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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10 18:24
[북한] 북한의 역사를 지켜보면서..09편.
 글쓴이 : 돌통
조회 : 570  

08편 이어서~~

 

 

지명을 알 수 없는 곳에 우리 숙소가 마련되었는데, 그곳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기자들이 몰려와 있었다. 당황한 필리핀 당국은 그날 오후 헬기로 우리를 비밀리에 이동시켰다. 그리고는 우리 숙소를 이중 삼중으로 경호하는 철저한 보안조치를 취했다. 또 경호를 맡고 있는 사단장이 이틀에 한 번씩 우리를 찾아와 상황을 설명하는 성의를 보였다.



필리핀 당국에는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 두 번째로 옮긴 숙소는 몹시 불편했다. 사단장의 별장이라는 그 숙소는 호숫가에 자리 잡아 그윽한 정취는 그런대로 좋았으나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어 몹시 불편했다. 그나마 나와 덕홍은 한 방씩 차지하여 에어컨 덕을 봤지만, 의사를 비롯하여 우리와 함께 온 적지 않은 남측요원들은 주방 겸 침실로 쓰는 방에서 여러 개의 침대를 빽빽하게 들여다 놓고 지내야 했다.



때문에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베이징보다 나은 것이 있다면 아침산책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많은 분들이 우리 둘을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고 있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높은 수양을 쌓은 훌륭한 인재들이라는 걸 깨달으면서, 나는 더 이상의 의심이나 고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 타일렀다.



며칠이 지나자 스스로 느껴질 정도로 마음이 안정되었다. 무엇보다 베이징에 있을 때는 우리의 동정이 중국과 한국의 언론에 낱낱이 실려 심경이 불안했는데, 필리핀에서는 당국의 배려로 우리의 움직임이 전혀 노출되지 않아 안심이 되었다. 나는 사단장을 통해 필리핀 당국에 감사의 뜻을 전하는 걸 잊지 않았다. 나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어김없이 아침 5시에 일어나 자정이 넘어서야 잠자리에 드는 규칙적인 생활을 지속해 왔다.



베이징에서는 잘 되지 않았으나 필리핀에서는 이 규칙을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국에서 떠나왔기 때문에 곧 한국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에 마음껏 젖을 수 있었다. 그날, 그러니까 3월 23일은 내가 맹세문을 쓴 날이다. 가족과 동지들에게 지은 죄를 조금이라도 보상하는 뜻에서 앞으로 전력을 다하여 조국통일을 위해 미력하나마 기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날부터 나와 김덕홍은 「주체철학의 기본문제」를 정리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베이징에서는 덕홍이 밤에 라디오를 듣고는 한국의 정세에 대해 얘기해주었지만, 필리핀에서는 그 나라 신문을 읽은 직원들이 알려 주는 것 말고는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나는 대사관 직원들과 대화를 하면서 한국사회가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걸 알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의 망명을 주선해준 인사로부터 대통령선거 때문에 상황이 복잡하다는 말은 여러 번 들었으나, 그 말 속에 우리가 남한으로 넘어가는 걸 좋아하지 않은 세력이 있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알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우리를 찾아온 그 인사는 물론 대사관 직원들까지도 이제는 알 때가 되었다면서 한국의 사정을 자세히 설명해주는 것이었다. 우리로서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점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과 대사관 직원들은 우리에게 남한사회의 다양함에 대해 말해주면서 우리가 실망하지 않도록 매우 세심하게 마음을 써주었다.



앞으로 서울에 가서 예기치 못한 일에 부닥치더라도 절대 신경 쓰지 말라, 또 어차피 조국통일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일하려고 왔으니 열심히 그 일만 하라는 식으로. 나는 오랫동안 사상가로서 일해 왔다. 때문에 사상에 대해서는 내 나름의 잣대를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 민족의 통일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은 진보적이고, 그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반동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칭 진보적이라고 하면서 그저 말만 늘어놓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비난하는 말들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다 두려워하는 김정일까지도 무시하고 떠나왔는데, 김정일이 통치하는 북을 추종하는 자들을 두려워했다면 나는 아예 북을 떠나지고 않았을 것이다. 우리, 나나 김덕홍이 두려워하는 것은 스스로의 마음의 나약함이며 혹여 그 마음을 동정한 나머지 큰 의리를 저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것일 뿐, 적이라면 그 어떤 적도 두렵지 않았다.



필리핀의 시아존 외무장관은 4월 1일, 나와 김덕홍의 필리핀 체류와 관련하여 한국이 중국측의 ‘1개월 체류’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믿고 있다며 언급했다. 그렇다면 중국의 입장을 살려주기 위해 한 달을 채우는 것이구나 하는 계산이 나왔다. 나는 맵고 짠 음식보다는 빵 종류나 과일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것은 1987년부터 나를 괴롭혀온 마성후두염에 과일 특히 포도가 좋다는 의사의 처방이 있고부터였다. 의사의 처방을 따르려다 보니 그만 입맛이 변하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주체철학의 기본문제」원고를 개작하는 일도 끝마치고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 다음 서울에 도착한 즉시 발표할 인사말도 써놓았다. 드디어 4월 20일 오전 일찍 필리핀을 떠나 그날 오후 서울에 도착했다. 그리운 남녘 형제들 앞에서 나는 도착성명을 발표했다.



나는 이번에 갈라진 조국의 북을 떠나 남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나의 청원을 허락해주고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해주며 따뜻이 맞이해 준데 대하여 대한민국 정부에 충심으로부터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나를 뜨겁게 동포의 정으로 끌어안아 주고 있는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또한 나의 문제를 국제관례에 따라 처리해 준 중국과 필리핀 정부에도 감사를 드린다.

 

 

              이상.. 10편에 이어서~~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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