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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1-21 18:31
[기타] 백제, 나당 전쟁 미스테리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1,413  

] #1. 백제를 침공하기 위해 660년 5월 26일 경주를 출발한 5만 신라군은 백제의 수도 부여를 지나쳐 6월 18일 경기도 이천까지 기동했다. 왜 그랬을까?

#2. 소정방은 660년 6월 18일 13만 대군과 1900척의 전선을 이끌고 중국의 산동반도를 출발해 21일 인천 덕물도에 도착했다. 3일간 총 310㎞를 항해했다. 이후 소정방은 백제 수도 부여에 7월 10일 도착했다. 덕물도에서 부여까지는 205㎞, 3일이면 충분한 거리를 20일간 항해한 것이다. 그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을까?

#3. 계백장군의 5000 결사대가 황산벌에서 싸우고 있을 때 나머지 백제군사는 다 어디에 있었을까?

영남대 한국군사문제연구소 이재준 박사. 1982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중부전선 DMZ작전과 강릉무장공비작전을 수행하고, 연대장과 여단장을 지낸 뒤 최근 전역한 육군 대령의 눈에는 660년 백제가 멸망할 당시 마지막 전투에 미스테리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시 당군의 편제나 규모, 동선은 현재의 군 기동과 보급능력으로도 보더라도 불가능에 가깝다. 역사적 기록 외에 숨겨진 이야기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 이 박사의 분석이다.

백제의 마지막 전쟁에 대한 군사학적 연구는 이렇게 시작됐고, 이 박사는 그 결과를 지난 6월 ‘백제멸망과 부흥전쟁사’(경인문화사)를 통해 공개했다.

“전해지는 사료와 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된 기록들을 종합해보면 당군은 당진에 상륙해 면천 백제수군창고를 공격해 부족한 식량을 탈취하고, 예산 대술면과 공주 탑곡리까지 허위기동을 하고 돌아갔다. 약 10일이 걸렸다. 이후 당군은 배를 이용해 당진에서 보령으로 이동해 미조포에 상륙한 뒤 미산면과 청양군 대치면까지 조공부대를 투입했다. 그런 후에야 기벌포라고 하는 서천과 군산지역을 공격했는데, 이는 주력부대인 소정방이 금강을 통해 부여로 진격하기 위한 진입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견부확보작전이었다. 일정상으로 7월 7~8일 경이다.”

이 책에 따르면 백제는 당군의 기동을 막기 위해 6만 명의 군사 중 3만 명을 예산·당진 방면으로 투입시키고, 나머지 2만 5000명을 왕성 수비에 남겨뒀으며, 나머지 5000명으로 계백장군으로 하여금 신라군을 막게 했다. 이 작전의 실패로 결국 백제는 패망을 겪게 됐다는 것이다.

출처 : 굿모닝충청(http://www.goodmorningcc.com)

http://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72553


신라는 669년의 철저한 전쟁준비를 거쳐, 670년 3월 설오유(薛烏儒)의 부대를 요동(遼東)으로 전격 파견한다. 신라의 설오유와 고구려부흥군의 고연무(高延武)가 각각 1만명씩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 오골성(烏骨城)을 선제 공격했다. 4월에 이르러 당군이 계속 도착하자 백성(白城)으로 물러났다. 설오유 부대의 요동작전은 신라의 치밀한 계획 아래 진행되었으며, 정병 1만이 동원되어 말갈병 및 당군과 접전을 벌인 점에서 본격적인 나당간의 충돌로 볼 수 있다.
요동을 선제공격한 신라는 670년 7월부터 671년 7월까지 웅진도독부에 대한 전면공격을 감행하고 백제 옛 땅 대부분을 점령하였다. 80여 성을 한꺼번에 점령한 것으로 보아 사전에 치밀히 준비된 공격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당은 웅진도독부에 구원군을 파견하였다. 이 웅진도독부 구원군은 671년 6월 석성(石城) 전투에서 신라군에게 패배를 당하였다. 반면 신라의 웅진도독부 점령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결국 7월에는 신라가 백제 옛 땅에 소부리주(所夫里州)를 설치하고 도독(都督)을 임명하게 되었다.
앞서 670년 4월에 편성되었던 고간(高侃)의 동주도행군(東州道行軍)과 이근행(李謹行)의 연산도행군(燕山道行軍)은 671년이 넘어서야 한반도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671년 7월 안시성(安市城)에서 고구려 부흥세력을 진압하고 평양으로 남하해 왔다. 672년부터 황해도에서 나당간의 본격적인 전투가 발생했다. 특히 672년 8월 석문(石門) 전투에서 신라는 장수 7명이 사망하는 참패를 당하였다. 이에 신라는 당에 사죄사를 파견하는 한편, 전국적으로 대규모 축성작업을 단행하였다. 신라는 전략을 공세에서 방어로 전환하게 되었다. 황해도 공방전을 거치면서 신라의 방어선은 대동강선에서 남하하여 673년 무렵에는 임진강선까지 밀리게 되었다.
신라 수군의 활동과 신라군의 결전 회피로 인해 당군의 보급문제가 점차 대두되었다. 장기간 신라 전선에 투입되었던 당군의 병력수급 문제 등으로 인해 전선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이에 당은 고간·이근행의 4만명만으로는 신라 본토 공격을 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674년 유인궤(劉仁軌)의 인솔 하에 대규모 신라 원정군을 편성하였다. 유인궤는 이듬해 신라 전선에 도착하여 675년 2월 칠중성(七重城)주 09)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당으로 돌아갔다. 유인궤를 대신하여 이근행이 병력을 충원받은 후 한반도 경략을 담당하게 되었다.
675년 당시 이근행 주도 하에 매소성에 주둔하던 당군은 20만명이라 기록되어 있다. 과장된 수치라며 부정하는 견해도 있다. 기록을 그대로 믿지 않더라도 최소 5만명 이상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나당전쟁에는 고간·이근행의 행군병력 4만명 이외에, 설인귀의 계림도행군 2만명을 비롯하여 유인궤의 계림도대행군 최소 4만명 이상이 투입되었다. 이들 병력과 안동도호부 산하의 병력 그리고 지원부대를 모두 더하면, 나당전쟁기 동원된 당군은 최소 10만명에서 많게는 20만명에 달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1307
현재의 지리비정은 역사적 사실과 맞지않습니다.
백제 멸망 당시를 설명하지 못하고
웅진도독부, 안동도호부를 다 무시하고 요동을 공격한 신라의 군사적 행동 역시 이해할수 없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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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 20-01-22 13:30
   
전쟁의 무대가  현  조선반도가 아닌  중국대륙이라 생각합니다
역사서나 조선실록들이나  기타 시문집보면  이곳이 아니란 생각이 아주 많이 납니다
ItZiMoTal 20-01-22 20:22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는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운 이후에 다시 쓰여 졌다는 것.

위화도회군 이후 고려의 왕이나 왕자는 명에 틈틈이 끌려(?) 가고 볼모로 잡히는 신세가 됐다는 것은
위화도회군이 단순히 고려군 일부의 쿠데타가 아닌 명이 깊이 관련될 수 밖에 없는 사건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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