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20-01-23 17:52
[북한] 북한의 역사를 지켜보면서..07편.
 글쓴이 : 돌통
조회 : 799  

06편에 이어서~~

 

 

하루가 지난 2월 13일, 북한외교부에서 남조선당국이 나를 납치했을 경우에는 응당한 대가를 치를 것이란 성명을 발표했다고 대사관 직원들이 알려주었다. 중국외교부에서는 관련당사자들이 대국적 견지에서 냉정하게 대처할 것을 촉구하는 공식입장을 최초로 발표했다고 한다. 또 김하중 외무장관 특보가 중국을 방문해서 중국외교부측에 협조를 요청했다고 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를 위로했다.



나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는 그저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하고, 북에서 가지고 온 원고를 정리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 작업을 하면서 김덕홍의 사람 됨됨이에 다시 탄복했다. 그는 우리가 하는 일이 정당하다는 확고부동한 신념을 갖고서 나를 위로하고 돕기 위해 세심한 신경을 쓰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는 것이었다. 덕홍은 밤이면 잘 들리지 않는 라디오로 남한방송과 북한방송을 청취하고는 내게 알려주었으며, 내 건강을 위해 내가 민망할 정도로 이것저것을 대사관측에 주문했다.



나는 그와 수십 년 동안 친형제나 다름없이 지냈다. 또 양쪽 가족들도 우리의 결의형제를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 그가 그저 동생이라고만 부르기에는 너무도 귀중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대사관의 모든 직원들이 우리를 극진히 보살펴주었고, 한국정부에서는 의사까지 파견하여 건강을 살펴주었다. 서울에 살고 있는 평양상업학교 동창생과 제자들, 남한의 친지들 그리고 하와이대학의 글렌 페이지교수를 비롯한 세계 도처의 벗들로부터 격려의 전보가 날아왔다.



그러면서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데 돌연 앞이 캄캄해지는 충격적인 일이 생겼다. 서울의 주요 신문사들이 내가 망명을 준비하면서 덕홍에게 은밀히 써주었던 쪽지 편지들과 일련의 논문들을 공개했던 것이다. 나는 너무도 놀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소리를 정말로 들었다. 중국과 북한은 서로 간첩죄를 지은 범인을 돌려보내기로 협약을 맺은 상태이다.



그러나 서울의 언론에 발표된 그 논문들은 내가 주체사상 국제토론회 때 외국인들에게 선전하기 위해 작성한 것인 만큼, 비준을 받지 않은 것이라 하여 비판을 받을 수 있어도 나를 간첩죄로 몰지는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망명을 준비하면서 덕홍에게 써준 편지글에는 북한의 비밀이 적지 않게 담겨 있어, 이것을 가지고 김정일이 간첩행위라고 강하게 주장할 경우에는 중국정부로서도 곤란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불안으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것이다.



1996년 11월 10일자로 내가 덕홍이 편에 우리의 망명을 주선한 사람에게 보낸 편지는 수첩용지에 급하게 휘갈겨 쓴 것이었다. 그런데 그 편지가 조금도 걸러지지 않은 채 그대로 신문에 발표되고 말았다. 물론 97년 2월 12일부터 신문에서는 나와 덕홍의 망명사실이 대서특필되고 있었다. 그 편지들은 감시가 너무도 엄중한 북한의 현실에서, 마음대로 대화를 나눌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내가 덕홍과 함께 산보를 하면서 수첩에 몇 자 적어준 것들이다.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몰라 불안함과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나는 오직 신념 하나만으로 견뎌 나갔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독하게 마음을 먹고 내 생일날인 2월 17일에 아내 박승옥에게 남기는 유서를 썼다.

 

사랑하는 방승옥 동무에게.


내가 당신까지 속인 채 당신을 버리고 이곳에 와보니,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였고 나와 당신의 생명이 얼마나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는가를 새삼스럽게 느꼈소. 당신이 걱정하며 머리 숙이고 있는 모습이 떠오를 때면 나처럼 인정 없는 사람도 막 미칠 것 같소. 할아버지에게 욕을 먹고 자기의 자주성을 지켜 항의해보려고 복도 구석에 누워 있던 지현이, 호의를 표시하며 환심을 사려고 장난감을 가지고 막 달려오던 어린 지성이를 생각할 때마다 막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소.



나 때문에 당신과 사랑하는 아들딸들이 모진 박해 속에서 죽어 가리라고 생각하니 내 죄가 얼마나 큰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오. 나는 가장 사랑하는 당신과 아들딸들, 손주들의 사랑을 배반하였소. 나는 용서를 비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나를 가장 가혹하게 저주해주기 바라오. 나는 나를 믿고 따르며 나에게 희망과 기대를 걸어온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모두 배반하였소. 그들이 나를 사람이 아니라고 욕하는 것은 응당하다고 생각하오.



가슴만 아플 뿐 사죄할 길이 없소. 나는 이것으로 살 자격이 없고 내 생애는 끝났다고 생각하오. 저 세상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저 세상에서라도 다시 한 번 만나보고 싶소. 만일 조선노동당이 지금의 비정상적인 체제를 버리고 개혁·개방을 하고 평화통일을 지향한다고 공개적으로 선포한다면, 비록 그것이 나를 속이기 위한 술책이라 하더라도 나는 평양으로 돌아가 가족들의 품속에서 숨을 거두고 싶소.



사랑하는 사람들과 생이별을 한 이 아픈 가슴을 이겨내며 내가 얼마나 더 목숨을 부지할지는 알 수 없으나, 여생은 오직 민족을 위하여 바칠 생각이오. 나 개인의 생명보다는 가족의 생명이 더 귀중하고 가족의 생명보다는 민족의 생명이 더 귀중하며 한 민족의 생명보다는 전 인류의 생명이 더 귀중하다는 내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만 알아주기 바라오.



사랑하는 박승옥 동무!


당신이 이 편지를 받아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으나, 내가 언제 목숨을 끊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유서 삼아 적어두는 것이오.



1997년 2월 17일
베이징 한국총영사관에서
황장엽



유서를 쓰고 나니 무거운 마음이 오히려 더 무거워졌다. 이제 살아서는 아내와 자식들을 더 이상 만나지 못한다는 슬픔이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잊으려고, 북에서 가져온 원고를 좀 더 빨리 정리하느라고 애를 썼다. 원고를 읽어보니 남몰래 써둔 것이라 문맥이 통하지 않은 것이 많고 고쳐 써야 할 데가 적지 않았다. 나는 일단 아주 잘못된 것만 우선적으로 고치고, 또 그 중에서 하나만이라고 제대로 고쳐야겠다고 생각하고 「주체철학의 기본문제」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이상..     08편에서 계속~~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Total 19,949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공지] 게시물 제목에 성적,욕설등 기재하지 마세요. (11) 가생이 08-20 84015
19085 [한국사] 조선 후기 평안도 행정구역 짧막하게 고찰 (대동지지… 보리스진 07-16 815
19084 [기타] 유럽의 선사 시대 문화 (고인돌, 매장풍습) 한국 관… (2) 조지아나 07-16 892
19083 [한국사] 북한 평양에 낙랑군과 낙랑군 유물은 ◐없었다는데..… 수구리 07-16 761
19082 [한국사] 우리 조상들이 만주/한반도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2) 감방친구 07-16 999
19081 [한국사] 서기 313년까지 북한이 500년 동안 중국영토라는 동북… 수구리 07-16 942
19080 [한국사] 대동지지로 살펴본 평안도 위치: 19세기 조선의 서북… 보리스진 07-15 1095
19079 [한국사] 외국 학자들의 동이족 상고사에 대한 견해 (12) 수구리 07-15 1501
19078 [한국사] 18t세기 프랑스 사제 단군조선에 대하여 기술하다 (ft… (3) 조지아나 07-14 1422
19077 [한국사] 광복과 관련해서 이 말을 했던 인물이 누구였죠? (4) BTSv 07-13 760
19076 [한국사] 민족반역자들이 설치는데도 찍소리 못하면서 뭘 잘… 스리랑 07-13 769
19075 [한국사] 한사군에 대해서 가장 압도적인 연구를 한 사람은 (27) 감방친구 07-13 1317
19074 [한국사] 익명의 사람들이 모여 역사를 탐구하는 곳에서 (9) 감방친구 07-13 824
19073 [한국사] 외국의 친한파 역사학자 중에 이상한 점 (7) 국산아몬드 07-12 1215
19072 [기타] 송나라는 왜 금나라를 신라新羅라고 불렀나 관심병자 07-12 1094
19071 [한국사] 사료개척에 입각한 주권사학의 변혁적 구상ㅣ임재해… (10) 스리랑 07-12 879
19070 [한국사] 『고조선과 21세기』저자: 김상태 -책을 추천해드립… (10) 보리스진 07-11 880
19069 [한국사] 연구자들이 논문을 공개하고 책을 펴내는 이유는 (4) 감방친구 07-11 834
19068 [한국사] 사람들이 책 자체를 잘 안 읽습니다 (16) 감방친구 07-11 797
19067 [한국사] 뜬구름 잡는 소리들이 있네요 (25) 감방친구 07-11 864
19066 [한국사] 대안사학 이라는 용어의 사용을 제안합니다. (37) 엄근진 07-11 775
19065 [한국사] 우리 고대사 공부를 위한 루트 (15) 감방친구 07-10 1012
19064 [한국사] 윤내현 고조선연구. 감상과 요약 (27) 엄근진 07-10 1134
19063 [한국사] 150여 년 전 경복궁 분뇨 정화조(ft.수세식 변소) (5) 감방친구 07-08 1632
19062 [한국사] 초중고 역사교과서의 선사와 고조선 서술문제검토 스리랑 07-08 700
19061 [한국사] 신라 황금보검과 동일 삼태극 문양의 류쿠국 국기 (1) 조지아나 07-07 1680
19060 [한국사] 조승연의 탐구생활에 나온 돌궐 영역 지도 (74) 감방친구 07-07 1766
19059 [한국사] 주주통신원, 고대사 논쟁에 뛰어들다 (1) 지누짱 07-07 1044
 <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