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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4-30 21:03
[북한] 정치적이지 않고 오직 (진실,사실적인 김일성 인생,역사) 21편..
 글쓴이 : 돌통
조회 : 635  

20편 이어서~~

 

여기서 잠깐..  팩트 사실 한가지..

 

**  여기서 조선혁명군이라는 것은 량세봉장군이 사령관으로 계셨던 조선혁명군과 다르며북조선에서 주장하는대로 김일성이 창건하였다는 조선인민혁명군과도 다릅니다. 정확한 명칭은 조선혁명군 길강성지휘부인데 사령장은 이종락이였고 이들은 원래 모두 량세봉장군의 조선혁명군에 소속되여 있었던 사람들인데 사회주의 사상에 물들게되면서 량세봉장군의 부대에서 탈출하여 따로 길강성지휘부라고 이름을 달고 오늘의 장춘시 구태현 부근의 카륜진에 본거지를 틀고있었습니다. 이종락을 따라왔던 김일성 즉 어린 김성주는 이종락의 부대에서 보통 평대원으로부터 시작하였고 세금을 징수하러 다녔던 모양입니다.

 

***  -오동진의 체포- 

 

우리가 너무나도 해놓은 일이 없잖은가. 더구나 독립군의 우두머리들 과반수가 모두 평북 출신이라는 소문이 총독부 안에도 파다하게 퍼져있다네. 그 가운데서 제일 대표적인 우두머리 몇 놈을 잡아서 신임 총독 각하께 바치세.”


김덕기는 이때 평북 경찰 고등계 주임이었다. 그는 일찍이 경부로 지내던 1923년에 약산 김원봉의 의열단이 경기도 경찰부의 현직 경무인 황옥을 포섭하여 암살에 쓰일 폭탄을 국내로 반입하여 조선총독부와 동양척식회사, 조선은행, 경성우편국 등 일제의 주요 적성(適性) 기관들을 박살내려고 했던 계획(의열단 제2차 대암살, 파괴 거사)을 미리 탐지하고 좌절시켰을 뿐만 아니라 김시현, 황옥, 조동근, 홍중우, 백영부, 조영자 등 의열단의 관계자들을 모조리 검거하여 감옥에 잡아넣었던 조선인 악질 형사였다.

 

그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조선총독부로부터 경찰 최고의 포상인 공로기장을 받기도 했다.
“우두머리 몇 놈이라고 하면 주임께서는 확실히 누구누구를 마음속에 담아두고 계십니까?”


김덕기는 은근한 표정으로 이선근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일단 자네가 제일 손쉽게 해치울 수 있는 자가 한둘 있다면 이름을 대보시게나.”
“주임께서 어떤 자를 제일 먼저 잡아들이기를 원하시는지, 제가 시키는 대로 바로 일을 벌여보겠습니다.”


김덕기의 말에 이선근은 크게 기뻐하였다.
“아, 내사 우리 평북 출신의 ‘일목장군’(一目將軍), ‘흑선풍’(黑旋風)부터 잡아들일 수 있다면야 오죽 좋겠나. 성공만 한다면 총독 각하께서도 무척이나 좋아하실 걸세.”
“혹시 이진무14를 말씀하십니까? 아니면 오동진을 말씀하십니까?”
김덕기는 일시 얼떨떨했다.
“에잇, 이 사람아, 당연히 오동진이지.”


두 사람에게 모두 ‘일목장군’과 ‘흑선풍’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는 탓이었다.
“언젠가는 이진무도 잡아들여야 하겠지만 아직은 새파랗게 젊은 이진무보다는 먼저 영감 소리를 듣고 있는 오동진 같은 거물부터 빨리 제거해야 하네.”
애꾸눈이었던 이진무의 별명이 ‘독안용’과 ‘일목장군’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때까지 오동진 수하의 정의부 제5중대장 김석하(金錫河)의 대원이었을 따름이었고 오동진이야말로 김좌진, 김동삼과 더불어 만주의 ‘3대 맹장’으로 불리고 있었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러잖아도 마침 좋은 정보가 있습니다.”


김덕기는 이선근에게 오동진을 유인할 수 있는 방법을 내놓았다.
“올 2월에 장춘에서 검거되었던 정통단(正統團)을 만든 김종범(金鍾範)이란 자가 생각나십니까?”
“얼마전에 대련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받았던 것으로 아네.”


“네. 그때 그자와 함께 검거되었다가 전향서를 쓰고 나온 친구 하나가 있습니다. 장춘 영사관의 경찰이 일을 비밀에 붙여두고 그 친구를 계속 정의부 쪽에 잠복시켜 일을 돕게 하고 있는데 그가 오동진의 각별한 신임을 받고 있는 모양입니다.

 

얼마 전에는 또 오동진의 부탁을 받고 여순에서 복역 중인 김종범의 면회도 다녀오곤 했나봅니다. 제가 장춘으로 가서 그쪽 경찰들과 합작하여 직접 이 친구를 한번 움직여보겠습니다.”
김덕기는 치밀하게 작전을 짰다. 그는 몰래 김종범을 만나 다음과 같이 시켰다.


“독립군이 지금까지 한 번도 오동진이와 한 고향인 평북 출신 천만부자 최창학의 집을 습격하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두고 있는 원인이 여간 궁금하지 않단 말일세. 자네가 한번 오동진에게 자청하고 나서보게나. 최창학을 찾아가서 군자금을 얻어오겠다고 말일세.”


그러잖아도 3부 통합을 추진하면서 무척 돈이 필요했던 오동진은 김종원이 최창학에게로 다녀오겠다는 말을 듣고 철썩 무릎을 때렸다.
“내가 미처 이 광산대왕을 생각하지 못했군. 이 친구라면 군자금을 내놓을지도 모르지.”


평북 구성군 출신으로 삼성금광(三成金鑛)을 창설하고 조선 최대의 광업자이자 천만장자가 되었던 최창학(崔昌學)의 집을 습격하여 그에게서 돈을 빼앗아오자고 오동진에게 건의했던 사람들도 과거에 여럿 있었다.
“우리 독립군이 아직까지 한 번도 이 친구 집을 습격했던 일이 없으니, 자네가 직접 가서 나의 이름을 대고 군자금을 좀 달라고 하면 어쩌면 군말 없이 내줄지도 모를 일이네.”


김덕기가 짜놓은 작전인줄을 알기가 없는 오동진은 김종원을 최창학에게로 보냈다. 그러나 최창학은 조선으로 가지 않았고 김종원과 함께 장춘 일본영사관의 밀실로 기어들어갔다. 장춘 영사관을 관리하고 있는 하얼빈 일본 총영사관의 특무들도 장춘으로 몰려들었다.

 

이선근도 또한 김덕기를 돕기 위하여 신의주 경찰대를 장춘지방으로 파견하였다.
김종원은 최창학이 장춘에 도착했고 역 부근의 신음하(新蔭河)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고 오동진을 속여 넘겼다. 길림에서 장춘을 잇는 길장선 열차에 올라탄 오동진은 너무 긴장하여 새파랗게 질려있는 김종원의 얼굴에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는지 열차가 흥도진(興陶鎭)까지 왔을 때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자네가 가서 최 사장 보고 길림으로 오라고 하게. 난 여기서 내릴 테네.”
오동진은 흥도역에서 불쑥 내렸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신의주에서 파견 받고 나왔던 경찰대가 두 갈래로 나뉘어 벌써 흥도역 플랫폼에서도 대기하고 있었다. 베테랑 고등계 형사인 김덕기가 이와 같은 변수가 생길 것을 미리 짐작하고 대비했던 것이다.


그길로 신의주로 압송된 오동진에 대한 판결은 자그마치 6년이란 긴 시간을 끌었다. 그는 감옥에서 단식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광기를 부리기도 하여 정신병자들을 전문적으로 수용하는 공주형무소에서 복역하기도 했다.

 

한편 오동진의 체포는 정의부에 있어서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오동진이 체포되었던 이듬해인 1928년 2월까지도 남편이 체포된 줄을 모르고 지냈던 오동진의 부인 이양숙(李陽淑)은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를 보고서야 깜짝 놀라 신의주로 면회를 왔다고 한다.

 

두 달 뒤인 4월에는 또 정의부(正義府) 10중대원인 김여연(金汝連)과 최봉복(崔鳳福) 등이 오동진을 구출하기 위하여 입국하다가 역시 신의주에서 체포되었다.


오동진은 사망 직전 공주형무소에서 복역하였는데 형무소 내에서도 그의 위상이 얼마나 컸던지 일본인 형무소장은 그와 면담을 할 때면 반드시 먼저 경례를 하는 예를 갖추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광복을 한 해 앞둔 1944년 12월 1일,몸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그는 결국 모진 옥고 끝에 옥사하고 말았다.


광복 후 1949년 2월 8일, 오동진이 죽은 지 5년째 되던 해에 김덕기도 오늘의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 녹촌리 344번지에서 반민특위가 파견한 특경대에 의해 붙잡힌다. 14년간 일제의 고등경찰로 지내면서 온갖 반민족 행위를 일삼은 그는 결국 사형에 언도되었는데 이승만이 반민특위를 해산시키는 바람에 사형을 면하고 ‘6ㆍ25 한반도 전쟁’ 직전에는 감형까지 받고 풀려나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나 천벌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역시 오동진과 한 고향 평북 출신으로 정의부 독립군에서 활동하다가 오동진과 비슷한 시기에 체포되어 19년 동안이나 옥고를 치르고 광복으로 석방되었던 정이형(鄭伊衡)15의 딸 정문경이 남긴 증언에 의하면 김덕기는 감옥에서 풀려나온 지 얼마 안 되어 오늘의 성북구 정릉동 근처의 야산에서 산보를 하던 중 갑자기 귀신에게라도 홀린 듯이 벼랑 쪽으로 걸어가다가 스스로 추락하여 죽었다고 한다.


 

이상..       22편에서 계속~~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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