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중 김용삼 기자가 쓴 1905년 '을사오적을 위한 변명'에서 "고종이 조약체결 어명을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토가 직접 붓을 들어 문안수정 작업을 했고, 이 내용을 정서한 다음 고종의 재가를 받아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본 공사 하야시 사이에 공식으로 조약이 체결된 시간은 11월 18일 오전1시였습니다.
조약 체결 직후 고종은 이토 특사에게 “새 협약의 성립은 두 나라를 위해 축하할 일이다. 짐은 신병으로 피로하지만 당신(주: 이토히로부미)은 밤늦도록 수고했으니 얼마나 피곤하겠소"라는 위로의 칙어를 내렸습니다.
이것이 주요 사료들을 통해 정밀 복기한 을사조약 체결의 경과입니다.
그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을사조약 체결을 결정한 사람은 이완용 등의 '을사오적'이 아니라 고종이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완용과 네 명의 대신이 '을사오적'으로 몰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반일 종족주의', 김삼용, 미래, 2019.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