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이 죽지않았다면 요동을 공략해 우리가먹고 원나라와 조선이 협공으로 명나라를 압박하며 국경선을 그대로 유지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서서히 (여진 흡수하며) 동북3성쪽 또한 넓혀 갔으면 어떠했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명나라도 조선을 무시못하며 동등한 관계가 유지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정도전이 요동정벌이 단순히 사병만 없애기 위한 쇼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 요동 정벌을 위해서 사병혁파는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 당시 명은 내부적으로 어수선했고 내전이 일어나거나 그럴 조짐인 상태였던걸 정도전은 일찍부터 알고있었습니다. 또한 요동의 방비또한 허술했고 요동을 공략후에도 원나라와도 협공으로 명을 압박하며 요동을 지키며했던것도 원과 어느정도 이야기가 있던걸로 보였고요.
말은 수복이라곤 하지만.. 그 수복이란게... 뭔 옜날이 아닌 고려시대 몽골에 직할지로 뺏기기 전까지
고려의 영토로 봅니다.
압록강 해석문제죠.
요하설.. 그게 정답으로 생각합니다
1388년 주원장의 조선에 대한 외교 협박문에서.
철령은 명나라 영토니 거기에서 내려가라고 하는데... 그 철령의 위치가.. 현재는 함경도로 보죠.
말이 않됩니다. 왜냐면 철령동쪽땅도 명나라것이라고 주장하니깐요.. 거기 철령동쪽이면 동해바다
아무리 봐도. 철령은 현재 테링시(철령시)밖에 없슴.
그말은.. 거기 요하(압록강= 압록강이란것도 물수변 압록강과, 실세변 압록강이 나뉩니다. 조선에서쓴 고려사는 죄다 실세변압록강=현재 압록강... 반면 당시 중국기록은 거의 대부분 물수변 압록강=요하... 그 의미는 조선 15세기중반 성리학자들이 고의로 소국사관에 의해 자국영토를 축소시켜 고쳤다임=일제 탓하기 전에)
그말은.. 거기 요하 지류가 3개가 있는데 현재 테링시(철령시)는 가장 북쪽의 지류인데.. 거기는 명나라 영토다.
안나가면 전쟁이다 협박하는것... 그말은.. 요하(=물수변 압록강)가 조선명의 기본 경계고... 북쪽의 지류중 철령시를 지나는게 아닌, 그밑에 요하의 지류강이 조선과 명의 경계란 말을 주원장이 협박하는것임...
거기는 현재 센양시를 통과하는 강이죠.
거기가 당시 조선-명나라의 경계였습니다.
그래서 강남6주라 안불리고 강동6주였고.. 그렇기에 남으로 발해가 나온것이고.. 보다보면 너무나 당연한 산수임
천리장성도 당연히 엉터리죠. 매한가지 거기 기본 요하(물수변 압록강) 주변 남만주 산악지대를 둘러싼형태일것
그렇기에 고려시대 북경이 아니고 서경이 된것이고(요양=평양) 고려시대도 고구려수도 평양은 고려것이었다는.. 상식적으로 묘청의 난이 서경서 발생했는데.. 개성서 평양까지 얼마된다고..그 지형이 한반도서 가장 평야지대중 하나인데.. 반란군입장 방어가 가장 어려운곳인데.. 거기서 반란을 일으킵니까? 요양입니다.
귀주대첩도 저 남만주 강이었을것
명나라에서 편찬한 원사지리지에 현재 조선에서는 평양을 고대평양으로 아는데 저것들 바보다. 요양이 평양이다라고 대놓고 나온다던..세종대왕은 평양위치를 몰랐죠
그러다가 몽골에 직할지로 뺏긴것이고.. 워낙 고려인이 많으니 애초 고려영토니 심양왕을 뒀던것이고.
몽골이 힘약해지자 탈환한것이고. 주원장이 물수변 압록강이 경계임은 인정하지만, 그중 지류에 대해서 남쪽으로 내려가라 협박한게 주원장의 외교문서이고.
조선의 속국사상하 요동지역은 스스로 줄어들고(조선전기도 현재 실세변 압록강 북쪽은 어느정도까진 유지했던모양), 대신 동쪽 여진쪽으로 넓히려 했으나(선춘령,공험진=현재 조선족자치구 북쪽 항카호수 남쪽 중러국경 수이펀강 옆). 여의치가 않았던
그러다가 청나라 들어서서 봉금령으로 확인사살쯤.. 상식적으로 봉금령이.. 지들말하는게 말이 않되고. 버퍼존은 1차대전 라인란트를 봐도.. 승전국이 패전국의 영역에 세우는것이죠...
구한말 어캐저캐 들었는지 간도타령으로 넘어가보려다.. 일제가 중국에 도장찍고 넘기고. 어영부영
조선은 고려를 철저히 부정했던 국가이고(왕씨 무조건 싹다죽임.왕 그림도 싹다 없애버림..세종대와서야 좀 약해짐), 철저한 화이중심사관을 가진 속국사관을 가진 나라였슴.. 지들보기에도 주원장이 워낙 어거지를 부렸던지.. 정도전같은경우 일단 물러났다가도 다시 가자고 한적있슴.
이성계가 근본적인 문제죠. 그 사관의 근본이니깐.
또 댓글이 달려서 못썻는데... 조선이 화이사관에 의해 편찬한 고려사에 보면... 고의로 영토를 축소한게 더 확실한게...
압록강에서...물론 물수변 큰 압록이 아닌... 실세변 작은압록할때 록... 지들이 보기에도
너무 말이 않된다싶은 글귀는.. 록짜를 아예 빼버립니다.. 압강이라고 둘러대버리죠.
능력도 않되는데 협박하니 포기하고 훗날 합리화한거겠죠. 하지만 일단 갔죠. 능력이 딸리는건 맞을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고..
맞을수도 잇다는것은 당시 왜구등 외침이 매우 심해 보급역량이 않됫을수 있는건 맞음
아닐수도 있다는것은 훗날 열하일기에도 나오듯 당시 사람들부터가 예전부터 고려땅이란걸 어렴풋이 알고있다는 홈그라운드의 이점일듯.
고려는 요하를 경계로 남만주에 있었습니다. 그나라 서북을 경계로 요나라였고, 고려의 만주 동쪽이 금나라 였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요나라가 여진족을 치기위해 고려에 길을 빌려달라고 했던것.
주변국 정세가 중요한 것은 맞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그 나라 사람의 의지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에는 강대국 사이에 끼어있지만 자주성을 지켜온 사례도 상당히 많습니다.
-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피렌체나 베네치아 등등은 이탈리아라고 하지만, 그때에는 이탈리아라는 국가 실체가 없던 시대였습니다.
- 독일도 비슷하게 통일독일이 없는 상태에서도 프로이센은 작지만 자주성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프로이센도 초기에는 폴란드 식민지 비슷했고, 다른 유럽국가와 다툴 떄에도 제국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전쟁이 불리한 상황에서 진행되었고, 심각한 지원역량 차이로 패망 직전까지 간 경우도 여러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