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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1-11 14:33
[북한] 황장엽 선생이 김정일과김대중에게 비판.김일성에..03편
 글쓴이 : 돌통
조회 : 627  

02편 이어서~~ 

 

 

 

1945년부터 1974년까지는 김일성의 독재정권이 수립되고 공고화되는 <김일성시대>였다. 1974년부터 1994년까지는 김일성·김정일의 2중 정권시기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김정일은 제2인자가 아니었다.  이 점에서 김일성의 동생인 김영주와는 지위가 달랐다.

 

 

물론 형식상으로는 김정일이 제2인자의 자리에 있었으나 그는 처음부터 실권자였다. (여기서 나중에 김영주 부분을, 황 선생은 수정하게 되는데.. 요 는?  

 

당시 김영주가 2인자라고 할만큼 위신이 높았는데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그를 숙청,내쫏은 것이 아니라 그 당시 김영주가 몸이 너무 안좋아서 스스로 물러났다는 거다.

 

김일성이 몇번이고 만류했는데 고집을 부려 지방으로 가족도 안데리고 갔다고 한다. 그것도 일반집으로..

 

실제로 1972년인가? 7.4공동성명할때 김영주가 책임자로 됬는데 사실 김영주는 김일성한테 몸이 너무 안좋아서 거절을 했는데 들어주지 않아 어쩔수 없이 대표직을 맡았다.

 

나중에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혹시 그가 거짓말을 하나 떠볼려고 만찬 자리에서 김영주 한테 술을 권했는데 김영주가 거절을 했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과 분위기를 이끌어 김영주 한테 한잔만 마실것을 권했다고 한다.

 

계속 거절하다 어쩔수 없이 술한잔을 들이켰는데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되면서 바로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김영주는 병원 입원실에서 무려 14일이나 지나서야 깼는데 이런일을 들은 김일성이가 화가 뻗쳐서 김영주를 꾸짓었다고 하는데. 그리고 담배와 술을 금지 시켰다고 한다.)  후에  이후락의 글이나 대화에서도 나온 내용이다.


그리고 후에 90년도 초에 잠깐 부 주석직으로 복귀 했으나 얼마않있어 다시 자리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어쨌든 김정일이가 실권을 장악하면서 자기의 정치강령으로 내놓은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원칙>에는 "수령(김일성)의 유일적 영도는 후계자(김정일)의 유일적 지도체제에 의하여서만 담보된다."는 것이 명기되었다. 

  

 

이는 김정일의 영도적 지위를 법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유일적 영도>와 <유일적 지도체제>라고 표현은 좀 달리 하였지만 진의도는 <김일성의 유일적 영도는 김정일의 유일적 영도를 통하여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때부터는 김정일을 통하지 않고는 어떠한 사소한 보고도 김일성에게 올라가지 못하게 되었고 김일성의 지시는 김정일을 통하지 않고는 아래에 내려가지도 못하고 실현될 수도 없게 되었다. 

  

 

첫 시기에는 김일성이 자기의 권력을 김정일에게 자진하여 넘겨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하였다.  그러나 김정일이 모든 부분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게 되자 김일성도 김정일을 어떻게 할 수 없게 되었으며..

 

 

1990년대에 들어서서는 김일성은 김정일의 <고문격>이 되고 말았다.


물론 김일성과 김정일은 부자지간이고, 또 김일성은 자기 아들에게 권력을 넘겨주는데 이해관계를 가졌고, 김정일은 김일성의 권위를 이용하는데 이해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양자간의 모순이 표면화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대체로 1974년부터 1985년경까지는 <김일성·김정일> 2중 정권시대였다고 볼 수 있고.. 1985년부터 사망.1994년까지는 <김정일·김일성>의 2중 정권시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985년경부터 김정일은 사실상 모든 부문의 사업을 완전히 장악하였으며 대외적으로도 자기의 부하들을 통하여 자신이 최고지도자라는 사실을 선전하도록 하였다. 

  

 

특히 1991년 그가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된 다음부터는 정식으로 최고 권력의 승계가 끝났다고 볼 수 있다.   북한에서는 인민군 최고사령관의 명령에는 전당과 전국가가 무조건 복종하기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다보니 심하게 말하면 김일성이 오히려 김정일의 눈치를 보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1992년 김정일의 생일 50돐에 즈음하여 김일성은 동서고금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내용으로 부왕이 왕세자를 칭송하는 송시를 써 올렸다.

  

 

이것이야말로 권력이 모든 것을 규정한다는 정치논리의 냉혹성을 보여 주는 산 실례로 된다.



김일성은 자기 아들에게 정권을 넘겨줌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과오를 범하였으며 자기 아들의 "권력"앞에 아부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마지막 과오를 범하고 말았다. 

  

 

만일 김일성이 적어도 1980년대 중반까지만 활동하고 한 생을 끝마쳤더라면 가짜 김일성이건, 진짜 김일성이건 관계없이 항일무장투쟁의 역사도 살아났을 것이며 해방후 북한의 지도자로서의 역사도 살아남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정권을 자기 아들에게 넘겨줌으로써 김정일과 더불어 수치스러운 길을 걷게 되었으며 그의 한 생의 전반부까지도 다 망쳐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김일성의 한 생을 그르치게 한 데에는 김일성 자신보다도 김정일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생애에서 가장 중대한 문제의 하나는 정권을 세습적으로 승계한 것이다.


 

이 문제에서 두 사람 가운데서 누가 더 큰 책임이 있겠는가? 일반적으로는 김일성에게 더 큰 책임이 있는 것처럼 보고 있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도 절반 이상의 책임이 김정일에게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스스로를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부족점을 극복한 가장 철저한 민주주의자로 자처하고 있는 만큼 비록 계급적 독재는 불가피한 것으로 인정하여도 정권을 세습적으로 승계 한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문제로 간주하고 있었다. 

  

 

이러한 일반적인 상식을 깨고 북한에서는 현실적으로 정권의 세습적 승계가 실현되었다 는점에서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김일성은 소련 땅에서 군정훈련도 받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 기본에 대한 상식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권을 세습적으로 물려주는 문제를 처음부터 생각한 것 같지는 않다. 

  

 

그는 때때로 "공산주의자에게도 자기 자식이 더 귀여운 것만은 어떻게 할 수 없거든"하고 말하였다. 


우리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김일성은 공산주의자로서 자기 자식이나 남의 자식이나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대하려는 민주주의적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그의 개인 독재기간이 장기화되고 정치적 기반이 강화되면서 그는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자만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정권을 자기 개인의 소유물과 같이 여기는 사상이 자라나게 되었다.


 

김정일은 절대적인 독재자의 가정에서 그 어떤 통제도 받지 않고 자라났다.   1949년에 생모인 김정숙이 사망한 후에는 그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자라났다. 

  

 

김일성의 후처(김성애)는 김일성에게 복무하던 여성이었으므로 처음부터 김정일에 대하여 계모의 입장에서 대한 것이 아니라 받들어 주는 입장에서 대하였다.

  

 

또한  김정일 스스로가  아버지에게 자기는 계모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고 <아주미>로 부르겠다고 제기하여 승인을 받았다고 한다.

 

 

김정일은 어릴 때부터 왕자와 같이 행세하였으며 다른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늘 자기를 최고 권력자인 김일성의 대리인으로서 제멋대로 방자하게 행동하였다.


 

       이상.. 04편에서 계속~~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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