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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7-18 17:51
[한국사] 수경주(水經注)를 중심한 어이진(禦夷鎮) 고찰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2,592  

이 고찰은 
이곳 동아게시판에서 활동하는 조선족 유저 브로리님의 게시글에서 비롯하였다

브로리님은 대한민국 인터넷의 한 개인 공간에서 "수경주의 어이진은 현 산서성 영구현이고 유수는 상건하이다" 하는 주장을 하는 연구글을 접하였고 이에 대하여 이곳 동아게 역사탐문자들의 견해를 묻는 게시글을 게시하였고

이에 본인이 참여하여 문답을 이어가던 중에 수경주와 어이진, 유수 등에 대한 본인의 앎과 그 기억이 분절돼 있고, 논리적 설명으로 반박하기에 해당 쟁점에 대한 본인의 연구가 부족하다고 판단하여서 양심의 부름과 역사연구자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고 직접 분석, 고찰하기에 이르렀다.

수경주의 어이진과 유수, 고하, 포구수 등은 본인이 지난 해 고구려 서계를 추적하면서 '송형령, 냉형산, 염사', '고막해와 거란의 활동사', '북위 시대 이래 고구려의 서계' 등을 연구하면서 개인적으로 다루어본 바 있고, 또 이 연구들의 내용과 근거를 충실화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 판단하여 진지하게 탐구하였다.

이 고찰에는 총 6일, 60 시간여가 사용되었다. 역사 문제에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 말 한 마디 하는 것이 이렇게 엄중하고 힘이 드는 일이다.

브로리님이 읽었다는 글이 뒤에 아래의 글임이 밝혀졌다

해당 연구글에서 작성자는 "《수경주(水經注)》의 어이진(禦夷鎭)은 산서(山西)성 영구(靈丘)이고 고하(沽河)는 상건하(桑乾河), 유수(濡水)는 거마하(拒馬河)이다." 하는 아주 파격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산서성 영구에 어이진의 연고가 들어가게 된 때는 북주 시대로, 523~530에 이르는 북주 말기의, 6진의 란에서 비롯된 반란으로 인하여 황하의 북쪽 지역이 반란세력의 손에 들어가자 북위는 효창 연간(525~528) 때에 6진에 해당하는 진들을 남쪽으로 이치시켜 새롭게 주로 편성하였고, 영안 연간(528~530)에는 6진에 해당하는 회황진과 그 동쪽에 있던 어이진을 합쳐서 울주를 편성하여 현 산서성 진중시 개휴현에 해당하는 당시 병주 오현에 기치, 즉 붙여 다스리게 된다. 이 자리가 개휴현의 바로 동쪽인 평요현이다.

북위가 멸망하고 북주가 들어서자 이곳에 있던 울주는 폐지되었다가 영구에 새롭게 울주를 설치하였다. 이후 울주는 몇 차례 폐지와 재설치를 거치며 당나라에 이르기까지 이곳 저곳으로 이치되다가 오늘날 장가구시 위현(울현) 자리에 정착하게 되었다.

평요현(平遙縣) → 영구현(靈丘縣) → 양곡(陽曲) → 번시(繁畤) → 항주성(恆州城) → 안변현(安邊縣) → 울현(蔚縣))

이 때문에 후대의 사서와 주석들이 영구현 및 상건하 등지에서 어이진을 언급하게 된 것이다.

어이진은 북위 태무제(재위 423~452) 때에 처음으로 현 소량산(小梁山) 일대인 유원(濡源)에 설치되었다. 이것이 바로 자치통감주에서 호삼성이 유수에 주석을 달며 "탁발위(북위) 태무제 때에 설치되었다"한 연원이다.

이 약칭, 태무제 어이진은 수경주 유수 편에서 "유수는 어이진의 동남쪽에서 나온다"한 첫 기술, 그리고 "유수는 (발원처)를 떠나 서북쪽으로 흐르며 어이진 옛 성을 지난다" 한 기술에서의 그 어이진이며

수경주 포구수 편에서 "포구수는 어이진의 북쪽 새 가운데에서 나온다"한 기술, "어이진 동남쪽 90리에 서밀운수가 있다"한 기술, "활염현(곡염수)의 서북쪽 200 리에 어이진이 있다"한 기술에서 말하는 그 어이진이다.

한편 유원(濡源) 근처의 태무제 어이진 외에 태화 연간(477~499, 실제로는 500년 1월 4일까지)에 설치된 어이진이 수경주 고하(沽河, 고수) 편에 나온다. 현 장가구시 적성현 독석구진 남쪽에 있는 독석(獨石)과 첨곡수가 고하로 흘러드는 지점의 사이에 위치하면서 독석에 가깝게 위치한 지점에 제시되는 이 어이진은 수경주의 해당 기술에 따르면 "태화 연간에 북정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한 곳이다.

태화 연간에 이 지역에는 480년 지우두의 공격을 피해 고막해가 들어와 살았으며 490년에는 지두우가 침범하여 북위에 의한 소탕전이 벌어졌으며 498년에는 이 지역에서 북위 주민들과 섞여 살던 고막해가 안주 지역(포구수, 즉 현 조하 수계)을 약탈하여 북위가 연주(현 장가구시), 유주(현 북경시), 영주(미상, 현 북경시 밀운, 또는 창편구~연경구 지역으로 본인은 추정) 등의 군사로 소탕한 바 있다.

즉 태화 연간의 북적이라 함은 고막해와 지두우의 약탈 및 침략 활동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러한 북적(고막해, 지두우)의 활동으로 인하여 독석 어이진은 보다 남쪽으로 교치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이 바로 후로성 어이진이다.

후로성 어이진은 수경주에 따르면 본래 어이진이 아닌데 태화 연간에 후로성의 이름을 바꿔서 어이진으로 삼았다고 하였다. 

최초의 어이진인 태무제 어이진은 유원, 즉 현 펑닝만족자치현 소량산 일대에 설치되었고, 후로성 어이진과 태무제 어이진 사이에 독석 어이진이 분명히 존재하므로

후로성 어이진은 독석 어이진이 고막해 및 지두우와 전투를 벌이면서 교치되어 내려온 어이진으로 판단할 수 있다.

북위는 효문제 태화 연간인 493년에 현 산서성 대동시에 있던 수도 평성(대도)을 버리고 낙양으로 천도를 하였다. 이 바로 전 해인 492년에 승천한 장수왕의 뒤를 이어 등극한 문자명왕에게 북위 효문제는 사지절도독요해제군사정동장군령호동이중랑장요동군개국공고구려왕(使持節都督遼海諸軍事征東將軍領護東夷中郞將遼東郡開國公高句麗王)으로 책봉하였고, 또 이듬 해인 494년에 남제(齊)는 사지절산기상시도독영평이주정동대장군낙랑공(使持節散騎常侍都督營平二州征東大將軍樂浪公)으로 책봉하였다.

특히 '도독영평이주'라는 지위는 494년에 처음 제수되는데 이는 제 3자인 남제가 보기에 고구려가 북위의 영주와 평주 지역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었다고 판단함에 따른 것이고

이에 본인은 북위의 영주가 모처에서 북경시 연경구 일대로 이치된 것이 이 시기를 전후한 때인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북위가 수도를 평성에서 낙양으로 천도하여 30여 년이 흐르는 동안 지극한 한화 정책을 실시하였고 이에 북방 군진의 불만이 심화돼 이것이 6진의 란을 촉발, 북위의 분열과 멸망으로 이어진 것이다.

후로성 어이진이 현 산서성 진중시 일대로 이치돼 회황진과 함께 울주로 편성된 것은 앞에서 설명하였고 어이진이 산서성 영구현에 연고를 남기게 된 것은 북위가 아니라 북주 시대부터라는 것도 앞에서 설명하였다.

어이진의 연혁을 요약 정리하면

① 북위 태무제 ㅡ 현 펑닝만족자치현 소량산(유원) 인근

② 북위 효문제 태화 연간 ㅡ 현 장가구시 적성현 독석구진 남쪽 '독석'의 남쪽 인근

③ 북위 효문제 태화 연간 ㅡ 어이진을 후로성(현 적성현 서쪽)으로 후퇴하여 설치  

④ 북위 효장제 영안 연간 ㅡ 회황진과 어이진을 묶어서 현 산서성 진중시 평요현에 울주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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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한 고찰 내용은 아래 글에 있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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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테이토칩 19-07-18 18:04
   
저 지두우의 북위 국경 침략 사건은 블로그에서도 제가 말씀드렸다시피 굉장히 재미있는 사건인데,

지두우의 북위 국경 침범 사건과 매우 유사한 사건이 후대에도 있었다는 게 더 흥미롭네요.

한기 묘지명에서 거란족이 영주를 습격하여 평주사마의참군 한상 일가와 500여구를 고구려로 들였다는
금석문이 남아 있습니다.
     
감방친구 19-07-18 18:10
   
좋은 말씀 감사합나다
이 한기 묘지명과 취덕홍의 반란 ㅡ 이 주제는 고구려의 서계 및 북위 영주 위치 추적과 관련하여 아주 중요한 단서인데요
저는 아직 이 내용만을 알고 있을 뿐 고구려 서계 추적에 직접 연결시키는 고찰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삥 돌아가는 식으로 고막해와 거란의 북위~수/당 시기 활동상을 통해 토끼몰이하는 식으로 접근을 하느라 진을 뺐던 것이죠

아무튼 포테이토칩님이 블로그에 한번 정리하는 글을 써주세요 그러면 제가 그것을 인용, 참고하여 훗날에 잘 활용하겠습니다 ㅎㅎㅎ ;;
     
감방친구 19-07-19 13:36
   
아무래도 제가 주말 동안 작업해야겠습니다
감방친구 19-07-18 18:30
   
490년 지두우의 활동은 유연과 고구려가 단순히 분할을 시도하는 데에 그친 게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이 모든 사태의 단초요 기화는 백제가 기획한 '백제-북위-물길' 국제연합에 의한 고구려 고립노선 시도에 있다

고구려가 지두우를 점령하는 군사행동을 하는 479년 그 해에 거란의 한 부족인 막불 하불우가 휘하 부족원 1만 명을 데리고 북위로 도피한다 수서는 이들이 고구려의 공격을 받고 도망온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지두우 점령과 거란 일부 부족 공격은
고구려의 백제 정벌과 마찬가지로 백제와 물길의 북위에 사신을 파견하여 고구려 고립을 시도한 것에 따른 것이다

이 때에 북위는 고구려에 대하여 아무런 힘, 힘은 커녕 쪽도 못 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고구려가 백제로 보내는 북위 사신단을 가로 막았어도 어쩌지 못 했으며
그 즈음에는 고구려 사신에게 남제 사신과 동급의 상석을 배치한다

거란은 이미 광개토대왕 이래 고구려에 신속돼 있었으며
이후 거란이 중국계 정권의 변경, 즉 현 북경시 동북방에서 벌인 모든 군사활동의 뒤에는 고구려가 있었다

위서는 거란이 밀운과 화룡 사이에서 교역하였다라고 적고 있다

거란의 본거지는 현 시라무룬허 유역이다
그리고
밀운은 수경주에서 기술하고 있듯이 현 조하에 해당하는 포구수 중상류 수계에 있었다

그리고 거란은 479년에 도피하여 잠시 머문 것을 제외하고 그 이후로 계속하여 북위의 변경에서 도적질을 하며 살았다고 위서는 또한 적고 있다

이러한 거란의 뒤에 고구려가 있던 것이다

490년의 지두우의 활동 역시 이들 뒤에 고구려가 있었음을 추정케 한다
브로리 19-07-20 06:56
   
https://earthlin9.tistory.com/11?category=0

감방친구님, 저는 좋은일을 하나 하였습니다.
고독하게 좋은 연구를 하시는 두 분을 서로 연결시켜드렸습니다.
그렇다면 두분이 한번 이 문제를 가지고 붙어 보심이 어떠한지요?
두분의 목적은 같다고 보여집니다.
두분다 식민사학을 박살내려고 노력하시는 분들이십니다.
그렇다면 힘을 합쳐야죠 ~
학문에서 힘을 합친다는건 서로 교류하여 취할건 취하고 버릴건 버려 인식을 통일하는것이죠 ~
인식을 통일하면 그것이 식민사학을 박살내는데 강력한 무기로 되겠죠.
어쨋든 현재 두분의 인식은 아주 차이가 있는듯이 보입니다.
저 분의 글을 살펴보면 어이진 고하 유수 등을 한꺼번에 고찰하시고 나름대로 딱 맞아떨어지는 문장을 작성하셨습니다.
아마 누구라도 한번 보면 믿을수 밖에 없는 글입니다.
감방친구님께서도 어이진 뿐만 아니라 감방친구님께서 주장하시는 부근의 고하와 유수가 과연 사료와 맞아떨어지는지도 한번 고증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저 분의 대리인이 아닙니다.그럴만한 능력도 자격도 없습니다.
감방친구님의 의견은 여기에 유저분들이 보는것도 좋지만, 누구보다도 저 분이 꼭 보셔야 할겁니다.특히 어이진 관련하여 ~

그러니깐 그 분의 게시글에 이 글을 답변으로 달아주심이 어떠하신지요?
정면으로 대결하시어 식민시학을 박살내는 무기를 만들어내셔야죠 ~
단독작전은 식민사학을 박살내지 못하고 혼란만 조성할뿐입니다.

제가 계정을 만들어 감방친구님의 글을 답변으로 달아드릴가요? 그럼 또 뭐 '저작권'이요 뭐요 할가봐 그래도 감방친구님께서 직접 하시는것이 좋을듯합니다.물론 제가 링크로 답변 달아드릴수도 있지만, 제가 두분 사이에서 또 너무 지나치게 '활동'하는것도 조금은 그렇죠 ~

이게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세상인가요?
학문적으로 부동한 의견을 가진 동지가 있다는건 아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일중에 하나가 되지않을가 라고 생각이 듭니다.
감방친구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겁나 어색하게 ~요~요 하며 한국말투를 흉내냈는디, 곱게 봐주이소 !)
     
감방친구 19-07-20 12:58
   
참 답답하십니다

브로리님은 저를 물로 보시는 거 같은데 ㅎㅎ

저 사람이 님과 동일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자, 이 말씀을 드리죠

1)수경주를 쓴 역도원은 527년까지 산 사람입니다
2)어이진이 회황진과 함께 묶여서 현 산서성 진중시 평요현에 울주로 재설치된 것은 효장제 영안 연간(528~530)
3) 북위가 설치한 평요현 울주가 폐지되었다가 영구현에 다시 설치 된 게 북주(~581)
4) 다만 현 보정시 동북쪽을 흐르는 물줄기(영정하, 또는 영정하와 이수 사이의 물줄기)를 또한 유수라고 지칭함. 이는 란하(유수)와 동명이처
5) 태무제가 최초 설치한 어이진은 현 란하 발원지인 유원, 태화연간(477~500)의 어이진은 현 적성 근처와 독석 근처

대체 몇 번을 설명해야 합니까

저 사람이 포구수 고찰한 글을 보면 경수와 북평성이 언급되는데 저 사람은 북평성을 근거로 현 보정시 근처에 경수가 흘렀다고 설명. 그런데 북위 시대의 북평성은 현 당산시와 북경의 동부 지역에 해당하는 북위 어양군에도 있었다고 위서(북위) 지형지에 적혀 있음.

즉 저 사람은 사실을 편취해서 본인의 가설에 맞게 꿰어맞추고 있는 것

저렇게 제 수준으로 여러 사서를 잘 다루고 해석도 하는 사람이 모르고 저럴까? 모르고 저러는 게 아니라고 보는 게 제 판단임

누가 수경주 포구수, 유수 등을 가지고 분석하여 주장하는 글을 쓰면 우선은 수경주 원문을 한문으로 된 것을 보든 국역된 것을 보든 본 다음에 옆에 다 펼쳐놓고서 그 고찰글을 봐야 하는 게 기본이요 상식

제 답글은 이것으로 마치겠음

나는 내 생업이 있고 끼니 거르고 잠 줄여가면서 해야 할 내 연구가 있는 사람입니다

이거 님이 이해를 못 하니까, 즉 잘못 이해하고, 잘 이해하지 못 하니까 도움을 줄 생각으로 5일여 근 60 시간을 들여 고찰한 내용을 여기에 요약해서 올린 것입니다

내가 시급이 최소 5만 원인 사람인데 300 만 원을 나한테 줄겁니까? 대한민국 최저시급으로 따져도 50 만 원인데 그거를 벌기는 커녕 내 몸 상해 가면서 고찰해 보이는 게 쉬운 줄 아세요?

왜 돈 얘기냐고요? 최소한 노동력의 가치를 생각해보시라는 말입니다 남들 당구치고 볼링치고 친구들 만나 술 한잕하면서 쉴 시간에 연구하는 겁니다

자꾸 어쩌구 저 사람이 더 설득력이 있다 어쩠다 생각하시면 그렇게 하시고 저한테 떠들지 마세요 사람 괴롭히는 일이고 저한테는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니까
          
브로리 19-07-21 10:11
   
감방친구님, 역사연구는 혼자 하는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어보고, 다른 사람의 의견도 들어보고, 그렇게 해야 학문이 발전합니다.

그런 입장과 각도에서 저는 어이진에 관하여 서로 상반된 의견을 제시하시는 두 분께서 토론을 하시어 더 좋은 결과를 만들기를 바랬던것입니다.

물론 감방친구님의 이야기와 지구인님의 이야기 각자 다 도리가 있을것입니다.
그런데 서로 다른 결론을 말하시고 있으시다면 서로 교류를 하여 각자 어떤 부분에서 오류가 발생하였는지를 검토하시고 인식을 통일하시어 더 많은 사람들께 통일된 인식을 전파하고 식민사학을 박살내시는데 앞장서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저는 지구인 님이 아닙니다.
저에게 이렇게 '반박'을 하시는것보다는 직접 역사를 연구시하는 저 분께 반박을 하시는것이 더 좋을것입니다.

저 분의 글 링크는 이미 공개되었고, 본 게시판의 어느분께서도 저 분의 글에 댓글 하나 달아놨더군요.얼마나 좋은 세상입니까 ~

제가 한번 감방친구님의 글을 저 분께 추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 분께서도 여기에 감방친구님처럼 역사를 연구하시는 분들이 있다는것을 알게되시면 저보다 더 기뻐하실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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