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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1-30 09:45
[한국사] 임진왜란은 조선이 왜에게 승리한 전쟁
 글쓴이 : 행복찾기
조회 : 3,369  

임진왜란은 7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에 걸친 조선과 왜와의 전쟁이었지만,
결국 왜는 패퇴하고 조선이 승리한 전쟁이죠..

중고교 한국사 시간에 
임진왜란을 조선이 승리하고 
왜가 패배한 전쟁이라고 배우는지 궁굼합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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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miky 20-01-30 11:58
   
당연히 학교 다닐때 조선이 졌다고 배우진 않죠

우리는 적의 공격에 방어에 성공해 종묘사직을 지켰으니까요

하지만 전국토가 전란에 휩싸여, 상처뿐인 영광이란  이미지가 강한거죠ㅡ

그리고 단순히 승패률 비교보단
왜란이 불러온 사회적 영향이 더 중요하지 않나? 싶네요
보리스진 20-01-30 16:45
   
승패여부는 기억이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임진왜란 대비가 미비했고, 임진왜란에서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으며, 의병과 이순신이 활약했으며, 임진왜란 이후의 변화한 사회상, 체제 변화 이런 기억들은 있지만, 명확하게 전쟁에서 이겼다 그런 기억이 흐릿하네요.
     
mymiky 20-01-30 17:38
   
승패여부는 누가 목적을 달성했느냐?를 따져보면 되는겁니다ㅡ 간단해요

도요토미의  목표가.. 조선먹고 중국먹고 인도먹고... 그런건데
결국 하나도 못 이뤘으니... 결론은 도요토미가 진거죠..

나비효과로 자기 집안도 얼마 못가서 망했구요.

승패의 결과는 매우 명확합니다

다만 조선이 직접 전장터라서 피해가 극심해서...

교과서엔 피해상황이나 전후복원에 대한 내용이 더 중요하게
기술되어져 배우니까

어라? 우리가.. 이긴건가? 싶은거죠ㅡ

월남전이 베트남이 이겼다고 하지ㅡ 미국이 이겼다고 아무도 안하듯
왜란도 마찬가집니다

적들은 원하던 바를 못 이루고 이 땅에서 물러났고

조선은 종묘사직과 영토방어에 성공했으니
그뒤로도 수백년을 더 간 것입니다
메시짱 20-01-30 19:04
   
정확히 말하면 조선은 왜한테 졌죠..명나라 군대에 군사원조를 받았다는 자체가
조선의 힘으로는 왜를 이길 수 없었다는 반증이고 전세는 명나라 군사가 참전해 평양성을 다시 수복하면서
전세가 바뀐거죠..이걸 우리나라에서는 이순신이 활약해 모든것을 다 해낸것처럼 가르치는데
이순신은 적들의 식량 보급로를 해상에서 게릴라 전술로 전달못되게 방해하며 차단했을 뿐이고
전세는 이미 육로로 조선 임금 선조가 명나라 망명을 타진할 정도로 거의 망삘이었고
마지막으로 명나라라로 망명하기전 명나라에 군사원조요청을 했는데 이 명나라 군대가
평양성 수복 못했으면 조선은 그때 이미 넘어갔죠..

결국 명나라 군사 + 조선똘마나 병사들이 평양성 수복하면서 왜놈들이 후퇴했고
장기간 휴전상태에 들어갔는데 이때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면서
회군요청을 하면서 일본애들이 돌아간거죠..처음부터 조선을 침략한 것은
명분이 없었거든요.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명나라 정복하고 명나라 대륙의 황제가 되기 위해서
벌인 전쟁인데 명나라 칠려면 조선을 거쳐 가야하는데
그래서 조선에 명나라 치러가는 길을 내어달라고 했는데 당시 조선은 사실상 명나라 속국이었기 때문에
상국을 치러가는 왜군을 통과시켜줄수가 절대 없는 형국이었죠.. 그리고 명나라도 조선이
평양성 뺏기고 거의 멸망직전일때 그대로 놔두면 왜군이 명나라 땅으로 쳐들어와 명나라 백성들도
학살당하기 때문에 전쟁을 조선에서 마무리하려면 당연히 군사원조를 해서 조선에서 왜놈들을
몰아낼 수 밖에 없었죠..그래서 당연히 신하의 나라인 조선을 도울 수 밖에 없어던 거고..

평양성 수복할때 조선병사들이 조선의 지리를 잘 알았던 점이 도움이 많이 됐꼬
특히 이순순이 해상에서 왜군들의 식량 보급료를 차단해 식량보급이 안되면서 왜군이 수세에
몰리게 되는 큰 역활을 했죠. 하지만 이순신이 아무리 해상에서 게릴라 전술로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활약해도 육상에서 명나라 군대가 도와주러와 평양성을 수복안했으면
육지에서는 조선 참패해 멸망..결국 전라도 육지로 내려왔으면 이순신도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죠..

명나라 군대에 의존해서 국토를 수복했다는 자체는 조선군은 왜군에게 패배했다는 증거입니다.
엄밀히 말해 조선이 왜에게 승리했다기 보다 조선이 명의 군사원조를 받아 왜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하고 물리쳤다는게 팩트죠..뭐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역사를 가르쳐야 하니까
모든 공을 이순신이 다 해낸것처럼 박정희때 영웅화 시켰죠..참고로 이순신이 죽을때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라지말라고 한 것도 박정희때 이순신을 영웅화 하기 위해 만들어낸
설화같은 이야기입니다.. 이순신의 묘는 가묘입니다.. 한마디로 이순신 장군의 시체를
찾지 못했다는거죠. 시체도 찾지 못했느데 죽으면서 적들에게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말한다는건 말이 안되죠..그런 말을 남길 정도라면 우리 군사들의 보호아래 죽었어야 말이되고
그랬다면 당연히 시체가 있어야 말이되는데 한마디로 총에 맞든 칼싸움하다 죽었든
바다에 떨어져 수장되었을 가능성이 높은거죠.. 나의 죽음을 적들에게 알리지마라는 멘트는
한국에 영웅이 없어서 영웅만들기를 하려했던 박정희 시대에 만들어낸 이야기입니다..
거북선도 수장되고 없는데 진해에 만들어진 가짜 거북선을 진짜 거북선처럼 국민들에게 속여
자랑하고 관광시키고 저 어릴때 그랬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난 이유는 전쟁을 일으킨 전쟁 미치광이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중에 사망햇기 때문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등 토요토미 반대세력들도 이 전쟁 명분이 없다고 반대했는데 당시 천하를
통일한 토요토미의 위세가 워낙 대단했기 때문에 깨갱하고 그냥 지켜만 보고 있었는데
토요토미가 죽자, 정부관료들이 이 전쟁 명분없다고  생각하는데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같은
세력이 토요토미가를 무너뜨리려고 내전을 준비하려 했기 때문에 가토랑 고니시같은
토요토미 휘하의 장군들을 빨리 불려들여 토쿠가와 이에야스 반군세력에 대항을 해야 했기 때문에
바로 철군지시를 하는거죠.. 그래서 고니시랑 가토등의 임진왜란 일본 장수들이
돌아갈려고 하는데 이순신이 그네들이 조선에서 저지른 만행이 너무 심해서 그대로 돌려보낼 수
없다고 마지막 전투(노량해전)를 나가 전사하는거죠.. 그냥 명군 지시대로 걔들 그냥 보내줬으면
이순신도 안죽고 그네들 다시 쳐들어 올수 없는 상황(일본 내전발발)이었는데
이순신 입장에서는 쟤들 돌려보내면 또 조선침략할것이 뻔하고 조선에 했던 학살등을 생각할때
절대로 그냥 돌려보낼 수 없다고 해서 노량해전에 나갔다가 고니시,가토 장군들을 구하러 온
특수부대 시마즈군의 총에 맞고 전사한걸로 알려져 있죠..

가토나 고니시 , 와키자카등의 토요토미 휘하의 장군들은 모두 무사히 일본으로 다 돌아갑니다.
솔까말해서 이순신장군이 13척의 배로 왜군배 130척을 격파했다고 나오지만
조선에 파견된 일본 유명한 내노라하는 장수들은 대부분 다 살아서 일본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 군대에게 패배해 참수됩니다..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천하를 통일하고 이 사람은 좀 현명한 사람이라 조선에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평온한 일본 막부시대를 열어 메이지유신으로 막부가 무너질때까지
조선과 일본은 전쟁을 하지 않게 되고 메이지유신후 고종(명성황후 민비)때 민비 세력이
정치를 개판으로 해서(현재의 박근혜보다 100배 무능) 백성들이 피탄에 빠져 조선 백성들이
수시로 민란을 일으키다 결국 대형 민란인 동학농민운동으로 민비가 백성들에게 죽을 위기에
몰리자 청나라에 군대를 요청해 동학농민군을 처단해 달라고 하면서 청나라 군대가 임오군란에
이어 또 조선에 들어오게 되는데 이때는 텐진조약에 의해 일본군도 조선에 들어오면서
결국 민비(명성황후)이뇬의 자폭 때문에 조선에 일본을 무혈입성하게 빌미를 주면서
결국 멸망하는거죠..
     
mymiky 20-01-30 19:38
   
* 비밀글 입니다.
     
mymiky 20-01-30 19:58
   
그리고 이순신의 가묘 운운 하시는데ㅡ 가묘는 이장되기 전에
전란중에 임시로 뭍은 곳입니다

남해인가 통영인가? 가묘 터가 있고

가묘에서 파내서 정식으로 유해가 뭍힌 곳은 아산입니다

뭔 시체도 못 찾았느니? 어쩌니 하는지 모르겠네요;;
경남에 있는 가묘엔 당연히 시체가 없죠ㅡ 충남으로 가서야지ㅡ

또한 유언이

(적들에게 내 죽음을 알리지말라)가 아니라

(부하들에게 내 죽음을 알리지말라)입니다

적들에게 왜 알립니까? 한창 싸우고 있는 부하들에게
자기 죽음을 알리면 사기가 떨어질 것을 염려해

일단 전투부터 잘 치르는게 우선이니까

자기죽음을 즉시 알리지말고 ㅡ 싸움이 끝나면 이후에 알리라는 의미예요ㅡ

거북선은 순조때까진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현재는 실물이 현존하는게 없습니다

남해안에 관광지에 있는 거북선은 어디까지나  관광용인거고ㅡ

민비가 청나라 군대 불렸다고 알려져 있는데ㅡ 조선은 여자가 정치에
나서는 경우는 거의 희박합니다

고종때 민씨세력은
고종 스스로가 흥선대원군을 견제하기 위한 키운 측근 세력들이고

청군을 불러 들인것도
어디까지나 정치는 고종과  민씨 남자 친척들이 결정한거지

청나라 군이 조선의 내명부의 왕비가 부른다고
조르륵 달려오는 사람들이 아닙니다ㅡ 

민비는 가문의 성이 악명높은 민씨라는 이유만으로

혼자서 욕을 다 떠맡는건
부당한 면이 많습니다ㅡ

민비는 그저 당대 흔해 빠진
조선의 여성 왕족들 중에 하나일 뿐인데

누가 보면ㅡ  민비가 고종 제쳐두고 섭정이라도 한줄 알겠음;;;

민씨는 평생 수렴청정도, 섭정도 한 일이 없어요
고종의 뜻에 어긋난적도 없고요

그게 조선 여인의 미덕이고, 당대 유교적인 사고방식 입니다

조선왕실은 외명부ㅡ 내명부의 업무가 각기 다르구요

왕비가 어디서 군사를 파견해라니 말라니 정치에 나섰던
그런 예가 조선왕조 오백년 역사상 없습니다ㅡ

민씨정권의 무능과 폐해가 맞는데ㅡ
욕을 들어야 할 사람들은  나랏일 하는 왕인 고종과 민씨 남자 친척들이지

일개 구중궁궐 아녀자인 민비가 들을건 아닙니다

민비를 미화할 필요도 없고, 왜곡할 필요도 없습니다
          
새끼사자 20-01-30 20:36
   
일리있는 견해이긴 한데 당시 민씨가문을 키웠다고 하기엔 고종의 당시 상황이 ...거의 꼭두각시 급이었다고 알고 있는데요...
조선이 망해가고 있더라도 왕의 나라가 아니라 사대부의 나라라서..사대부의 뻘짓을 왕과 왕비가 다 뒤집어 쓰고 있다고 보고 있네요...
               
mymiky 20-01-30 20:50
   
뭔 꼭두각시  입니까?

고종은 악착같이 전제정치를 놓치 못했습니다

입헌군주제 주장하던 사람들을 다 내쫒아내고 만민공동회 독립협회
입헌군주제의 입만 꺼내도

자기 왕권 빼앗아가는 정적이라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상왕노릇 하면서 어릴때부터 스트레스 주던
기억이 있는 고종은 절대 자기 왕권을 안 놓치려고 했어요

권력  앞에선 부모ㅡ자식도 없는겁니다!

거기다 어릴때부터 받은 교육은  유교식 제왕 교육이였고

고종이나 민비나 기본적으론 전근대적인 인물들이죠

그 시절엔 어쩔수 없지만ㅡ 뭐 당연한 겁니다

글고
희안하게 대중들 머릿속에
조선왕권이 약하단 이미지가 있는거 같은데ㅡㅡ;;

역대 삼국 ,고려시대보다 왕권이 강한게 조선시대입니다

괜히 조선하면 중앙집권적이라고 하는거 아니예요!

사대부들이 그냥 있는게 아닙니다ㅡ
사대부들도 지존인 왕의 선택을 못 받으면 말짱 꽝입니다ㅡ 

세도정치란 것도  조선말 어린 왕이 연속으로 즉위하니까
어린 왕을 옆에서 보좌하면서 콩고물 얻은 외척세력 입니다

왕이 존재해야 사대부들도 왕한테 얻어먹는거죠ㅡ 그냥 되는거 아닙니다
                    
mymiky 20-01-30 21:05
   
고종과 조정대신들의 원래 계획은

원래 조선의 풍습은 지키면서 기술적인 것만 서양문물  받아들이는

청나라 양무운동 비슷한거였는데ㅡ동도서기론

알다시피 청이나 조선이나 그런 방식은 실패했죠ㅡ

급진 개화파들은 메이지 유신처럼  확 뜯어고쳐야 한다는 애들인데

당시 시각으론 위험한  부류  같았고요ㅡ

나중엔 개화가 시대적 대세라서 고종도 생각을 고쳐서 받아들이지만

그때는 여러 열강들이 조선을 벗겨 먹을라고 달려들때고

충직했던 신하들도 노쇠해서 죽거나 은퇴하고

남은 신하들은 각자도생  한다고
여기저기에 줄 대면서 친미 친러 친일 한다고 정신없고ㅡ

최종적으론 일본이 청 러샤 이기고 조선 접수 ㅡ

고종은 구 조선왕실 우대조건 받아서
덕수궁 뒷방 늙은이 취급 받으면서도

헤이그 특사보내면서 재기를 꿈꾸다 급사?인지 독살인지? 그렇게 된거죠
                    
메시짱 20-01-30 22:46
   
?? 님아.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것은
당시 왜군이 이순신하면 벌벌 떨었기 때문에 이순신이 죽은 사실이
적들에게 알려지면 전쟁에 패하기 때문에 죽기직전 부하에게 적들에게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노출시키지 마라는 의미에서 한거에요..부하들이 사기가 떨어지는게 아니라
적들이 벌벌떠는 이순신이 죽은 사실이 알려지면 전쟁에 패하기 때문에요..

https://kin.naver.com/qna/detail.nhn?d1id=13&dirId=130101&docId=36933937&qb=7J207Iic7IugIOuCmOydmCDso73snYzsnYQ=&enc=utf8§ion=kin&rank=2&search_sort=0&spq=0

근데 이것도 설이지 실제로 그렇게 말했다는 것도 설화로 전해지는거구요.
박정희시대에 이순신 영웅화하면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리고 당시 고종은 즉위했을때 한국나이로 12살 어린 아이였어요..그래서 민비가
결혼후 7년후에 성인이 되었을때 대원군의 수렴청정을 끊어버리고 자신이 친정을
하겠다고 고종을 통해 선포합니다..이 여자가 기가 세었고 뒤에 민씨 오빠들이
실세권력이어서 오빠들이 시키는데로(박근혜가 최순실이 시키는데로 아바타처럼
했듯이) 민비도 꼭두각시처럼 했던거죠.. 그래서 군대병사에게 쌀도 제대로 지급
안하고 민씨세력들이 착복하고 모래썪어 주다 열받은 군대가 임오군란 일으켰을때도
위안스카이 청나라 군대 불러들여 임오군란 일으킨 조선군사들 참수해서 목메달아
효수하게 한 뇬이 민비에요..우리 조선군사들이 무슨 죄입니까? 이 뇬이 정치를
잘못한건데..

친청정책을 써서 자기 위협 당하면 청나라 군대 불러들이다 텐진조약에 의해
일본 군대까지 무혈입성하게 하는 빌미를 제공해, 일본군대를 물러가게 하기 위해
전주화약을 맺고 동학농민군도 해체시켰는데 일본군이 친청정책을 쓰는
민비에게 상당히 불만이 많았기 때문에 내정개혁을 이유로 민비의 철군명령에
응하지 않고 경복궁 시해사건을 일으켜 결국 지 목숨 살리려고 청나라 군대
끌여들였다가 일본군대까지 조선에 출병시키게 만들어 결국 일본군과 자객에게
시해당하고 조선을 멸망하게 만들고 식민지되게 만든 아주 무능한 여자입니다..
박근혜가 최순실 아바타였고 실제 무능했듯이 민비도 자기 오빠들의 아바타였고
무능해서 결국 나라 말아먹은거죠..고종은 민비 아바타였고..
                         
사바나 20-01-31 10:04
   
뭔 이순신장군 시신도 못찼았느니 뻘소릴 길게도 늘어놨네 ㅋㅋㅋㅋ
                         
mymiky 20-01-31 10:41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선조수정실록에 있는 내용입니다!

선조수정실록 32권
선조 31년 11월 1일 임오년 (1598년)
두번째  기사

내용은 이러합니다ㅡ

쭉 노량해전의 모습을 설명하면서ㅡ마지막에

 적의 탄환에 쓰러진 이순신을
부축해 장막에 들어서니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마라고 하고 곧
절명했다 이순신의 조카 이완이 이순신 명을 따라서 대신 지휘했고
군중들은 장군의 죽음을 알지못했다ㅡ그런 내용입니다

왠 박정희가 나오는건지 모르겠군요;;

선조수정실록이 조선시대에 편찬된 것인데
박정희가 타임머신이라도 타고가서 써놓았다고 주장 하시진 않겠죠?

게다가 뭔 민비가 흥선대원군 섭정을 끊어버리고 고종 대신 친정을 합니까?
황당한 소리죠ㅡㅡ

고종이 성인이 되면 대원군은 이제 그만해야 되는것도 맞고
대원군을 그만두게 한건 고종의 본인의 의지지
민비가  하라마라 할게 아닙니다ㅡ 그저 남편의 뜻에 공손하면 되는거예요ㅡ

그게 아내의 의무이고 중전의 의무입니다ㅡ

기본적으로, 조선이란 국가 시스템상
여자가 정치일에 관여하는걸 용인할 나라가 아니예요ㅡ

조선 역사상 그런 경우가 없습니다ㅡ

어린 왕이 즉위해 대비나 대왕대비가 수렴청정을 해도
정해진 절차와 법도에 따라 했지ㅡ 마구잡이로 한적이 없습니다

하물며 수렴청정도 그러하거늘ㅡ
멀쩡히 남편도 살아있는데, 뭔 왕비가 정치를 해요?

님은 당시 국왕인 고종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동시에,
민비를 너무 과대평가 하는거 같군요ㅡ

모든 국가정책은
편전에서 왕과 고관대작들이 하는 것이지

왕비가 내명부에서 하는게 아닙니다 ㅡ

정치 무능을 욕하려면
결정권자인  왕인 고종이 먹는게 맞는거고,
제대로 보필 못한 신료들이 먹어야 맞죠

나랏일을 죄다 남자들이 망쳐놓고
왜 일개 아녀자인 왕비에게 욕을 하죠?

그건 이상한 프레임이예요ㅡ

나라가 망하면 다 임금을 홀리는 간사한 요녀 때문이라는,
경국지색 이야기 수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군주제 하에서 왕을 직접적으로 욕하면
반역이 되니 왕을 못 까고

때마침 고종이 민씨들의 세력을 키워서 자신의 측근으로 대거 기용했는데
문제는 이들이 별로 유능하지 못 했던건 있죠

왕실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백성들의 눈으론
겉으로만 보이는건 민씨네가 정권을 잡고 있으니ㅡ

왕비의 친척들이라해서
왕대신 왕비가 욕받이 되기 좋았던 거예요ㅡ

실제론 왕비가 정치질 하는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온갖 욕이란 욕은 만만해 보이는 왕비한테 쏠린겁니다

민비가 앞에서 욕받이 될때ㅡ
정작 진짜 정치실패의 책임이 있는 자들은 뒤로 감추어져 버립니다
     
수염차 20-02-06 11:24
   
읽다가 말앗는데
충무공이 너님 친구입니까??? 이순신이??  토착왜구나 줭꿔군요....
우리 한민족중  누구도 이순신이 라고 부르지않아요....

세계전쟁사중......해전으로 전쟁자체를 뒤집은 거의 유일한 전쟁/전투가 충무공의 23전 23전승이라고 가르치는데요

너님이 왜구인지 중꿔인지 관심없으나...한국에서  "이순신이"라고  함부로 지껄이지말아요
개욕처먹습니다......ㅉㅉ
냉각수 20-01-30 21:44
   
임진왜란을 조일전쟁이라 고처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왜란과 전면전이라는 전쟁과
둘성격은 확연히 차이가 나니까요...저도 조일전쟁이라 불러야 한다 생각하지만
대개는 혐일론자들이 당시 일본은 쪽국이며 나라도 아니었다...라는 근거로 국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조일전쟁이라면 친일론자로 몰리죠 그러나 국가대 국가로 싸운것은 전쟁이라 봐야 한다
생각합니다.개인적으론요...

그리고 조일전쟁은 확실히 조선이 승리한전쟁입니다 그러나 당시 조선이 전쟁터 한복판이니 상처뿐인
승리라는 자조감으로 조일전쟁의 승리가 퇴색된것이고 승리라 부르지않는 것이라 봅니다 정서적으론요.
옛날 나폴레옹 군대가 모스크바를 불태우고 수도를 내준 러시아는 승리라 자처합니다
그와 같은것이라 봅니다 끝까지 투쟁해고 승리했으니까요..
구름위하늘 20-01-31 11:15
   
전쟁의 승패는 물적/인적 피해의 대소로 가려지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 목표의 달성 여부로 가려지는 것 입니다.

일본의 전략적 목표는 "정명가도"이고
조선 전체의 확보나 일부 확보 후 명나라를 침략하는 것이 일본군의 목표였습니다.

전쟁의 결과는 ... ? 그러기에 전쟁의 승패는 ...? 너무 뻔한 답이라 달지 않았습니다.
구름위하늘 20-01-31 11:16
   
혹시 일본군의 전략목표가 "조선도공 납치"였다면 일본군의 승리^^
     
앨리 20-01-31 22:41
   
그러게 말입니다.
포테이토칩 20-01-31 21:05
   
물적/인적 피해량이나 대외 원조로 이긴 전쟁이 이긴 게 아니라면.....

독소전쟁은요??

피해량도 소련이 압도적이였는데다가 미국의 랜드리스 물량도 어느정도 받았는데.
셀틱 20-02-01 11:08
   
임진왜란은 북방 이민족의 대 중원 약탈전과 궤를 같이 한다고 봅니다.
암만 중원에서 산해관 밖으로 오랑캐를 쫓아내고 어쩌고 해도
이미 국토는 유린되고 물자는 빼앗긴데다가 국민들은 끌려가고...
이런 양상에 승리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결과적으로 보면 정작 산해관밖으로 쫓겨간 오랑캐의 승리죠.
     
mymiky 20-02-01 11:34
   
명은 이자성의 난으로 멸망했지
만주족한테 망한게 아닙니다

청은 요동 변방에서 약탈 좀 하는걸로 살다가

이자성의 난으로 빈집털이에 성공한거죠
오삼계가 산해관 문 열어주기 전엔 힘들었어요

그리고 중국의 예와 임진왜란은 다르죠

중국이야 만주족들이 최종적으로 중원 땅따먹기에 성공했다쳐도
일본은 아니니까요ㅡ 조명 연합의 대륙세륙에 밀려서 다시 집에 가는걸로 끝났는데

두 경우는, 전혀 다른 예시 같군요
          
촐라롱콘 20-02-01 20:54
   
청나라의 입관 이전 시기라 하더라도
병자호란 이후인 1630년대 후반~1640년대 초반 시기가 되면
약탈 지역이 기존의 북경-산해관 밖인 요서 지역에 그친 것이 아니라

청나라에게 복속된 내몽골(외번몽골) 지역으로 우회하여 만리장성을 넘어
북경 인접한 지역은 물론 비교적 후방인 산동-제남 일대까지 휘젓고 다니며
인축과 물자를 탈취하여 유유히 철수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청나라의 입관 이전시기부터 당시 명나라는 요새화된 성곽 안에서만 전전긍긍하며
겨우 청나라를 방어해내고 있었을 뿐 이미 망조가 확연하게 보이는 시점이었습니다...!!!

이자성이 북경을 점령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배경 또한 청나라와의 오랜 대치-전쟁 과정에서
많은 정예병력을 소진하고(ex 홍승주의 병력...등등) 막대한 전비를 소모하여
정작 이자성의 반란군을 제압할 여력 자체가 남아나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배경이었습니다...!!!
국산아몬드 20-02-01 19:33
   
조선이 정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을까요?
7년전쟁이라 말을 하지만 전국토가 전장터가 된건 1년밖에 안되고 나머지 6년은 남해안에 틀어박혀 살았는데
그 1년에도 전라도는 멀쩡했고요
     
촐라롱콘 20-02-01 20:58
   
당시 조선인구의 대략 1/3이 왜란과 그 후유증으로 제 명에 못 살고 죽었고....

전반적인 생산량 또한 왜란 이후 거의 100년이 지나서야 겨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었는데

치명적인 타격이 아니라니요.....???

물론 왜란 이후 발생한 2차례의 호란 또한 조선이 피폐해진 배경으로 작용했지만 왜란에 비해서는

전쟁기간이 짧아 타격이 덜했습니다....!!!
          
국산아몬드 20-02-02 01:08
   
1/3이니 뭐니 하는 수치는 전부 문헌적 근거가 없는 개소리입니다

토지 대장가지고 100년이 지나야 회복 운운하는 모양인데
전란으로 토지대장이 다 사라져서이지 토지가 어디 갔겠습니까?

상식적으로  겨우 1년 전쟁 치렀는데 1/3이 죽는다는게 말이되나요?
그렇다면 백년전쟁 치른 프랑스는 나라가 없어져야지요

그리고 일본의 점령은 넓은 지역을 장악한게 아니라 주요 거점만 겨우 지배한거요
그외 지역은 영향이 거의 없었는데 어떻게 1/3이 죽어요?
전쟁중에도 왜군식사량의 3배나 먹었는데

임진왜란에 대한 과장된 피해는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의 힘을 과장하기 위한
일제의 세뇌에서 비롯된거요
               
촐라롱콘 20-02-02 08:59
   
전근대 시기에는 특히 전란중에 죽는 사람들 가운데
외적의 총칼에 죽는 사람들보다도 그의 영향으로 인한 기아,전염병으로
죽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법입니다....!!!

호란 가운데서도 정묘호란 당시만 하더라도
2만의 침략군(호활 3만이라 칭하며)과 불과 2~3달의 전란기간만으로도
침략군의 발길이 미친 평안도-황해도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특히 청천강 이북 지역은 폐허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특히 수군이 없는 후금군이므로....도서지역으로 피난하면 살겠지 하는
생각에 대거 도서지역으로 몰려갔던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굶어 죽었습니다....!!!
.
.
더군다나 임란같이 비교적 장기간에 걸친 전쟁에서 나라의 주된 생산력이 농업에서
나오는 농업국가에서 생산력의 주체인 수많은 농민들이 유랑민으로 떠돌아다니는
상황은 경작기의 황폐화는 물론 식량 등을 비롯한 국가생산력의 막대한 감소로 이어지고 
흉년이 들어 수많은 사람들의 아사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또한 아사를 겨우 면했다 하더라도 몸의 저항력이 떨이진 상황에서
전염병이라도 창궐하면 몸이 견디지 못하고 떼죽음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일제시기에 조선인들을 일본에 동화시키는 정책을 취하는 일본이
또라이들도 아니고 조선-일본이 피터지게 싸운 임진왜란을 뭐하러 강조합니까....???

오히려 반대로 임란 자체를 축소하려고 전전긍긍하는 모습들을 보였는데....

임란 당시의 참상은 당대의 조선사람들의 기록들만 하더라도 무궁무진합니다....!!!
비교적 유명한 징비록, 난중일기에서도 잘 나타나 있구요~~~
특히 난중일기에 보면 소강상태인 휴전 기간 동안에도 조선수군 수 천명이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1만여 수군 가운데 무려 1/3이 전투중의 전사도 아닌 질병으로 갈려나간 겁니다...!!!

전란이 끌난 이후 삼남지방을 둘러본 관리들의 기록을 보면
대읍에도 고작 수 백호(이전에는 수천호), 소읍에는 수 십호(이전에는 수 백호)만의
인가가 거주할 뿐이고....
그래도 조선에서는 상대적으로 인구밀집 지역인 삼남지방임에도
하루 종일 걸어도 인적 하나 발견하지 못하는 날도 여러 날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국산아몬드 20-02-02 10:42
   
자꾸 말도 안되는 이유로 피해를 강조하시는데
 
먼저  전염병은 전쟁 아니라도 발생하는 겁니다.평화시에는 전염병 없었어요?

삼남지방에 며칠동안 걸어도 인적이 없었다?
그건 삼남지방이 왜군의 주 활동지이기 때문이고 중부와 북부는 큰영향이 없었어요
그리고 인적이 없다는 말은 주민들이 다 죽었다는 것이 아니고 피난갔다는 의미죠
전쟁터 자리에 누가 자리 지키고 농사짓고 살겠어요?

당신말대로라면 유럽에서는 100년 전쟁, 30년 전쟁, 7년 전쟁 등 전쟁을 수시로 했으니 유럽에서는 사람이 다 죽었어야 했겠네요
유럽에서는 30년 전쟁처럼 30년동안 전투 후에야 독일인구 30프로가 감소했어요
30년 전쟁은 프러시아, 스웨덴, 보헤미아, 덴마크, 노르웨이, 네델란드, 프랑스, 스코틀랜드, 잉글렌드,투르크등 한마디로 유럽 전체국가가 독일에 모여서 종교적인 광기에 휩싸여 서로 죽인 , 임진왜란과는 비교도 안되는 대규모 전투였습니다
그런 적대감으로  30년간이나 전투를 치렀는데도 인구 감소폭은 30프로입니다

유럽은 30년동안 전쟁해야 30프로 감소인데 조선은 겨우 1년 전쟁에30프로 감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요?
더군다나 30년 전쟁처럼 전국이 전쟁터가 아니라 일부 지역 중심으로 전투가 벌어졌는데

뭔가 주장을 하실려면 다른 지역의 사례와 비교해가면서 보편적인 관점에서 주장해야지
단편적인 사례를 침소봉대해서 일반적인 사례로 왜곡하면 안되죠
위구르 20-02-07 00:05
   
독소전쟁때 소련이 도이칠란트로 쳐들어가지 못하고 전쟁 끝났다면 이와 비슷했을듯. 사실상의 패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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