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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4-20 04:22
[북한] 정치적이지 않고 오직 (진실,사실적인 김일성 인생,역사) 13편..
 글쓴이 : 돌통
조회 : 819  

13편..

 

이관호는 포평으로 가는 사람을 통해 남사목재소에서 서사로 일하는 황 씨라는 사람한테 김형직이 후창경찰서에 잡혀와 있다고 소식을 전하면서 절대 자기로부터 소식이 새어나온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해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였다.

 


후창에서만 10여 년 넘게 순사노릇을 해오다가 후에 순사노릇을 그만두고 광산업에 손을 댔던 이관호는 1945년 광복 이후 남쪽으로 나가는 길이 막혀, 성과 이름을 감추고 중국 쪽으로 도망쳐 나왔다가 중국 연변의 세린하(細麟河) 태양령(太陽嶺, 團結大隊)이라고 부르는 동네에서 순사교습소 시절 함께 훈련받았던 적이 있었으나 지금은 중국 정부로 부터 역사반혁명분자로 낙인 찍힌 친구와 만나 “이북에서 나온 ‘김일성 장군’이라는 사람이 그 김형직의 아들일 줄은 누가 상상인들 했겠소. 그때 내가 직접 김형직을 구해주지 않았던 것이 후회되오.”라고 한탄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김성주의 회고록에서는 아키시마라는 일본인 순사부장의 이름은 나오지만 이관호라는 조선인 순사의 이름은 일절 나오지 않고 있다. 평안북도 후창군에서는 아키시마보다는 이관호가 훨씬 더 유명하였다.

 

1923년부터 줄곧 후창경찰서와 포평경찰관주재소 순사로 10여 년 넘게 근무했는데 1932년 ‘만주사변’이 일어나던 해에는 압록강을 건너 장백현 쪽으로 들어가 독립군 소탕 작전에도 직접 참여하는 등 굉장하게 나쁜 짓을 많이 했다고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전하고 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34년 3월 1일에는 만주국 정부로부터 건국공로장을 받았고 또 일본으로부터도 훈8등 욱일장을 받기도 하는 등 일제에게 굉장히 충성하였던 이관호가 김형직의 부탁을 받고 황 씨라는 김형직의 친구에게 소식을 전해준 적이 있었다는 사실도 상식을 뛰어넘는 아이러니다.


어쨌든 덕분에 황 씨가 달려와서 김형직을 압송하던 경찰들이 연포리라고 부르는 한 주막집에서 밥을 시켜먹고 있을 때 접근하여 경찰들에게 술을 권하여 취하게 만들고는 김형직을 빼돌렸다. 그때 탈출에 성공한 김형직은 며칠 동안을 산속에서 헤매야 했다.


 

***  동상(凍傷)




경찰들이 김형직을 잡으려고 후창에서부터 죽전리에 이르는 압록강 유역을 뒤졌으나 모두 헛물만 켜고 말았다. 경찰들은 김형직이 반드시 다시 압록강을 건너 팔도구 집 쪽으로 가리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며칠 동안 경계망을 치고 기다렸으나 김형직이 나타나지 않자 사복경찰이 팔도구에까지 찾아와서 그의 집을 감시하였다. 한편 오동진은 참의부 소대원들을 이끌고 평북지방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양세봉에게로 사람을 보내어 김형직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형직이 그 사람이 나와 우리 독립군에는 아주 소중한 사람이니 감옥을 습격해서라도 꼭 구해내도록 하게. 필요하다면 무엇이든지 다 지원할 테니까.”


양세봉도 김형직과는 익숙한 사이었다. 일찍 천마산대(天麻山隊) 대장 최시흥(崔時興)의 부하로 따라다녔던 양세봉은 1923년 초 최시흥이 오동진의 광복군총영과 손을 잡으면서 천마산대가 광복군철마별영(光復軍鐵馬別營)으로 개편될 때 오동진의 부하가 되었던 사람이다.

 

그때 양세봉은 별영의 검사관이 되었는데 일본군의 헌병을 모방하여 총영에는 헌병중대를 두고 별영에는 소대를 두어 이들을 총괄하는 입장이었다. 후에 양세봉의 심복이 되었던 장철호의 5중대 2소대가 헌병소대 역을 감당하여 장철호는 헌병소대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양세봉이 천마산대에서 데리고 다녔던 부대는 주로 장철호의 소대였다. 그들이 처음에는 모두 재래식 무기인 화승총 같은 것을 들고 다녔는데 1924년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를 습격하러 갈 때 오동진은 후창군 포평에 들려 김형직이 지키고 있었던 무기고에서 신식 총을 바꿔가게 하였다.

 

그때 양세봉도 장철호도 모두 김형직과 만났고 그들은 서로 잘 아는 사이가 되었다. 양세봉은 김형직의 나이가 자기보다 2세 연상인 것을 알고는 대뜸 ‘김 형’이라고 불렀다.


“그 김 형은 총영장의 친구이기도 하지만 우리한테도 무척 고마운 분이니 꼭 구해내야 하오. 수만(守萬, 장철호의 별명)이 직접 소대원들을 데리고 후창군 쪽으로 한번 나가보오.”

 


양세봉은 특별히 부하 장철호에게 이 일을 맡겼다. 장철호는 소대원들을 2명씩 한 조로 묶어 팔도구는 물론, 포평과 후창 쪽으로 돌며 김형직의 소식을 알아보게 하였다.

 

김성주가 회고록을 통하여 특별히 기억하고 있는 장철호 소대의 대원 공영과 박진영이 압록강의 얼음판 위에서 동상을 입고 쓰러져 거의 시체가 되다시피 한 김형직을 발견하였다. 두 사람은 김형직을 부근의 한 농가로 업고 가서 구호하였다.

 

 

이상..           14편에서 계속~~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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