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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0-29 01:31
[북한] 지난 6,25 전쟁은 그들의 작품이다!!
 글쓴이 : 돌통
조회 : 848  

지난 6,25 전쟁은 그들의 작품이다!!

 

 

 

미국의 정치평론가 제임스퍼를로프에 의하면, 동유럽과 중국의 공산화는 일루미나티의 각본이었으며, 미국은 동맹이라는 명분하에 소련에 무기를 지원함으로써 또한 병사들을 속여서 자신의 군대를 교묘하게 제어함으로써 공산주의의 팽창을 도왔다는 것 입니다.

 

 

또한 역대 미국의 적은 모두스스로 만든 것이며, 미국의 실제 지배세력은 공산주의자들이라 합니다. 바로"바빌로니안 탈무디즘"과" 카발라"를 섬기는 사바테안/프랑키스트 세력입니다.



한반도의 남북분단과 한국전쟁도 배후에서 미국을 지배하는 특정세력의 의도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원래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질 이유는 전혀 없었으나, 적의 창조를 통해 각자의 대중들을 결속시킬 수 있는 모티브를 제공하는 의미에서 절반씩 갈라먹는 대치상황을 만들어 냈다는 것 입니다



미국이정(正), 소련이반(反)이 됨으로써, 두요소의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합(合)이라는 결과를 도출해 내고자 하는 의도라고 합니다.

 

이합이 될 뉴월드오더의 세계정부를 추구하는 세력이 있으며, 한반도의 비극은 바로 이 세계정부의 초기모델인 "유엔"의 존재이유를 세계가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미·소 합의 하에 만들어진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전쟁은 평화유지자로써의 유엔을 세상에 입증하기 위한 연극이자, 세계정부에 동의하게 만드려는 작전이었으며, 38선과 휴전선이 실질적으로 거의 같다는 것은 이 전쟁이인구축소를 동반한 그저 한 판의 광대 극에 불과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월남전도 한국전쟁의 재탕이었으며, 현재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내전 또한 똑같은 사기극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7년은 볼셰비키혁명 100주년인데, 혹시 무슨 기념행사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음 제임스퍼를 로프의 글이 6-25 전쟁과시온주의, 뉴월드오더의 의미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한국전쟁: 일루미나티의 아젠다를 위한 갈등



제임스퍼를로프: The Korean War: Another Conflict that Served the Illuminati Agenda



1950년6월25일, 북한의 공산독재자 김일성은 그의 군대를 보내 남한을 침공했다. 미군은 유엔의 이름으로 남한을 방어 하러 왔고, 3년 간의 혈투 끝에 전쟁은 휴전으로 결론났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 김일성과 공산당이 북한의 권좌에 오를 수 있었는가? 미국의 해외정책이 그들을 권좌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우회적인 방법이었다.



남북분단은 뉴월드오더로 가는 중간단계



2차 대전 중 미국은 유럽에서 독일과 싸웠고,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싸웠다. 죠세프스탈린의 폭정치하였던 소련은 이 전쟁에서 미국의 "우방이었다.

 

그러나 소련은 독일과만 싸웠고, 일본과는 불가침조약을 지켰다.



그러나 테헤란과 얄타의 "빅3" 회담(처칠, 루스벨트, 스탈린모두 동일한 마스터를 섬기는33° 프리메이슨유대인이다)에서, 루스벨트대통령은 스탈린에게 일본과의 불가침조약을 깨고 태평양전쟁을 시작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주문했다.

 

스탈린은 동의했다. 소련극동군의 원정에 필요한 모든 무기와 차량, 물자를 미국이 지원해 주는 조건이었다.



이것은 터무니없이 결정된 해외정책이었다. 스탈린은 잘 알려진 침략자이다. 2차 대전의 공식개전이었던 1939년 폴란드침공은 사실 나치독일과 소비에트의 연합공격(joint venture)이었다.

 

1940년, 스탈린은핀란드,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를 침공했고 루마니아를 병합했다. 그가 아시아에 자비를 베풀 것이라고 믿을 사람은 없었다.



"미국이 일본과 전쟁하기를 바라는 소련정부의 희망은 간절하다. 소련은 일본이 완전히 패배 할 때까지 일본과의 대결을 피하려고 할 것이다.

 

그들은 일본패망을 만주를 얻고 중국을 공산화하는 기회로 삼을 것이다." - 주 소련미국대사윌리엄C. 불릿



스탈린은 전쟁이 끝나기 5일 전까지 극동에 군대를 보내지않았다. 일본은 이미 원자폭탄을 얻어맞고 항복 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중국으로 들어간 소련군은, 매우 제한적인 전투 끝에, 일본의 항복을 받아냈고 막대한 무기고를 차지했다.

 

소련군은 미국이 대여해준 무기들과 일본군으로부터 포획한 무기들을 마오쩌뚱의 공산혁명군에게 넘겼다. 때문에 중국공산당은 국민당정부를 뒤집을 수 있었다.



남북분단과 신탁통치는 미국의 아이디어



이전에, 한국은 일본의 보호령이었다. 1944년4월외교협회(CFR: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잡지Foreign Affairs는"전후세계의 한국"이라는 글을 출간했다.

 

이글은 러시아와 함께 한국을 신탁통치 할 것을 제안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스탈린은 이 제안에 동의했고 공식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소련은 북한을 얻었고, 미국은 나머지 남부 절반을 얻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이 새로운 국제기구가 임무를 적시에 수행 할 수 있을까? 저자에게는 가능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에 대한 특정 국가들의 신탁통치보다는 권력집단 즉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에 의한 신탁통치의 가능성은 있다."



태평양전쟁에서 소련이 거의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음을 감안 할 때, 자신의 인민 수백만을 학살한 것으로 유명한 독재자 스탈린에게 북한의 취득은 거대한 성공이었다. (소련은 미국덕분에 중국과 북한을 거저 얻었다).

 

스탈린은 재빠르게 김일성정권을 수립했고, 15만의 병력과 수백 대의 탱크, 전투기, 대포를 가진 군대를 만들었다.

 

반면 미국은 가진 것이라곤 소형 화기뿐인 1만6천 정도의 남한인 경찰병력만 남겨놓고 떠났다.



멈추지 않는 공산주의의 확장 역사를 돌이켜볼 때, 이 불균형은 남한침공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김일성은 1949년마오쩌뚱(스컬&본스)의 공산정권이 안정화 될 때까지 기다렸다. 마오쩌뚱은 그의 뒤를 지켜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1950년1월, 김일성은"한국통일의 해"를 천명했고, 완벽한 전쟁준비를 지시했다. 2 주후, 미국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인물 중의 하나인 국무장관 딘애치슨(CFR 멤버, Scroll &Key, 300인위원회)은 마치 김일성에게 무언가 선물을 주려는 것 마냥, 남한은 극동에서 미국의 "방어선" 바깥에 있다는 연설을 한다.



애치슨 라인은 들어오라는 사탄의 메시지

 



애치슨은, 만약이"방어선" 바깥에서 어떤 공격이 발생한다면 피해자는 유엔헌장에 의거한 전체 문명세계의 책임에 의지해야한다고 천명했다.

 

이 발언은 일루미나티의 아젠다에서 한국전쟁이 맡을 역할과 밀접하다. 일루미나티는 사탄주의자들이다. 그들은 세계지배를 노린다. 바이블은 적그리스도 또는"짐승"이 모든 부족, 사람, 언어, 국가를 지배할 것이라고 계시 하고 있다. (계시록13:7).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선 세계정부가 필요하다. 이것은 자명하다.



명백하게 예언적인"시온장로들의 의정서"는 세계정부를 공개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이 의정서가 가짜일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Truth Is a Lonely Warrior18장을 보라.

 

예를 들면, 의정서5장11절에서 저자는 "그들의 카르텔이 점진적으로 모든 국가를 흡수할 것이며"수퍼정부"를 구성할 것"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유엔은 외교협회(CFR)의 창조물.



미국에서 점진적 세계정부의 수립임무는 1921년 설립된 외교협회(CFR)에게 맡겨졌다. 외교협회는 미국의 국제연맹1가입을 결정한1920년베르사이유조약2에대한상원의 거부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국제연맹이 실패한 후 그 승계자는, 당연히도, 국제연합(UN)이었다. 유엔의 설립계획은 비밀히 국무부의 CFR 회원들에 의해 구상되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비공식 아젠다그룹"으로 불렀으며, 이 거슬리지 않게 들리는 이름은 그들이 계획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의회의 의심을 없애기 위해서 신중하게 선정되었다.



1.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 : 국제연맹은 1차대전이 끝난1920년 일루미나티들이 주도한 파리평화조약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로스차일드의 심복들 즉 일루미나티가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전쟁의 결과로 만든 세계정부최초모델"비엔나의회"를 러시아의 짜르가 무산시켰기 때문에 로스차일드가 세계정부의 최대장애물인 짜르를 없앨 계획을 수립한 것이 볼셰비키혁명이다.



2. 베르사이유조약: 파리평화조약 5개 항목 중 하나, 독일식민지를 영국과 프랑스에게 할당하는 것과 독일에게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물리는 것이었음



1945년 유엔의 창립총회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을 때, 미국대표의 대부분인 47명은 CFR 멤버였다.

 

후일 소련의 스파이로 판명 된 앨저히스가 이 총회의 총장이었다. 이때상원은 국제연맹과 마찬가지로 유엔을 거부할 것이었기 때문에, 일루미나티는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히스는 잠겨진 금고에 담긴 유엔헌장을 들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대표단의 재잘스러운 확담 후에, 유엔헌장은 상원의 인준을 받았다.

 

당시 유엔부지 구입비 850만달러를 기부 한 건 존D. 록펠러였고, 오랬동안 회장을 지낸 그의 동생 데이비드는 CFR의 명예회장이었다.



세계정부로써의 유엔의 가치 입증



일단 유엔이 설립되자, 그 다음 단계는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평화유지자로써의 유엔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 필요했다.

 

유엔헌장에 적혀있는 그 존재의 첫 번 째 목적은 "국제평화와 안보유지"였기 때문이다. 이 각본을 위해서 필요했던 것이 한국전쟁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거의2년이 지난 1952년 4월, 아들라이스티븐슨은 다시 외교협회(CFR) 잡지Foreign Affairs에"한국의 전망"이라는 글을 썼다.



"내주장의 요지는, 생존 가능한 집단적 안보시스템수립을 향한 역사적 진전을 한국에서 이루어냈다는 우리의 경험적 의미에 기반하고 있다.



"집단안보"라는 문구는 위선이다. 한국전쟁기간 중 유엔군의 90%는 미군이었다. 비록 15개의 다른 국가들이 군대를 보내긴 했지만, 그것은 수치로 말하면 상징적인 극히 작은 것이었다. 수만의 미군들이 유엔 깃발아래에서 숨졌다.



국제연맹에 대한의회의 반대는 대부분이 초국가정부가 미국 주권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전망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유엔의 행동은 그동안의 걱정을 불식시켰다. 시온장로들의 의정서 10장은 다음과 같이 계시한다.



"우리는 조만간 대통령의 책임을 분명히 할 것이다. 우리는 선전포고의 권한을 가진 대통령을 만들 것이다



한명의 대통령은 분명 전체 입법권자를 통제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미국헌법은 전쟁선포의 권한을 의회에게 부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권한을 어떻게 훔칠 수있을까? 1944년CFR은 다음과 같은 국무부의 메모를 준비했다.



"우리의 어려움은 오로지 의회만이 전쟁을 선포할 수 있다는 헌법조항에 있다. 이 문제는 국제조약이 이 장애물을 넘을 수 있다는 조항을 만듬으로써 해결 할 수 있다.

 

치안활동으로써의 우리의 참여가 국제안보기구(유엔)에 의해서 장려 될 수 있으며, 반드시 전쟁으로 해석되지 않는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상원은 유엔헌장을 인준함으로써 전쟁선포라는 스스로의 권한을 효과적으로 포기했으며, 그 이후에는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다.

 

트루만 대통령은 의회의 자문을 구하지 않고 한국에 군대를 보냈다.

 

1950년 7월29일 기자간담회에서 트루만은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전쟁에 참여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치안활동입니다." 미국은 한국에서 10만 명을 잃었다.

 

그러나 걱정하지마시길 바란다. 그것은 전쟁이 아니라"치안활동"이었다. 그의 발언은 확실히 오웰리안적 의미의 권력(조지오웰의소설1984에 등장하는 빅브러더)에 대한증명이다.



중국의 공산화와 압록강 인해전술은 미국의 연출



의회는 트루만의 행동을 정력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 일루미나티가 영리한 카드게임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회에서 가장 강력한 유엔반대자들은 확고한 반공산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중국의 공산화를 허용(사실은 적극추진)한 것에 대해서 트루만의 국무부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한국의 경우, 트루만은 공산주의의 침공을 막기 위해 미군을 보냄으로써 속죄하는 것처럼 보였다. 보수적 의원들은 딜레마에 빠졌다.

 

만약 그들이 의회의 특권을 행사한다면, 급속히 밀려드는 김일성의 공산군에게 한국을 내주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속아서는 안 된다. 배후에 있던 일루미나티는 미국정부를 공산주의와 싸우게 할 의도가 없었다. 유엔군 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는 고생 끝에 이것을 배웠다.

 

맥아더는 북한군 격퇴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중국과의 경계인 압록강까지 북한의 대부분을 공산주의로부터 해방시켰다.

 

이 시점에 붉은 중국은 병력을 쏟아 부었다. 맥아더는 중공군이 넘어오지 못 하도록 하기 위해 압록강철교 폭파를 명령했다. 그러나 그의 명령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국방부장관 조지 마샬에 의해 철회되었다.



마샬은 CFR과 한 패였으며, 5성 견장을 달고 있는 유다였다. 그는 1941년에도 일본의 진주만공격에 대한 사전정보를 숨김으로써 그의 장병들을 배신한 바 있다.

 

1945년부터1949년동안 중국특임대사와 국무장관을 지낸 그는 공산주의를 대표한 조작을 통해서 수백만의 중국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이제 국방장관인 그는, "제한 전"이라는 신개념에 그의 병사들을 엮어서 다시 한 번 공산주의의 공모에 봉사한다.



승리는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었으며, Foreign Affairs의 유명한“Mr. X” article이라는 글에서 기원한 "견제"라는 개념으로 대체되었다. 마샬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던 조매카시 상원의원은, 1951년 그의책America’s Retreat from Victory: The Story of George Catlett Marshall에서 마샬을 비난한다.

 

예상대로 매카시는 사망으로 마감했고, 그의 명예는 매카시즘이라는 강박관념으로 비하되었다. 반면 마샬은 1953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맥아더장군은 압록강철교를 건드리지 않은 채 병사들을 두고 그대로 떠나라는 마샬의 명령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병사들과 부대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나의 군사적 권한의 사용이 거부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게 있어서, 이것은 비참한 한국의 미래상황을 분명하게 예시하는 것이었으며, 내게 표현 할 수 없는 충격을 주었다."



당시 수천의 미군병사들이 희생되었고, 맥아더는 한국에서의 지휘권을 박탈당했다. 패튼장군처럼, 일단임무를 수행하고 난 그는 그저 소모품이었다.



트루만쇼



1950년해리트루만의 성명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나는 대만에 대한 어떤 공격도 가능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7함대에게 명령했습니다. 이것에 대한 필연적인 결과로써, 나는 대만의 중국정부에게 본토에 대한 모든 공격을 중지 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것이 지켜졌는지 7함대가 볼 것입니다."



여기서 조커는"필연적인결과"라는 문구이다. 대만의 장개석과 그의 국민당군대는 아직 지배력이 약한 공산당으로부터본토를 되찾으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트루만은 본토공격에 대한 장개석의 위협을 제거해 줌으로써, 공산군이 안심하고압록강을 건널 수 있도록 하여주었다.

 

사실상 트루만은 미군병사를 살해하고 있던 공산군의 옆구리를 보호해 준 것이다. 뒤이은월남전의 현실정치를 공부한 학생들이라면 누구도 이러한 사실들에 그다지 놀라지 않을 것이다.

 

워싱턴의" 교전수칙"은 6개월짜리 승리를 14년의 패배와 5만8천 미군병사들의 죽음으로 바꾸었다. 중공군 장군 린뱌오는 후일 이렇게 기술했다.



"만약 워싱턴이 우리의 보급과 통신에 대한 맥아더의 적절한 보복적 조치들을 제어해 준다는 확신을 주지 않았다면, 나는 병사들의 목숨과 나의 명성을 무릅쓰고 결코 공격하지않았을 것이다."



가장 큰 아이러니는 아마 이것일 것이다. 소련은 유엔안보리상임이사국이 가진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유엔의 한국전개입을 간단히 막을 수 있었다.

 

김일성은 그들의 꼭두각시였다. 그러나 유엔의 한국전 개입을 결정하는 표결일에 소련대표는 불참했다.

 

붉은 중국을 상임이사국에 앉히기 위한 시도가 실패하자, 소련대표단은 항의의 표시로써 퇴장하고 있었다. 유엔사무총장트뤼그베리는 소련의 유엔대사 야곱 말릭을 초대하여 투표를 권유했으나, 말릭은 거부했다.

 

역사가 들은 이것을"소비에트의 실수"로 묘사한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좀처럼 실수하지 않는 법이다. 만약 말릭이 실수했다면, 스탈린은 그를 벽에다 못 박았을 것이다.



세계정부를 위한 제물



한국전의 승리는 양측 모두에게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것은"평화유지자"로써의 유엔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함이었다.

 

이 세계정부의 제단위에서 민간인을 포함하여 3백만이 목숨을 바쳤다.

 

1953년 전쟁이 끝났을 때 남북의 경계는 처음 시작할 때의 그 위치, 38선 그대로였다. 마크클라크장군은 이렇게 말한다.



"정부의 지시를 수행함에 따라서, 나는 승리 없이 휴전에 서명한 최초의 미군사령관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었다


 

이상..   끝.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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