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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0-13 17:01
[북한] 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12편.
 글쓴이 : 돌통
조회 : 1,134  

◎고당과 함께 가다 암살당한 현준혁/적위대복장


청년이 총격/대낮 평양시내서 타고가던 트럭 습


격/“민족계열과 친하다” 소 군정에 밉보여



 
 

1945년 9월초의 어느날 정오쯤.



평양시 변두리의 한 커브길을 돌기 위해 구형 일제트럭이 속력을 줄이고 있었다.



차안에는 민족주의 거두 조만식 선생과 조선공산당 평남지구위원회 현준혁 비서가 타고 있었다.



커브를 도는 트럭이 속력을 최대로 줄이자 골목에서 보고 있던 한 청년이 빠르게 달려와 트럭의 앞쪽으로 훌쩍 올라탔다.



순간 총소리가 울려퍼지면서 차안의 한 사람이 앞으로 푹꺾였다.



인텔리 공산주의자 현준혁은 그렇게 암살됐다.



경성제대 출신의 현준혁은 이론적 바탕을 갖고 있는 공산주의자


로 평가를 받았고 공산주의자이면서도 조만식을 상징적 지도자


로 하는 초당파적 연합전선형성에 관심을 가져 특히 민족진영으


로부터 주목받는 인물이었다.





공산주의 명망가 현준혁의 암살 소식은 곧 평양시내에 퍼졌고 뭔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긴장된 분위기가 퍼져갔다.



암살자에 대한 구구한 추측과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도 체포되지 않았다.



○사건 보도 금지령



해방후 권력다툼의 과정에서 심심치않게 동원됐던 한 암살사건으로 끝나고 만것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당시 북한의 국내파 공산주의자들에게는 큰 타격이었음을 생각해 본다면 그의 암살에 대한 해석은 한 곳으로 좁혀질 수 있다.



그러나 진상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고 발생한 시간·장소·원인들에 대한 설명과 해석이 제각각이다.



김창순씨는 『북한 15년사』(지문각 1961)에서 현준혁 암살사건의 전후를 이렇게 설명한다.



『45년 9월28일 대낮에 현준혁은 평양시청앞 노상에서 흉탄을 맞고 쓰러졌다. 현이 총에 맞아 즉사하자 소군사령부는 교통을 차단하고 사건의 보도를 금지했다.

 

며칠후 조그마한 표제하에 현준혁 저격사건이 아주 대수롭지 않게 보도되었을 뿐이었다.



전 북한 고위관리였던 서용규씨는 다르게 말한다.



『현준혁이 45년 9월28일 조만식·홍기주등 민족주의자들과 함께


삼륜차로 로마넨코사령부에서 돌아오는 길에 평양의 종로거리를


 조금 지나서 지금의 김일성 광장입구 근처에 이르렀을때,사람들


이 붐벼 무슨 일이 있는가 해서 일행들과 차에서 내렸습니다. 차


에서 내리자마자 현준혁은 인파속에서 튀어나온 괴한의 총에 맞


았습니다.』





또 다른 조사가 있다.




삼전방부는 「조선종전의 기록」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현준혁은 45년 9월4일 소련군 환영회에 출석하고 돌아오는 길


에 도인민정치위원회근처에서 저격당했는데 범인은 자동차가 서


행하는 틈을 타서 뛰어올라 현을 확인한 다음 권총 한발로 즉사


시켰다.



사건이 발생한 날짜·시간·장소등 기본요소가 전부 제각각이다. 현장에서 보고 들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혼란은 더욱 심하다.



사건 당시 동평양경찰서장을 지낸 유기선씨(79·의사·부산시 중구 보수동 1가 130)가 최근 주목할만한 증언을 하고있다.



유씨의 증언.



『민족계열이었던 내가 동평양경찰서장을 맡은지 얼마되지 않은 9월초로 기억합니다.

 

3일 아니면 4일쯤이었을 겁니다. 점심시간이 지나 평상시처럼 서


장실에 앉아 있는데 고등과서원(경찰서 직원)들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습니다. 조만식 선생과 트럭을 타고 가던 현준혁이 평양경


찰서 관내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는 것입니다.





충격이었습니다. 현은 당시 합리적인 공산주의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어 민족진영에 인기가 있었고 조만식선생과도 잘지냈습니다.



깜짝 놀란 마음으로 먼저 조만식 선생의 집으로 부하들과 달려갔습니다. 조선생댁에 가보니 선생은 댁에 와계셨는데 놀라서 정신이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머리에 발찌가 나서 붕대를 두르고 눈이 휘둥그래진 모습으로 당시 정황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유씨가 전하는 조만식선생의 증언.



『나와 현준혁군(조만식선생은 당시 현을 그렇게 불렀다)을 태운 일제 트럭이 평양시 교외의 커브길을 도는데 갑자기 17∼18세 정도로 보이는 적위대차림을 한 청년이 올라타는 거야.

 

운전사옆 가운데에 내가 앉고 문옆에는 현군이 앉았어. 커브길이니까 속력이 줄어든 트럭에 골목에 서 있던 이 청년이 달려오더니 올라타.

 

그러면서 트럭문을 잡고 안을 흘끗보더니 현군의 가슴에 대고 권총을 쏘는거야. 땅 땅하는 소리가 몇 번 들렸던 것 같은데 현군이 내 무릎위로 푹 쓰러져.

 

그래 내가 「현군,현군」하고 소리를 치며 일으켜 세웠더니 가슴에서 피가 콸콸 쏟아졌어. 정신이 아득해지더군. 총을 쏜 청년은 뒤를 흘끗 흘끗 보면서 천천히 골목속으로 사라졌어.』



○피습일자 두가지설



현은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조만식선생과 유씨의 말을 종합하면 현의 암살사건은 9월3일이나 4일 평양시 교외에서 적위대 복장을 한 청년이 저지른 것이었다.



북한도 현의 사망을 9월3일로 잡고 있다.



해방이후 평양에서 일어난 첫 충격적 사건이었다. 소식은 바람을 타고 전해져 평양시가 온통 난리가 난 듯했다.



그러나 뒤숭숭한 분위기와는 달리 사건수사는 지지부진했다.



유씨의 증언.



『사건이 나자 관할 경찰서장인 평양경찰서장 송창렴이 수사본부장이 됐고 당시 치안부장이었던 김익진 변호사도 수사본부에 나와 이것 저것 알아보기도 하는등 부산했습니다.

 

송창렴은 조만식선생에게 당시 정황을 묻기도하고 제법 수사하는 듯했는데 점차 유야무야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관할은 아니지만 도와주려고 나의 관할인 동평양경찰서 형사들을 보내 조사를 하자 송창렴이 「나의 관할 구역인데 왜 끼어드느냐」고 화를 내고 상부로 항의도 하고 해서 그만두었습니다.

 

적위대 청년이 총을 쐈다고 조만식선생이 말했는데도 적위대에 대한 수사를 안했습니다. 당시 적위대는 공산진영의 군대격이었고 대장은 장시우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송창렴이 수사진행상황을 보고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외부에서 보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평양에는 경찰서가 3곳 있었다. 평양경찰서는 공산계열의 송창렴이,동평양 및 서평양은 민족계열인 유기선·윤무준이 각각 맡았다.



그런 가운데 사건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현준혁의 암살이 민족진영의 범행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민족계열 사람들이 협박을 받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유씨의 증언.

 

『아침에 일어나면 집안팎에 협박장이 수북했습니다. 죽여버리


겠다는 거였죠. 당시 내가 서장이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사조직 1


만명 정도를 조직해 놓고 있으면서 공산당 및 소련군 횡포를 단


속해서인지 나를 범인으로 지목한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거리


마다 「백색테러에 의해 현준혁이 죽었다」는 구호가 날렸습니


다.





현의 장례식 날은 특히 더했습니다. 경찰 책임자의 한사람으로 장례식장인 서기산에 가니 공산계열에서는 「백색테러의 독이빨을 드디어 드러냈다」는 식으로 노골적으로 공격했습니다.』



○배후등 수사 안해



수사는 엉망이었다.



유씨의 계속된 증언.



『수사진행과정이 당시 치안책임자였던 김익진 부장에게 보고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인민정치위원회위원장인 조만식 선생에게도 보고가 없었습니다.



공산주의자는 공산주의자끼리 민족주의자는 민족주의자끼리만 보고하고 정보를 교류하던 시기였습니다. 송창렴은 치안대의 고등과장인 김용범을 통해 장시우에게만 보고했습니다.』



수사는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김창순씨는 이렇게 말한다.



『소련군 정치장교의 눈에는 현은 필요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소군정으로서는 김일성을 내세우려하는데 현이 먼저 평양에다 조직기반을 완성하면 곤란했습니다.

 

그래서 소련군정은 현과 동지적 결의를 맺은 공산주의자 가운데 김용범·장시우·박정애·최경덕·이주연 등을 떼서 김일성에게 연결시키려 했고 이 와중에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전 북한 민주조선 주필 한재덕씨의 「김일성을 고발한다」에는 소련군정요원 한국인 2세 통역인 유채일이 다음과 같은 증언을 한 것으로 되어있다.



『김일성·김책등 소련파와 김용범·장시우 등은 현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공산당이 북한에서 패배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로마넨코 소장실에 이들 네명이 찾아와 현준혁 처리에 관한 비밀회담을 했고 이 자리에서 현의 살해를 결정했다.』



말하자면 현준혁의 인기에 불안을 느낀 김일성이나 소군정이 현을 살해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견해는 모두 현의 암살이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온 이후인 9월28일 발생한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현준혁이 김일성의 입북전인 9월초에 암살됐다는 유씨의 증언은 약간 뉘앙스가 다르다.



유씨의 증언.



『45년 8월22일께 서장으로 부임되자 고등과로부터 공산계열에 관한 많은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그 가운데 주목했던 것은 공산당 내분이었습니다. 당시 조공평남도당부는 숭실전문학교에 있었는데 이들이 거의 매일저녁 모임을 가지면서도 만났다하면 싸우는데 권총을 들고 쏘기 직전까지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로 현준혁과 장시우파간 싸움이었는데 내용은 주로 노선싸움이었습니다.』



○공산당 노선 싸움



당시 현준혁의 노선은 공산당이 독점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보다는 민족문제의 해결을 내세웠고 따라서 민족주의자들과의 연합전선을 주장했었다.

 

소군정의 뒷받침아래 공산당을 만들려는 장시우나 소군정의 생각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이 점에서 당시 국내파의 정황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해방후 이북지역에서는 도별로 대표적인 공산주의자의 지도하에 조직결성이 활발하게 이루어져나갔다. 그러나 박헌영이 중심을 잡고있던 이남과는 양상이 달랐다.



서용규씨의 증언.



『이북 국내파공산주의자들의 특징은 중앙적 권위를 가진 인물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모두 지방적인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일제의 영향이었습니다.

 

일제의 탄압때문에 피신했다 돌아온 사람,사상보호관찰에 걸려 소위 대화숙에 있던 사람,일제때 고등계형사를 하면서 주워들은 지식으로 공산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등 다양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종횡으로 얽히면서 이북지역의 공산계열을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어느 누구도 주도권을 잡지 못한채 서로를 경계하거나 세력권이 조금씩 형성되었을 뿐이었다.

 


누가 기선을 잡느냐하는 것이 중요한 때였다. 바로 그 시점에 현준혁의 암살사건이 터진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현의 암살은 헤게모니쟁탈의 성격이 된다. 따라서


암살시기를 9월초로 잡으면 현준혁과 경쟁관계에 있던 장시우가


범행했다고 볼 수 있고 범행시기를 늦추면 김일성이 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어쨌거나 민족계열과 연대하려던 온건 공산주의자는 소련과의 연결을 꾀하는 쪽에는 장애물이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이상..   끝. 13편에서 계속..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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