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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4-12 03:15
[북한] 독립운동가 손,씨 가문과 김일성의 우정.(하) 편.
 글쓴이 : 돌통
조회 : 352  

(중)편에 이어서~~

 

☆☆☆ 분단과 전쟁이 빚은 우정과 애국의 파라독스

 

 

 

김일성이 어렸을 때 절친한 친구였던 손원태 박사는 오마하(네브카 주)에서 개업하고 있던 저명한 의사였는데, 나이 70이 돼서야 비로소 김일성에게 처음으로 이하와 같은 감성적인 인간관계가 가득한 구구절절의 사연을 편지에 써서 인편에 보냄에,

 

 

즉각 김일성으로부터의 회신이 초대장과 함께 당도한 것이 1991년 5월이었다. 이로서 두 사람의 역사적인 만남이 성사되었다.

 

 

김일성 주석님께

 

 

중학교 시절 김일성 주석님, 그리고 길림소년회 회원들과 헤어진지도 어언간 60여년이 흘러갔습니다. 오랜 세월이지만 저는 김 주석님과 회원동무들을 항상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1923년 평양 태생인 이유신과 결혼하여 지금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두고 있습니다..................

.................

희생적으로 독립운동과 항일투쟁을 벌리시던 그 당시 김 주석님과 여러 분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흐르고 이 편지를 쓰면서도 저는 눈물을 금할수 없습니다...............................................

..........

1938년 아니면 1939년에 상해대공보 영자신문 한면에 “김일성과 항일투쟁”이라는 제목으로 수천명의 독립군사를 거느리고 항일투쟁을 용감하게 벌리고 계신 김주석님을 찬양하는 기사가 크게 실렸습니다. 이 기사를 읽고 얼마나 감탄하고 감사를 올렸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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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제 손원태 드림

 

 

 

손원태 박사는 옛 친구가 그리워 그 멀고 험한 길을 떠나 마침내 궁궐 같은 김일성의 집무실에 부인을 포함한 일행 6명과 함께 미국에서 중국 경유 항공편으로 당도했다. 처음에는 김일성이 손원태를 알아보지 못하고 한참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손원태의 손을 꽉 잡으며, “어데 가 있다 이제 왔소” 하면서 머뭇거리다가는 “야, 너 원태 아니가."하며 그렇게 반가워 하더라고 한다. 

 

한참 옛날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김일성이 진지한 표정으로, "원태야, 좀 자주 오라. 우리가 이제 살면 얼마나 더 살겠느냐."라고 하였다. 손박사는 이렇게 당시 대화를 회상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그것이 김일성이 던진 그의 평생에 가장 의미심장한, 철학적인 한 마디였다고 생각했습니다. 원태야, 좀 자주 오라. 우리가 이제 살면 얼마나 더 오래 살겠느냐." 그 두 사람이 다 세상을 떠난지 오래 된다. 

 

그런데 김일성이 손 박사에게 그 때 선물로 준 시계가 하나 있었다. 그의 싸인이 적혀있는 롤렉스 금시계였는데, 손 박사가 그걸 가지고 오마하의 한 시계포에 가서 값을 물었더니 그 때 돈 5만 달러라고 하더란다. 그 시계가 지금은 누구 손에 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두 사람은 다 시간이 필요 없는 저 세상으로 갔으나 그 시계는 여전히 어디에선가 뛰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시계보다 시간이 소중한 것임을 모르고 산다는 것은 매우 서글픈 사실이다. 롤렉스 금시계를 차고도 통일의 그 날을 보지 못한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일까. 오히려 스위스 밀리터리의 50달러짜리를 차고, 통일의 기쁨을 맛보는 것이 한국인으로서는 백 배, 천 배,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손원태 박사는 말한 바 있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해군, 해병과 군종목사 제도는 바로 해군의 아버지라 불리는 손원태 박사의 친형인 손원일 제독(1909∼1980년)가 1948년 초대 해군참모총 당시 해군, 해병대와 대한민국 군종(군목)제도를 창설했음은 손정도 목사와 그 아들 손원일 제독의 대를 이은 나라사랑의 발로가 아니겠는가?.  

 

 

손 목사는 나라를 빼앗긴 뒤 "바다에 미래가 있다. 비록 지금은 남에게 빼앗긴 나라지만 언젠가 독립의 그날이 오면 우리도 해양으로 뻗어나가야 한다"고 가르쳤고, 이에 영향을 받아 손 제독은 중국 중앙대에서 해양학을 전공하고 일찍부터 외국을 항해하는 배를 탓으며 아버지의 독립 운동을 돕다 만주와 조국땅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투옥과 고난을 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조국이 해방 되자 바다를 지키는 해군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손 제독은 김일성의 남침으로 빚어진 6.25전쟁 당일 해군 창설자들이 봉급에서 거출하고 장교부인들이 삯바느질까지 해서 모은 돈으로 최초 전투함으로 미국에서 사온 고물선을 수리해 백두산호로 명명 진수시켜던바, 이 배가 해전에서 큰 정공을 새웠던 것이다. 

 

 

김일성의 빨치산 동지인 오진우가 지휘한 인민군 특수부대 1개 중대를 실은 공작선이 부산 상륙을 위해 남하 중 ,울산 앞바다에서 백두산호(당시 함장 최용남, 후일 해병대 소장 예편)에 의해 격침당함으로서 한국전 최초의 해상전과를 기록한 것은 물론이고 적의 정규전과 비정규전을 배합한 제2전선형성 전략을 차단 봉쇄한 장본인 바로 손원일 제독이었다. 

 

 

그 인천 상륙작전에 해병대를 이끌고 몸소 진두지휘했으며, 전후 복구기에는 국방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국군의 날, 현충일 제정, 국립현충원 및 국방연구원(현 국방대학교) 창설 등 군현대화에 진력했다. 

 

 

자랑스러운 이 같은 나라사랑 정신은 오늘날 용맹을 떨치는 멋진 해군, 해경, 해병 뿐 아니라 육군, 공군을 포함한 모든 대한민국 안보역군의 조국수호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 손원태 박사의 김일성에 대한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

 

 

 

<이하는 손원태 박사가 생전에 남긴 회상기 초안의 마지막 부분인데, 이를 그대로 옮겨보겠다.

 

 

손원태 박사의 김일성을 보는 시각은, 우정과 감성의 이상주의적 차원의 발로인 바, 국제정치학적 접근의 현실주의 시각과는 상당한 편차가 있을 수 있다. 특히 그는 평양을 수시로 왕복하는 사이에 김일성에 대한 존경심이 더욱 커져, 김일성 주석의 한생은 강대한 제국주의와 미제와의 대결이었다고 미국과 북한관계를 평가하기도했다. “

 

10대의 나이에 손에 무장을 들고 일본제국주의에 선전 포고를 한 김 주석은 20성상의 오랜 세월 풍찬노숙하며 피바다 불바다를 혜쳐 조국땅이 강국에 의해 두동강이 나고 미국과의 첨예한 대결양상이 반세기가 지났다”고 쓴 ,  그의 글은 편중과 구성의 오류를 상당히 범하고 있다고 본다 >



 

그러면 이하에서 손원태 박사가 쓴 회상록의 하이라이트를 그대로 소개하고 간단한 컴멘트를 해보겠다.

 

 

“한 생을 평범한 의사로 살아온 나 개인으로서는 세상에- 회상기를 남길 만한 위인이 못된다고 해야 겠다. 그런데도 나는 여러사람으로부터 자서전을 쓰라는 권고를 받았다. 내가 처음 그런 권고를 접한 것은 상해에서 대학공부를 하던 청년시절이었다. 

 

 

어느 날 나는 기숙사에서 공부를 하다가 망향의 설음에 눈물지으며 먼 하늘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한 방에 탁씨 성을 가진 중국 친구가 내 어깨를 붙안으며 뭘 생각하는가 하고 물었다. 

 

 

감상에 젖은 나는 자신도 모르게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7살 때 도망치듯 조국을 떠나오던 일이며, 독립운동자이며 목회자인 아버지의 의혹 많은 병사 이후 부평초 같은 떠돌이 생활에 대해 토설했다.

 

 

중국친구는 망국민의 설움을 이해하면서 그 얘기 그대로 자서전 적인 글을 써보라고 하였다. 불행하게도 나의 한 생은 우리 민족사의 가장 처절한 시기를 밟아오면서 인고의 세월의 목격자, 체험자, 참여자로 되었다

 

.

한 인간의 생활이자 민족의 생활이다. 민족의 생활이다. 나의 자서전도 망국수난사를 인식하는 데서 가치있는 서적으로 될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자서전을 쓰지 않았다. 상처투성이인 그 세월을 회상한다는 것은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내가 북조선을 방문하여 60여년 만에 김일성 주석과 상봉하고 미국으로 돌아 온 후 였다고 본다. 어는 저녁에 아내와 함께 오마하의 지식층들이 자주 모이는 어느 다방에 갔었는데 안면있는 교포들이 나를 둘러싸고 북조선에 다녀온 소감을 물었다. 

 

 

우리 옆에는 대학생 타입의 청년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북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호기심이 동해서 우리자리에 끼어들었다. “이분이 최근에 북한에 다녀온 손원태 선생님이셔요”하고 옆 친구가 그들에게 나를 소개하였다. 그러자 젊은이들은 눈이 똥그래졌다. 그네들은 남한에서 온 대학생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길림 시절에 맺어진 김일성 주석과의 우정에 대하여, 만주에서 그 분의 장구한 무장투쟁에 대하여, 그리고 60여년이란 긴 세월을 뛰어 넘어 80고령에 다시 이어진 우리의 우정에 대하여 대략적인 것만 이야기 해 주었다. 

 

젊은이들은 깜짝 놀래면서 그래요? 거짓이 아니겠지요? 우리는 조금도 모르고 있었는데요 라고 신기로워 하기도 하고 미심쩍어하기도 하였다.

 

 

자기 민족사를 반 토막 밖에 모르고 자라난 젊은이들이었다. 어느 것이 참 역사이고 어느 것이 거짓 역사인지, 무엇이 애국이고 무엇이 매국인지 가려보지 못하는 세대가 내 땅에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을 무겁게 압박하였다. 

 

나에게 이렇게 절절히 권유하는 이들이 있었다. 손선생님은 꼭 자서전 적인 글을 써야 합니다. 손선생님은 역사의 증인이고 김주석의 증인입니다. 손선생님이 돌아가시면 산 역사를 말할 수 있는 이가 더는 계십니다.

천운으로 나의 생애가 김일성 주석과 영연히 연결됨으로서 범상치 않은 역사의 중견자가 되었다. 

 

 

김 주석과 나의 연고는 소년시절의 벗으로서부터 적어도 60년이라는 긴 세월을 뛰어넘어 80고령에 다시 이어젔지만, 옛날의 정의는 변함이 없었고 우정은 더 따습고 틀림없이 길림시절의 다정다감한 김성주 소년 그대로였다. 세계적 정치가로서 뿐만 아니라, 평민으로 남아있는 김성주 를 다시보게 된 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무척 기쁘고 행복했었다. 내 인생말년에 불원천리 평양에 찾아간 것이 결코 헛된 일이 아니었다.

 

 

언제인가 월스트리트 저널은 나의 평양 방문에 대해 쓰면서 친구 중 한 사람은 의사가 되고, 한 사람은 독재자가 되었다고 지적하였다. 그것은 북조선과 김일성 주석을 너무나 모르는 이들이 하는 말이다. 내가 본 그 분은 독재자가 아니라 사랑과 덕으로 정치를 펴는 성인이었고, 한 나라 대 가정의 만가지 시름을 안고 계신 어버이었다.

 

 

주석계서 일찍이 소년 시절에 어떻게 독립투쟁에 나섰는가를 나는 직접 목격한 사람이다. 그분께서 만주 광야에서 어떻게 일제와 무장투쟁을 벌려 광복을 안 아오셨는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나는 또 광복된 조국의 북반부에 주석께서 세우신 나라를 내 눈으로 보았다.

 

거기에는 진실한 애국이 있었고, 민족의 참역사가 생동하고 있었다. 나는 마치 외롭고 고뇌에 찬 탕자의 긴 여행길에서 돌아와 고향집 아랫목에 주저앉은 듯 평양에 심신을 맡겨버렸다.

 

 

아버지 손목사가 남긴 유훈, 나 자신 지구의 한끝에서 다른 끝을 떠 돌면서 모질게 메고 온 자신의 십자가는 애국이었다. 참다운 애국의 실체가 있는 곳에서 나의 심혼이 안식처를 찾은 것은 다난한 내 인생의 응당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그것으로 인하여 용공이나 연공의 지탄을 받는다 해도 꺼리길 것이 없다.

 

 

김일성 주석의 조국광복투쟁사를 떠나서 어찌 우리 민족에 대해서 말할 수 있겠는가? 거짓 정치는 일시 사람들을 혼란시킬 수 있어도 거짓 역사는 조만간 씻기어 버릴 것이라 나는 믿는다. 나는 자라나는 젊은이들에게 역사의 진실을 말해주어야 할 자기의 사명감을 자각하였다. 정에 살고 의리에 사는 것이 사람의 본의일진대 사실을 사실대로 알게 하는 것이 친구의 도리라 하겠다. 이상 늙은 병리학자의 심증을 본데로 느낀 대로 써보았다.“

 

손원태 박사는 오래 동안 미국에 살았기 때문에 동태적 거시적 안목에서 조국과 한민족의 역사와 현실을 관조할 여건이 주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김일성에 대하여 단지 죽마고우의 우정이란 차원에서 접근 이해함으로서 그를 성군(聖君)으로 높이 평가 할 정도의 굴절된 우호적인 감성의 표현이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분명히 그는 나무는 보았으나 숲은 보지 못하고, 파도는 보았으나 바다는 보지 못한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를 범한 것으로 보인다. 손원태 박사는 광복 후 격동기의 민족분단과 이념대결 그리고 전쟁의 참상은 물론 전후 반세기 이상 자행한 대남 도발 만행과 국제사회 무법자로서 3대 세습 폭정의 실상을 체험하지도 실감하지도 못하였기에, 자기 아버지와 형의 우국충정과 살신보국의 위대한 만인의 귀감이 될 업적을 별로 닮지 않은 삶을 영위하였다.

 

 

그는 인생말년에 탈냉전시대 도래시 까지 생존하면서도(2004년에 작고) 신세계질서의 공유가치와 시대정신에 입각하여 한반도 상황과 자신의 가문이 처한 위상을 객관적으로 재조명 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고서, 미국에 정착한 한 연로한 병리학자로서 전문직업에 충실하면서 김일성의 장례식에는 참석했지만, 미국시민권자답게 김일성이 그에게 극진한 예우를 하라는 유언에 따른 아들 김정일의 평양이주를 요망하는 호의에도 불구하고 이를 사양하고서 미국에서 조용하게 삶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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