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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21 05:43
[북한] 북한의 역사를 지켜보면서.17편..
 글쓴이 : 돌통
조회 : 739  

16편 이어서~~

 

징용생활 1년 6개월은 어떤 면에서는 내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나는 혼자 고학을 하면서 다른 사람과는 거의 접촉이 없었던 만큼 사교를 몰랐으며, 내 의사를 표현하는 데도 어색한 편이었다. 그러나 징용생활에서 평안도, 함경도, 전라도, 경상도 등 도처에서 모인 사람들이 한 합숙소에서 집단생활을 했기 때문에 자연히 그들과 어울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삼척에 있는 동안 나는 사투리를 고치려고 많은 신경을 썼다. 내가 평안도 사투리를 너무 심하게 써서 동무들이 놀려댔기 때문이다. 그래서 1년 6개월 동안 의식적으로 노력을 하자 조금은 고칠 수 있었다. 징용공 중에서는 내가 제일 어렸는데, 토오쿄오 제국대학과 쿄오토 제국대학, 도오시샤대학에 다니던 우수한 사람들도 있었다.



초반의 작업반장은 삼척경찰서의 일본인 형사였다. 그러나 우리가 그의 비행을 문제 삼아 일이 커지자 곧 물러나고, 군인출신인 일본인 계장이 후임 반장이 되었다. 나는 젊어서인지 무슨 일을 해도 힘들거나 피곤함을 몰랐으며, 남은 시간에는 독서를 많이 했다 최남선의 『고사통』, 『삼국사기』, 『삼국유사』도 그때 읽었다.



또 이광수, 이기영, 한설야, 이태준의 문학작품도 접했다. 하지만 주된 공부는 철학과 수학이었다. 처음에는 통강냉이와 수수밥을 먹었는데, 어느 날부터는 콩깻묵을 먹으라고 했다. 며칠 동안 콩깻묵을 먹느라고 고생했지만, 용감한 친구들의 투쟁으로 잡곡밥이 나왔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삶은 통강냉이 맛이다.



또 징용공 중에 장기를 잘 두는 사람이 있어 그에게 장기를 배웠다 장기를 가르쳐준 사람과 내기장기를 두다가 져서 밤늦게 10리나 되는 삼척 읍내까지 나가 엿장수를 깨워 외상으로 엿을 사다준 적도 있었다.

 

징용공들이 노동하는 시멘트공장은 삼척 읍내에서 10리 가량 떨어진 곳에 있어 밤길을 많이 걸었던 일과, 또 삼척은 감이 많이 나 홍시를 많이 먹은 게 기억에 남는다.



은밀히 도는 소문을 들으니 일제가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우리의 일거리는 돌을 부수거나 나르는 일이었다. 징용공 중에 선반기술공이 한 명 있었는데, 그동안은 기술이 있다는 걸 얘기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장차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몰라 우리는 그의 기술을 과장하여 반장에게 말하고는 그와 다른 한 명을 선반공으로 일하게 했다.



그것은 그들을 시켜 유사시에 무기로 쓸 단도를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징용공 중에는 그때 벌써 좌익사상을 가진 자도 있었지만 나는 공산주의 사상에 대해서는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공산주의 사상을 반박할 만한 지식도 갖고 있지 못했다. 나는 그저 막연하게 ‘왜 우리나라를 부강하게 발전시켜 나가는 데 남의 사상이 필요한가?



아직 파악되지 않은 공산주의 사상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우리 민족이 갑자기 잘 살게 되겠는가?’ 하는 생각을 가졌을 뿐이었다. 혼자 바닷가에 나가 동해바다를 바라보노라면 고향의 부모님이 보고 싶고 누이가 풋 강냉이를 구워주던 생각이 떠올라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그런 행복을 다시 누릴 수 있을까 하고 그 시절이 못 견디게 그리워졌다. 그렇게 해방의 날은 다가오고 있었다.

 

 

*** 해방된 조국에서, 해방과 귀향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이 라디오 방송을 한다고 해서 징용공들은 모두 손을 놓고 라디오 앞에 모였으나 잡음이 많아 무슨 소린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8월 16일, 삼척 읍내로 들어갔더니 흰옷을 입은 조선사람들이 해방의 기쁨을 나누느라고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해방의 기쁨과 함께 나는 고민에 빠졌다.



아는 것도 별로 없는 내가 독립된 조국을 위해 이 한 생명 어떻게 바칠 것인가를 생각하니 걱정이 앞섰다. 그래도 압박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실은 그 무엇보다 기쁜 일이었다. 지금까지 무거운 무쇠가마를 뒤집어쓰고 다니다가 훌훌 벗어던진 것 같았고, 또 억눌려 있던 내 키가 하늘을 향해 자꾸 자라는 것 같기도 했다.



그동안 26명에서 8명으로 줄어든 우리 징용공들은 삼척 읍 유지들의 도움으로 8월 17일 목탄 연료로 하는 화물차편으로 서울로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 그날 아침 우리는 화물차에 태극기를 달고 의기양양하게 삼척 읍내를 돌며 독립만세를 부르다가 일본헌병들에게 붙잡혀 태극기를 빼앗기는 치욕을 당했다.



차를 세운 헌병들 패망으로 잔뜩 독이 오른 자들과 대항하여 개죽음을 당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이틀 동안 묵었던 여관으로 돌아왔다.

 

이름은 잊었지만 당시 우리 일행 중에 싸움을 잘하는 손씨 성을 가진 친구가 있었다. 그는 토요쿄오에서 고학을 할 때부터 아는 친구였는데, 노동판에 나와서도 싸움을 잘해 감독이 하루 노임을 거저 줄 테니 제발 그냥 돌아가 달라고 사정할 정도로 싸움 실력이 있었다. 그는 일본에서 ‘콘도오 타케시’로 통했다.



그는, 그동안 우리를 감시하면서 괴롭혀온 조선인 형사를 혼내주고 떠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우리는 그의 의견에 모두 찬동했다. 마침 그 조선인 형사도 우리와 같은 차편으로 춘천으로 올라간다는 것이었다.

 

형사가 차를 타려고 여관으로 왔다. 나이는 35세 정도로 유도나 검도를 한 듯 몸이 매우 날쌔 보였다. 하지만 우리는 8명이었고 단도를 하나씩 가지고 있어 아무 두려움 없이 형사를 둘러쌌다.



손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너는 민족의 반역자이므로 마땅히 처단되어야 한다.” 그러자 형사는 태연하게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는 당신들을 해친 적이 없어. 나를 죽이려 한다면 나도 방어를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는 권총을 뽑아들었다. 우리는 자그마한 단도를 믿었는데 그자가 권총을 뽑아들자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손이 다시 나섰다. “당신을 죽이겠다는 것이 아니야. 당신이 지은 죄를 스스로 깨닫게 하려는 것이지.” “형사로서 당신들을 감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 그러나 실지로 당신들을 해치지는 않았어. 일본이 망했다고 당신들이 무분별하게 행동해서는 안 돼.”그는 오히려 우리에게 설교를 하는 것이었다.



권총을 당할 수 없음을 안 손이 마무리를 했다. “좋다. 그 문제는 앞으로 기회 있을 때 다시 얘기하기로 하자.” 그리고는 싱겁게 그자를 놓아주었다. 손이 우리에게 말했다. “여기서 처단하기는 어려워서 그냥 보냈다. 그래도 우리와 같이 간다니까 가다가 외딴 곳에서 기회를 봐 죽이자.” 이번에도 우리는 모두 찬동했다.

 

 

이상..         18편에서 계속~~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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