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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3-28 20:07
[북한] 천재 화가 피카소가 공산주의자라고.??
 글쓴이 : 돌통
조회 : 1,177  

TIME 선정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스페인의 화가, 조각가.


안달루시아 주 말라가 출신으로,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했다. 천재 화가의 대명사로 불리며 입체주의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그렇다고 입체주의로 유명할 뿐, 피카소가 늘 입체주의 예술만 한 것은 아니다.

 

피카소는 1881년 10월 25일 에스파냐의 항구 도시인 말라가에서 출생하였다. 부친 호세 루이스 블라스코는 화가로 관립 미술학교 교사였고 피카소는 모친 마리아의 성(姓)을 계승하였다.

 

14세에 집안은 바르셀로나로 옮겨 갔으며, 피카소는 부친이 교편을 잡고 있던 그 곳 미술학교에서 배웠다.

 

피카소는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였지만, 프랑스 정부에서 사회주의자로 분류되어 프랑스 시민권을 갖지는 못했다.

 

피카소는 스탈린을 익살스럽게 그린 그림이 스탈린에 대한 조롱으로 해석되어 1957년에 제명되기까지 프랑스 공산당원으로 활동한 사회주의자였으며,

 

한국 전쟁에서 벌어진 미국의 잔학행위(예: 미군이 충청북도 영동군 노근리에서 한국인들을 전투기와 기관총으로 학살한 노근리 학살)에 대해서 비판하였다. 1951년 그는 '한국의 학살'(Massacre in Korea)을 발표하였고, 유엔과 미국의 한국전쟁의 개입을 반대하였다. 1973년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피카소는 미술 활동을 통하여 사회적 문제를 알렸다. 대표적으로 스페인 내전에서 게르니카 민간인들이 나치 독일 공군의 폭력으로 학살당한 게르니카 학살사건(1938년)을 고발한 《게르니카》가 있다.

 

그렇다면 피카소의 정치적 성향은 어떨까?? 

  

공산주의자였다. 자수성가한 몇 안 되는 공산주의자이며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한 전력도 있다. 하지만 뚜렷한 정치적인 활동을 한 것은 아닌지라 의미는 없다.
 
게다가 스탈린을 싫어해서 다른 공산당원들과도 상당한 충돌이 있었다고 한다. 초기에는 스탈린을 지지했는데, 공산당에서 선전을 위한 그림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 사람들 역시 이해를 하지 못해서 불화가 생겼다고 한다.
 
이후 피카소가 스탈린의 초상화를 그려서 주자 " 우리 대장님 얼굴은 이렇지 않다!"는 반응을 보여서 더욱 사이가 멀어졌다. 근데 그럴만한 게 피카소가 그려준 스탈린 초상화란 게 이거였다(...) 피카소가 스탈린을 그린 것을 보면 괭장히 웃을 것이다.   바로 아래가 그 사진이다.
 
개인적으로 피카소 작품 중에서도 정말 좋아하는 그림입니다.
스탈린 사망하고 소비에트 정부가 공산당원인 피카소에게 신문에 실을 초상화를 부탁해서 그렸다더군요.

정작 소련 정부는 이 그림을 보고 격분해서 피카소를 징계했다던데 참 어딜가나 무식한 군인들 하는 짓이 다 그런것같아요.

아마 소련이 원한건 거대하고 강인하고 힘이 넘쳐보이는 그런 과시용 포스터였던것 같습니다.

가짜 공산주의 소련 정부가 진짜 공산주의자 피카소를 모욕했으니 현실이란게 항상 이런식이죠.

저는 이 그림을 볼때마다 권력자가 되기 이전 혁명을 꿈꾸던 가난하고 순수한 청년 스탈린의 슬픈 눈망울에 항상 마음이 흔들립니다.


 
 
 
 
 
 
지금 와서 유명한 피카소의 그림들과 비교해본다면 현실적인 편이지만, 그 공산단원들 입장에서는 초상화를 그려오겠다더니만, 웬 어린애 낙서를 그려온 것처럼 보였을 거다.

하지만 피카소의 사상과 표현을 보았을 때 공산주의자 혹은 사회주의자라고 할 수 있음은 분명하다. 스스로 명확히 공산주의자라고 규정하지만 않았을 뿐이지. 실제 사상은 거의 공산주의자였던 유명인들은 엄청나게 많다.
 
아인슈타인도 "왜 사회주의여야 하는가"(Why Socialism)라는 글을 썼다. 신천 양민 학살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당연히 반전주의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파블로 피카소의 여성편력, 여자관계를 살펴보자..
 
피카소의 엄청난 여성편력은 대중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나이 6, 70이 넘어서도 20살 갓 넘은 지금으로 보면 손녀뻘 되는 여자들과 살림을 차려 자식을 낳기도 했다.(다만 자식은 의외로 3명의 여성에게서 단촐하게 4명(2남2녀로 차례대로 파울로, 마야, 클로드, 팔로마) 낳았다. 이 중 팔로마와 클로드는 아버지처럼 예술계에 종사하고 있다.)    
 
여자 꼬실 때 "당신을 어제보다 더 내일보다 덜 사랑한다"라는 말을 했단다. 이 말에 신세 망친 사람 여럿이다. 피카소 사후에 걱정된다며 따라 죽은 부인도 있었다.

아무튼 부인 및 사귀었던 사람들 목록을 보자면...
 

페르낭드 올리비에 프랑스계 예술가 겸 모델. 초기 피카소의 그림 모델이 되었으며 그의 친구인 아폴리네르의 시에서도 등장한다. 이별.

 

에바 구엘 무용수. 병사.

 
올가 호흘로바  러시아 출신 발레극단 소속 무용수. 이혼. 파울로의 어머니.
 
마리 테리즈 발터 마야의 어머니.
 
도라 마르 사진작가(게르니카의 제작 과정을 사진으로 남겼다). 병사.
프랑스와즈 질로 전쟁사진으로 유명한 로버트 카파의 '피카소와 질로'라는 사진이 유명하다.
 
그 위대한 피카소(!)가 시종처럼 파라솔을 받쳐들고 질로의 뒤를 따라 걷는다. 그리고 질로는 피카소에게 먼저 이별을 통보한 유일한 여자이기도 했다. 클로드와 팔로마의 어머니.
 
자크린느 로크
 
이상 7명.

위에 언급된 7명의 여인 말고도 피카소는 수많은 여인들과 염문을 뿌렸었다. 그리고 그 모든 여인들을 다 찼다. 하지만 딱 한 번, 프랑스와즈 질로에게만 먼저 이별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대다수 여자들에게 늘 숭배를 받으며 먼저 찼으면 찼지 차인 적이 없는 피카소는 질로의 이별통보에 큰 충격을 먹고 질로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달래기도 하고 애원도 하고 심지어 xx하겠다고 협박까지 했지만 질로의 마음을 돌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라고 왠지 많은 한국인들이 알고 있지만
 
올가 코글로바 역시 남편이 마리 테레즈와 바람피운 것을 친구로부터 알자마자 아들과 함께 집을 나가서 이혼 소송을 했다.
 
근데 피카소가 재산분할 하기 싫어서(여기서 잠깐, 스페인은 엄격한 가톨릭 국가였기 때문에 이혼이 금지돼 있었고, 설령 이혼을 하더라도 피카소는 재산의 반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혼을 안 해준 덕에 올가가 사망할 때까지 결혼상태였고 죽을 때까지 따로 살았다고 한다.
 
질로가 유일하게 피카소를 찼다는 이야기가 유난히 한국에 많은데 출처가 어디인지 궁금하다.

질로는 피카소와 이별 후 <피카소와의 삶(Life with Picasso)> 책을 발표해 피카소와 함께한 10년간의 생활을 솔직히 고백했다. 피카소의 마초적인 성격과 여성편력까지도..하지만 그런 질로조차도 이런 고백을 했다고 한다.
 
"저는 저희 아버지나 남자친구와는 대화가 되지 않는데 저보다 3곱절 연상인 당신과 말이 통하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요." 라고.

애정 관계는 아니지만 포니테일 소녀 실베트 데이빗(Lydia Sylvette David,결혼 후 Lydia Corbett. 1934년생)을 모델로 수십 점의 '실베트 연작'을 만들고 격려와 금전적 지원(자기 그림(...))으로 예술가의 꿈을 키워준 이야기가 아동도서로 출간되어 잘 알려져 있다.
 
훗날 Lydia Corbett은 영국에서의 활발한 창작 활동으로 성공한 화가가 되었다. 참고로 1953년 당시 피카소는 72세였고 실베트는 19세였다.
 
 
위대한 예술가 피카소여.....!!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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