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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2-02 17:35
[북한] (일제강점기)때 남과북의 독립투쟁을 알았을때.!!
 글쓴이 : 돌통
조회 : 907  

벌써 4개월 정도 지났네요..  마침 사업상 해외에서 돌아온 이후 특별히 할일도 없고 해서..

 

마침 이때 김해시에서는 07월 30일 오후 2시 시청 대회의실에서 김원웅 제21대 광복회장을 초청해 ‘항일운동했던 남과 북의 양심, 통일을 얘기하다’를 주제로 시민교양강좌를 개최했습니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14.16.17대에 걸친 3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3년간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는데요.

 

그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이기도 합니다. 그의 부친은 조선의열단 김근수 선생, 모친은 여성 광복군 전월선 선생으로 그의 양친은 백범 김구 선생 중매로 만났다고 합니다.

저도 참석 했는데 김 광복회장은 항일 독립운동을 했던 남과 북의 양심이 복원될 때 통일이 가능하며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또 지켜져야 할 원칙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에 대해서 강연했는데요.

바로 그때 이야기를 올리겠습니다.

 

 

△ 당시 강연을 듣기 위해 참석한 청중들.

 

이번 강연에는 다양한 연령층의 청중들이 참석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학생들이 눈에 띄었는데요.

 

김 광복회장은 “3.1 만세운동 당시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분들은 대부분 10대 중·후반, 20대였다"라며 “우리나라 독립운동사는 사실 청년의 독립운동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김 광복회장은 3.1 만세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는데요. 그는 “민족주의자들은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를 믿고 3.1 만세운동을 했지만, 3.1 만세운동 바로 한 달 뒤인 4월 1일 미국 국무성은 서울 주재 일본 총영사에게 독립운동을 지지하지 말라는 훈령을 내렸다"라며 “민족자결주의를 믿은 것은 오해였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윌슨 대통령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 국가의 식민지만 독립하라는 것”이었다며 “당시 일본은 전승국이었고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해당되지 않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현재 우리 우방이라는 미국이 3.1 만세운동 당시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면서 “미국은 당시 일본이 3.1 만세운동을 탄압하는 것을 지지했다”라고 말했습니다.

◊ 일제강점기

그는 이어서 가쓰라태프트 밀약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1905년 7월 29일 당시 일본 총리 가쓰라와 미 육군 장관 태프트가 비밀리에 도쿄에 만나 만든 것으로 미국은 일본의 대한제국 지배권을,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권을 각각 인정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이후 일본은 11월 17일 을사늑약을 강요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했으며, 미국의 묵인 아래 조선반도 식민 침략을 본격화했습니다.

 

그는 “고종황제는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국제사회에 호소하기 위해 1907년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이위종 그리고 이상설 열사를 특사로 파견했으나 거절당했다"라며 “참석을 막는데 가장 앞장선 나라가 안타깝지만 미국과 영국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우세하던 1941년, 미국 코델 헐 국무장관은 일본에 ‘1931년 이후 점령한 모든 영토에서 다 물러나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라고 말했습니다. 조선은 1910년에 국권을 상실했기 때문에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선의열단이 폭탄을 던지고 독립운동을 하며 언론을 통해 독립의지를 세계에 알렸고, 이는 1943년 카이로선언에서 조선의 독립이 국제적으로 보장받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라며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으면 조선의 독립이 포함되지 않았을 수 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 미군정

1945년 해방 후 존 하지(John Reed Hodgee) 중장이 주한미군사령관 겸 미군정청 군정사령관으로서 1948년 정부 수립 때까지 부임하였습니다.

 

김 광복회장은 “맥아더 문서 보고서에 따르면 하지 중장을 통해 조선에서는 민족주의자를 기피하고 친일파를 기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라고 말했는데요.

 

그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민족주의자가 집권하면 통제가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김 광복회장은 “당시 기용된 친일파들은 일본 사람보다 일본에 더 충성했다”라며 친일청산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 친일 청산 실패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는 일제강점기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해 헌법에 따라 설치돼 1949년 1월부터 활동을 시작한 특별위원회입니다.

 

하지만 친일파와 결탁한 이승만 정부의 방해와 특위 위원 암살 음모 등으로 좌초되면서 실제 친일 행위로 체형(體刑,형벌)을 받은 사람은 단 7명에 불과했는데요. 김 광복회장은 그나마도 모두 풀려났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는 또 “1965년 박정희 정권하에서 체결된 한일조약은 일제 불법 강점 36년에 대한 단 한 구절의 법적 사과도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필리핀은 겨우 2년 6개월 일제의 식민지였는데 1956년 전후 조약에서 당당히 ‘배상’으로 기술하고 5억 4천만 달러를 받았다”면서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일제가 36년 동안 불법 침략한 식민지였는데 ‘배상’이 아닌 ‘독립 축하금’의 명목으로 사과도 없이 겨우 3억 불을 받았다”라고 말했습니다. 

 

 

내 개인적인글 : 물론 그땐 대한민국은 너무 가난했고 그렇다고 자원이 있는것도 아니고 우리나라는 어느 한가지도 갖추고 있지 못한 정말 자력으로 일어나기에는 거의 불가능 했으므로 자금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서

당시 박정희 정권때 아쉽게도 3억불을 받고 마무리 지었지만 아쉬운 점도 분명히 있는것은 맞다. (이건 분명 내 개인적인 생각의 글입니다.)

하지만 또, 박정희 정권은 국민과 더불어 그 자금으로 기반으로 해서 경제발전을 한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으니 그 공은 분명히 있다.

어느 누구 정치가나 대체로 장점과 단점은 있는거다.

왜.?  지도자도 신은 아니기 때문에...

 어쨌든 계속 이어서 ~~ 

 

그는 “육군참모총장 1~21대까지 전부 만주에서 독립군 토벌하던 친일파가 자리 잡았다"라며 “친일청산은 미군정 3년 치하에서도, 대한민국 정부가 정식으로 수립된 1948년 이후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일본 정치인들을 만나 ‘일제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중단하고 과거청산에 진심을 보여달라’고 말하면, ‘서울 국립묘지에 가봤더니 야스쿠니 신사에 있는 전범의 졸개들이 잔뜩 묻혀 있더라’라고 한다”라고 전했습니다.

 

서울과 대전 현충원에 안장된 인사들 중 63명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 있습니다.

◊ 통일의 필요성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을 지낸 김 광복회장은 남과 북의 양심이 하나로 모일 때 통일이 가능하다며 통일에 대한 자신의 의견도 비쳤는데요.

그는 미국의 정보기관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고한 대북 보고서를 보면 재밌는 내용이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보고서에는 ‘한국은 더 이상 발전이 없을 것이다. 다만 한국은 2025년을 전후해서 통일될 것이며, 통일이 된다면 아시아에서 큰 발언권을 갖는 국가가 될 것이다’라고 적혀있다며 이를 위해 “우리가 자주적인 국가로 남아있어야 한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또 그는 “세계 3대 투자가로 꼽히는 짐 로저스(78) 회장은 통일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투자처가 될 것이라고 했다”라며 통일이 되면 운송비 절감을 비롯해 많은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편 “일본은 한국이 통일되면 경쟁이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통일을 반대한다”라며 이는 “친일·반민족세력들이 권력을 뺏길까 걱정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는데요.

 

김 광복회장은 “지금 이 시대의 독립운동은 바로 통일운동”이라며 “독립운동은 꼭 과거의 문제가 아니며, 현재의 문제 나아가 미래의 문제”라고 당부하며 강연을 마쳤습니다.

 

   이상...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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