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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7-06 06:24
[한국사] 발해 ㅡ 사서 기록을 통한 홀한성 위치 접근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1,237  

F

사서 기록을 통한 홀한성 위치 접근


사서 기록을 통하여 발해 상경용천부의 위치에 접근하여 보겠다. 보통 군대, 특히 야전부대에서 복무한 남성들은 FTX(야전기동훈련)와 ATT(대대전술훈련평가)를 경험하였을 것이다. 본인 역시 육군특공부대에서 복무한 자로서 평균적인 예비역 남성들과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훈련내용을 대침투작전에 한정한다면 보통 차단, 수색, 격멸로 구성돼 있다. 이밖에 병기본훈련과제 실습이나 독도법 훈련을 통하여 방향이나 대상을 특정할 수 없을 때에 지형과 지물을 이용하는 기술을 숙달하기도 하였을 것이다.섹터를 정하여 차단하고 지형과 지물을 이용한 방향을 잡고 대상을 특정하여 수색, 격멸하는 방식. 이는 사실 인류가 적어도 수만 년 동안 체내에 숙달해 둔 가장 합리적인 방식이다. 발해 상경용천부의 위치 찾기에서 이와 동일한 기법을 사용할 수 있다. 

역대 사서 기록을 검토하여 상경용천부의 주변부로부터 상경용천부로 접근하여 보자.



1. 함주(咸州)를 중심으로 

1) 요사(遼史) 지리지(地理志) 동경도(東京道) 함주

함주(咸州) 안동군(安東軍)이 설치되었으며 하급으로 절도를 두었다. 본래 고구려 동산현(銅山縣) 지역으로 발해는 동산군(銅山郡)을 설치하였다. 지역은 전한 때의 후성현(候城縣) 북쪽과 발해의 용천부(龍泉府) 남쪽에 있다. 산이 많고 험준하여 도적떼들이 모여있는 곳이어서 평주(平州)와 영주(營州)의 객호(客戶) 수백을 불러 성을 세우고 거주케 하였다. 처음에는 학리태보성(郝里太保城)이라 불렀다가 개태 8년 주를 설치하였다. 군사와 관련된 일은 북여진병마사에 속하게 하였다. 관할 현은 하나이다. 《遼史 卷三十八志第八 地理志二 東京道》

2) 요사(遼史) 위병지(兵衛志)

변경수병에 관한 일에 대한 기록을 <고려대요사적>에서 얻었는데 동쪽 경계에 수병을 세워서 고려와 여진 등의 변경 군사의 규모를 살펴 대비하게 함으로써 간료(간편)하게 두어서 한 번에 세 방면(변경)을 알 수 있다. 동경에서 압록강 서북봉에 이르는 경계는 황룡부 정병 5천, 함주 정병 1천, 동경에서 여진의 경계를 따라 압록강에 이르는 곳은 군보 70에 각 수군 20인, 합계 정병 1천 4백, 내운성선의군에 령이 8개로 태자영 정병 3백, 대영 정병 6백, 보주영 정병 2백, 신영 정병 5백, 가타영 정병 3백, 왕해성 정병 3백, 류백영 정병 4백, 옥야영 정병 1천, 신호군성 정병 1만, 대강 10 년(1084년)에 설치했으니, 1부, 1주, 2성, 70보, 8영으로 총계 정병 2만 2천을 두었다. 《卷三十六志第六 兵衛志下五京鄉下》

# 본인은 이 기록을 고려 전기 압록강이 '현 요하~동요하'였음을 밝히는 근거의 하나로 활용한 바 있다.


3) 금사(金史) 본기(本紀)

그 후에 발해가 성강해져서 흑수는 발해에 속하게 되어 (당나라에) 조공 보내는 것을 단절하게 되었다. 오대 시대에 거란이 발해 땅을 차지하니 흑수말갈은 거란에 속하게 되었다. 거란의 호적에 있으면서 남쪽에 거주하는 자들을 숙여진이라 불렀고, 북쪽에 거주하면서 거란의 호적에 있지 않는 자들을 생여진이라 불렀다. 생여진의 땅에는 혼동강, 장백산이 있는데 혼동강 역시 흑룡강이라 불렀던 바 이를 일컬어 백산흑수라 칭하였다.《金史 本紀第一》

4) 선화을사봉사금국행정록(宣和乙巳奉使金國行程錄) # 여정 부분만 발췌했다.

심주(현 심양시)에서 70리에 흥주(현 철령시 서남쪽 20여 km 新台子镇), 흥주에서 90 리 함주(현 개원시 동북쪽 인근), 함주에서 40 리에 숙주, 숙주에서 50 리에 동주, 동주에서 30 리에 신주(현 철령시 창도현 八面城镇, 또는 사평시 梨树县 근방), 신주에서 90 리에 포리패근채, 포리패근채에서 40 리에 황룡부(거리상 현 장춘시와 사평시 사이)《宣和乙巳奉使金國行程錄》

5)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 산동8

함주성은 철령위(현 철령시) 동북쪽에 있다. 《讀史方輿紀要 卷三十七 山東八》

6) 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

(거란) 함주병마사(가 관리한)자들은 휘발이라고 일컫는다. 휘발은 (본래) 숙여진도 아니고 생여진도 아니었다. 속말강 북쪽으로부터 영강의 동쪽에, 지방 1천여 리 정도의 땅에서 대군장도 소군장도 나라 이름도 없이 인구 10여 만 호(50만 명~70만 명)가 (흩어져) 살았다. 작은 무리는 1천 호(5천 명~7천 명), 큰 무리는 수천 호에 이르렀는데 이윽고 (이를) 일컬어 생여진이라 했다. 《欽定滿洲源流考卷六》

# 휘발하(輝發河)는 현 길림성 매하구시(梅河口市) 서쪽에서 발원하여 매하구시를 관통하여 동쪽으로 현 제2송화강으로 들어가는 강으로 제2송화강의 서쪽 지류 가운데에 가장 큰 강이다. 학계에서는 이 매하구시 일대를 발해 천문령에 비정하였다. 그런데 명칭이 휘발일 뿐 흠정만주원류고가 설명하는 거란 함주가 관리하는 여진족들의 거주지와는 차이가 있다. 해당 기록의 여진족은 현 제2송화강의 북쪽, 현 길림성 송원시 동부에 해당하는 영강의 동쪽 지역에 거주하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요사와 거란국지를 보면 완안아골타가 요나라를 치기 전에 부하들을 이끌고 거란 함주 지역에 나타나 시위를 하는 장면이 기록돼 있는 것으로 봐서, 또한 현 휘발하 지역을 통로로 하여 생여진이 거란 동경도를 약탈하였던 전례, 그리고 이 지역이 본인의 고찰에 따르면 강동6주이면서 그 전에 발해 정안국의 근거지인 점에서 이 지역, 즉 현 매하구시 지역에서 하얼빈 지역을 오가며 생여진이 활동한 것을 추정할 수 있다. 

# 한편 본인은 '선화을사봉사금국행정록'을 기본으로 하여 고려의 서북계를 고찰한 바 있다.

​발해 상경용천부는 사서 교차 분석 결과 거란 함주 북쪽에 위치. 전근대 사서에서의 방위는 물줄기나 산줄기를 기준(정북이나 정남 등의 기술이 없는 경우)으로 하므로 현 개원시 일대에 그 중심지가 있었던 함주의 북쪽은 현 하얼빈-길림-장춘 삼각지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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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회령(會寧)을 중심으로 


1) 명일통지

삼만위(현 개원시 일대)는 요동도사성 북쪽 330 리에 있다. (삼만위가 관리한 지역은) 옛 숙신씨의 땅으로 훗날 읍루라 일렀으며 북위 때에는 물길이라 일렀고, 수나라 때에는 흑수말갈, 당나라 정관 2년에 처음으로 그 땅을 연주로 삼았다. 개원 년간에 흑수부를 설치하고 그 부장으로 도독과 자사를 삼고 장사를 설치하여 감독케 하였으나 원화 이후에 다시 발해에 속하게 되니 (발해는 그 땅을) 상경용천부로 삼았다. 거란이 발해를 침공하(여 멸망시키)니 흑수여진이 이 틈을 타 그 땅을 회복하였다. 숙여진(이 아니라 실제로는 생여진이다)이라 불렸는데 훗날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드디어 (발해 상경용천부 자리에) 도읍을 건설하고 국호를 일러 금이라 하였다.《明一統志 卷二十五》


2) 독사방여기요

삼만위(현 개원시 부근)는 도사성(현 요양시) 북쪽 330 리에 있다. 남쪽으로 철령위(현 철령시)까지 90 리, 서쪽으로 폐지한 의주까지 370 리, 동북쪽으로 삼위 경계의 폐지한 신주(현 철령시 창도현 팔면성 비정, 그러나 독사방여기요에서는 여기서 더 동북쪽의, 사평시 현급시 공주령현 회덕진怀德镇 서북쪽 부근을 가리키고 있으며 중국역사지도집 역시 이 위치에 신주를 표시하고 있다)까지 310 리이다.

(삼만위가 관리하는 지역은) 옛 숙신의 땅이다. 수 ·당 때에 흑수말갈의 거처가 되었다. 당 원화(806~820) 이후 발해가 그 땅을 취하여 상경용천부에 속하게 하였다. 발해가 쇠퇴한 후 흑수여진이 다시 그 땅을 취하였는데 훗날 (이들이)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이곳을 회령부로 삼았다.《讀史方輿紀要 卷三十七 山東八》

폐회령성, 일명 해고성이라 한다. 서남쪽으로 삼만위계와 접한다. 즉 발해상경용천부의 땅이다. 여진 초에 이곳에서 발흥하였다. 아골타가 요나라를 멸한 후에 회령주를 설치하였으며 완안성(금 태종)이 승격시켜 회령부로 삼고, 상경을 건립하고 회령현을 설치하여 부의 치소를 겸하게 하였다. 해릉제가 상경을 폐지하고 예전으로 되돌렸다(많은 건물을 파괴한 후 상경을 현 북경으로 옮기고 그저 회령부라는 명칭만 남겨둠) . 원나라가 폐지하였다.《讀史方輿紀要 卷三十八 山東九》


3) 대원일통지

상경고성은 옛 숙신씨의 땅으로 발해 대씨가 상경으로 고쳐 삼았다. 금나라가 요나라를 멸한 이후에 상경을 건설하여 도읍으로 삼은 후에 회령부로 고쳤다. 상경의 남쪽을 일러 건주, 서쪽을 일러 빈주, 또 (그) 서쪽을 일러 황룡부라 하니 즉 발해의 홀한군을 훗날 용천부로 삼은 것이다.《大元一統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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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학계 통설 발해 건주(建州) 비정지를 역이용(逆利用)하여서 

건주(建州)는 발해 솔빈부(率賓府) 속주 3곳 ㅡ 화주(華州), 익주(益州), 건주(建州) ㅡ 가운데 한 곳이다. 우선 이 건주의 위치에 대하여 한·중 사학계 통설에서는 어느 곳으로 비정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사서에서 기술한 내용을 교차해 보겠다.


1) 사학계 통설 비정 건주(建州) 위치

■중문위키

건주, 발해국의 솔빈부에 소속된 주 가운데 한 곳. 건주의 치소는 흑룡강성 동령시 대성자고성에 있었다. 일설에는 라사쌍성자, 또는 극랍사락아이산성에 있다고도 하였다. 예전에는 발해의 건주를 자주 지금의 길림성 돈화시 부근 오동성(장백산 악다리성)으로 고증하였다. 요나라가 발해를 멸하고 건주 백성 대부분을 요태조가 지금의 요녕성 북진시 경계(현주 속주인 강주와 그 속현 솔빈현)로 끌고갔는데 (이후) 요나라 중경도에 별도로 건주(현 조양시 조양현 서남쪽)를 만들었으니 이는 발해국의 건주를 이치한 것이 아니다(즉 발해 건주와 요나라 건주는 다른 곳이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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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화시에서 동령시로 건주 비정지가 옮겨진 이유는 금 상경회령부(백성유적) 발굴(1920년대 초, 러시아)에 이어 현 영안시 서남쪽 동경성에서 대규모 발해 왕성 유적지가 발굴(1930년대, 일본)되면서 이 영안시 동경성을 만주원류고, 정약용의 발해고, 유득공의 발해고의 고찰을, '현 압록강이 고대 압록강, 현 서북한이 전한 낙랑군'이라는 학계 통설과 교차한 것에 따른 것이다.  


■한민족문화대백과 

솔빈부(率賓府)에 속한다. 그 위치에 대해서는 현재의 흑룡강성(黑龍江省)동녕현(東寧縣) 부근으로 보는 설과, 동녕현 또는 소련 연해주의 수찬시(지금의 파르치잔스크)로 보는 설과, 흑룡강성 동녕현에 있는 대성자(大城子)로 보는 설 등이 있다. 속현(屬縣)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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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원일통지(大元一統志) 기술 건주(建州) 위치

상경고성은 옛 숙신씨의 땅으로 발해 대씨가 고쳐서 상경으로 삼았고, 금나라가 요나라를 멸한 뒤에는 곧 (발해) 상경에 도읍지를 건설하였다가 (훗날) 고쳐서 회령부로 삼았다. 상경의 남쪽을 일러 건주, 서쪽을 일러 빈주, 또 (그 서쪽에) 황룡부인데 즉 발해의 홀한군을 훗날 용천부로 삼았다.

혼동강은 민간에서는 송와강이라 하는데 장백산에서 발원하여 (옛) 발해의 건주(建州) 서쪽 50 리를 경유하여 동북쪽으로 흘러 여러 물줄기와 모여서 옛 상경의 아래를 경유하여 동북쪽으로 흘러 오국두성의 북쪽에 도달하고, 다시 동북쪽으로 바다까지 흘러간다.


3)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기술 건주(建州) 위치

원일통지에서 "혼동강은 민간에서 송아리강이라 하는데 장백산에서 발원하여 옛 건주를 50 리 경유하여 북쪽으로 흘러 여러 물줄기와 모여서 옛 상경의 아래를 경유하여 동북쪽으로 흘러 오국두성의 북쪽에 도달하고, 다시 동북쪽으로 흘러 바다까지 이른다."하였다. 명일통지에서 "솔빈하가 건주에 있는데 (건주의) 동남쪽 아래로 흘러 바다에 들어간다. 금나라 때의 솔빈로는 솔빈하에서 이름이 연유하였다." 하였다.

원일통지에서 "해란하가 심양로에 있는데 옛 건주를 경유하여 동남쪽 1천 리에서 바다에 들어간다"하였다. 명일통지에서 " 해란하가 건주의 동쪽에 있는데 동남쪽으로 1천 리 (흘러) 바다에 들어가는데 원나라 해란부는 해란하에서 이름이 연유하였다"하였다.

명일통지에서 "호이합강이 건주의 동남쪽 산 밑에서 발원하여 경박호를 돌아서 다시 북쪽으로 (흘러) 혼동강에 들어간다" 하였다.

명일통지에서 "조오하가 개원성 동북쪽 570 리에 있는데 건주 동남쪽 산에서 발원하여 동북쪽으로 흘러 도노마하와 합쳐진 후에 송화강에 들어간다" 하였다.


4) 정리

모든 역대 사서가 발해 건주를 금나라 상경회령부 남쪽에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1920년대 러시아 고고학팀이 현 하얼빈시 아청구에서 금나라 상경성 유적을 발굴하기 전까지 상경회령부의 위치는 불명확하였고 청나라 시대에 이르러 대체로 영고탑, 목단강시 영안현 동경성 유적 등을 근거로 하여 그 일대를 금나라 상경회룡부 및 발해 상경용천부로 인식하게 되었다. 

유적이 하얼빈에서 뒤늦게 발굴되었으면 이 발굴된, 확실한 근거를 중심으로 발해 상경성 역시 다시 비정돼야 옳음에도 금나라 회령부 위치만은 수정하고는 발해 상경성은 여전히 영안현 동경성에 비정해 두고 있다. 

발해 상경성, 금 상경 회령부, 발해 건주의 위치 관계는 대원일통지에 반복하여 기술돼 있다. 즉 중국 사학계의 발해 건주 기존 비정지인 현 길림성 돈화시 오동성(吉林省敦化市附近敖東城) 일대가 그 후 조정되어 비정된 흑룡강성 동령시에 비하여 사서 기록에 부합하는 것이다. 한국 사학계 통설의 발해 건주 비정지는 언급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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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강하(江河) 기록을 근거로 한 발해 건주(建州)의 위치


1) 혼동강(混同江)과 건주(建州) 관련 기술의 해석 문제

혼동강이 현 제2송화강(을 비롯한 송화강)임은 사학계에서조차 이견의 여지가 없다. 이 장에서는 발해 상경용천부의 위치를 고증하기 위한 시작점을 발해 건주(建州)로 잡고 있다. 난하 동쪽에서 역사상 건주(建州)는 단 2 곳밖에 없었다. 거란이 패주가 있던 현 조양시 조양현 서남쪽, 대릉하의 남쪽에 만들었다가 훗날 홍수의 피해를 자주 입자 그 북쪽으로 옮긴, 석진의 출황제 석중귀와 그 일가족이 말년을 보낸 건주(建州), 그리고 발해의 솔빈부(率賓府) 속현이었던 건주(建州)가 그것이다. 

말하자면 역사상 만주에 건주(建州)라는 명칭의 주는 발해의 건주밖에 없었고, 그 후의 왕조인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등이 그 지명을 따랐으므로 게다가 건주여진이라는 명칭까지 여기서 비롯됐으므로 그 위치는 이견이 없어야 옳다. 그러함에도 사학계에서는 현 목단강시 영안현 동경성을 발해 홀한성으로 못박아 두었기에 여기를 기점으로 발해의 여러 주, 현 등의 위치를 비정하고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역대 사서의 혼동강 관련 기술에서 발해 건주가 언급되는데 해당 기술들에서 확실한 위치는 4 곳이다. 첫째, 혼동강(현 송화강), 둘째, 상경(현 하얼빈시 아청구), 셋째, 오국성(현 하얼빈시 의란현 의란진), 넷째, 바다. 이렇게 이 4 곳을 기준으로 하여 건주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다. 기록을 교차하여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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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통지에서 "혼동강은 민간에서 송아리강이라 하는데 장백산에서 발원하여 옛 건주를 50 리 경유하여 북쪽으로 흘러 여러 물줄기와 모여서 옛 상경의 아래를 경유하여 동북쪽으로 흘러 오국두성의 북쪽에 도달하고, 다시 동북쪽으로 흘러 바다까지 이른다."하였다. 元一統志混同江俗呼松阿哩江源出長白北流經舊建州五十里會諸水東北流經故上京下達五國頭城北又東北注於海 (만주원류고)

혼동강은 옛 건주 50 리를 경유하여 북쪽으로 흘러 여러 물줄기와 모여서 옛 상경의 아래를 경유하여 동북쪽으로 흘러서 오국두성에 도달한다. 混同江北流經故建州五十里會諸水東北流經故上京下達五國頭城 (원일통지 1)

혼동강은 민간에서는 송와강이라 하는데 장백산에서 발원하여 (옛) 발해의 건주(建州) 서쪽 50 리를 경유하여 북쪽으로 흘러 여러 물줄기와 모여서 옛 상경의 아래를 경유하여 동북쪽으로 흘러 오국두성의 북쪽에 도달하고, 다시 동북쪽으로 바다까지 흘러간다. 混同江俗呼宋瓦江發源長白山北流經渤海建州西五十里會諸水東北流經故上京下達五國頭城北又東北注于海 (원일통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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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기술에서 의문을 낳는 것은 만주원류고와 원일통지 1(편의상 임의로 숫자를 붙였다)의 기록이다. "옛 건주를 50 리 경유하여"라는 표현만 보면 혼동강이 건주지역을 50 리 통과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원일통지 2의 기술을 교차하여 보면 "발해의 건주 서쪽 50 리를 경유하여"라고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일 대상을 기술한 역대 사서를 교차하여 탐구를 하다보면 이와 같이 전대의 기록을 축약하거나 편의상 다소 변형하여 받아적으면서 이것이 점차 후대에 이르러서 왜곡되는 경우를 흔히 접하게 된다.

정리하면, 원일통지와 만주원류고를 교차분석하였을 때에 발해의 건주(建州)는 북쪽으로 흐르는 혼동강(현 제2송화강)의 동쪽 50 리 경에 있었다. 이것을 지도에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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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해란하(海蘭河, 합란하)와 건주(建州) 관련 기술의 해석 문제

해란하(海蘭河, 합란하)는 현 해란강(海蘭江)으로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의 서남부에서 발원하여 동북쪽으로 흐르다 남쪽으로 꺾여 두만강으로 들어가는 그 길이(河長)가 약 145 k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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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위치가 확실한 해란강을 기준점으로 발해 건주(建州)의 위치를 찾고자 하면 관련 기록이 다음과 같이 이상하게 돼 있어서 애를 먹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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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일통지(大元一統志)

□해란하는 건주를 경유하여 동남쪽으로 1천 리 (흘러) 바다에 들어간다. 合(原譯改為海)蘭河經故建州東南一千里入於海

□합란하(해란하)는 발해의 건주를 경유하여 동남쪽으로 1천 리 (흘러) 바다에 들어간다.合蘭河經渤海建州東南一千里入於海

□합란하(해란하)는 심양로에 있는데 옛 건주를 경유하여 동남쪽으로 1천 리 (흘러) 바다에 들어간다.合蘭河在沈陽路經舊建州東南一千里入於海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 

□합란하(해란하)는 건주위 동쪽에 있는데 동남쪽으로 1천여 리 흘러 바다에 들어간다. 원나라 합란부가 이곳에서 그 이름이 비롯됐다. 合蘭河在建州衛東,東南流千餘里入海。元合蘭府以此名。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원일통지에서 "해란하가 심양로에 있는데 옛 건주를 경유하여 동남쪽 1천 리에서 바다에 들어간다"하였다. 元一統志海蘭河在沈陽路經舊建州東南一千里入於海

□명일통지에서 " 해란하가 건주의 동쪽에 있는데 동남쪽으로 1천 리 (흘러) 바다에 들어가는데 원나라 해란부는 해란하에서 이름이 연유하였다"하였다. 明統志海蘭河在建州東東南流千餘里入海元海蘭府以此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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合蘭河經渤海建州東南一千里入於海

해란강은 1천 리를 흐르는 강이 아니다. 따라서 우선 "건주를 경유하여 동남쪽으로 1천 리 (흘러)" 또는 "건주 동남쪽을 경유하여 1천 리 (흘러)" 라는 기술은 분명히 오류가 있다. 원일통지의 해당 기술은 전대의 어떤 기록을 받아적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여하튼 여기에서 '1천 리'는 합란하, 즉 해란강의 길이를 이르는 말이 아니라 어느 지점으로부터 해란강까지의 거리를 가리키는 말로 봐야 한다.

만약 經을 在의 오기로 본다면 다음과 같이 고칠 수 있다.

合蘭河在渤海建州東南一千里入於海 합란하(해란하, 현 해란강)는 발해 건주의 동남쪽 1천 리에 있는데 바다에 들어간다.《원일통지》

한편 經 앞에 출발지가 생략된 것으로 본다면 원일통지의 다른 기술 "合蘭河在沈陽路經舊建州東南一千里入於海 《원일통지》"이 합란하와 건주 관련 모든 기록 가운데에 원형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이치에 맞게 다시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合蘭河在沈陽路經舊建州東南一千里入於海 《원일통지》

① "합란하는 심양로에 있는데 (합란하까지의 위치화 거리는) 건주를 경유해야 하는데 (그 강은 건주에서) 동남쪽으로 1천 리 거리에 있으며 (물줄기가) 바다에 들어간다."

② "합란하는 심양로에서 건주를 경유하여 동남쪽으로 1천 리에 있는데 (그 물줄기는) 바다에 들어간다."

이 가운데에 두 번째 해석이 가장 합리적이다. 그런데 이 '1천 리'는 심양로와 합란하(해란강)의 거리를 뜻하는 것일까? 우선 앞에서 살펴 본, 건주가 혼동강 동쪽 50 리에 있다고 한 (混同江俗呼宋瓦江發源長白山北流經渤海建州西五十里會諸水東北流經故上京 《원일통지》) 원일통지의 기술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천 리' 기술이 심양로와 합란하의 거리를 뜻하는지 지도상에서 따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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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에서 혼동강, 즉 현 북류 송화강(제2송화강)으로 가능 가장 가깝고 편한 경로는 혼하와 휘발하의 물줄기를 따라 가서 휘발하가 송화강에 합류하는 지점이 화전시(樺甸市)까지 이르는 것이다. 

대원일통지에서 발해 건주가 혼동강, 즉 현 북류 송화강 동쪽 50 리 경에 있다고 했으므로 결국 '동남 1천 리(合蘭河在沈陽路經舊建州東南一千里入於海 《원일통지》)'는 건주에서 합란강까지의 방위와 거리를 나타낸 것임을 알 수 있다.


3) 호리개강(胡里改江, 호이합하, 즉 현 목단강)을 중심하여 본 건주(建州) 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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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리개강은 지(志)에 이르길 "건주위 동남쪽 산 가운데에서 발원하여 동북쪽으로 흘러 경박호가 되고 다시 북쪽으로 (흘러) 혼동강으로 들어간다. 금나라의 호리개로는 여기에서 그 명칭이 비롯됐다." 고 했다.(胡里改江《志》云:出建州衛東南山中,東北流為鏡泊,又北入混同江。金胡里改路以此名也。《讀史方輿紀要》)

명일통지에서 "호이합강이 건주의 동남쪽 산 밑에서 발원하여 경박호를 돌아서 다시 북쪽으로 (흘러) 혼동강에 들어간다" 하였다.(明統志呼爾哈江出建州東南山下東北匯為鏡泊又北入混同江《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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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두백과를 근거로 하여 본 중국사학계 통설에서의 명 건주위의 연혁의 대강은 "1404년 현 연변조선족자치주 서부에 있는 화룡시에 최초로 건주위를 설치했다가 1434년에 현 혼하 상류 신빈현 노성진 일대로 교치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명나라가 들어서기 전인 원나라 시대에 편찬된 원일통지에서 이미 발해 건주의 위치가 특정되었고 그 위치가 명나라 이후 사서들에서 말하는 건주위 위치와 일치돼 나타나고, 한편으로 건주위라는 그 명칭 자체가 발해 건주에서 비롯되었으므로 바이두백과에서 말하는 통설로서의 건주위 연혁은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겠다.

결국 이상의 고찰을 토대로 할 때에 발해 건주의 위치는 현 길림성 길림시 소속 현급시인 교하시(蛟河市, 자오허시) 일대에 비정된다.

■자오허시(蛟河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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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건주가 현 길림 현급시 교하시에 위치하였으므로 발해 상경용천부는 당연히 그 북쪽인 현 하얼빈시 일대에 비정돼야 하는 것이다.





■ 원글 출처 : The resonance of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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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9-07-06 07:21
   
결국 한 달이 걸렸다. 진이 빠진다.

부분적으로 다듬거나 추가할 내용이 있지만
발해 상경용천부 위치 추적에 있어서
민간 연구자 가운데에는
최고의 성과물을 냈다고 자부한다.

발해사 연구는 계속할 것이다
     
포테이토칩 19-07-06 10:02
   
수고하셨습니다. ^^
          
감방친구 19-07-06 13:50
   
고맙습니다
메로로 19-07-06 17:12
   
눈팅 유저입니다 연구글 잘보고있습니다 힘네세요
     
감방친구 19-07-06 17:36
   
고맙습니다
소유자™ 19-07-06 20:39
   
감방친구님, 제가 워낙 무식하고 아는게 없어서 뭐라 리플을 달아줘야할지 모르겠습니다, 허나 결코 감방친구님은 혼자가 아니라는점, 늘 명심해주셨으면 합니다.

아는게 없고 지식이 없는 유저들도 동아게에 많은것은 사실이지만, 언제나 뒤에서 감방친구님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소유자™ 19-07-06 20:55
   
아, 그리고 감방친구님께도 이 일은 알아야 하실것 같아서....



저, 닉네임좀 변경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감방친구님
          
감방친구 19-07-07 03:29
   
ㅎㅎㅎ 닉네임을 변경하셨군요
감방친구 19-07-07 09:18
   
아는 게 없어서 뭐라 댓글을 못 달겠다 하는 소리는 넌센스입니다

제대로 알라고 쓴 글에 아는 게 없어서 뭐라 못 하겠다니?

다시 쓰는 유기, 국역DB에서 가져 온 국역본을 제외하고는 제가 다 사서 원문 직접 찾아서 직접 국역한 거고

관련 사서 원문을 모조리 찾아서 국역해서 이해하기 쉽게 배열을 하고 없는 솜씨로 지도까지 그려서 이해를 더 쉽게 하도록 한 것들입니다

글이 길더라도 읽어야 알게 되는 것이지
그냥 사서 한 줄 달랑 가져다가 여기에 이렇게 써 있으니 그건 이거다ㅡ하면 그게 뭔 논리고, 뭔 고찰이고, 뭔 연구겠습니까

여기 발해 상경용천부뿐만 아니라 제가 이곳에 올려온 연구글은 제가 직접 사서 원문 해석하고 비교분석하여서 직접 쓴 글들입니다

정말 미쳐버릴 정도로 힘들게, 생활이 무너질 정도로 장시간 고생을 한 것들이고 또 그만큼 자부심이 있는 연구들이에요

차라리 누군가 질문이나 반박을 하면 오히려 연구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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