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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0-09 11:02
[한국사] 한글날 기념. 신미대사는 과연 한글창제에 관여했을까
 글쓴이 : 멸망의징조
조회 : 2,832  

신미대사가 문종에게 받은 ‘우국이세(祐國利世)’라는 법호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국이세란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이롭게 했다’는 뜻이다. 억불숭유 정책을 취한 조선에서 신미대사의 법호에 그런 말을 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곧 세종대왕이 내세운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과 같은 말이다. 따라서 문종이 우국이세를 굳이 법호에 포함시킨 것은 신미대사가 한글 창제에 큰 공헌을 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신미대사에게 법호가 내려진 후 잇따른 신하들의 상소와 그에 대한 문종의 반응 또한 흥미롭다. 하위지,홍일동,신숙주,이승손 등은 신미의 칭호가 부당하다며 적극 반대했고, 집현전 직제학이던 박팽년은 강경한 태도를 보이다 불경한 문구를 사용하여 파직을 당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이에 대한 신하들의 직언이 끊이질 않자 문종은 결국 20일 만에 신미의 칭호를 ‘대조계 선교종 도총섭 밀전정법 승양조도 체용일여 비지쌍운 도생이물 원융무애 혜각종사’로 고쳤다.


존자에서 종사(宗師)로 바꾸고, ‘우국이세’란 말은 아예 빼버린 것이다. 대신 그 자리에 ‘중생을 제도하고 일을 잘 되게 한다’는 뜻의 ‘도생이물(度生利物)’이란 문구를 넣었다.


이밖에도 신미대사가 한글 창제의 주역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많다. 신미대사의 가문인 영산 김씨 족보를 보면 ‘수성이집현원학사득총어세종(守省以集賢院學士得寵於世宗)’이란 문구가 나온다.


여기서 수성은 신미대사의 속명인데, 풀이하자면 신미대사는 집현원 학사를 지냈고,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는 뜻이다. 실제로 신미대사는 세종대왕에게서 많은 총애를 받았다. 신미대사가 있던 속리산 복천암에 세종은 불상을 조성해주고 시주를 했다. 또 승하하기 불과 20일 전에 세종은 신미대사를 침실로 불러서 법사를 베풀게 하고 예를 갖추어 그를 대우했다고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한편 세조가 간경도감을 설치하고 불경을 번역, 간행했을 때 신미대사는 이를 주관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석보상절의 편집을 실질적으로 이끌었으며, 그밖에도 많은 불교 서적을 한글로 직접 번역했다. 따라서 신미대사라는 인물이 만약 없었다면 오늘날 전하는 상당수의 한글 문헌이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는 주장도 있다.


그럼 왜 세종은 신미대사의 한글 창제 참여를 단 한 번도 밝히지 않았을까. 또 실록이나 그 당시 전하는 어떤 기록에도 신미대사와의 한글 창제 관련 문구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추론할 수 있다. 한글 창제를 반대하던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서 거기다 승려가 관여했다고 발표하면 유생들의 반발이 더욱 거셌을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때문에 세종은 유학자들의 반발을 잠재우고, 그들이 신미대사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배려 차원에서 신미대사의 한글 창제 관여를 비밀에 부쳤을 것이다.


그리고 한글을 창제한 후 이론적 체계 확립과 훈민정음의 보급 사업을 슬쩍 집현전에 맡겼는데, 이 역시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고도의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그 당시 조선왕조실록에서 신미대사에 관한 기록을 찾아보면 매우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실록에서 신미대사의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훈민정음 반포 직전인 1446년(세종 28년) 5월 27일이다. 그에 의하면 세종은 “우리 화상(신미대사를 지칭함)은 비록 묘당(의정부)에 처하더라도 무슨 부족한 점이 있는가”라며 그를 칭찬하고 있다.


그런데 신미대사의 호칭 앞에는 ‘간승(奸僧)’ 내지 ‘요망한 중’이라는 글귀가 항상 따라다닌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신미대사의 친동생인 김수온이 벼슬을 제수 받을 때도 형인 신미대사가 요사한 말로 임금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라는 투로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승려(혹은 신미대사)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던 분위기에서 그의 운신 폭은 그리 넓지 않았을 것이다. 신미대사가 직접 번역한 불교 경전의 초판본에는 법호가 명시돼 있지만 재판본에는 빠져 있는 걸로 볼 때, 세종 사후에 유생들이 조직적으로 신미대사가 한글창제에 관련된 문구를 모두 삭제한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수 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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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19-10-09 15:40
   
세종 살아생전이든 사후든 유생들이 한글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적은 단한번도  없었음......
한글이 그 당시 좋은 것이라 추앙받을 가치가 있어야, 역으로 그 업적을 일부러 지우는데
한글 자체가 암클이라 평가절하받던 시대인데, 왜 한글창제 문구를 삭제하겠나?
그 당시 유생이라면 오히려 암클 탄생에 승려가 관여한 것이라고, 오로지 까기 위한 목적으로 덧붙이지,
한글창제에 승려 관여 여부를 일부러 삭제할 이유가 전혀 없음...
조선 초기에는 사대부나 유생들이 극렬 반대했어도 여전히 불교가 사랑받고 있었고
신미는 불경의 한글 편찬에 관여한 몫이 있어서 대우받은 것이지,
한글 창제에 실제 관여할 인물이 아님...
한글 창제 원리를 보면 역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이건 모두의 지혜를 모아 만든 글자가 아닌,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재 혼자 그 머릿속에서 탄생시킨 것임...
지혜를 모아 더 나은 글자 창제가 가능하다면 왜 현대에는 그게 불가능함?
한글은 똑똑한 새끼 수십 수백명 모아서 만들 수 있는 글자가 아님...
한글 창제에 도움 준 인물들은 세종의 머릿속에 있는 걸 체계적으로 정리할때 도움준 게 전부임...
지금으로 치면 옆에서 시키는대로 엑셀로 도표 작성한 게 전부임...
한글은 천재 한 명이 구상하고 만들고 그 옆에서 몇명이 시다바리한 게 전부임...
시다바리라고 천한 일본어로 표현한 건, 정말 그들이 한게 그닥 위대한 게 아니기 때문에....
     
탄돌이2 19-10-10 10:37
   
님깨서 아무리 올바른 설득을 하신다고 해도,
예초에 도둑질을 목표로 한 환빠새끼들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백셩들은 굳이 설득하지 않아도 되요.  다들 알아듣는 분들이닌깐요.
하지만, "도둑놈한테 도둑질하지 말고 착하게 살아라"고 떠들어봐야 쓸 데없는 짓입니다.

걍 보이는 족족히 개패듯이 패줘야 합니다.
모니터회원 19-10-10 04:55
   
https://www.youtube.com/watch?v=ZKaK7Gb4Clo

영상에 보면 조선왕조 실록에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창제이후 신미를 만났다는 기록이 있다는 부분이 나옴. (2분55초)
이 실록의 한 줄로 신미의 훈민정음 창제설이 모두 깨짐.

https://www.msn.com/ko-kr/news/other/%EC%84%B8%EC%A2%85%EB%8C%80%EC%99%95%EA%B3%BC-%ED%9B%88%EB%AF%BC%EC%A0%95%EC%9D%8C%EC%9D%84-%EB%AA%A8%EC%9A%95%ED%95%9C-%EC%98%81%ED%99%94-%EB%82%98%EB%9E%8F%EB%A7%90%EC%8B%B8%EB%AF%B8/ar-AAELYIX

[대행왕(大行王; 세종대왕)께서 병인년(1446; 훈민정음 반포년도)부터 비로소 신미의 이름을 들으셨는데, 금년(1450)에는 효령대군의 사제(私第)로 옮겨 거처해 정근(精勤)할 때 불러 보시고 우대하신 것은 경들이 아는 바이다.]

- 문종 즉위년 경오(1450) 4월6일(기묘) 기록
     
탄돌이2 19-10-11 16:12
   
영화 나랏말싸미는  명백한 한글 도둑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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