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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5-06 18:40
[북한] 정치적이지 않고 오직 (진실,사실적인 김일성 인생,역사) 26편.
 글쓴이 : 돌통
조회 : 699  

25편에 이어서~~

 

 

김성주가 송무선과 만난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후에 김성주와 함께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에 소속되었던 송무선은 제1로군 2사 정치부 조직과장과 주임, 그리고 사단장 대리직을 맡기도 하는 등 줄곧 정치부문에서 요직을 담당했다. 김성주는 회고록에서 송무선에대하여 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러나 길림 육문중학교에서 만나 그에게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던 일에 대하여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가 송무선의 소개로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원이 된 사실은 더욱 비밀에 붙여지고 있다. 한편 김성주는 송무선 뿐만 아니라 그의 중국 공산당 입당 소개자도 과연 누구였는지에 대하여 일절 꺼내지 않고 있다.


그러나 1945년 8월, 주보중과 최용건이 하바롭스크에서 중국 공산당 동북국에 제출할 항일연군 잔존 인원들의 인사당안을 만들 때 김성주는 입당소개자에다가 ‘왕윤성’ 대신에 ‘한별’과 마천목을 써넣었다.

 

그 무렵 왕윤성은 이미 소련 내무부에 의해 체포되어 징역 8년형에 언도되어 형기를 살고 있을 때였고 송무선 역시 양정우가 죽고 나서 일제에게 체포되어 감옥에 갇혀있었다.


***  육문중학교




대신 김성주는 길림 육문중학교에서 만났던 스승 상월(尙鉞)에 대하여 잔뜩 회고하고 있다. 사실 상월의 나이는 김일성보다 10살밖에 많지 않았다. 본명은 종무(宗武), 자는 건암(健庵)이었는데 사중오(謝仲五), 정상생(丁祥生), 섭수선(聶樹先), 사반(謝潘) 등 여러 개의 별명을 사용하였고 그 외에도 작가와 학자로서 의극(依克), 자단(子丹), 하남나산현인(河南羅山縣人)같은 필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는 1921년 북경대학에서 영국문학을 전공하였고 노신이 편집하고 있었던 ‘망원’(莽原)이라는 잡지에 소설 ‘부배집’(釜背集)을 발표하여 호평을 받기도 하였다. 이렇게 아주 다재다능한 젊은 학자형의 공산당원이었던 상월에게 반한 학생들이 아주 많았다. 김성주도 물론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상월을 길림 육문중학교에 취직시켜주었던 사람도 역시 중국 공산당원이었고 1986년에 중국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까지 되었던 유명한 교육자 초도남(楚圖南)이었다.

 

상월이나 초도남이나 모두 중국 공산당의 창건자 가운데 한 사람인 이대소의 영향으로 이 길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로 길림지방에서 오랫동안 활동하였던 초도남은 결국 길림시에서 학생운동을 지도하다가 체포되어 1930년부터 1934년까지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어쨌든 상월을 만나게 된 김성주는 그의 숙소 서가에서 평생 구경해보지 못했던 수백 권의 책들을 구경하게 되었다. 서가에는 조설근의 『홍루몽』도 있었고 노신의 『아큐정전』도 있었으며 고리키의 『어머니』도 있었다. 책에 반한 김성주가 이 책, 저 책 정신없이 뽑아내는 것을 보고 상월은 빙그레 웃으면서 권했다.


“성주야, 한 번에 많이 가져가지 말고 한 권씩만 가져다가 다 읽고 또 와서 다시 가져다 읽고 그래라.”
김성주는 소문으로만 많이 들어왔던 『홍루몽』을 손에 들었다. 그러자 상월은 말렸다.
“너는 이 책을 읽어도 뜻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다른 쉬운 책부터 먼저 읽어보려무나.”


“그럼 선생님, 추천해주세요. 어느 책부터 읽으면 좋을까요?”
“고리키의 『어머니』나 장광자 선생의 소설집 『압록강가에서』 아니면 『소년방랑자』도 모두 좋은 작품들이란다.”


상월은 특별히 『압록강가에서』를 추천했다. 상월 자신도 각별히 숭배하는 당대의 젊은 작가이자, 1921년 코민테른 제1차 대표대회의 참가자의 한 사람이기도 하였던 장광자(蔣光慈)의 최신 단편소설집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들은 모두 압박과 착취를 당하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부득불 반항하여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생활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단다. 특히 재작년에 나온 『소년방랑자』보다는 올해 나온 이 소설들 쪽이 사상성과 문학성 면에서 훨씬 더 성숙하였고 혁명적인 문학가로서 장광자 선생의 풍모를 엿볼 수도 있단다.”


1927년 1월 상해의 아동도서관(亞東圖書館)에서 출판한 이 소설집은 한창 공산주의 혁명이 일고 있었던 중국의 대륙에서 선풍과도 같은 인기를 일으키고 있었다. 1920년대를 풍미했던 별과도 같았던 젊은 작가 장광자, 그러나 그는 1931년 8월 31일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뜨고 만다. 김성주가 그의 소설을 읽고 있었던 때로부터 4년 뒤였다.


상월은 김성주뿐만 아니라 많은 학생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그가 유독 김성주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가 중국말을 아주 잘하는 조선인 소년이었기 때문이었고 또 장광자의 소설 『압록강가에서』에서 내세우고 있는 주인공도 이맹한과 운고라는 조선의 청춘남녀였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욱 주요한 것은 김성주가 ‘김일성’으로 다시 거듭났기 때문이었다.


1950년대에 중국인민대학에서 역사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곽말약(郭沫若)과 상충하는 역사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상월은 모택동이 곽말약의 견해를 지지하는 바람에 대대적으로 사상비판의 대상이 되고 말았는데 중국의 ‘인민일보’(人民日報)가 상월에 대한 비판 특집을 만들어낼 지경이었다. 상월에 대하여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상월은 한때 만주성위원회 비서장직에 있다가 당적을 제명당했던 적이 있었다. 1950년대 초엽에 공안부 정치보위국에서 이 일을 조사하고 있었는데 담당 국장이 김일성과 항일연군에서 함께 싸웠던 전우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국장이 직접 상월의 자료를 보다가 ‘선생은 1927년에 길림 육문중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했으면 혹시 김일성 원수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 하고 물었단다.

 

상월은 김일성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지라 ‘모른다.’고 대답했더니 국장이 다시 ‘그때는 김성주라고 불렀다’고 알려주니 그때서야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김성주가 지금의 김일성 원수라는 말인가? 그럼 그는 내 학생이 맞다. 나는 길림 육문중학교 시절 그의 어문교원(교사)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나와 소년 시절의 김일성 원수와의 역사적 관계’라는 회고문도 한 편 남겼다. 그는 반우파 투쟁 때 얻어맞느라고 정신이 없었는데 얼마나 극심했냐면 아내까지 핍박에 못 이겨 xx을 했을 정도였다.

 

그런 상황이었던지라 은근히 김일성이라도 자기를 찾아서 옛 은사로 인정해줄 것을 바랐으나 아무리 편지를 보내도 바다에 돌 던진 격이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김성주는 상월이 죽은 지 10년이나 더 지난 1992년에야 회고록을 발표하면서 갑작스럽게 상월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회고록에서 “길림을 떠난 상월 선생은 한때는 만주성당위원회에서 비서장으로도 활동하였다고 한다.”는 말도 써넣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길림을 떠난 상월은 한동안 도남의 앙앙계 제5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지내다가 1930년 5월 상해로 전근하게 되었다. 그는 전국중화총공회에서 근무하면서 중국 공산당 중앙조직부가 꾸리는 ‘붉은 기 일보’(紅旗日報)의 취재부 주임을 맡아 총공회 책임자 임중단(任仲丹)과 각별히 가깝게 지냈다.

 

1931년 ‘9·18 만주사변’ 직후 임중단이 만주성위원회 서기로 파견되었을 때 함께 따라와 임시 비서장직을 맡기도 했으나 얼마 뒤 바로 당적을 제명당하고 코민테른에 가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신세가 되었다.
1937년이 되어서야 상월은 서안에서 동필무와 만나 비로소 당적을 회복하고 곽말약의 밑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때 곽말약은 국민정부군사위원회 정치부 제3청 청장이었고 상월은 도서자료실에서 중좌과장으로 임명되었다. 주은래가 직접 그렇게 배치하였던 것이다.


상월이 죽은 뒤에 그의 딸 상가제(尙嘉齊)와 상효원(尙曉援) 등은 북한에서 크게 대우받았다. 그러나 대우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아주 많다. 길림 시절 그의 공산당 입당 소개자였던 송무선은 물론이거니와, 직접 그를 중국 공산당원으로 발전시켰던 한별은 어디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이는 한별이라는 이 이름까지도 김성주가 자기의 이름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이상..                      27편에서 계속~~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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