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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9-23 05:12
[북한] 진시황과박정희,백가제명,반공제일,공자,김일성(5)
 글쓴이 : 돌통
조회 : 1,462  

김일성 가짜설이 고개 숙인 이유


-------



1987년 6월항쟁 이후 대학가엔 한국 사회에 관한 교양강좌나 학


교가 많이 개설됐다.



당시에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같은 방송 프로그램도 없었기


때문에 현대사에 대한 욕구는 가히 폭발적이었고, 모든 교양강좌


나 민족민주 운동단체가 개설한 학교에는 현대사 강좌가 빠짐없


이 들어가게 되었다.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사업의 일환으로 청년학교를 개설하게 되었


는 데, 현대사 강의의뢰가 많았다고 한다.





그 시절에는 어디 가서 무슨 얘기를 하든




- 박정희 얘기든, 학생운동사든, 해방 직후의 민중운동이든, 상


관없이- 첫 번째 나오는 질문은 신기하리만큼 일정했다.




김일성, 진짜예요, 가짜예요?


 

학생들은 모두 가짜 김일성설을 배우며 믿고 자란 세대였다.


2002년경부터 가짜 김일성설을 처음 들어본다는 학생들이 나오


기 시작하더니 더 이후엔 그 수가 절반이 넘는 것 같다. 가짜 김


일성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보는 학생이 늘어나는 이유는 분명하


다.





한편으로는 한국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가짜 김일성설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일이 적어진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구분단 세력 입장에서 볼 때




 살아 있는 김일성에 비해 죽은 김일성은 위험하지 않았기 때문


일 것이다.





일황 히로히토(裕仁)가 죽었을 때




총리를 조문 사절로 보내는 것에는 아무 말이 없던 한국사회는


1994년 7월8일 김일성의 죽음으로 조문 파동에 휩싸였다.



 

보름 후 김일성과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던 김영삼이 대통령


으로 있던 한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김정일이 김일성을 승계할 것이 이미 기정사실화된 지 오래인데,


김영삼이 정상회담을 계속 추진할 것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정상회담을 하려던 상대방이 뜻하지 않게 세상을 떴는데,




당시 정부는 전군에 비상경계령을 내렸다. 비상사태에 당황하지


말고 밟아야 할 조치를 규정해놓은 프로그램이 당연히 있었을 것


이다.



 

김일성 유고시에 취할 조치를 규정해놓은 이 프로그램이 혹시 실


미도 부대를 운영하던 시절에 만들어놓은 것은 아니었을까?





남쪽의 특수부대가 북쪽의 최고지도자에게 위해를 가한다면,




북쪽이 군사적 보복을 취하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다만


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이었다면 그에 맞는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



전군 비상경계령에 이어 조문 파동이 일자, 북의 태도는 싸늘하


게 변해버렸다.





조문파동이 있고 한 2년쯤 지나서 미국에 워싱턴대학에도




 북쪽 사람들이 방문하여 공개강연을 한 적이 있다.



 

이들은 주로 핵 문제와 조-미 관계를 중심으로 제기된 질문에 능


란한 화술로 여유만만하게 답했다. 누군가 남북 정상회담 개최


여부에 대해 묻자 표정이 확 굳어지더니 딱 한마디 했다.





"우리 조선 옛말에 절대 상종하지 못할 놈을 상갓집 앞에서 춤추


는 놈이라 했습니다."





남북 정상회담은 김영삼이 물러나고 김대중이 새로이 대통령이


된 뒤에야




 추진될 수 있었다.



 

김일성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오죽하면 역사에서 유례를


찾을 길이 없는 가짜 김일성설이 나왔겠는가?


 

갈라진 조국의 한쪽에선 그는 민족의 태양인 반면, 다른 한쪽에


선 극악무도한 전범이었다.





한쪽에서는 그를 더 이상 떠받들 수 없을 만큼 떠받들었던 반면,




한쪽에서는 무슨 일만 있으면 화형식을 가졌다.


 

우리는 김일성이라는 이름이 처음 역사에 등장한 1930년대에 분


단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물론 그때도 조선 사람임에도 김일성을 공비, 폭도로 매도하고


그를 토벌하러 다닌 사람들이 분명 있었다.





김일성에 대한 인식이 지금처럼 갈린 것은 아니다.




그는 과연 괴뢰였는가. 일제의 기록에 의하면, 국경지대에서 사


내아이가 태어나면 김일성 장군처럼 자라라고 빌었다고 한다.



 

당시 김일성은 광복을 쟁취하고자 했던 겨레의 염원에 대해서 무


한한 용기와 기대, 그리고 신념을 솟구쳐주는 원천이며 그 상징


이었다.





이런 평가가 사실이라면 민족의 태양이라는 호칭은 과분한 것이


 아니다.




평가는 이북의 김일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김일성을 가


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대표인 이명영이 진짜 김일성에 대해


내린 평가이다.



 

1970년대에는 술 한잔 걸치고 어릴 때 인민군에게 배운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으로 시작되는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흥얼


대던 사람들은 죄다 막걸리반공법에 걸려 감옥에 가야 했다.





심지어 무허가 판잣집을 때려 부수는 철거반원을 향해




야, 김일성보다 나쁜 놈아라고 외쳤던 아저씨도 반공법의 고무찬


양죄로 처벌을 받았다. 김일성보다 나쁜 놈이란 말이 어찌 고무


찬양이 되냐?



 

김일성은 인류가 출현한 이후 가장 나쁜 놈이어야 하는데, 철거


반원들에게 더 나쁜 놈이라 하였으니 찬양고무라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물론 좋은 학교 나와서 고시에 합격한 엘리트 검사


들이 만들어냈다.




- 영문법에서 최상급과 비교급을 같이 쓰면 안 된다는 것은 배웠


음에 틀림없다-





다행히 그 아저씨는 1970년 8월 대법원에서




 흥분상태에서 과장된 표현을 쓴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북괴의


활동을 고무하는 등 그를 이롭게 하려는 범의가 있었다고는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기는 하였지만 유치장, 구치소


구경하며 치도곤을 당해야 했다.



 

북에서 김일성보다 나쁜 놈아라고 욕을 했다면 감옥에 가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남쪽에서도 정반대의 이유로 무사하지 못했다. 과


거의 코미디라고 하며 웃어버리는 것은 살아있는 국가보안법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김일성은 우리 민족이 가장 암울한 상태에 놓여 있던 1937년




 보천보전투를 통해 혜성같이 나타났지만, 분단과 전쟁을 거치면


서 남쪽에서는 괴뢰집단의 괴수로 전락했다.



 

괴뢰,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꼭두각시란 뜻이다. 제 민족을 가


리키는 말 중에서 가장 고약한 괴뢰란 말을 남과 북은 서로에게


마구 써먹었다.





지금도 수구언론은 국방백서가 북괴를 주적으로 명시하지 않은


것을 트집 잡고 있다.




김일성을 소련이 내세운 꼭두각시로 모는 것은 해방 직후에 남쪽


에서 정권을 잡은 친일파들로서는 불가피한 일이었을 것이다.



 

김일성 정권이 1950년대 중반부터 주체를 앞세우고, 자주노선을


추구했음에도 괴뢰란 말은 사라지지 않았다.





더구나 이 꼭두각시는 소련의 해체로 자신을 조종할 배후가 없어


졌는데도,




여전히 혼자서 춤을 추는 괴뢰치고는 참으로 희한한 괴뢰였다.



 

친일파와 그 후예들의 웃기는 폄하. 김일성은 참으로 많은 것을


성취한 지도자이기도 하지만, 항일무장 투쟁 시절부터 꿈꿔온 자


신의- 아니, 모든 조선 사람의- 소중한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항일투쟁 이래 김일성의 꿈은 조선민족 누구나가 쌀밥에 고깃국


을 먹는 것이었다.




쌀밥에 고깃국은 김일성에게 사회주의건설의 완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살아생전 꿈을 이루지 못했을 뿐 아니라 죽은 뒤부터


그를 섬기던 이북 주민들이 굶기 시작했다. 남북이 갈라져 있는


한, 김일성에 대한 평가가 일치될 수 없다.





아니, 남쪽 사회 내부에서도 김일성을 놓고 평가가 일치할 수 없


다.




그가 항일무장 투쟁의 영웅으로만 머물러 있었다 해도 평가가 엇


갈릴 수밖에 없는데 그는 분단과 전쟁을 거쳐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첨예한 남북 대결의 주역이었다.



 

이북의 역사가들은 김일성의 업적을 과대포장했으므로 다른 학


자들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갖는 의미를 아무리 높게 평가해도 이


북 학자들에 비하면 그를 깎아내린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 원인이 미국에 있다고 해도 김일성은 경제난과 인권문제로부


터 자유로울 수 없다.




김일성에 대한 평가가 남쪽 사회 내에서 갈릴 수밖에 없다 하더


라도, 한 가지만은 분명히 해야 한다.



 

친일파와 그 후예들이 김일성의 항일 투쟁을 깎아내리는 일만큼


은 해서는 안된다.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단 하룻밤도 춥고


배고파 본 적이 없는 자들이다.





자신과 가족 이외의 사람들을 위해 단 한 번도 발품을 팔아본 적


이 없는 자들이,




영하 40도가 되는 추위 속 밀림 속에서 밤을 지샌 투사들을 모욕


하게 할 수는 없다.



 

항일투사 김일성의 폄하는 곧 1930년대 후반 이래의 항일운동에


대한 폄하가 된다.





김일성을 한국전쟁의 전범으로 규탄하는 일은 친일파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탈출구였다.




그들에게 모든 역사는 1950년 6월25일에 시작하였다. 그 이전에


우리가 왜 분단됐는지, 분단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일제의


압제 하에서 누가 일제의 앞잡이였고, 누가 항일을 했는지는 중


요하지 않다. 어떤 과정을 거쳐 전쟁이 시작되었는지 전혀 상관


이 없다.





군대를 동원한 자가 모두 뒤집어쓰는 그런 게임이었다.




전쟁으로 인한 수많은 사상자들, 특히 민간인학살의 피해자들이


누구 손에 죽었는가도 상관이 없었다. 김일성은 괴뢰로, 동족상


잔의 비극을 가져온 전범으로 추락해갔다.



 

그가 계속 영웅일 수 없었지만, 그가 북쪽에 있는 형제들의 수령


이었음은 인정해야 한다.





형제들의 수령,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평양은, 아니 전 이북이


흐느꼈다.




물론 박정희가 죽었을 때도 우리 백성들은 연도에 나가 슬피 울


었다. 그 강도가 똑같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다 독재자들의 세뇌 탓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조선민주주의인


민공화국이라는 거대한 가족국가의 가부장이었던 김일성이 가족


국가의 구성원 개개인과 맺은 의사 진한 관계를 무시한다면 우리


는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이북을 이해할 수 없다.





김정일의 출생을 두고 북한은 백두산에 샛별이 솟았다느니 했다.




반면 김일성은 그런 식으로 미화되지 않았다.



 

자수성가한 전형적인 민중영웅이었지, 출생부터 신비스럽게 미


화돼야 할 영웅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제의 강제동원이 극심하던 때 사람들은 김일성에게 기대를 걸


고 있었다. 그런 김일성은 소련으로 갔고, 그의 활동을 공비의 살


인·방화·약탈 만행으로 폄하하면서도 사실을 전해주던 <조선일


보> <동아일보> 두 신문도 사라져버렸다. 그러던 차에 해방이


되고 김일성이 나타났다.





죽은 줄 알았던 홍길동이나 홍경래, 또는 로빈 후드의 귀환이었


다.




그는 인민위원회를 조직하여 위원장이 되어 그의 이름으로 땅을


나누어주고, 각종 조직을 만들어 주민들을 참여시켰다.



 

김일성이 임시인민위원회를 만들고 내린 정령은 연필 생산에 관


한 것이었다. 배우지 못해 한을 품은 사람들을 김일성은 감동시


킬 줄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김일성의 개혁을 통해 처음으로 자기 이름으로 된


땅을 갖게 되었다.




인민위원회다 농민동맹이다 여성동맹이다 하는 조직의 감투를


쓰게 되었다. 또한 자기 이름 석 자를 쓸 줄 알게 되었다.



 

그는 비록 이북의 역사가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조선인민혁


명군을 이끌고 일본군을 삼대 쓸 듯 물리치며 군사적 해방을 쟁


취한 짜릿한 순간을 연출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세계사에서 이


수준의 혁명을 달성한 지도자는 몇 안 된다-



 

분명히 혁명의 창건자로서 위치를 누릴 수 있었다. 혁명의 창건


자, 이는 스탈린이나 덩샤오핑도 넘볼 수 없는, 한 나라에서 오직


 한명의 혁명가만이 누릴 수 있는 자리였다.



이어서 ~~계속..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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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니모 19-09-23 06:14
   
백가제명->백가쟁명

잘 읽었어요.
무좀발 19-10-05 12:20
   
김일성이 민족주의자였다고?... ㅋㅋㅋㅋ

김일성은 6.25를 일으키고서 훗날 민족상잔을 일으킨 응징을 두려워했다.
더우기 쏘련과 중국의 노선 갈등은 급기야 중국이 소련에 밀착했던 시기
두만강과 압록강 전역에 비난공세를  확성기로 퍼 붓고 중공군을 강화하자 더욱 그 심증은 두터워 졌다. 
그래서 민족주의 탈을 뒤집어 쓴것.
자기 살자고 민족주의를 집어든것, 이전에 일개 소련군장교 대위가 북한전역에 망망 높은 정치가들을
누르고 소련의 지원으로 권력을 장악한것은 결코 민족족주의자로써는 가능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냥 김일성은 처세와 시대를 보는 눈이 있었다고하는게 나을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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