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한줄요약
영류(태)왕 왕손 고연복, 당나라에서 노예의 신분에서 굴곡진 인생을사다가 말년에는 환관들의 대빵이되어서 비교적 편하게 여생을보냈음
최근 중국 학자들의 논문을 통해 국내 학계에 처음 존재가 알려진 고구려 왕족 출신 고연복의 묘지명. 그의 증조부가 고구려 영류왕의 왕세자인 고환권임을 일러주는 내용이 드러나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안정준 교수 제공
이렇게 기구한 삶이 다시 있을까.
고구려 왕세자의 증손자는 668년 나라가 망하자 8살 나이에 당나라에 끌려갔다. 한 권세가 집안의 노비로 전락해 종살이를 했다. 그 뒤 거세를 당하고 당 황궁에 들어가 내시(환관)로 일해야 했다. 황궁에서 처신을 잘한 덕분에 말년엔 환관 최고 직위에 올랐다. 유년시절 이산과 노비의 삶을 겪다 내시의 우두머리가 되어 눈을 감은 옛 고구려 왕족. 그의 이름은 고연복(高延福, 661?~723)이다.
당의 환관 고연복이 7세기초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고구려 27대 임금 영류왕(재위 618~642년)의 왕세자 고환권(高桓權)의 증손자였음을 일러주는 옛 기록이 국내 학계에 나왔다. 안정준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11일 한국고대사학회 누리집 자료실에 ‘새로 발견된 고구려 유민 고연복 묘지명(墓志銘: 망자의 행적을 비석이나 돌판에 적은 글)’이란 글을 올렸다. 고연복의 파란만장한 삶의 일단을 담은 무덤 기록을 소개한 내용이었다. 지난해 중국 학자 왕리안롱(王連龍)과 콩시페이(叢思飛)가 현지 학술지 <중국서법·서학>(2019년 10월호)에 기고한 관련 논문을 입수해 요약, 해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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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요약
영류(태)왕 왕손 고연복, 당나라에서 노예의 신분에서 굴곡진 인생을사다가 말년에는 환관들의 대빵이되어서 비교적 편하게 여생을보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