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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2-10 00:21
[북한] 악의신.이오시프 스탈린.독재의 최고봉.17편.
 글쓴이 : 돌통
조회 : 559  


파일:/pds/201405/10/60/f0205060_536dbd5c58c0f.jpg
백마를 타고 개선식을 하는 주코프. 원래는 스탈린이 타고 있었어야 할 장면이었다.




이전 문서에는 옆에 있는 동료가 콘스탄틴 로코솝스키라고 되어 있었지만 아니다.

 

 

로코솝스키는 저때 흑마를 타고 반대편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뒤에 두 사람이 나란히 달리기도 했지만 로코솝스키는 흑마를 타고 있었기 때문에 위 사진에서 뒤를 따르는 인물은 로코솝스키일 수 없다.



어쨋든 그렇게 전쟁에서 승리하자 전쟁 이전부터 우상화가 진행되고 있던 스탈린은 이제 '승리의 지도자'라는 업적까지 더해지면서, 소련에서는 그야말로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런 것들이 종교화의 레벨까지 이르러 반종교를 표방하는 프라우다지에서조차 공개적으로 "자신의 일이 잘 안될때, 그분(즉 스탈린)에게 기원하면 모든게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사설을 쓸 정도였다.



그런데 아주 놀랍게도 스탈린 자신은 독소전쟁 축하연 연설에서 "우리의 승리에 저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고, 모든 것은 소련 인민들의 피와 땀이 이룩한 것입니다." 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어떤 역사가는 이 연설이 스탈린이 한 연설중에서 가장 정직한 것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1945년 5월 나치 독일과의 전쟁이 끝나고 난 이후 이오시프 스탈린은 유럽에 있던 붉은 군대를 시베리아 열차를 통하여 다시 극동 주변에 배치했다.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자, 극동에 배치된 소련군은 1945년 8월 9일 만주 전역에서 진공작전을 감행했다. 8월 폭풍 작전에서 총 150만 명 이상의 소련군이 동원되었고, 이는 26,000문의 야포와 5,300대의 전차 그리고 4,500대에 달하는 항공기가 전투에 투입됐다.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이 있은 직후에도 진격을 계속하여 한반도 이북까지 군대를 진격시키고, 21일부터 23일 사이에는 원산과 함흥 그리고 개성까지 접수했다.

 

또한 극동의 소련군은 1945년 8월 18일 사할린 섬을 차지하기 위한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1905년 러일전쟁에서 잃었던 사할린 절반을 다시 되찾게 된다.

 

한편.  냉전의 시대가 오고 있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함으로써 제2차 세계 대전은 끝났지만, 추축국 동맹을 패퇴시키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웠던 미국과 소련은 전후 질서를 둘러싸고 첨예한 대립을 했다.
 
 
스탈린은 영미와 흥정으로 동유럽을 차지할 수 있었고, 소련의 건국 당시부터 숙원이던 완충지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제 1세계 vs 제 2세계 간의 첨예한 대립으로 나타나는데 이를 냉전이라고 한다.


일단 전쟁이 끝난 후 스탈린의 권력은 더욱 공고해졌다. 1945년 6월 28일에는 자신이 영웅시한 알렉산드르 수보로프처럼 대원수의 지위에 오른 스탈린은 전쟁당시 주춤했던 세뇌 및 숙청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일단 전쟁 중 독일 점령지에 있던 배신자들이 우선적인 숙청대상이 되었다. 캅카스와 발트 3국에 있던 여러 반소 분자들이 총살되거나 굴라그로 보내졌다. 전쟁 중 포로가 된 소련군도 결코 예외가 될 수 없었다.
 
 
277만 5700명의 소련군이 포로가 되었다는 이유로 여과 수용소라는 곳으로 보내졌다. 이 중 절반은 강제 노동 수용소로 끌려갔다. 전쟁이 끝났다는 이유로 국민들을 느슨하게 다루는 것은 강철의 대원수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다시 강조되었고, 국민들은 당과 정부에 충성을 바쳐야만 했다. 비밀경찰은 다시 바빠졌고, 소련의 어용 언론들의 세뇌와 선전은 다시 강조되었다.
 
 
그리하여 소련은 나치 독일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으나, 종전 3년 만에 전쟁 전 수준으로 생산량을 회복한다.다만 전쟁의 상흔에서 온전한 복구를 하기까지는 50년대 중반을 넘어서야했다.


1949년 소련은 핵 실험을 하여 기존에 미국이 가지고 있던 원자폭탄 보다 더 위력이 강한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한다. 이로써 소련은 미국의 핵무기 독점을 끝내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었다.


냉전시대에 스탈린이 세계 적화의 야욕이 있었다는 식의 선전이 있었지만, 실제로 스탈린은 다른 나라의 혁명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설사 관심을 두려 해도 독소전에서 3천만 가까이 사망해서 직접 개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반면 미국은 본토에 피해가 없고 베를린에 대규모 수송을 시전할 정도로 물자가 넘쳤다. 어쨋든 스탈린은그러하므로 그래서 다른 나라의 혁명이 실패하더라도 소련의 이익이 침해되거나 미국과 대결하는 것은 피했다.
 
 
예를 들어 스페인 내전에서 공화군에서 무정부주의자와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득세하자, 소련은 NKVD를 보내 공화파에서 이들을 때려잡는데 힘을 쓰다가 적전분열을 일으켜 결국 파시스트군이 승리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베를린 위기때도 도로는 봉쇄했을지언정, 미국의 공중 수송은 막지 않았고, 국공내전 때도 인민해방군이 승리하기 직전까지 개입하지 않았고 공식적으로는 중화민국과의 외교를 끊지 않으면서 구 러시아 제국이 만주에서 가졌던 이권을 되찾는데 집중하였다.
 
 
한국전쟁에서도 소련군은 비밀리에 참전한 공군을 제외하면 끝까지 참전하지 않은 것도 이때문이다. 오히려 모택동에게 김일성을 원조하라는 말을 한 이후에 '쟤가 개입 안 하겠다고 하면 우리 이웃으로 미군을 놔도 상관없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정치학자들은 스탈린을 "20세기 최고의 정치 현실주의자"로 평가한다.


스탈린이 이런 모습을 보인것은 그가 보기에 따라선 매우 소심하면서도 신중한 성격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나, 그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소련을 지휘하면서 본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을 뼈저리게 체감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스탈린은 소련의 서기장이자 소련군 통수권자 그리고 연합국의 지도자 중 한명으로서 미국이 행한 가진 것이라고는 명분밖에 없는 키다리 지도자에게도 따지지 않고  전차수십, 수백량 이상을 제공하는 미칠 지경의 Usa Loan 미국이 수행한 일본 제국과 나치 독일을 대상으로 한 양면전쟁, 그리고 미국의 섬 반도 반동분자들을 단번에 박살낸 악마의 폭탄 투하를 생생히 전달 받을 수 있었던 인물이다.
 
 
소련 서기장 스탈린이 아니라 삼척동자가 봐도 신생국가 소련이 핵무기 기술까지 독점했던 미국과 충돌할 경우 남는 것은 자멸 뿐 이라는 것 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 미소 전쟁이 소련이 미국이 가진 것 이상의 핵전력을 보유하지 못한 스탈린 생전에 벌어졌다면,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쑥대밭이 되었던 소련이 본토와 생산력, 경제력이 멀쩡히 살아있었던 미국을 이겼을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애초에 무기대여법 등을 통한 다양한 자원과 경공업, 군사적 지원, 배후에 있던 일본 제국을 미국이 박살내고 있었던 상황 등으로 인해 소련이 마음놓고 중화학 군사 산업을 육성하고 독소전쟁에 모든 것을 올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미국과 소련이 전쟁이라도 하게 된다면, 그런 지원은 당연히 없는 것이고, 소련은 독소전쟁 이상의 패널티를 가지고 전쟁을 했어야 함이 당연.

 
 
 
 이상.   끝.  18편에서 계속~~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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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르칸 19-12-15 00:22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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