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20-01-20 16:39
[북한] 북한의 역사를 지켜보면서..04편.
 글쓴이 : 돌통
조회 : 758  

03편에 이어서~~


 

아내는 아무 말 없이 토마토가 든 광주리를 들고 돌아섰는데, 그 어깨가 기억에 남을 만큼 축 처져 있었다. 그 순간에는 내 말의 뜻을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더라도, 이제는 그게 어떤 암시였다는 걸 깨닫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하나는 내가 북을 떠나기 보름 전쯤에 있었던 일이다. 그날 나는 그동안 써두었던 두 트렁크 분의 원고를 모두 불살라버렸다. 그때 아내가 가만히 다가와 물었다. “아끼던 원고를 왜 태워요?” “이젠 필요 없을 것 같아서.”



그때도 나는 그렇게 짤막하게 대답했지만, 아내는 왠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아내도 내 스스로 자기 사상을 마음대로 발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보아서는 안 되는 글을 많이 써둔다는 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걸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면서 여러 해에 걸친 내 정신적 생산물들이 한줌 재로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사무실에서 챙겨온 카메라며 고급 만년필 따위 귀중품들을 아이들에게 나눠주도록 했다. 개중에는 우리 부부에게 아직 필요한 것들도 있었다. 그런데도 아내는 역시 아무 말 없이 따라주었다. 더 물어볼 필요도 없이 내 속마음을 짐작하고 있었던 것일까. 물론 나는 나대로 가족을 구할 계획을 세우고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그런데도 이렇게 훌훌 떠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생각 못지않게 나를 몰아댄 내 마음속의 또 다른 목소리 때문이었다. ‘결국 구해낼 수도 없으면서 미련을 갖고 주저하면 너는 끝내 떠나지 못하고 만다. 그리되면 훗날 역사는, 그때 북에서는 그렇게도 엄청난 폭력과 불합리 속에 인민들이 고통받고 있는데도 당당하게 나서서 비판하거나 저항한 지식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말할 것이다’라는 그런 소리 말이다.



하지만 이처럼 무사히 서울에 당도하고 보니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가족이고 특히 아내이다. “잘 다녀오세요” 그날 아내는 늘 그랬듯이 그렇게 담담한 인사로 나를 보냈다. 나는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차에 올랐지만 마음속으로는 피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나의 이 결단이 한낱 속된 욕망의 추구가 아니라 민족적 양심의 부름에 순응하는 것이며, 분단 상황을 고착시키는데 기여했던 한 지식인이 조국통일의 제전에 바치는 마지막 헌신이라는 것이 과연 아내에게 위로가 될는지.

살아서 다시 만나 한지아비로서 자기 아내를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죄를 씻을 날이 올는지. 원래 내가 망명을 계획했던 곳은 일본이다. 그러나 일본에 도착한 지 하루도 안 지나서 나는 불길한 예감 속에 그 결행을 미루지 않을 수 없었다. 조총련 쪽에서 나온 사람들이 호위라는 구실로 밤낮없이 내 주위를 겹겹이 둘러싸면서 도무지 몸을 뺄 틈을 주지 않았다. 낌새를 느낀 김정일의 특별지시가 있어서 밀착 집중감시에 들어간 게 아닐까 하고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래서 결국 다음 경유지인 중국에서 망명을 결행하게 되었다.
 

  

 

              이상..    05편에서 계속~~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Total 19,980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공지] 게시물 제목에 성적,욕설등 기재하지 마세요. (11) 가생이 08-20 85717
1080 [한국사] 60여명이 8년동안 47억의 국민 혈세를 쓰면서 만들었… (1) 스리랑 02-27 910
1079 [한국사] 낙랑국 과 낙랑군의 경계선 (3) 도배시러 06-11 910
1078 [기타] 한국의 식민사학 (9) 관심병자 06-18 910
1077 [기타] 해동역사지리고의 현재의 해석과정 관심병자 07-05 910
1076 [기타] 동아게에 (11) 인류제국 10-26 910
1075 [한국사] 고조선과 한국사에의 접근 (4) 감방친구 11-09 910
1074 [북한] 북한은 소련의 '꼬봉'이 아니었다. 돌통 05-19 910
1073 [한국사] 고려시대에는 백성들도 용과 봉황 무늬를 즐겨 사용… (2) 월하정인 03-03 909
1072 [한국사] 대방군의 위치에 관한 기사 히스토리2 05-29 909
1071 [한국사] 왜(倭) 2 - 《산해경》의 倭 (2/6) (13) 감방친구 08-17 909
1070 [한국사] 도배시러님, 마석산이요! (5) 감방친구 03-14 908
1069 [한국사] 유왕성 유왕역 그리고 한나라 유성현 (4) 삼바 08-23 908
1068 [한국사] 대한민국 내부의 식민사학자들 스리랑 11-06 908
1067 [한국사] 유사역사학의 황당한 주장 '고고학은 조작이다�… (6) 고이왕 06-19 907
1066 [한국사] 기록 관점으로 보는 누번(樓煩)에 따르는 고조선(古… 현조 07-21 907
1065 [한국사] 여러분, 진짜 미치겠네요 (2) 감방친구 03-11 907
1064 [한국사] ‘요동의 장통이 낙랑 백성 이끌고 모용씨 귀속설’ … (1) 히스토리2 05-28 907
1063 [북한] 일제강점기때 독립군 단체 "동북항일연군"이란 돌통 09-05 907
1062 [세계사] 영국, 아일랜드의 선주민과 도래계 하플로 그룹을 알… 하플로그룹 08-15 906
1061 [한국사] 궁금한게 함보를 김씨라고 기록한 역사서가 없는데 (34) 하응하치 02-17 906
1060 [기타] 호공(瓠公)이 마한(馬韓)에 사신으로 다녀오다 관심병자 07-28 905
1059 [한국사] 낙랑군이 평양이라는 것은 역사에서 정설이 아닌 적… (21) 타이치맨 12-23 905
1058 [한국사] 백제 (1) history2 02-13 905
1057 [기타] 의문이든다 (3) 바토 06-26 904
1056 [한국사] 명성황후의 왜곡과 미화 (4) mymiky 06-30 904
1055 [한국사] 옥저 얀콥스키 뉴딩턴 01-14 904
1054 [기타] 동아시아에 있어 해양민족이라고 한다면... (11) 윈도우폰 08-12 904
 <  701  702  703  704  705  706  707  708  709  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