, ( 역시 이방원이다!)
                    
구름위하늘 20-05-11 16:42
   
언급하신 것 처럼 여말조초에는 우리가 만주 부족에 우위.
언급하신 것 처럼 만주 부족은 강자에 의해서 흡수 합병되기 쉬운 조직문화
여기서 강자는 "경제적 부"보다는 "물리적 강함"에 가까움.

고려/조선 모두 북방 부대는 기병 중심이었고, 그것도 대규모로 운용했으며
특히 함경도 인근의 사람은 반 조선 반 여진이었음.

여말조초의 우리 민족과 만주족과의 관계는 흡수가 불가능한 원수관계도 아니고, 오히려 대표로 나설 수도 있었음. (고려왕들의 심양왕/심왕의 직위와 이성계의 여진족내 입지)

우연한 타이밍에 대박난 것이든 무수한 시도 끝에 성공한 것이든 성공은 성공이고,
그것을 우연의 결과로 평가절하할 이유는 없음. 로또1등에 당첨될 확률은 개개인에게는 마른하늘에 벼락맞을 확률이라도 나라 전체를 보면 거의 매번 1등이 나옴.

제 의견으로는 님의 주장은 금/청이 했는데 조선은 못했을 것이라 것에 반론이 못된다고 생각함. (로또 당첨자가 2명이나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음)
                         
촐라롱콘 20-05-11 20:53
   
압록강~두만강 이북지역은 당시 울 나라로서는 공세종말점에 해당하는 지역이었습니다.

특히 세종시기에 개척한 압록강 중상류지역의 4군의 경우에는 기껏 개척하고도

관리-유지의 어려움으로 인해 이후로도 무려 200년 가까이나 안정되지 못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누르하치가 여진부족들을 통일하고 복속된 여러 여진부족들을

건주여진의 본거지인 퍼알라-허투알라를 일대로 이주시킴으로 인해

압록강~두만강 유역의 여진족들이 거의 사라진 이후 시기부터 4군 6진은

비로소 안정될 수 있었습니다.
고구려거련 20-05-10 23:00
   
님들의 말씀이 맞습니다.

공민왕 때 요동정벌을 성공시켰으면 적어도 여진족 관리는 고려, 조선이 해야했겠죠.

(우왕 때 이성계가 요동의 동녕부 정벌해서 그 땅을 고려국토로 편입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지만..)
(잠시 점령했다가 병력 철수..)

그리고 요동정벌은 남쪽의 왜구들이 출몰하여 약탈을 여러번 했기 때문에 왜구에 신경쓰느라

요동정벌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을 것인데 말입니다.

흠 그나저나 감방친구님은 고대사(삼국시대)와 중세사(고려시대) 전문이신데 조선도 연구하시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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