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20-04-10 23:35
[북한] 중국,수분하,삼차구조선족진의 동녕현 전투..
 글쓴이 : 돌통
조회 : 828  

삼차구조선족진(三?口朝?族?)



여러분은 조선족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이제부터 조선족이라 쓰지 않고
재중동포라 하겠습니다!

재중동포라 하면 중국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등
동북삼성과 그 밖에 중국에
흩어져 거주하는
한민족 혈통을 지닌 중국 국적의
주민들을 말합니다.

 

대한제국 마지막 시기에
외세의 침략으로 국권이 흔들리면서
나라 안팎이 어지러워지자
중국과 러시아로 이주하게 되는
한인들의 수가 늘어납니다.

특히 일제가 한국인의 농토를 잠식하고
강제 수탈하자 농민들은 만주로 이주합니다.

이후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했지만
본국에 생활 근거가 없었던
조선인들은 만주에 정착합니다.

이들이 재중동포 1세대가 되고,
거기서 태어난 자손들이 2세대가 됩니다.

삼차구조선족진은


중국 흑룡강성 목단강 시 동녕 현에 속한
재중동포 마을입니다.

 

삼차구조선족진 입구
 

비 오는 날이나 내려서 여기저기
찍지 못했어요..

 

 

 

삼차구조선족진은
호포도강(瑚布圖江), 소오사구강(小烏蛇溝江)과
대두천강(大?川江)
세 개의 강이 만나는 삼차하구(三?河口)로
불렸었습니다.

삼차구는 동녕현에서 가장 토지가 비옥하고
제일 먼저 개발이 시작된 곳이었습니다.

1933년 1월 동녕현성이었던 삼차구를
일본 관동군이 점령하여
이 지역을 군사 특별구역으로 설정하고
마을들을 철거시킵니다.

1945년 광복 이후
변경에 거주하던 사람들과
목단강 지역에 집 없이 떠돌이 하던 재중동포들을
원거주지로 돌려보내는 정책이 실시되면서
다시 인가가 생기고
벼 생산을 위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됩니다.

1953년에 ‘
삼차구조선족민족자치구’라
개명되었다가
1984년 3월 ‘
삼차구조선족향’으로 개명되고,
1988년 3월에 ‘
삼차구조선족진’으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많을 때에는 재중동포 인구가
9,000여 명에 달했으나
현재는 6,000여 명으로 
삼차구 전체 인구의 45%를 차지하고
재중동포 중학교와 소학교가 있는데
학생 수는 200여 명이라고 합니다.

 

마을의 한 재중동포 할머니께서
반갑다고 직접 기르신 토마토를 주셨어요!

 

이 마을은 러시아와 접경되어 있는 마을이에요!
강 하나만 건너면 러시아입니다!

 

동녕현(東寧縣)전투

이어서 동녕현 전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재중동포 마을인 삼차구조선족진을
1933년에 일본 관동군이
점령했었다고 말씀드렸죠?

1933년 9월 한국독립군
중국인 오의성이 지휘하는
길림구국군(吉林救國軍)
그리고 중국공산당 소속인
왕청현(汪淸縣) 유격대의 일부 병력이 연합하여
흑룡강성 동녕현 삼차구에 주둔한
일본 관동군과 만주국군을 공격하여
승리한 전투입니다.



삼차구조선족진은
러시아와 접경되어 있다고 했죠?
그래서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이기 때문에
일본 관동군은 국경 수비를 위해
500명의 수비대를 배치하고

만주국군 또한 1,500여 명의 수비대를
배치했습니다.

한, 중 연합군이 활동하는 중
식량과 무기 등 보급물자에 대한
문제가 생기게 되고
대규모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는
삼차구를 공격합니다.


주목할만한 점은
왕청현 유격대에서
김일성이 이끄는 왕청현 유격대도
연합했었다는 사실입니다!


1933년 9월 6일 총 공격을 실시하지만
일본 관동군과 만주국군의
격렬한 저항과 대포와 장갑차를 앞세운
부대의 지원으로
연합군도 수십 명이 전사하게 됩니다.

하지만 수백 명의 일본 관동군과

만주국군을 사살하고
대량의 전리품을 노획하는 전과를 거둡니다.

 
이상...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Total 19,969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공지] 게시물 제목에 성적,욕설등 기재하지 마세요. (11) 가생이 08-20 85301
19132 [한국사] 임나 흥망사 (김상훈설) (16) 엄근진 07-29 948
19131 [한국사] 임나(任那)를 통한 님금과 매금의 상관성 검토 감방친구 07-29 898
19130 [한국사] 임나일본부설은 사라지지 않았다. 왜냐고? (3) 보리스진 07-29 676
19129 [한국사] 임나는 가야가 아니다 (33) 스리랑 07-29 987
19128 [한국사] 춘추전국시대 중산국中山國의 위치는 산서성 중부 … (2) 수구리 07-29 825
19127 [한국사] 가야, 임나, 일본 어원 분석결과: 부여와 관련된 명칭… (4) 보리스진 07-29 823
19126 [한국사] 전국시대 대나라(代)는 중모(中牟, 현재 학벽鶴壁 林… 수구리 07-28 817
19125 [한국사] 영남과 호남을 삼킨 임나일본부설 (2) 스리랑 07-28 889
19124 [한국사] 윤내현, 사료로 보는 우리 고대사, 2017 (10) 엄근진 07-28 809
19123 [한국사] 고조선:적狄(오랑캐)은 적翟(새 깃털)이니 조우관鳥… 수구리 07-27 730
19122 [한국사] 진개전쟁이후 국경선의 변화(윤내현 설) 지누짱 07-27 754
19121 [한국사] 稍役屬真番 이하 해석에 대해서 (6) 감방친구 07-27 763
19120 [한국사] 소위 진개전쟁(윤내현 설) (8) 지누짱 07-27 782
19119 [한국사] 수구리님 참조부탁드려요 (19) 지누짱 07-27 730
19118 [한국사] 요수(遼水)는 지금의 요하(遼河)가 아니며 요동군은 … (2) 수구리 07-27 791
19117 [한국사] 고조선 영토와 춘추시대 지도로 알아보는 주나라 영… (16) 수구리 07-26 989
19116 [한국사] 부여족은 원래 어디에서 온 것인가(3) (6) 독산 07-26 860
19115 [한국사] 부여족은 원래 어디에서 온 것인가(2) (2) 독산 07-26 682
19114 [한국사] 부여족은 원래 어디에서 온 것인가(1) (3) 독산 07-26 981
19113 [한국사] 우리 고대사의 주 활동영역을 연산 이남에서 찾는 사… (8) 감방친구 07-26 838
19112 [한국사] 우하량 유적은 , 유럽 신석기문화 아나톨리안의 정… (1) 조지아나 07-26 673
19111 [한국사] 한문에서 注와 入의 대구 표현 해석에 대해서 (7) 감방친구 07-25 821
19110 [한국사] 한韓은 산동성과 강소성이었다(후한서 동이열전 내… (41) 수구리 07-25 1495
19109 [기타] [인용] Tamil Nadu 정부, Keeladi에서 연구(ft.아라가야 도… (3) 조지아나 07-24 725
19108 [한국사] 김윤명박사의 단군세기 논문 발표 (1) 스리랑 07-24 799
19107 [한국사] 예와 왜가 같은 말에서 비롯했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2) 감방친구 07-24 857
19106 [한국사] 역사 논문들을 보면서 종종 느끼는 문제적 인상 (8) 감방친구 07-24 761
 <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