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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5-03 23:56
[북한] (하얼빈 특종) 조선족 이민 여사의 증언.11편..
 글쓴이 : 돌통
조회 : 391  

10편에 이어서~~

 

―金日成(김일성) 부자의 개인숭배주의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개인숭배주의는 물론 좋지 못합니다. 스탈린, 毛澤東(모택동)도 그랬고 金日成(김일성), 金正日(김정일)은 더욱 철저했지요. 이것은 사상이 해방되지 못한 결과입니다.

 

남다른 생각과 재능을 갖춘 지도자는 물론 위대합니다. 그러나 그가 인민들의 서로 다른 의견과 목소리를 허용하고 잘 가려 들을 수 있다면 더욱 위대할 것입니다. 개인숭배주의는 결국 민족과 국가에 나쁜 영향만 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 개혁·개방 가로막는 主體(주체)사상은 잘못


―주체사상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주체사상의 골자를 독립·자주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독립·자주는 물론 올바른 정책이며 한 나라와 한 민족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원칙이지요. 그러나 20세기 말까지 온 오늘의 상황에서 국제적인 환경에 발맞추어 함께 가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自主(자주)만 고집하면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독립·자주는 남의 간섭을 반대하고 인격을 세우는 데서는 없어서는 안 될 정신이지요. 그러나 그 참뜻을 잘못 해석하여 나라의 개혁·개방을 가로막는 방패가 된다면 이것은 독립·自主(자주) 정신의 요체와는 모순되는 것입니다.

 

독립·自主(자주)는 원칙이고 개혁·개방은 방법이기 때문에 양자를 잘 조화시키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겠지요. 역사적으로도 그런 예가 많습니다』



―陳雷(진뢰) 省長(성장)과의 로맨스를 듣고 싶습니다.



『우리는 1938년 봄 오동하에서 선생과 학생으로서 만났습니다. 抗日聯軍(항일연군) 6군에서 나는 교도대 학생, 그는 군부 조직과장으로 교관이었지요.

 

그 당시 15세인 어린 소녀가 남녀간의 감정을 무얼 알았겠습니까. 순수한 교관과 학생 사이였어요. 그 해 7월 그는 西征(서정) 부대와 함께 전선으로 떠났습니다.

 

우리가 다시 만난 것은 1941년 소련의 野營(야영)에서였지요. 趙尙志(조상지)가 北滿(북만) 省委(성위)와 의견이 대립되어 黜黨(출당)당하는 바람에 그 수하에서 선전부장을 맡았던 그도 黨(당)에서 제명당하는 처벌을 받았습니다.



陳雷(진뢰)는 얼마 안 있어서 동북의 戰場(전장)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습니다. 떠나는 날 밤 뜻밖에 그가 나를 찾아왔습니다. 할 얘기가 있다고 나를 불러냈어요. 西征(서정) 길에서의 전투 이야기, 나의 오빠를 포함하여 戰死(전사)한 戰友(전우)들 이야기, 그러다가 지난날 교도대 시절의 이야기, 온통 부대 이야기들을 늘어놓았지요.

 

그러다가 갑자기 西征(서정) 길에서 오빠가 나를 자기에게 시집보내겠다고 농담한 얘기를 꺼내더라구요. 물론 우스개로 받아들이고 그냥 지나치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쪽에서는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가 진지하게 물어오는 거예요.

 

그제야 저도 그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차렸지요. 그러나 그 자리에서 무어라고 선뜻 대답할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아직 나이도 어리고 사랑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지요. 그러자 그도 더는 묻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계속하더군요. 내 기억에 그날 우리는 꽤 오랜 시간을 이야기로 보낸 것 같았어요. 다음날 아침 그는 전선으로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큰 파문을 일으킬 줄은 몰랐어요. 그날 아침 兵營(병영)에는 나와 陳雷(진뢰)가 연애한다는 포스터가 나붙고 내가 품행이 방정하지 못한 여자라는 소문이 온 주둔지에 쫙 퍼졌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지요.

 

게다가 일이 여기서 끝난 것도 아니었어요. 상급자들에게 몇 번 불려가서 訊問(신문)을 받았습니다. 어제 저녁 陳雷(진뢰)와 무슨 얘기를 했는가? 陳雷(진뢰)가 무슨 나쁜 말을 하지 않았는가?

 

당시 陳雷(진뢰)가 黨(당)에서 제명당했기 때문이었지요. 나는 무얼 감출 것도 없고 그렇다고 없는 말을 만들어 陳雷(진뢰) 동지를 모함할 생각도 없었어요. 그저 사실대로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상급자에게 말했습니다.



솔직히 나는 陳雷(진뢰)동지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어요. 학문이 깊고 믿을 수 있는 분이었기 때문이었지요. 내심 그를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차례 신문을 해 보았지만 무슨 꼬투리를 잡아내지 못했지요.

 

그래도 상급자들은 나를 처벌했습니다. 黨(당) 小組(소조) 조장 직을 떼어버렸어요. 나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저 어리벙벙한 사이에 시간이 지나면서 사건도 가라앉았지요. 풍파를 겪은 후 나는 일체 잡념을 버리고 학습에 전념했습니다. 마침 병영 도서관 「레닌 텐트」를 관리하면서 병영의 壁報(벽보) 편집도 맡아 하는 바람에 공부하기는 좋았어요.


*** 야전병원에서 부상당한 陳雷(진뢰)와 再會(재회)




그로부터 1년이 지난 1942년 나는 陳雷(진뢰)를 다시 만났습니다. 그때 전선에서는 抗日聯軍(항일연군)이 패전하여 많은 부상병이 야영으로 실려왔습니다. 나도 야전 병원에서 부상병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었어요.

 

제일 나중에 실려 온 부상병이 내가 맡았던 침대에 옮겨졌습니다. 아, 이게 웬일입니까. 바로 陳雷(진뢰), 그 사람이었습니다. 왼팔의 동맥이 끊어져 있었어요. 철사로 꼭 동여맸으나 지혈이 되지 않아 약솜을 말아 동맥에 쑤셔 넣고 여기까지 온 것이에요. 그의 팔과 손은 벌써 시퍼렇게 죽어 있었지요.



나는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이런 鬪士(투사)를 反(반)혁명 분자라고, 타락한 地主(지주)의 후손이라고 黨(당)에서 쫓아내다니! 이렇게 철저하고 굳센 혁명가를 사랑하지 않고 누구를 사랑한다는 말인가.

 

나는 눈물을 흘리며 그의 상처를 처치해 주었습니다. 정신이 든 陳雷(진뢰) 동지는 눈물을 흘리는 나의 마음을 잘 알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을 뿐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가슴속에 삼키고 눈물로써 우리의 사랑을 굳게 약속한 것입니다.

1942년 5월19일, 드디어 陳雷(진뢰) 동지는 그의 용감한 투쟁이 공정한 평가를 받아 中共(중공) 黨籍(당적)을 회복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만날 수가 없었어요. 어느 날 남자들의 병영에서 전체 회의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 회의에서 그를 만나볼 것을 기대하고 미리 편지를 썼습니다. 회의 장소에 들어가서 나는 陳雷(진뢰) 동지가 앉았던 침대에 걸린 외투 호주머니에 몰래 써온 편지를 살짝 밀어 넣었어요. 편지는 나의 마음을 전하는 내용이었습니다.



「黨(당)을 믿고 민중을 믿어야 한다. 언제든지 문제는 정확히 밝혀질 것이다. 자신의 건강을 잘 지켜야 한다. 건강해야만 모든 문제의 해결을 기대할 수 있다. 내 걱정은 할 것 없다. 내 마음은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다」


*** 준엄한 시련 겪은 사랑은 흔들리지 않아


우리는 그렇게 사랑을 키우고 또 지켜왔습니다. 그처럼 준엄한 시련을 겪은 사랑은 그후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했어도 흔들려 본 적이 없지요. 1943년 결혼식을 올린 우리는 이미 金婚式(금혼식)을 지내고 결혼 60주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陳雷(진뢰) 동지가 흑룡강성 省長(성장)으로 계시고 여사님이 省(성) 民族事務委員會(민족사무위원회) 주임으로 일하실 때, 우리 민족을 위하여 많은 일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민족을 위하여 별로 한 일이 없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사실 해방 후 교육분야에서 4년, 공장에서 10년, 감옥에서 5년, 노동조합에서 5년 일하다 보니 조선족과 접촉할 기회가 아주 적었지요. 그러다가 갑자기 민족 사업을 맡게 되어 좀 생소합니다.

 

그러나 黨(당)에서 맡겨준 일이고, 민중들의 신임이라고 생각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잘해야겠다는 사명감을 느낍니다. 우리 省(성)의 조선족은 혁명전쟁 시기에 승리를 위하여 큰 몫을 했으며, 다른 소수 민족들도 중요한 역할을 했지요. 나의 민족 사업은 소수민족들의 생활 향상과 산업 발전 및 문화예술 진흥으로 요약됩니다.



나는 우선 실상을 파악하기 위하여 우리 省(성)의 조선족 마을과 허저族(족) 호르존族(족), 몽골族(족) 마을들을 거의 다 한번씩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서로 다른 생업에 따라 각각 다른 지원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지난 3년간 소수민족 생산발전 교류대회를 열어 서로 남을 배우는 자리를 만들었지요.

 

결국 낙후한 소수민족들의 경우 문화수준이 높은 관리자가 없다는 사실을 조사를 통하여 알 수 있었습니다. 소수민족지구의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우선 유능한 소수민족 간부를 양성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래서 흑룡강 소수민족 간부학교를 세웠지요.



학교가 준공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우선 학생들을 뽑아서 그날부터 수업을 시작했어요. 관리 전공은 경제관리학교에, 정치전공은 당 학교에, 기타 학과는 다른 종합대학에 위탁하여 학교가 준공될 때까지 모두 밖에서 공부하고 모였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소수민족간부학교는 지금까지 많은 간부들을 양성하여 생산 일선에 내보냄으로써 소수민족 경제와 문화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고 자부합니다.



소수민족 고유의 문화예술과 민속은 소수민족의 중요한 상징입니다. 이를 계승 발전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중국 공산당의 소수민족 정책의 골자입니다. 나는 牧丹江(목단강)에 흑룡강성 조선민족 가무단을 만들고, 黑河(흑하)에다 호르존族(족) 가무단을, 通江(통강)에는 허저族(족) 가무단을 각각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하얼빈에 대형극장 조선민족문화궁전을 지었지요. 지금도 사람들은 내가 민족종교사무위원회에 있던 시기를 소수민족 문화예술발전의 황금기라고들 하지요.



소수민족들은 대부분 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산골과 변방에 살고 있습니다. 기차를 보지 못한 아이들도 많아요. 나는 소수민족 학생들의 여름방학 여행 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우리 省(성)의 名勝 古蹟地(명승 고적지)를 돌아보며 역사를 배우고 시야를 넓혀주었지요.

 

가는 길에 烈士碑(열사비)나 혁명 戰迹地(전적지)에 들러 혁명 교육도 시켰습니다. 1982년부터 10년간 민족사무위원회 주임으로 일하느라고 했지만 돌이켜보면 별로 해놓은 것이 없습니다』

 

 

이상..                  12편에서 계속~~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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